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4-25 천지 창조: 여섯째 날(1)
창1:24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창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오늘 우리는 천지 창조의 마지막 날인 여섯째 날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대로, 천지 창조의 처음 사흘과 나중 사흘은 서로 간에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천지 창조의 여섯째 날은 천지 창조의 셋째 날과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천지 창조의 셋째 날,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두 가지로 나누어졌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게 하심으로 바다와 육지를 구분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하나님은 육지에 살아갈 각종 식물들을 만드셨습니다.
천지 창조의 여섯째 날도 셋째 날처럼,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두 가지로 나뉘어졌습니다. 동물의 창조와 인간의 창조입니다. 하나님은 그들로 셋째 날에 창조된 육지를 채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셋째 날에 창조된 식물을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이와는 달리 여섯째 날만이 가지는 특이한 점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천지 창조의 여섯째 날은 그 내용이 다른 날에 비해서 더 길고 더 상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절정이라고 볼 수 있는 인간의 창조가 바로 이 날에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천지 창조의 여섯째 날에서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날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와 이에 상응하는 표현이 네 번 사용되었습니다. 24절, 26절, 28절, 그리고 29절입니다. 다른 날에는 같은 표현이 기껏해야 두 번 사용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출애굽기 16장에 나오는 내용을 연상시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들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더함도 없었고 덜함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단지 제육일에만 그들은 갑절의 식물을 거두었습니다. 그 날만큼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평소의 갑절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 날인 제칠일은 모두가 안식해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천지 창조의 사역을 끝내셨습니다. 이제 다음 날인 제칠일에는 하나님이 안식하셔야 했습니다. 이와 관련 하나님은 천지 창조의 엿새째 날에는 평소보다 갑절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천지 창조의 마지막 날인 여섯째 날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평소보다 갑절이나 되는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허락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천지 창조의 여섯째 날에 있었던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 두 가지 가운데서 첫 번째에 해당하는 동물의 창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의 창조에 대해서는 다음 주일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창1:24 (1) 하나님이 가라사대 (2)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3) (그대로 되니라)
창1:25 (4)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5)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창조의 방법, 2) 창조의 명령, 3) 창조의 성취, 4) 창조의 실행, 그리고 5) 창조의 평가. 오늘 이 시간 갑절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창조의 방법입니다(method of creation).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빛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하늘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바다와 육지가 나뉘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육지에는 온갖 식물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하늘에는 해와 달과 무수한 별들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물에는 물고기들이 생겨나고 하늘을 나는 새들이 생겨났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각종 동물들이 생겨났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창조의 사역을 새롭게 행하실 때마다, 언제나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의 능력과 절대적인 권위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말씀 위에 굳게 서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딤후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1)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2) 교훈과 3) 책망과 4) 바르게 함과 5)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사람의 감동으로 된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딤후3:15~16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능력을 다섯 가지로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뮤? 구원(salvation).
눅10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무슨 뜻입니까? 성경을 찾아서 읽어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에게 구원을 얻는 지혜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둘째, 교훈(teaching).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삶의 원리를 제공합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우리가 어떠한 생각을 가져야 하며, 어떠한 말을 해야 하며,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상세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컨대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 모두 신명기에 기록된 성경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굳이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셋째, 책망(reproof).
히4:12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더 예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한 우리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씀으로 찔림을 받게 됩니다.
예컨대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기는커녕, 우리가 마땅히 사랑해야 할 형제조차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말씀으로 찔림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책망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바르게 함(correction).
말씀이 우리를 책망하는 것이 소극적 사역이라면, 말씀이 우리를 바르게 하는 것은 적극적인 사역입니다. 예컨대 말씀은 우리가 형제를 미워하는 것에 대해서 책망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말씀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도록 우리를 바르게 이끌어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저앉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금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시고,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힘들게 느껴질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의로 교육함(training in righteousness).
어린 아기는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을 받고, 우리의 영이 바르고 건전하게 자라게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첫째,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줍니다. 둘째, 우리를 교훈합니다. 셋째, 우리가 잘못되었을 때는 우리를 책망합니다. 넷째, 우리를 바르게 이끌어줍니다. 다섯째, 우리를 의로 교육해서 우리의 영이 건전하게 자라도록 합니다.
그 결과 딤후3:17절의 말씀처럼,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합니다. 그러니 말씀 이외에 우리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섭시다. 그리함으로서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을 얻읍시다. 그 결과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창조의 명령입니다(command of creation).
창1:24 ....(1)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2)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1)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라.”
1) 대상(To Whom)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대상은 땅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땅에게 명령하셨습니까? 땅 자체가 생물을 내게 하는 어떤 에너지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이는 진화론자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땅에게 명령을 내리시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모든 생물을 만드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예컨대 하나님은 공중에서 생물들을 만드신 후, 그것들이 땅 위에 모습을 드러내도록 명하실 수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땅에게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라”고 명령하셨을까요? 이는 동물의 몸이 땅의 흙 속에서 취함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하나님이 첫 사람 아담에게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창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실제로 사람이나 동물이나 그 몸의 성분은 땅의 흙과 같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도 동물도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모두가 흙에서 취함을 입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본문에 기록된 창조의 명령을 통하여 이 사실을 우리에게 밝히셨던 것입니다.
2) 내용(What)
하나님의 창조의 명령에 따라서 땅은 무엇을 내어야 했습니까? 오늘 본문에 따르면, 땅은 “생물”을 내도록 되어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생물”은 이 다음 문장에서 자세하게 나타나듯이, 땅에 사는 모든 동물을 의미합니다.
창1:20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생물과 같은 단어) 된지라
창9:10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이와 같이 “생물”이란 단어는 성경에서 매우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물에 사는 물고기, 하늘을 나는 새, 땅에 사는 온갖 동물,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사람까지도 다 포함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식물을 “생물”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식물과 “생물”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식물은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생물은 자의로 움직이며 이동합니다. 따라서 “생물”은 문자 그대로의 동물(動物), 곧 움직이는 생명체를 의미합니다.
3) 방법(How)
“그 종류대로 내되.”
하나님은 모든 동물들을 처음부터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만일 진화론자들의 주장대로 동물들이 진화를 했다면, 오늘날의 세상에는 강한 것만이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물들은 창조된 그 종류대로 지금까지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만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들에게 진화가 있어야 한다면, 하나님은 동물들을 온전하게 창조하지 못하신 셈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선의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결코 좋았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종 동물들을 그 종류대로 만드신 후에, 그것들을 보시면서 좋아하셨습니다. 이는 각종 동물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든 동물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2)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오늘날에는 동물들을 아주 복잡하게 세분하고 있습니다. 곤충, 연체류, 갑각류, 설치류,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 등등 이름을 다 들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복잡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간단하게 세 종류로 분류합니다.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입니다.
1) 육축(Cattle)
이는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사람에게 젖을 제공하는 양, 염소, 또는 암소와 같은 동물들이 포함될 것입니다. 또한 밭을 갈거나 짐을 운반하는 데 쓰여지는 소, 말, 나귀, 낙타 등도 여기에 포함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야생 동물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길들여진 후에, 비로소 가축이 되었다는 생각이 잘못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육축은 육축대로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아무튼 여기서 말하는 육축은 사람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동물을 가리킵니다.
2) 기는 것(Creeping Things)
물론 여기에는 뱀이나 지렁이처럼 다리가 전연 없어서 몸으로 땅을 기어야 하는 것들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기는 것”이란 작은 동물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작은 동물들은 다리가 짧아서, 그 배가 땅에서 별반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레11:29 땅에 기는 바 기는 것 중에 네게 부정한 것은 이러하니 곧 쪽제비와 쥐와 도마뱀 종류와
3) 땅의 짐승(Wild Animals)
이는 네 다리를 가진 큰 동물들 가운데서 길들여지지 않은 것들을 가리킵니다. 물론 이것들을 반드시 육식 동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동물들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은 그들 모두에게 풀을 양식으로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창1: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그러니까 성경은 모든 동물을 간단하게 세 종류로만 구분하고 있습니다. 우선 작은 동물들은 모두 기는 것으로 간주를 합니다. 그 다음에 큰 동물들이 있는데, 이를 두 종류로 구분해서 길들일 수 있는 것들과 길들일 수 없는 것들로 나누고 있습니다.
4) 순서(Order)
오늘 본문 24절에는 육축이 맨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기는 것이 나오며, 맨 나중에 땅의 짐승이 나옵니다. 이는 어떠한 순서로 기록된 것일까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순서대로 기록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는 그 다음절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25절에는 이 순서가 다르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24절에서는 땅의 짐승이 맨 나중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25절에는 오히려 땅의 짐승이 맨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육축, 그리고 맨 나중에 기는 것의 순서로 기록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동물들의 순서가 24절과 25절에서 다르게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줍니까? 이는 동물들이 차례차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동물들이 동시에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천지 창조의 여섯째 날, 하나님은 모든 동물을 한꺼번에 창조하셨습니다. 여기에 진화가 개입할 여지는 전연 없습니다. No evolution! 모든 동물들은 처음부터 그 종류대로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종류대로”라는 말씀을 24절에서 두 번이나 사용했습니다. 25절에서는 세 번이나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종류대로”라는 말씀이 두 절 안에서 무려 다섯 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종류대로”라는 말씀을 이토록 강조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장차 거짓의 아비인 사단의 미혹을 받은 자들이 나타날 것임을 미리 내다보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진화론을 주장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그러한 거짓된 주장에 미혹을 받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동물들을 처음부터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거듭 거듭 강조하시고, 또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동물들을 창조하실 때,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종류대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 땅에서 강한 것만이 살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땅에는 사자나 호랑이 같이 강한 생물들만 살아남을 것입니다. 이 땅에는 토끼처럼 약하고 순한 생물은 살아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여전히 육축은 육축대로, 기는 것은 기는 것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의 원리요, 창조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는 약한 자도 약한 대로 얼마든지 귀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마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속상한 일을 당하셨습니까? 힘든 일로 인하여 약해지셨습니까? 그러할 때면 공중의 새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약한 참새도 강한 독수리와 마찬가지로 아끼시면서 기르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이것들보다 더 귀한 우리를 왜 돌보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이와 같이 약한 자도 얼마든지 아름답고 의미 있게 이 땅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의 원리에 따라서, 우리 모두 날마다 아름답고 의미 있고 귀한 삶을 살아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창조의 성취입니다(fulfillment of creation).
“(그대로 되니라).”
우리말 성경에는 이 말씀이 ( )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말 성경이 창1:15에서 범했던 실수를 다시 반복한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 ) 앞의 말씀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부분이 ( )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이렇게 번역을 했다면, 이 말씀은 괄호가 없이 그대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 말씀이 괄호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은 원문에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하게 번역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괄호 속에 넣었을 뿐입니다.
“그대로 되니라.”
이는 창조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었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땅은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성취됩니다.
사55:10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사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이 사라지는 법이 결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응하여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한 믿음으로 받읍시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그 말씀 위에 든든히 섭시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붙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는 은혜로운 역사를 날마다 체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창조의 실행입니다(execution of creation).
창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이는 동물의 창조가 실제적으로 행해진 모습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동물 창조가 실행된 내용을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우리에게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 가지로 간추려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모든 동물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창1:25의 주어는 “하나님이”입니다. 그리고 동사는 “만드시니”입니다. 하나님은 명령만 발하시고, 그 실행은 천사가 맡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모든 동물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땅에게 명령하셨다고 해서, 땅 자체에 어떤 생명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땅에 있는 무기물이 태양에서 오는 열 에너지를 받아 유기물이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모든 동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둘째, 모든 동물은 “성장한 형태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흔히 이런 질문을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정답은 닭이 먼저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셨을 때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태아의 상태에서 시작하여 계속 커나가도록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처음부터 성인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창조의 명령을 발하셨을 때, 각종 동물들은 어린 상태로 만들어졌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동물은 성장한 형태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온 땅은 순식간에 각종 성장한 형태의 동물로 채워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셋째, 모든 동물은 “다양하게”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것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온갖 동물들을 다양하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단 한 종류의 동물만 창조하셨다면, 이 세상은 너무 단조롭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갖 식물들을 다양하게 창조하셨습니다. 물고기와 새들도 다양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살아가는 모든 동물들도 다양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을 이와 같이 풍요롭고도 아름답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는 수백만 종류의 생물들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서 이미 식별된 종류는 1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생물의 종류가 90%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다양하게 생물들을 창조하셨습니까?
그런데 오늘날의 학자들이 추정하는 바로는, 매 시간당 평균 세 종류의 생물이 지구상에서 멸종해버린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환경의 오염과 산림의 훼손 등 우리 인간들이 이 지구를 잘못 관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온갖 생물들을 다양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서 매 시간당 세 종류의 생물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거슬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을 아름답고도 풍요롭게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섯째로, 창조의 평가입니다(assessment of creation).
오늘 본문은 이렇게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그 말씀에 순종해서 살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지 않은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19:7 (1) 여호와의 율법은 1) 완전하여 ① 영혼을 소성케 하고 (2) 여호와의 증거는 2) 확실하여 ②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시19:8 (3) 여호와의 교훈은 3) 정직하여 ③ 마음을 기쁘게 하고 (4) 여호와의 계명은 4) 순결하여 ④ 눈을 밝게 하도다
시19:9 (5)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5) 정결하여 ⑤ 영원까지 이르고 (6) 여호와의 규례는 6) 확실하여 ⑥ 다 의로우니
시19: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여섯 가지 다른 말들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증거, 여호와의 교훈, 여호와의 계명,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 그리고 여호와의 규례입니다. 이들 모두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리키는 말들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의 특성은 어떠합니까? 완전하며, 확실하며(진실하며, trustworthy), 정직하며, 순결하며, 정결하고, 확실합니다(sure). 우리말 성경은 두 번째와 여섯 번째 특성을 똑같이 “확실하다”로 번역을 했습니다만, 두 번째는 “진실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위해서 어떠한 일을 합니까?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 하고,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하고, 영원까지 이르기에 어느 시대라도 적절하며, 다 의롭기에 우리를 온전한 길로 인도해줍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결론은 자명합니다. 우리는 이토록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이토록 달고 오묘한 하나님의 말씀을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2008년 새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베다니의 마리아처럼 말씀을 사모하며, 받은 말씀 위에 언제나 굳게 섭시다. 그 결과 금년 한 해 우리 모두의 삶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축복된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