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3:1-7 장로의 자격(1)
딤전3: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딤전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3: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딤전3: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딤전3: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딤전3: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딤전3: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오늘 본문 1절과 2절에는 “감독”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는 곧 교회의 “장로”를 의미합니다. 교회를 감독하는 자가 바로 장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장로”는 교회를 감독하는 직분을 가리키고, “감독”은 장로가 하는 직무를 가리킵니다.
행20: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행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장로가 하는 일은 바로 교회를 감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장로는 어떤 식으로 교회를 감독합니까? 이는 장로가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하는 일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장로가 하는 일들을 여러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to rule, to preach and teach)
약5: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to pray for the sick)
벧전5: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벧전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to care for the church)
벧전5: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to be examples for others to follow)
행15: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to set church policy)
딤전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to ordain other elders)
이와 같이 장로에게는 막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따라서 장로가 하나님의 말씀에 바르게 서서 온전하게 헌신하면, 교회는 평안한 가운데 든든히 서서 절로 부흥하게 됩니다. 모든 성도들이 장로들을 본받아, 그들 역시 바르게 서며 온전하게 헌신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설립 11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지금부터 49년 전인 1959년, 우리 승동교회는 한국장로교가 분열되는 고통의 현장 그 중심에 서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승동교회도 어쩔 수 없이 내분에 휩싸여 많은 아픔을 당했습니다.
이제 그때로부터 희년인 50년을 일년 앞두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희년은 모든 것이 풀리는 해입니다. 희년이 되면, 온전한 자유함이 주어지게 됩니다. 우리 승동교회도 희년을 맞이해서, 다시금 승동시대가 활짝 열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크게 쓰임 받을 것입니다.
이제 바야흐로 찬란한 승동시대가 활짝 열릴 것을 바라보면서, 오늘부터 우리는 몇 주간 동안 교회에서 감독의 직분을 가진 장로에 대해서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승동시대를 열어나가는 일에 맨 앞장을 서야할 사람들이 바로 장로들이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오늘 본문의 배경에 대해서 살펴봅니다(The Background).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분입니다. 그 당시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 세워졌으며, 이는 소아시아에 세워진 여러 교회들 가운데서 어머니 교회와도 같았습니다.
행20: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행20: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 때에 에베소에서 삼 년간을 머물면서 전심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교회가 바로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여러 명의 장로들을 세워서 교회를 감독하게 했습니다.
행20:29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행20:30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사도 바울은 자기가 떠난 후에, 에베소 교회에 어떤 일이 생기게 될 것인지를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말씀했습니다. 흉악한 이리들이 교회 밖에서 교회 안으로 들어올 것이며, 아울러 교회 안에서는 거짓된 무리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예견이었습니다.
이들의 배후는 사단이었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밖에서 들어온 흉악한 이리들도, 교회 안에서 일어난 거짓된 무리들도, 모두가 사단의 도구들이었습니다. 사단은 그들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기를 원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과 작별한 후에,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로마로 호송되어, 제일차로 로마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 동안 바울이 예견했던 대로, 에베소 교회에는 교회에 악영향을 끼치며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단 로마의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 자유의 몸이 된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던 주동자 두 명을 징계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바울은 나머지 문제를 디모데에게 맡기고 마게도냐로 건너갔습니다.
딤전1: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
딤전1: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마게도냐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목회의 지침을 전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담고 있는 디모데 전서입니다.
디모데 전서는 모두 여섯 장으로 되어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딤전3:1~7 말씀은 디모데 전서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오늘 본문은 디모데 전서 가운데서 중요하고도 중심이 되는 주제를 담고 있는 부분입니다.
왜 에베소 교회가 평안한 가운데 든든히 서지를 못했습니까? 한 마디로 장로들 가운데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따라, 오늘 본문에서 장로는 어떠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밝혔습니다.
딤전5: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아무나 경솔하게 장로로 세우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반드시 자격이 있는 사람을 안수해서 장로로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사람이 장로로 세움을 입으면, 바로 그 한 사람 때문에 교회 전체가 엄청난 상처를 입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미 교회에서 안수 받아, 교회의 장로로 세움을 입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한 점이 발견되면 회개하십시오. 아울러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기준과 자격에 자신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장로와 같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귀하게 쓰임을 받기 원합니까?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인물은 어떠한 사람인가를 밝히 깨닫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직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직분에 걸 맞는 충성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예컨대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들은 장로의 직분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장로 못지 않게 더 크고 더 귀한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따라서 분명 이들은 제대로 충성하지 못한 장로보다 더 큰 칭찬과 더 큰 상을 하나님에게서 받았을 것입니다.
눅12:48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두 달란트를 맡았으면, 두 달란트를 남겨야 합니다. 그러나 다섯 달란트를 맡았으면, 다섯 달란트를 남겨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집사면 집사로서의 직무를 다해야 합니다. 반면에 장로면 장로로서의 직무를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직분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충성을 다합시다.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맡기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셈할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장로의 직분에 대해서 살펴봅니다(The Office Of An Elder).
딤전3: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바울은 본문 2~7절에서 장로의 자격을 열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 바울은 본문 1절에서 장로의 직분이 영광스러운 것임을 먼저 밝히고 있습니다. 장로의 직분은 영광스럽기 때문에, 그만큼 높은 수준의 자격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 미쁘다 이 말이여(A Trustworthy Statement)
사도 바울의 서신서들 가운데서, 디모데 전서와 디모데 후서 그리고 디도서의 세 권을 가리켜서 우리는 일명 『목회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목회서신』에서 어떤 중요한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때,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목회서신』에서 이와 같은 표현을 모두 다섯 번 사용했습니다. 딤전1:15, 딤전3:1, 딤전4:9, 딤후2:11, 그리고 딛3:8에 이와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미쁘다”라는 말은 “미덥다,” “진실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지금 바울은 무슨 의도로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까? 바울은 오늘 본문 1절에서 장로의 직분이 존귀하고 영광스럽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자명하기 때문에, 바울은 자기가 따로 이를 설명하거나 입증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로는 선생보다도 훨씬 더 존귀한 칭호입니다. 장로는 박사보다도 훨씬 더 영광스러운 칭호입니다. 선생이나 박사는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세속적 칭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장로는 하나님이 주신 성스러운 직분이며 거룩한 칭호입니다,
장로를 가리켜서 선생이나 박사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를 더 높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는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위에 두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장로는 그 어떤 세속적 칭호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2) 사람이
여기에서의 사람은 여성이 아닌 남성을 가리킵니다. 교회에서 장로가 될 수 있는 것은 남자에게만 국한됩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장로가 될 수 없습니다. 이는 장로의 열 다섯 가지 자격 가운데 들어있는 두 번째 자격을 보면 분명해집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장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라고 했습니다. 이는 분명히 남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만일 여자도 장로가 될 수 있다면, 장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든지 또는 한 남편의 아내가 되며”라고 기록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 당시 에베소 교회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목소리가 큰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남자들을 제치고, 남자들이 해야 할 장로의 역할을 자신들이 하려고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사도의 권위로서 엄하게 명하였습니다.
딤전2:12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교회에서 성도들을 가르치고 주관하는 것은 장로가 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여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여자는 장로가 될 수 없고, 오직 남자만이 장로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여자들도 교회 안에서 어머니의 심정으로 어린아이들을 가르칠 수는 있습니다. 동료 여자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도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여자는 여러 가지 귀한 사역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로의 직분만큼은 남자에게만 허락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교단은 여성 장로나 여성 목사를 세우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성에게 장로나 목사 안수를 주는 교단들이 꽤 있습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의 말씀에는 위배되는 일입니다.
딤전2: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딤전2: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딤전2: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이와는 아담의 배필인 하와를 가리킵니다. 하와는 히브리어 이름을 음역한 것이고, 이와는 헬라어 이름을 음역한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창세기를 통해서 잘 알고 있듯이,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와는 그 후에 아담의 돕는 배필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의 질서는 남자가 여자를 주관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한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뱀의 꾀임을 보아 죄에 빠진 것은 분명 아담이 아니라 하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와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고전15:22 말씀처럼, 성경은 언제나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자를 주관하는 책임이 바로 남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가정을 다스리고 교회를 다스려야 할 책임은 언제나 남자에게 있습니다. 그러기에 남자만이 장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가 무시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자는 여자로서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선 여기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 영생을 얻는다는 뜻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은 이러합니다. 여자가 뱀의 꾀임을 보아 죄에 빠짐으로, 죄가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 이와 같은 오명에서 여자가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 해산함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자는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남자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여자는 자기 몸 속에 아이를 십 개월 동안 배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는 것도 여자요,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도 여자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기르는 것도 여자입니다.
따라서 여자는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경건하게 양육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자는 과거에 자기가 인류를 죄에 빠뜨리게 했던 때와는 정반대의 일을 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했지만, 이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해서 여자는 사람을 죄 짓게 만들었던 옛날의 오명에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자는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사단의 시험에 빠지지 않을뿐더러, 아이들도 경건하게 양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남자만이 장로가 된다고 해서, 여자가 무시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남자의 역할이 외적이라면, 여자의 역할은 내적입니다. 여자는 그 해산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들을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오늘날은 성령님이 사람을 불러서 쓰십니다. 성령님은 어떻게 사람을 부르십니까? 성령님은 사람의 마음에 거룩한 소원을 두십니다.
따라서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고자 한다면, 다시 말해서 장로가 되고자 한다면,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자기의 마음에 그와 같은 거룩한 소원을 심어주셨는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에 불과할 뿐인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딤전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이와 같이 그 당시 에베소 교회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익을 얻는 방도로서, 다시 말해서 생활의 방편으로 장로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서로 장로가 되겠다고 다투었습니다.
벧전5: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벧전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요삼1: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장로는 자기의 직분을 이용하여 더러운 이를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장로는 디오드레베처럼 교회 안에서 으뜸이 되려는 자세를 취해서도 안 됩니다. 장로는 낮은 자리에서 사랑과 헌신과 희생으로 교회를 돌보며 보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4)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그 당시의 교회는 심한 핍박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교회의 장로가 된다는 것은 온갖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문자 그대로 십자가를 지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장로가 되고자 하는 자는 십자가를 질 각오가 분명하게 서있어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장로의 길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로의 사역은 분명 선하고도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이는 현재 이 땅에서 당하는 일시적 고난은 장차 하늘 나라에서 주어질 영원한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서 생깁니까? 사람이 선한 일을 사모하지 않고, 그 직분만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일군을 세울 때는 과연 그 사람이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으면 어떤 직분만을 사모하는 사람인가를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딤전5: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
구약시대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릴 때를 생각해봅시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짐승을 잡기에 앞서, 그 짐승의 몸에 손을 얹고서 안수합니다. 이는 제물로 드려지는 짐승과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하나라는 사실을 상징하는 행동입니다.
장로를 세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머리나 몸에 손을 얹고 안수합니다. 그러면 안수하는 사람과 안수를 받는 사람은 하나가 됩니다. 따라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 장로가 되어 교회에 해를 끼치면, 안수한 사람도 그 사람의 죄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행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이와 같이 초대 교회는 장로의 직분을 원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해서 장로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장로의 자격을 갖추고,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이라야 했습니다. 그리고 장로로 안수하기 전에는, 온 교회가 함께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로의 직분은 이 세상의 그 어떠한 직분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이미 장로가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영광스러운 직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선한 일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 모두는 그 어떤 직분에 연연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주실 영원한 상을 바라보면서, 언제나 선한 일을 사모합시다. 그리함으로서 승동시대를 활짝 열고, 한국의 모든 교회들을 바르게 선도하는 승동교회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장로의 자격에 대해서 살펴봅니다(Qualities Of An Elder).
딤전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이미 말씀드린 대로, 장로의 직분은 선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럽습니다. 그러기에 장로는 반드시 자격을 갖춘 자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장로가 갖추어야 할 자격이 열 다섯 가지로 열거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첫째가 장로는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의무적 사항(An Absolute Necessity)
이는 권장 사항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사항입니다.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must be blameless”입니다. 이 점이 우리말 성경에는 분명하게 나타나지를 않지만, 헬라어 성경에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장로는 반드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벧전5:3의 말씀과 같이, 장로는 모든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할 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장로는 모든 면에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만일 장로에게 책망 할 것이 있다면, 양 무리는 안심하고 그를 본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빌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주목하여 보라)
장로는 모든 믿음의 형제들 앞에서 “나를 본받으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장로는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흠이 없는 삶, 부끄러움이 없는 삶,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2) 포괄적 사항(An Overall Requirement)
이는 장로의 자격 전체를 총괄하는 사항입니다. 장로가 책망할 것이 없으려면, 나머지 열 네 가지 사항들을 준수해야 합니다. 만일 이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어긋나면, 장로에게는 책망할 것이 생깁니다. 따라서 이는 가장 기본적이며 포괄적인 사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현재적 사항(A Present State)
헬라어에서 오늘 본문은 현재 분사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습관적이고 계속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단 한번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행동이 습관적이며 고질적이면, 그 사람은 장로의 자격이 없습니다.
(4) 공통적 사항(A Single Standard)
장로만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입니다. 모든 양 무리는 장로를 본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장로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면, 교회의 모든 지체들도 이를 본받아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엡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빌1: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벧후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와 같이 장로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기록된 장로의 제반 자격들은 유독 장로에게만 국한된 사항들이 아닙니다. 교회의 지체라면, 장로든 장로가 아니든 모두가 공통적으로 똑같이 지켜야 하는 사항들입니다.
(5) 전투적 사항(A Fighting Field)
사단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사단과의 영적 전투에서 사단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서야 할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들입니다. 그러기에 장로는 언제나 사단의 주된 공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장로는 단호하게 사단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래야 장로는 책망할 것이 생기지 않습니다. 아울러 그래야 장로는 하나님의 교회를 힘있게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장로는 사단의 공격에서 자신을 어떻게 하면 보호할 수 있습니까? 대답은 두 가지, 말씀과 기도입니다.
시119: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막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이와 같이 장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또한 장로는 깨어 있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장로는 사단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장로는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살전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1)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2)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3) 권하는 자들을 a) 너희가 알고
살전5:13 b)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c) 너희끼리 화목하라
여기에 앞장서서 양 무리를 이끄는 장로와 그를 따르는 양 무리의 책임이 각기 세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장로의 책임은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했습니다. 양 무리의 책임은 영어의 알파벳 소문자로 표기했습니다.
먼저 양 무리를 이끄는 장로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수고하고, 다스리며, 권하는 것입니다. 장로는 양 무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합니다. 또한 장로는 양 무리를 다스리며,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아울러 장로는 양 무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 훈계하면서 그 길을 고쳐줍니다.
그러기에 양 무리는 장로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알고, 가장 귀히 여기며, 화목해야 합니다. 우선 양 무리는 장로의 사역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또한 양 무리는 장로를 가장 귀히 여기며 존경해야 합니다. 아울러 양 무리는 장로와 화목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훌륭한 장로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들의 사역을 알아주며, 존경함으로 그들을 가장 귀히 여기며, 평안함으로 그들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히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벧전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이제 장로는 장로의 책임을 다합시다. 양 무리는 양 무리의 책임을 다합시다. 우리 모두가 책망할 것이 없는 일군이 되어, 항상 선한 일을 사모합시다. 그리함으로서 승동교회가 한국교회의 어머니 교회, 또한 모범적인 교회로서 한국교회들을 바르게 선도하는 일에 크고도 귀하게 쓰임 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