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3 천지 창조의 결론: 일곱째 날(2)
창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창2: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다른 날들과는 구별하시고, 그 날을 특별한 날로 높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신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창조의 사역을 마치셨기 때문이었습니다(completed).
둘째,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안식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rested).
셋째, 일곱째 날을 하나님이 복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blessed).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천지 창조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쉬어 평안하셨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복 주셔서 그 날에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매주 일곱째 날 곧 토요일이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기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반면에 매주의 첫날, 곧 주의 날은 어떠한 날입니까? 이 날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신 날입니다. 이 날은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며,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 날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매주 일곱째 날에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면서 창조주 하나님(God as Creator)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면, 우리가 매주 첫째 날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면서 구세주 하나님(God as Savior)에게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매주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인 우리들은 매주 첫날을 주의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이 점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체계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구약에서의 안식일입니다. 둘째, 신약에서의 안식일입니다. 셋째, 신약에서의 주일입니다. 우리를 율법의 안식일에서 해방시키시고, 우리에게 주의 날을 허락하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구약에서의 안식일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는 날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처럼 피곤을 느끼셨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모든 창조를 완성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일곱째 날이 되었을 때, 하나님에게는 더 이상의 창조 사역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떠했습니까? 죄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까지, 사람에게는 따로 일곱째 날을 정해서 안식해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수고로이 일해야만 했던 것은 죄가 이 땅에 들어오고 난 이후부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타락하기 이전에는 언제나 안식만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일곱째 날이 돌아오면,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서구사회가 일찍부터 주 오일제 근무를 실시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매주 토요일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온 가족이 대자연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자연을 즐기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날
창세기에서는 일곱째 날에 대한 언급이 더 이상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러다가 출애굽기에서 일곱째 날에 대한 언급이 다시 나타납니다. 이른바 모세의 율법, 곧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에 일곱째 날이 다시금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의 기준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이 명하는 대로 행해야 했습니다. 만일 율법 가운데 하나라도 어기게 되면,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와 사망이었습니다.
율법에는 수많은 계명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두 가지 계명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어느 율법사의 질문에 대답하신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 계명을 좀더 확대한 것이 이른바 십계명입니다. 십계명 가운데 처음 네 계명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 다음의 여섯 가지 계명은 우리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 십계명에서 중심에 위치한 계명이 무엇입니까? 바로 네 번째 계명인 안식일에 대한 계명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위에 있는 세 가지는 하나님에 대한 계명들이고, 그 아래에 있는 여섯 가지는 이웃에 대한 계명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이 되면 아무 일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 대신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면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계명들, 곧 하나님에 대한 계명들과 이웃에 대한 계명들을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신27: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약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이와 같이 그들은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대로 실행해야만 했습니다. 만일 그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그들은 모든 율법을 범하는 자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이 될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연히 그들은 참회하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울러 그들은 자신들의 무능함을 깊이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대로 지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연히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무한하신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첫째, 본래대로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둘째, 율법이 주어진 이후부터 안식일은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둘째로, 신약에서의 안식일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 안식일의 주인
막2: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막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의 계명을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따라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안식일의 뜻을 바르게 해석해주셨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이 되면, 사람들은 평소에 하던 모든 일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만큼은 하나님과 더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안식일의 개념이 잘못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유대교에서는 성경에도 없는 잡다한 규정들을 많이 만들어서 안식일에 그것들을 다 지키도록 강요했습니다. 이른바 “장로들의 유전”이었습니다.
그 결과 안식일이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안식을 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안식일에 지켜야 할 무수한 조항들로 인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만 잔뜩 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할 때 예수님은 안식일의 본시 취지가 무엇인가를 밝혀주셨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병든 사람들을 여럿이나 고쳐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의 강한 질타와 배척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던 사실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는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안식일의 기본 취지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2) 율법에서의 자유
율법의 멍에는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신약의 성도들은 율법의 멍에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기에 새 언약의 백성들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를 않습니다. 은혜 아래 있습니다.
롬6:14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러기에 우리는 율법이 명하는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율법이 명하는 할례를 받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율법이 명하는 바에 따라서 음식을 가려서 먹지도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율법이 명하는 각종 절기나 안식일을 지키지도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지,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구약의 안식일을 신약시대에도 그대로 지키겠다는 것은 복음의 의미를 헛되이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일곱째 날을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날로 무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그 날을 창조주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신약에서의 주일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 부활의 날
예수님은 안식일의 전 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날은 한 주의 여섯째 날이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그 날은 금요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만에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날짜를 계산할 때, 그 날 당일도 하루로 계산을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여섯째 날에 죽으시고, 한 주의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을 지나서, 그 다음 날인 한 주의 첫째 날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날은 옛 언약의 시대가 지나가고, 새 언약의 시대를 여는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날에 대해서는 신약성경에 있는 네 권의 복음서가 동일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마태복음입니다.
마28:1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마28:9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와 같이 안식 후 첫날,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때 그들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습니다. 이로서 신약시대 최초로 주일 새벽 예배가 드려졌던 셈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마가복음입니다.
막16: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막16: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이와 같이 마가복음도 예수님이 안식 후 첫날, 곧 한 주의 첫째 날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반복해서 밝혔습니다. 이는 첫째 날이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누가복음을 살펴봅니다.
눅24: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누가복음도 예수님이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 후에 누가복음은 그 날에 낮에 되어진 일과 밤에 되어진 일을 더욱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 날 낮에 되어진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눅24:13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눅24: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최초의 새벽 예배는 여자들에 의해서 드려졌습니다. 방금 읽은 말씀은 그 이후에 되어진 일이었습니다. 그 날 낮이었습니다. 열두 제자에 들지 않았던 다른 두 제자가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들었던 예수님의 부활 소식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과 동행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이 가리워졌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눅24: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눅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눅24: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그 날 낮 예배 시간 즈음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설교를 하신 것입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어떤 식으로 설교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눅24: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경을 풀어 주셨습니다. 그리할 때 제자들의 마음은 뜨거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심령에 살아 역사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여사하심으로 우리의 마음과 심령이 뜨거워지기를 바랍니다.
두 제자들은 뜨거운 마음으로 그 즉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열한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이 한 곳에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눅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눅24: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눅24: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눅24: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눅24: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그 날 저녁 예배 시간 즈음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또다시 성경을 풀어 주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증인의 사명을 주셨고, 아울러 그들에게 성령님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첫째 날에 되어졌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을 살펴보겠습니다.
요20:1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이와 같이 요한복음도 예외 없이 예수님이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 네 권의 복음서가 안식 후 첫날을 이토록 강조하고 있겠습니까? 한 주의 첫째 날이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20:24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요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안식 후 첫날 저녁 예배 시간 때였습니다.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도마는 저녁 예배에 참석하지를 않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옵지 못했던 것입니다. 낮 예배뿐만 아니라, 저녁 예배에도 빠짐없이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로부터 여드레를 지났습니다. 그 날은 언제였습니까? 그 날도 역시 안식 후 첫날, 곧 한 주의 첫째 날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날짜를 계산할 때에, 그 날도 하루로 간주를 합니다. 그러기에 유대인들의 여드레가 우리 식으로는 한 주간이 됩니다.
그 날은 도마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모인 곳에 또다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한 주간을 기다리셨다가, 한 주의 첫째 날에 다시금 자신을 나타내셨습니까?
이것은 제자들이 원했던 바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예수님의 주권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첫째 날을 새 언약의 날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요한은 성령의 감동에 따라서 “여드레를 지나서”라는 말씀을 의도적으로 여기에 기록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첫째 날에 부활하셨습니다. 같은 날 신약시대 최초의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같은 날 낮 예배 시와 저녁 예배 시에, 예수님은 성경을 풀어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을 다시금 나타내셨던 날도 역시 첫째 날이었습니다.
(2) 성령 강림의 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렸습니다. 과연 오래지 않아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성령님은 오셨습니다. 그 결과로 신약의 교회가 이 땅에 세워졌습니다.
행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2: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행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오순절 날,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강림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제자들은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권능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날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은 이의 수가 삼천이나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순절 날에 성령님이 임하셨고, 그로 인해 교회가 세워졌고, 교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이와 같이 오순절 날은 참으로 경이적인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기념비적인 날이었습니다. 그러면 오순절 날은 한 주의 몇째 되는 날이었습니까? 그 날도 역시 첫째 날이었습니다.
레23:16 제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오순절이란 말은 50일째 되는 날에 지키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레위기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오순절은 안식일 이튿날, 곧 한 주의 첫째 날에 지키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이 강림하셔서 신약의 교회를 세우신 날도 역시 첫째 날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새 언약에 관한 모든 것이 한 주의 첫날에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첫째 날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금 자신을 나타내셨던 것도 첫째 날이었습니다. 성령님이 강림하셔서 신약의 교회를 세우셨던 것도 역시 첫째 날이었습니다.
(3) 예배의 날
자연히 매주의 첫째 날은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예배를 드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셨던 것처럼, 이제는 하나님 자신이 새 언약의 백성들을 위해서 첫째 날을 거룩하게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행20: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행20:7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사도 바울이 제삼차 전도 여행 중에 드로아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드로아에서 한 주간을 머물렀습니다. 그 때 바울을 비롯해서 드로아에 있던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함께 모였던 날이 언제였습니까? 안식 후 첫날, 곧 한 주의 첫째 날이었습니다.
고전16: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고전16:2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이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매주일 첫날에 모여서 연보를 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고린도 교회도 매주일 첫날에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렸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후 교회는 지금까지 매주 첫날을 예배의 날로 삼았습니다. 매주 첫날이 되면 다함께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게 된 구원을 기념하면서, 예배를 통하여 구원의 하나님에게 모든 영광을 돌렸습니다.
(4) 첫째 날의 명칭
세상 사람들은 매주의 첫째 날을 일요일(Sunday)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본시 바벨론에서 태양을 숭배하며, 태양신을 기리어 붙였던 이름이었습니다. 우리는 태양을 경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속적인 명칭보다는 성경적인 명칭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계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계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여기에 주의 날, 곧 주일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태양을 경배하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요일이라는 말 대신에 성경적인 이름인 주의 날, 곧 주일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날이 언제였습니까? 이 역시 한 주의 첫날인 주의 날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새 언약에 관계된 모든 것이 주의 날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날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을 나타내셨던 날도, 성령님이 강림하셨던 날도, 교회가 탄생한 날도, 교회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함께 모였던 날도, 사도 요한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임했던 날도 다 주의 날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날은 사람이 임의로 만든 날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그저 하나의 전통으로 세운 날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시고, 거룩하게 구별하신 날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일을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는 날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5) 결론
구약의 율법은 안식일에 아무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습니다. 물건을 팔거나 사지도 못했습니다.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오락도 금했습니다. 그 외에도 안식일에 지켜야 할 규정들이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와 사망이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주의 날에 무엇을 하라든지 무엇을 하지 말라든지 하는 규정이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율법에서 자유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율법 아래서 살지 않고, 은혜 아래서 살아갑니다.
예컨대 주일날 갑자기 우리 몸에 병이 생겼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일하지 말라는 율법의 규정에 따라서 약국이 일하지 않고, 병원도 일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고통을 그대로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너무 힘들고 불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주의 날에는 옛 언약의 율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그런 금지 사항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길 경우에 받게 될 처벌도 전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의 날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오는 일곱째 날의 모습과 같습니다.
주의 날이 되면,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기뻐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예수님의 온전하신 의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감사합니다. 이와 같이 주의 날은 복 된 날이요, 쉬어 평안케 되는 날입니다.
이제 문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가?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에게 경배하기를 원하는가? 이러한 것들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율법의 안식일에서 해방하시고, 우리에게 복된 주의 날을 허락하신 예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합시다. 우리의 뜻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예수님을 경배합시다. 그리고 날마다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