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강 장로의 자격(2)

딤전3:1-7 장로의 자격(2)


딤전3: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딤전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3: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딤전3: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딤전3: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딤전3: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딤전3: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장로의 자격을 열 다섯 가지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모든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장로는 먼저 자기를 위하여, 또한 그를 따르는 모든 양 무리를 위하여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말씀을 필히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2절 말씀처럼, 우선 장로는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이는 장로의 여러 자격들을 총괄하는 사항입니다. 장로가 책망할 것이 없기 위해서는 나머지 열 네 가지 사항들을 모두 지켜야 합니다. 만일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어기면, 장로에게는 책망할 것이 생깁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장로의 자격을 우리는 네 분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도덕성입니다(moral character, 2~3절). 둘째, 가정 생활입니다(family life, 4~5절). 셋째, 영적 성숙입니다(spiritual maturity, 6절). 넷째, 사회적 평판입니다(public reputation, 7절).


딤전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1)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2) 절제하며 3) 근신하며 4) 아담하며 5) 나그네를 대접하며 6) 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3:3 7)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8) 구타하지 아니하며 9) 오직 관용하며 10) 다투지 아니하며 11)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장로가 책망할 것이 없으려면, 여기에 기록된 열 한 가지 사항들에 전혀 흠이 없어야 합니다. 이들은 장로 개인의 도덕성과 인격에 관련된 사항들입니다. 장로는 이들 사항을 준수하기 위해서 부단히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딤전3: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딤전3: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장로가 책망할 것이 없으려면, 자신의 가정 생활에서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의 집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그 사람은 장로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자기 가정에서 본이 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양 무리의 본이 될 수 있겠습니까?


딤전3: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장로가 책망할 것이 없으려면, 장로는 영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요삼1:9에 나오는 디오드레베처럼, 장로는 교만한 마음으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면 안 됩니다. 마20:27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장로는 종의 자세로 겸손하게 양 무리를 섬겨야 합니다.


딤전3: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장로가 책망할 것이 없으려면, 장로는 사회적 평판에서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만일 장로가 세상 사람들에게서 지탄을 받는다면, 그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어지고 전도의 문도 막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장로는 교회 밖에서도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장로는 그의 도덕성이나, 그의 가정 생활이나, 그의 영적 성숙함이나, 그의 사회적 평판에서 아무런 흠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모든 양 무리가 안심하고 장로를 본받을 수가 있습니다. 아울러 그 결과 교회는 거룩한 모습으로 영광스럽게 설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 주일에 이어서 장로의 열 다섯 가지 자격들 가운데,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사항을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이는 곧 장로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하며, 절제해야 하며, 근신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일들만 요구하십니다. 우리 모두 말씀에 순종합시다.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실 것입니다.

앞장 선 장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장로의 뒤를 따르는 모든 양 무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그리함으로서 우리 모두 시온의 대로를 걸어가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크고도 귀하게 쓰임 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장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딤전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장로가 책망할 것이 없으려면, 우선 장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장로의 도덕성을 논하면서, 이 조항이 제일 먼저 기록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가장 잘 걸리고 넘어지는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장로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와 관련된 몇 가지 내용들을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이 말씀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1) 독신 남자(A Single Man)

장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장로는 반드시 결혼한 남자이어야 합니까?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고 있는 남자는 장로가 될 자격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고전7:8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딤전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딤후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바울은 독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장로의 회에 속한 한 사람으로 디모데에게 안수를 주었습니다. 따라서 독신인 남자는 장로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라도 자격만 갖추면, 얼마든지 장로가 될 수 있습니다.


(2) 재혼한 남자(A Remarried Man)

장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장로는 자기 아내가 죽더라도, 다른 여자와 재혼하면 안 됩니까? 만일 다른 여자와 재혼하면, 그는 두 아내의 남편이 되기 때문에 장로로서의 자격이 없어집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고전7:39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딤전5:14 그러므로 젊은이(젊은 과부를 말함)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이와 같이 성경은 배우자가 죽었을 경우에, 재혼하는 것을 금하지 않고 오히려 장려합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은 “주 안에서만”입니다. 믿는 사람과만 재혼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아내가 죽고 난 후에 재혼했다고 해서, 그에게서 장로의 자격이 상실되는 것은 아닙니다. 


(3) 이혼한 남자(A Divorced Man)

한 번이라도 이혼을 한 적이 있으면, 그 사람은 장로가 될 수 없습니까? 만일 바울의 의도가 그와 같았다면, “장로는 이혼하지 말아야 하며”라는 식으로 바울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을 것입니다. 사실 성경은 특별한 경우에는 이혼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마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고전7: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이와 같이 성경은 이들 두 가지 경우에는 이혼을 허락합니다. 첫째, 배우자가 음행을 범하고서도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같은 죄를 범할 경우입니다. 둘째, 믿지 않는 배우자와 신앙 문제 때문에 계속적인 갈등이 있을 경우입니다.

물론 말2:16 말씀처럼,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이들 두 경우에 하나님은 이혼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살펴보았듯이, 재혼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따라서 이혼을 하고 재혼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장로의 자격이 상실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혼을 한 사유가 이들 두 경우가 아니고, 다른 경우이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 5절에 있는 말씀을 예로 들어 생각해봅시다. 만일 사람이 자기 집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서 이혼을 하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장로의 자격이 없습니다.


(4) 일부다처의 남자(A Polygamist)

장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말씀을 하는 바울의 의도는 장로가 일부양처(一夫兩妻)나 일부다처(一夫多妻)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까? 물론 장로는 일부일처이어야 합니다. 이는 장로뿐만 아니라, 모든 기독교인이 다 그러해야 합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구태여 일부다처를 취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디모데가 사역을 하던 에베소는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였습니다. 그곳의 아데미 신전에는 항시 수많은 창기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언제라도 손쉽게 육체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이혼이 매우 손쉽게 행해졌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 당시의 어떤 여자는 스물 일곱 번이나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결혼하게 된 남편은 그 여자를 스물 여섯 번째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물론 그 두 사람은 법적으로는 일부일처였습니다.

이와 같은 정황으로 볼 때,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장로의 자격으로 일부다처를 금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일부일처이더라도, 실질적으로는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충실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의도는 무엇이겠습니까?


(5) 한 여자의 남자(A One-Woman Man)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의도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언제나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마찬가지로 장로에게서 중요한 것은 그의 외적 결혼 상태가 아닙니다. 그의 내적 도덕성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짝 지워 부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결혼의 원리요, 부부의 원리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허락하신 배필 그 한 사람만을 전심으로 생각하며 사랑해야 마땅합니다.


마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사람이 결혼한 후에도 자기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들을 보면서, 계속해서 이 여자 저 여자에게 음욕을 품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 사람은 장로의 자격이 없습니다. 장로는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는데, 그 사람은 오히려 책망 받아 마땅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장로는 한 여자의 남자가 되어,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신의 아내 한 사람만을 생각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이는 장로를 뒤따르는 모든 양 무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 여자의 남자, 또는 한 남자의 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는 우리의 행동뿐만 아니라, 우리의 말과 우리 마음의 생각까지도 순결을 지킵시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오직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씁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크고도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큰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에게 시온의 대로를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장로는 절제해야 합니다.


딤전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장로가 책망할 것이 없으려면, 장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장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장로는 오로지 한 여자에게만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둘째로, 장로는 절제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절제에 대해서 몇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정의(Its Definition)

우리말의 “절제”(節制)는 알맞게 조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사용된 헬라어의 원 뜻은 “wineless, or unmixed with wine, 포도주가 전혀 없는”입니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본시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것, 곧 금주를 의미합니다.  


(2) 배경(Its Background)

이미 말씀드린 대로, 에베소에는 풍요의 여신 아데미를 섬기는 신전이 있었습니다. 아데미(Artemis)는 헬라식 이름이고, 그 로마식 이름은 다이아나(Diana)입니다. 이 아데미 신전은 고대세계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여겨질 만큼 웅장했습니다.


행19:2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에베소 사람들은 수시로 아데미 신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며, 항상 술잔치를 벌였습니다. 아울러 그들은 술에 취한 채, 신전에 있는 창기들과 성행위를 즐겼습니다. 그 당시 아데미 신전에는 항시 수천 명의 창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 당시 에베소 사람치고서 술과 여자, 이 두 가지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옛 사람의 구습을 떨쳐버려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그 당시 에베소에 만연하고 있던 두 가지의 사회악, 곧 술 취함과 창기와의 음행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특히 모든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할 장로는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장로는 한 여자의 남자가 되어야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장로는 술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가 그 당시의 이방 사회에 만연하고 있던 뚜렷한 악행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이와 같이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술 취하지 말 것을 명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데미 신전에 올라가, 술에 취해서 방탕한 짓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에 오르는 성도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아, 성결한 삶을 살아야 마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3) 포도주의 용도(The Uses of Wine)

성경에 등장하는 포도주는 오늘날의 음료수와 같았습니다. 성지 이스라엘은 물 사정이 좋지 않은 곳입니다. 옛날에는 땅을 깊이 파지 못했기 때문에, 물의 질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갈증이 날 경우 어린아이들은 우유를 마셨고, 어른들은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냉장고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포도로 만든 음료수는 곧 발효해서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포도주에 많은 물을 타서 음료수로 사용했습니다. 물을 타지 않은 포도주를 “독주”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포도주나 독주가 주는 유익함도 있었습니다.


시104:15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잠31:6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딤전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이와 같이 포도주는 갈증을 해소시켜 줌으로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줍니다. 또한 독주는 죽어 가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줍니다. 아울러 포도주는 오염된 물을 마심으로 생긴 가벼운 위장병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포도주에는 많은 위험이 뒤따릅니다.


(4) 포도주의 위험성(The Danger of Excessive Wine)

말씀드린 대로, 본시 포도주는 많은 물을 타서 음료수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더운 지방이라서 아무래도 발효하는 속도가 빠릅니다. 게다가 연한 포도주라도 많이 마시면 취하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포도주의 위험성에 대해서 많은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잠20:1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잠23:29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잠23:30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잠23:31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잠23:32 이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잠23:33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잠23:34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잠23:35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이와 같이 사람이 포도주를 마시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겉잡을 수 없도록 취해버립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이 실수도 하고, 뜻밖의 경우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 단적인 예가 창9장에 나오는 노아와 삼하13장에 나오는 다윗의 아들 암논입니다.


창9:20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창9: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삼하13:28 압살롬이 이미 그 사환들에게 분부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저를 죽이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맹을 내라 한지라


(5) 포도주가 금지된 사람들(Men Abstained from Wine)

포도주가 야기하는 위험성 때문에, 성경에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사장과 나실인과 왕입니다. 제사장은 자신의 직무를 위해서, 나실인은 자신의 헌신된 삶을 위해서, 그리고 왕은 자신의 영향력을 올바르게 행사하기 위해서입니다.


레10:9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제사장)

민6:3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나실인)

잠31:4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않도다(왕)


장로가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할 이유도 이와 똑같은 맥락입니다. 장로는 자신의 영광스러운 직무와 헌신된 삶과 양 무리에게 주는 영향을 생각하면서 절제해야 합니다. 장로는 교회를 다스리기에 앞서서, 먼저 자기 자신부터 다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이러한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면 포도주를 마시되, 취하지 않을 정도로 약간만 마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따로 지침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아래와 같은 질문들을 해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과연 이 시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최선의 길인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 행여 이것이 나쁜 습관으로 번지지는 않을까? 혹시 이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이것을 본받아도 좋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말 할 수 있는가?


벧전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행실에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포도주와 같은 술에서 즐거움을 찾지 맙시다. 우리는 항상 절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음식도 절제할 줄 알고, 오락도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과한 것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다. 그리하면 세상이 주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이 우리의 심령에 넘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장로는 근신해야 합니다.


딤전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장로는 교회의 지도자이기에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첫째로, 장로는 여자 문제 때문에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합니다. 둘째로, 장로는 음주 문제 때문에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합니다. 셋째로, 장로는 자신의 처신 때문에 책망 받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장로는 근신해야 합니다.


(1) 정의(Its Definition)

우리말의 “근신”은 “삼가다”라는 뜻입니다. 삼갈 근(謹), 삼갈 신(愼)입니다. “삼가다”라는 말은 조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헬라어의 원 뜻은 “sober-minded,” 곧 술을 마시지 않아 정신이 맑은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은 정신이 맑을 때, 자신의 처신을 삼갈 수 있습니다.


(2) 절제와의 관계(Its Relation to Temperance)

앞서 살펴본 절제와 지금의 근신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입니다. 술 취한 사람은 자기의 처신을 삼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절제하지 못하면, 근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절제하면, 근신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절제는 근신의 원인이요, 근신은 절제의 결과입니다.


(3) 반대 개념(Its Opposite)

근신의 개념을 좀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 반대 개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경솔함입니다(frivolity). 둘째, 변덕스러움입니다(flightiness). 셋째, 혼란함입니다(disorder).

경솔한 사람은 생각이 깊지 못합니다. 말도 가볍습니다. 행동도 함부로 합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 쉽습니다. 자연히 경솔한 사람은 책망 받을 일이 많이 생깁니다. 이와는 달리 장로는 모든 일에 신중함으로서, 책망 받을 일이 없어야 합니다.

또한 변덕스러운 사람은 매사가 불안정합니다. 그러기에 안심하고 그의 뒤를 따를 수가 없습니다. 언제 또 바뀌게 될는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달리 장로는 모든 면에 안정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양 무리가 믿고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혼란한 사람은 삶의 우선 순위가 제대로 서있지를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보다 도리어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사람에게는 골프를 치고 여행을 가는 일이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는 일보다 우선적입니다.

이와는 달리 장로는 삶의 우선 순위가 분명해야 합니다. 장로는 영적 지도자이기 때문에, 육신의 일보다 영의 일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장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양 무리가 본을 받을 수 있습니다.


(4) 적용(Its Application)

장로는 근신해야 하기 때문에, 매사에 신중해야 합니다. 장로는 언제나 안정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장로는 확실하게 삶의 우선 순위가 서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장로는 삼가 바르게 생각하며, 삼가 바르게 말하며, 삼가 바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빌4:8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Right thinking)

벧전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Right speaking)....

요일2: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Right behaving)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장로의 자격 가운데 세 가지를 차례대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장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장로는 절제해야 합니다. 셋째로, 장로는 근신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장로에게만 요구되는 사항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장로에게만 높은 수준의 삶을 요구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은 삶을 요구하십니다. 장로는 양 무리를 이끌어야 합니다. 양 무리는 장로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똑같이 높은 수준의 삶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한 아내의 남편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절제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근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와 같은 모든 면에서 책망할 것이 없으려면, 과연 그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든지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힘있게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우리가 얽매이기 쉬운 모든 죄에서 벗어납시다. 우리 모두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책망할 것이 없는 일군이 됩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의의 병기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