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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9-13 천지 창조: 셋째 날
창1:9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창1: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11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창1: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1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오늘 우리는 천지 창조 셋째 날의 기사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 창조의 기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우주 만물의 기원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주 만물의 기원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셨습니까? 이는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특정한 피조물을 높이기 위함도 아닙니다. 예컨대 사람을 높이려는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해나 달이나 별들을 높이면서 그것들을 숭배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시8: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계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하나님은 천지 창조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창조주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하나님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주의 기원을 말씀해주신 의도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에 기록된 천지 창조의 기사를 과학적으로 오류가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천지 창조에 관한 성경의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보지를 않습니다. 그저 하나의 신화나 전설로 간주해버립니다. 그러나 과학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과학은 반복적인 관찰을 통해서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해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과학으로 우주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과학으로는 우주의 기원을 결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우주의 기원은 반복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관찰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일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자연히 우주의 기원은 우주를 친히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설명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과학이라는 허울을 내세우면서, 마치 온 우주가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진화론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우리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거짓된 사상이요, 사단의 사상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만일 온 우주 만물이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되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하나님을 창조한 셈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불경한 짓입니까? 과학은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창조의 원리를 발견해낼 뿐입니다. 따라서 참된 과학은 결코 천지 창조의 기사와 충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의 내용을 뒷받침할 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가 분명하고도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지 창조의 기사를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 세상에 가득 차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에게 합당한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천지 창조의 셋째 날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바다와 육지를 나누셨습니다(창1:9-10). 둘째, 하나님은 식물을 창조하셨습니다(창1:11-13). 이 두 가지 사역을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바다와 육지를 나누셨습니다.
창1:9 (1) 하나님이 가라사대 (2)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3) 그대로 되니라 창1:10 (4)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5)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 창조의 방법(method of creation).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사역은 언제나 말씀의 선포로 시작되었습니다. 셋째 날의 사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바다와 육지를 나누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창조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지 창조의 기사를 먼 옛날의 이야기로만 생각하지 맙시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변함없이 살아 운동하시며, 우리의 삶에 창조의 역사를 일으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그러기에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소경이 눈을 떴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의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일어나 자기의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마8:8).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말씀의 능력을 깨닫고, 말씀을 굳게 붙들고자 했던 백부장의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말씀의 능력을 깨닫고, 말씀에 자신의 생명까지 맡겼던 마리아의 순종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소원합니다.
(2) 창조의 명령(command of creation).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여기에 두 개의 명령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첫째,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라.” “천하의 물”은 하늘 아래의 물, 곧 궁창 아래의 물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천지 창조의 둘째 날에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셨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궁창 아래의 물이 혼돈하고 공허한 땅 전체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자 지구 땅덩어리에는 대 격변(cataclysm)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땅 가운데서 물을 담아야 할 부분은 깊이 함몰(陷沒, depression)했을 것입니다. 둘째, “뭍이 드러나라.” 본시 원초적 상태의 땅은 궁창 아래의 물로 깊이 잠겨있었습니다. 이러한 원초적 상태의 땅이 물위로 드러나 뭍, 곧 육지가 되기 위해서는 역시 지각의 대변동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각의 대 융기(隆起, elevation)가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의 명령을 한번 시각적으로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의 명은 천하의 물이 한 가운데로 모이고, 그 바깥쪽을 뭍이 둘러싸라는 뜻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한 가운데 뭍이 드러나고, 그 뭍의 둘레를 물들이 둘러싸라는 뜻이겠습니까? 우리가 언뜻 생각하면, 천하의 물이 안쪽이든 바깥쪽이든 그저 한 지점으로만 다 모여든 것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러한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지구상을 뒤덮고 있던 물들을 여기 저기 하나님이 지정하신 장소들로 모으셨다는 뜻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명확해집니다. 하나님은 모인 물을 “바다”라고 칭하셨습니다. 이 때의 바다는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seas)입니다. 그러니까 천하의 물은 한 바다가 아니라, 사실은 여러 바다로 나누어져 모여들었습니다. 이 사실은 창세기 2장을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에덴 동산에는 네 개의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천하의 물이 모여서 여러 바다들만 이룬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강들도 이루었습니다. 아울러 이 때에 모인 물로 말미암아 많은 호수들도 생겨났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 권위를 가진 명령의 형태로 다가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로 순종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적 권위 앞에 겸손히 머리를 숙입시다. 그리고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합시다. 그리함으로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베푸시는 창조의 역사를 날마다 체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창조의 성취(fulfillment of creation).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헛되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대로 됩니다. 말씀하신 하나님이 그것을 친히 실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명령하신 하나님이 그것을 친히 이루시며 성취하시기 때문입니다.
시104:6 옷으로 덮음 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원초적 땅의 상태) 시104:7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여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셋째 날 하나님의 창조의 명령) 시104:8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셋째 날의 창조 사역)
하나님이 창조의 명령을 발하신 대로, 물은 하나님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습니다. 물은 한 곳에 모여서 더러는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더러는 강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더러는 호수를 이루었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이 창조의 명령을 발하신 대로, 여기 저기에서 산들이 솟아올랐습니다. 융기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더러는 산들이 모여서 거대한 산맥을 이루기도 했을 것입니다. 또한 여기 저기에서 골짜기들이 내려갔습니다. 함몰 현상도 일어난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조금도 지체함이 없이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물이 어떤 식으로 하나님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다고 묘사를 했습니까? 주의 견책과 주의 우레 소리, 곧 하나님의 창조의 명령에 물은 도망하듯이 빨리 갔다고 표현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의 명령 앞에서 천하 만물은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물도 순종했습니다. 산들도 순종했습니다. 골짜기도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절대적인 순종이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창조의 등기(registration of creation).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이미 말씀을 드린 대로,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소유권과 주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땅과 바다라는 이름을 부여하심으로 그것들을 하나님의 소유로 등기하셨습니다. 따라서 땅도 하나님의 것이요, 바다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레25:23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시95:5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아울러 하나님은 땅과 바다에 주권을 행사하십니다. 그러기에 때때로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 위하여, 땅에서 젖과 꿀이 흐르게 하십니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시기 위하여, 땅이 철처럼 되어 아무런 소산을 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십니다. 또한 때때로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시기 위하여, 바닷물이 물러가도록 만드십니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은 악인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바닷물로 악인을 덮어버리기도 하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땅과 바다의 주인이 되셔서 그것들을 마음대로 다스리십니다.
신26:9 이 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신28:23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출15:19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로 그들 위에 돌이켜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한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땅과 바다를 소유하시며, 그것들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그것들을 이용해서 복을 주시며 구원을 베푸십니까? 또한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그것들을 이용해서 심판하십니까?
신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신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합시다. 그리해서 날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베푸시는 구원을 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창조의 평가(assessment of creation).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첫째 날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나누신 것입니다. 둘째 날 하나님은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을 나누셨습니다. 하나님은 공간을 수직적으로 나누신 것입니다. 이제 셋째 날 하나님은 바다와 육지를 나누셨습니다. 하나님은 공간을 나누시되, 이번에는 수직적으로 나누신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나누셨습니다. 그리함으로서 이 세상은 명실공히 하늘과 바다와 육지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시104:9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렘5: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계한을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계한을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흉용하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은 모래를 두어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삼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더 이상 바다가 육지를 덮지 못하게 하심으로, 땅의 기초를 든든히 세우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바야흐로 땅에 생명이 출현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갖추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바다와 육지를 나누신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하신 대로 만들어진 바다와 육지를 바라보시면서 기뻐하시고 만족해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우리에게 환난의 바람이 심하게 불 때 가 있습니다. 마치 갈릴리 바다의 거센 풍랑처럼, 우리 인생의 바다에도 거센 풍랑이 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창조주 하나님이 바다를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우리에게 환난의 바람이 불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합시다. 우리의 삶에 거센 풍랑이 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합시다. 하나님은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우리를 안전한 포구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날마다 하나님을 앙망하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삽시다. 그리함으로서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삶, 은혜로운 삶, 평온한 삶, 축복된 삶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식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창1:11 (1) 하나님이 가라사대 (2)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3) 그대로 되어 창1:12 (4)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5)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13 (6)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1) 창조의 방법(method of creation). “하나님이 가라사대.” 첫째 날과 둘째 날에는 이 표현이 단 한번씩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셋째 날에는 두 번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셋째 날 하나님이 바다와 육지를 분리하신 후에, 이와는 또 다른 창조의 사역을 행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늘 명심합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비존재에서 존재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적 힘을 가지고 있으시기에,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면,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창조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거나 거역한다면, 우리는 화를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삶,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가정,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일터,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나라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창조의 명령(command of creation).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여기에 세 종류의 식물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풀과 채소와 과목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강조점은 하나님이 식물을 세 종류로 나누었다는 사실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식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오늘 본문의 강조점을 세 가지로 나누어봅니다. 첫째, 하나님은 “다양하게” 식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diversity). 예컨대 하나님이 단 한 가지의 식물만 창조하셨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얼마나 단조롭게 느껴지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온갖 식물을 다양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을 풍요하고도 아름답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다양한 식물을 “동시에” 창조하셨습니다(simultaneity). 하나님은 먼저 풀을 창조하시고, 그 다음에 채소와 나무를 차례대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식물이 “동시에” 완성품이 되어 순간적으로 땅에서 나오도록 명하셨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다양한 식물을 동시에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individuality). 하나님은 바다와 육지를 나누시고, 모래를 두어서 그 경계를 삼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다양한 식물을 동시에 만드시되, 식물들이 서로 섞이지 않게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모든 식물이 자신의 씨를 통해 각기 종류대로 번식하게 하셨습니다. “각기 종류대로”라는 표현은 창세기 1장에만 모두 10번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식물이든지 짐승이든지 각기 종류에 따라서 독자적으로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에 대해서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15: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고전15: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부터 각 종자에게 각기 다른 형체를 주셨습니다. 풀에게는 풀의 형체를, 채소에게는 채소의 형체를, 나무에게는 나무의 형체를 주셨습니다. 따라서 풀이나 채소가 자라서 나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풀은 풀이요, 나무는 나무였습니다. 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종류마다 각기 다른 육체를 주셨습니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육체를, 짐승에게는 짐승의 육체를, 새에게는 새의 육체를, 물고기에게는 물고기의 육체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 시에 각 종자에게 주신 형체를 결코 바꾸시지 않으십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이 계속 닭고기만 먹고산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형체는 조금도 닭처럼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 입에서 닭이 우는 소리도 나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동식물이 저급한 단계에서 고급한 단계로 계속 발전한다는 진화론의 주장은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식물을 창조하실 때도, 1) 다양하게, 2) 동시에, 3)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레19:19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신22:9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이 빼앗김이 될까 하노라
왜 율법은 식물을 섞어서 땅에 뿌리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의 원리에 어긋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식물이 독자적으로 계속 번식해 나갈 수 있도록, 처음부터 다양한 식물을 동시에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원리는 우리의 영적인 삶에도 적용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다시금 세상과 짝하면서 또다시 악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모든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이제는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대로 빛 가운데로 행합시다. 그리함으로서 언제나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창조의 성취(fulfillment of creation). “그대로 되어.” 하나님의 명령은 언제나 절대적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떠한 창조물일지라도 감히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땅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그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천지 창조의 셋째 날 모든 식물이 창조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이와 똑같은 표현이 모두 6번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만 해도 두 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천지 만물이 하나님의 명하신 것에서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그대로 창조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되었지만, 간혹 일부는 되지 않은 것도 있었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천지 창조 사역에서 하나님의 명령에서 벗어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의도대로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절대적인 명령의 형태로만 다가오기를 바랍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사무엘이 보여주었던 자세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합시다. 그리함으로서 우리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날마다 풍성히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창조의 실행(description of creation).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본문의 말씀은 식물의 창조가 실제적으로 행해진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만 짚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첫째, 땅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식물을 생산했습니다. 땅 자체에 어떤 생명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땅에 있는 무기물이 진화에 의해서 유기물로 바뀐 것도 아니었습니다. 땅이 식물을 생산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태양은 그 다음날인 넷째 날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태양이 창조되기도 전에, 땅이 이미 온갖 종류의 푸른 식물을 생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곳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땅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씨 맺는 식물”을 생산했습니다. 하나님은 식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식물에게는 씨를 맺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식물들이 그 씨를 통해서 계속해서 번식할 수 있도록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땅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씨 맺는 식물을 생산했습니다. 식물은 씨를 맺습니다. 씨는 땅에 떨어집니다. 땅은 그 씨를 받아 다시금 식물을 생산합니다. 그 결과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되면 오곡백화가 무르익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온 천지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의 명령을 지금도 변함없이 순종하고 있습니다. 셋째, 땅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장한 형태의” 식물을 생산했습니다. 어린 시절 흔히들 이런 질문을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무엇이 먼저입니까? 물론 정답은 닭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실 때, 태아의 상태에서 시작해서 계속 커나가게 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담은 처음부터 성인으로 창조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식물도 성장한 형태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의 명령을 발하셨을 때, 각종 식물들은 싹을 내기 시작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온 지구는 순식간에 각종 성장한 형태의 식물들로 아름답게 뒤덮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땅을 비롯하여 땅에서 생산된 온갖 식물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명령을 이 세상 끝 날까지 계속해서 신실하게 지켜나갈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되, 끝까지 전심을 다해서 지킬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창조의 평가(assessment of creation).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 인류를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름답게 창조된 이 세상을 인류가 잘 지키고 보존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류는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땅이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땅에는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그 결과 땅이 생산하는 식물도 죽음의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롬8: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한 집안의 가장이 바로 서지를 못하고 타락하면, 온 집안이 함께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만물을 다스려야 할 우리 인간이 타락한 결과, 본시는 아름답게 창조되었던 식물들도 이제는 죽음의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죽고 나면 썩어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온 세상의 자연 만물은 고통 가운데서 신음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히 저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속히 자신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지 못한 삶을 살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 때문에 우리 주변의 사람들도 고통을 당하며, 심지어는 우리 주변의 자연 만물까지도 함께 고통 가운데서 탄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로 인하여 우리 주변의 사람들도 함께 복을 누리며, 우리 주변의 자연 만물까지도 다함께 기뻐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삽시다. 그리해서 우리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우리와 더불어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우리 주변의 모든 피조물까지도 다함께 복을 누리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 창조의 내력(history of creation).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이로서 천지 창조의 셋째 날이 끝났습니다. 물론 아직은 태양이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셋째 날의 하루도 오늘날의 하루와 똑같은 24시간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천지 창조의 사역은 우리에게 삶의 패턴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안식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고, 제칠일은 안식일로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는 삶의 패턴을 보여주셨습니다. 둘째, 성경에서 저녁과 아침은 언제나 24시간의 하루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저녁과 아침이라는 단어가 각기 일 백 번 이상 사용되었습니다. 그 어떠한 경우도 저녁이나 아침을 오늘날과는 달리 턱없이 길게 보는 예가 없습니다. 아침에서 저녁이 되고, 저녁에서 아침이 되면 언제나 예외 없이 그것을 24 시간의 하루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천지 창조의 엿새 동안도 오늘날의 엿새와 같은 기간으로 보아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패턴에 따라서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칠일은 우리가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에게 예배드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욥38: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욥38:5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욥38:6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욥38: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이는 하나님이 욥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새벽 별들”과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늘의 천군 천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하늘의 천사들은 다 기쁘게 소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찬양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말씀으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소리 높여 찬양합시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에게 합당한 모든 영광을 돌립시다. 아울러 지금도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말씀에 순종합시다. 그리함으로서 매일매일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평가를 받는 선하고 아름답고 축복된 삶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