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장로의 자격(3)

딤전3:1-7 장로의 자격(3)


딤전3: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딤전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3: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딤전3: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딤전3: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딤전3: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딤전3: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 기록된 편지가 모두 열세 권 수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가리켜서 일명 『바울서신』(the Pauline Epistles)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신약성경에는 다른 사도들에 의해서 기록된 편지들도 있습니다.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 1, 2, 3서, 그리고 유다서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바울서신』과 구별하기 위하여, 이들 일곱 권의 서신서를 일명 『공동서신』(the General Epistles)이라고 부릅니다.

신약성경은 모두 27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순서는 이러합니다. 맨 앞에 네 권의 복음서가 나옵니다. 그 다음에는 역사서인 사도행전이 나옵니다. 그 뒤를 이어서 21권의 서신서가 나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서신서 21권의 순서는 이러합니다. 먼저 열세 권의 『바울서신』이 등장합니다. 그 다음에는 히브리서가 등장합니다. 그 뒤를 이어서 일곱 권의 『공동서신』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바울서신』과 『공동서신』 가운데 히브리서가 위치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 왜 히브리서가 『바울서신』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을까요? 히브리서는 저자가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히브리서는 바울에 의해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바울서신』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열세 권의 『바울서신』을 분석해봅니다. 이들 가운데 아홉 권은 교회에 보내진 편지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네 권은 개인에게 보내진 편지입니다. 먼저 교회에게 보내진 편지가 성경에 수록되어 있고, 그 뒤에 개인에게 보내진 편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보내진 편지 아홉 권은 이러합니다. 로마서, 고린도 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데살로니가 전․후서입니다. 신약성경은 이들을 연대별로 수록하지 않고, 편지의 길이에 따라서 편지가 긴 순서대로 수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서신』 가운데서, 개인에게 보내진 편지는 네 권입니다. 디모데 전서와 디모데 후서, 디도서, 그리고 빌레몬서입니다. 이들 네 권도 역시 편지의 길이에 따라, 그 길이가 긴 순서대로 성경에 수록되었습니다.

『바울서신』 가운데서, 일명 『옥중서신』(the Prison Epistles)이라고 불리는 책들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입니다. 바울은 이 네 권의 성경을 로마의 옥중에서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옥중서신』이라고 불리어집니다. 

또한 바울이 기록한 서신서들 가운데서, 이른바 『목회서신』(the Pastoral Epistles)으로 분류되는 책들도 있습니다. 디모데 전서와 디모데 후서, 그리고 디도서의 세 권입니다. 특별히 이들 세 권의 성경은 교회를 섬기는데 필요한 지침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 당시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디도는 그레데 섬에 있는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목양에 필요한 내용들을 편지로 적어서 보냈습니다. 그러기에 이들 세 권의 성경은 『목회서신』이라고 불리어집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대로, 오늘 본문이 기록된 디모데 전서는 『바울서신』가운데서 『목회서신』에 속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을 하던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교회를 바르게 세워나가기 위한 지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장로의 자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영적 지도자로서, 교회의 모든 양 무리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장로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자격들을 필히 갖추어야만 합니다.

한 마디로 장로는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양 무리가 안심하고 장로의 뒤를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로는 네 가지 분야, 곧 그의 도덕성이나, 그의 가정 생활이나, 그의 영적 성숙함이나, 그의 사회적 평판에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딤전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1)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2) 절제하며 3) 근신하며 4) 아담하며 5) 나그네를 대접하며 6) 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3:3 7)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8) 구타하지 아니하며 9) 오직 관용하며 10) 다투지 아니하며 11)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이와 같이 바울은 장로가 책망할 것이 없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도덕성을 열 한 가지로 열거했습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 이미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장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장로는 절제해야 합니다. 셋째, 장로는 근신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서 오늘도 우리는 계속해서 장로가 갖추어야 할 도덕성을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항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장로는 아담해야 합니다. 둘째, 장로는 나그네를 대접해야 합니다. 셋째, 장로는 가르치기를 잘해야 합니다.

이 시간 성령님이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케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귀하게 쓰임을 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장로는 아담해야 합니다.


딤전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우리말의 “아담하다”라는 말은 “고아하고(雅, 바를 아) 담박하다(淡, 묽을 담)”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기에 좋은 모양을 가리킵니다. 바로 앞에 나오는 근신이 내적 자세를 가리킨다면, 아담함은 외적 모양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장로가 아담해야 한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장로는 양 무리에게 혐오감이나 위압감을 줄만큼 우락부락하게 생겨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까? 장로는 그 생김새가 여자처럼 부드럽고 곱게 생겨야 한다는 뜻입니까? 물론 그와 같은 뜻은 아닙니다.


(1) 정의

“아담하다”라는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코스미오스”(kosmios)입니다. 이 단어는 “코스모스”(kosmos)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형용사입니다. 헬라어의 “코스모스”는 “질서, 정돈”(order), 또는 잘 정돈된 체계로서의 “세계, 우주”(world, universe)를 의미합니다.

예컨대 화장품을 영어로 “코즈메틱스”(cosmetics)라고 합니다. 바로 헬라어 “코스모스”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무질서한 얼굴의 질서를 잡아주고, 혼돈한 상태의 용모를 정돈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화장품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가을철에 꽃을 피우는 식물의 이름도 코스모스(cosmos)입니다. 헬라어 “코스모스”와 똑같은 철자입니다. 코스모스는 도로를 따라서 질서 있게 심겨져서, 도로 주변의 경관을 아름답게 단장해줍니다. 그러기에 코스모스에게는 그와 같은 이름이 잘 어울립니다.

헬라어 “코스모스”의 반대되는 개념은 “무질서, 혼돈”(chaos)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기사에서, 이 두 가지 개념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사역을 통해서 무질서를 질서로, 혼돈을 정돈으로 바꾸셨습니다.

무질서와 혼돈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질서와 정돈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습니다. 그러기에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끝날 때마다, 매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오늘 본문에 사용된 헬라어 “코스미오스”의 의미는 분명해집니다. 물론 그 원래의 뜻은 “orderly, 잘 정돈된,” 또는 “well-ordered, 질서가 잡힌”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가 의도하는 바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모양과 상태를 가리킵니다.

장로는 교회의 질서를 바르게 세워나가며, 교회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만드는 일에 앞장을 서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장로 자신이 질서와 정돈을 구비한 아담한 모습이 되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아야 할 것입니다.

장로도 아담하고, 그를 본받는 모든 양 무리도 아담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교회는 절로 질서가 바르게 세워지고, 평안한 가운데 든든히 설 것입니다. 그 결과 교회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에게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2) 용례

헬라어 “코스미오스, 곧 아담하다”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 단 두 번 등장합니다. 한번은 오늘 본문에서 사용되었고, 또 다른 한번은 딤전2:9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딤전2:9의 말씀을 통해서, “아담하다”라는 말의 뜻을 좀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딤전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딤전2: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여기서 사도 바울은 공중 예배에서 남자와 여자가 지켜야 할 규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모습, 곧 아담한 모양으로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남자들은 어떠해야 합니까? 분노와 다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모습, 곧 아담한 모습이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무질서와 혼돈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담한 모습은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자들은 어떠해야 합니까? 여자들은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신을 단장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외모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단장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여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아담하지 못한 모습, 곧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지 않은 모습은 어떠합니까? 여자들이 자신의 내면에는 무관심하고, 자신의 외모에만 신경을 써서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치장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패션 쇼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따라서 자신의 옷차림으로 남들의 이목을 끌려고 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시면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모양으로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교회에 올 때, 얼마든지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동기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담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하나님에게 나아올 때는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3) 적용

우리는 지금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있는 우리의 모습은 아담해야 합니다. 우??지금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우리의 마음은 잘 정돈되어 있습니까? 행여 분노와 다툼으로 우리의 마음이 혼란스럽지는 않습니까? 또한 우리의 마음은 오로지 하나님에게로만 향하고 있습니까? 행여 우리의 마음은 사람들을 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는 말 그대로 예를 다해서 드리는 경배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우리의 예를 다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까? 행여 우리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있고, 그저 건성으로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아닙니까? 습관적으로 예배에 지각을 한다든지, 졸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교회 안에서도 아담해야 하지만, 교회 밖에서도 아담해야 합니다.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살지 맙시다. 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갑시다. 그리할 때 우리의 삶은 절로 아담하게 정돈 된 삶, 곧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나, 늘 아담하여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아담한 모양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림으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누리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장로는 나그네를 대접해야 합니다.


딤전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장로가 책망할 것이 없으려면, 장로는 또한 나그네를 대접해야 합니다. 만일 장로가 나그네를 대접하지 않으면, 장로에게는 책망할 것이 생기고 맙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장로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1) 정의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는 “필로크세노스”(philoxenos)입니다. 이는 “필레오”(to love, 사랑하다)와 “크세노스”(stranger, 나그네)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의 뜻은 말 그대로 “to love strangers,” 곧 나그네를 사랑하며, 나그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2) 대상

오늘 본문에서 장로가 대접해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그의 친한 친구가 아닙니다. 자기의 친한 벗을 대접하는 일은 누구라도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장로가 대접해야 할 대상은 “나그네”입니다. 장로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낯선 나그네를 대접해야 합니다. 

그 당시에는 사회복지시설이 제대로 발달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다가 고아나 과부는 많았습니다. 또한 믿음 때문에 핍박을 받아, 자기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교회로 찾아올 때, 교회는 그들을 사랑으로 영접해야만 했습니다.


눅14: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눅14:13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눅14:14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반대 급부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런 조건이 없이 사랑을 베푸는 것이 바로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는 일에 장로는 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배경

물론 장로는 그의 주변에 있는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 곧 고아나 과부 그리고 쫓겨난 사람들을 대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이들 외에도 장로가 필히 대접해야 할 특별한 나그네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복음을 위하여 나그네 된 자들이었습니다. 

옛날에는 라디오나 TV, 또는 인터넷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려면, 직접 복음을 들고 가야만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자, 복음을 들고 낯선 지방으로 갔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도 세 번에 걸쳐서 전도 여행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숙박시설이 발달하지를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여관은 지저분하고, 도덕적으로도 문란했습니다. 아울러 그곳에서 제공되는 음식물들은 십중팔구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낯선 여관에서는 도둑이나 강도를 만날 위험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성경은 복음을 위하여 나그네 된 자들을 대접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이는 장로뿐만 아니라 모든 양 무리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몇 구절만 찾아봅니다.


롬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히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벧전4: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이와 같이 모든 양 무리는 복음을 위하여 나그네 된 자들을 기쁨으로 대접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이와 같은 일에 장로는 본이 되어야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은 복음이 전파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4) 실례

요한 삼서에는 서로 대조가 되는 두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이오와 디오드레베입니다. 가이오는 나그네를 대접해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디오드레베는 나그네를 대접하지 않아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먼저 가이오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삼1:1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요삼1: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요삼1:6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요삼1:7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요삼1:8 이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 삼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사도 요한이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파송을 받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고 각처로 나갔습니다. 그들이 가이오가 사는 지방에 이르렀을 때, 가이오는 그들을 기쁨으로 영접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가이오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오는 복음을 위하여 나그네 된 그들을 사랑으로 대접했습니다. 아마도 가이오는 그들에게 필요한 숙식을 제공하며, 그 외에도 필요한 것들을 공급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에베소 교회에 돌아와서 자기들이 가이오에게서 받은 사랑을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가이오를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요한 삼서에 나오는 또 한 사람 디오드레베는 달랐습니다. 디오드레베는 나그네 된 자들을 대접하지 않아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요삼1: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요삼1:10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는도다

디오드레베처럼 마음이 닫혀서 자기만 아는 사람, 디오드레베와 같이 거만해서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이오처럼 열린 마음으로 사랑을 베푸는 사람, 가이오와 같이 모든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5) 적용

우리가 나그네를 대접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히 있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물론 우리에게 물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우선 우리의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닫아놓으면, 나그네는 쉽게 우리에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닫힌 마음이 아니라,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멀리 느껴지는 사람,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이 언제라도 우리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엡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시 외인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받아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명심한다면, 우리도 나그네 된 자들을 소홀히 여길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으로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명하십니다.

우리 모두 힘써 나그네를 대접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보물도 하늘에 싸여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나그네를 잘 대접해서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복된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장로는 가르치기를 잘해야 합니다.


딤전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장로는 가르치기를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양 무리가 진리 위에 굳게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장로가 가르치기를 잘하지 못한다면, 양 무리는 그들을 미혹하는 이단 사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장로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1) 정의

장로가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입니까? 이는 장로의 언변이 탁월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예컨대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언변이 탁월하지 못했습니다.


고후11:6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고전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이와 같이 바울은 말에는 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일에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저 복음만을 순수하고, 온전하고, 바르게 전하는 일에만 진력했습니다.

따라서 장로가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장로는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에베소 교회에는 거짓 교사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잘못된 가르침으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미혹하려고 들었습니다.

장로에게는 교회가 이단 사상에 물드는 것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장로는 가르치기를 잘해야 했습니다. 장로는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바른 교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고 온전하고 바르게 가르쳐야 했습니다.


(2) 도덕성

지금 사도 바울은 장로의 도덕성을 논하고 있습니다. 장로가 책망할 것이 없으려면, 장로는 도덕성과 관련된 열 한 가지 항목들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장로는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장로가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는 말씀과 그의 도덕성과는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장로의 가르침은 필히 그의 도덕성에 기초를 두어야만 합니다. 만일 장로의 가르침과 그의 삶이 일치하지 못한다면, 장로의 가르침은 설득력을 상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장로가 가르치기를 잘하기 위해서, 장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장로는 절제해야 합니다. 장로는 근신해야 합니다. 장로는 아담해야 합니다. 또한 장로는 나그네를 대접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지켜질 때, 장로는 가르치기를 잘하게 될 것입니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장로는 가르치기를 잘하기 위해서, 먼저 자신이 삶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장로는 늘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만일 장로가 자신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한다면, 장로는 가르치기를 잘하지 못하는 자로서 책망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적용

우리 모두는 언제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장로도 가르치기를 잘해야 하지만, 그 외의 모든 양 무리도 다 가르치기를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능력 있는 증인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딤후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를 미혹하는 이단 사상에 우리가 빠져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르고 순수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 앞에서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누리며 살아가는 이 한 주간의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