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강 장로의 자격(6)

 

딤전3:1-7 장로의 자격(6)


딤전3: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딤전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3: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딤전3: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딤전3: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딤전3: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딤전3: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하나님은 장로를 교회의 감독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양 무리가 그들을 감독하는 장로를 늘 바라보면서, 장로를 본받고 장로의 뒤를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장로는 언제나 모든 면에서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마23: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마23: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마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백성들의 지도자 노릇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말과 그들의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책망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본이 되는 삶을 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바울은 부단 없이 자기의 몸을 쳐 복종시켰습니다. 자기가 전파한 말씀 그대로 자기도 행하며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장로의 한 사람으로서, 모든 양 무리의 본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몸부림을 치면서 자기 자신을 잘 다스렸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장로에게 요구하시는 자격은 무엇입니까? 장로는 근면함과 성실함, 언변과 지혜, 용기와 결단, 통솔력과 친화력 등등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일반 사회의 지도자에게나 필요한 자질들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자질들을 장로에게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장로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한 마디로 양 무리의 본이 되라는 것입니다. 장로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바르게 인도해야 할 사람입니다. 따라서 장로는 모든 면에서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장로가 본을 보여야 할 것들을 크게 네 분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장로의 도덕성입니다. 둘째, 장로의 가정 생활입니다. 셋째, 장로의 영적 성숙함입니다. 넷째, 장로의 사회 생활입니다. 먼저 장로의 도덕성에 관한 분야입니다.


딤전3:2 그러므로 감독은 1) 책망할 것이 없으며 2)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3) 절제하며 4) 근신하며 5) 아담하며 6) 나그네를 대접하며 7) 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3:3 8)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9) 구타하지 아니하며 10) 오직 관용하며 11) 다투지 아니하며 12)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먼저 장로는 이와 같은 도덕성 분야에서 흠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들 열두 가지 항목들을 차례대로 살펴보았습니다. 앞장선 장로도 또한 뒤따르는 모든 양 무리도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킴으로서, 자신을 잘 다스려 도덕성에 흠이 없기를 바랍니다. 

곧이어 오늘 본문은 장로가 잘 다스려야 할 두 번째 분야인 그의 가정 생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그의 가정 생활에서도 모든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이 분야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딤전3:4 (1) 자기 집을 잘 다스려 (2)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딤전3:5 (3)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장로는 자기의 집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둘째, 장로는 자기의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해야 합니다. 셋째, 장로가 자기의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볼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로도 또한 모든 양 무리도 우선 자신의 집을 잘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의 가정 생활을 통해서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본을 보이며, 하나님에게 큰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장로는 자기의 집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딤전3: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장로는 그의 개인 생활뿐만 아니라, 그의 가정 생활에서도 모든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장로는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 부분의 말씀을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다스림의 대상(The Sphere of His Rule)

오늘 본문에서 장로가 잘 다스려야 할 대상은 무엇입니까? 장로는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여기에서의 “집”은 “가족”이라는 단어보다는 의미가 더 넓습니다. 이는 한 가정의 인적 요소뿐만 아니라 물적 요소까지도 함께 포함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인적 요소입니다.

장로는 자기의 아내와 자기의 자녀들, 곧 자기의 가족들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아울러 장로는 그들 이외에도 자기 집에 함께 기거하는 모든 권속들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 사람은 장로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잘 다스려서, 장로에게 필요한 모든 도덕성을 다 갖추었다고 합시다. 그렇지만 그의 아내가 신앙 생활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그의 자녀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탕한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다른 일은 몰라도, 양 무리를 다스려야 하는 장로로서는 자격이 없습니다. 자기 집의 적은 가족조차 제대로 다스리지를 못하면서, 하나님의 교회의 많은 가족을 잘 돌아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삼상2:12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행10: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행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의 가정은 제사장 엘리의 집처럼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앞장선 장로도 또한 그 뒤를 따르는 모든 양 무리도 고넬료의 집과 같이,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잘 섬기는 복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물적 요소입니다.

이미 말씀을 드린 대로, 오늘 본문에 사용된 “집”은 인적 요소에만 국한되지를 않습니다. 여기에서의 “집”은 물적 요소까지 포함되는 넓은 의미의 단어입니다. 장로는 자기 집안의 사람들도 잘 다스려야 하지만, 자기 집안의 경제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장로의 여섯 번째 자격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장로는 기본적인 경제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예컨대 장로가 남들을 대접하기는커녕 늘 남들에게서 신세지는 일만 계속해야 한다면, 어떻게 그가 모든 양 무리의 본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생활에 쪼들려서, 남에게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원성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도 장로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장로는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하물며 남의 돈을 떼먹었다고 원망을 듣는 사람이 어찌 장로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들에게 물질적 부담을 주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앞장선 장로도 또한 뒤따르는 양 무리도 열심히 땀흘리며 일합시다. 그리해서 구차하게 꾸러 다니지 말고, 자기 집을 잘 다스려 늘 남에게 베풀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2) 다스림의 질(The Quality of His Rule)

장로는 자기의 집을 다스리되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잘” 다스려야 합니다. 물론 각 가정의 가장은 자기의 집을 다스립니다. 그러나 잘 다스리지를 못해서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장로는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말의 “좋다”(good)에 해당하는 헬라어 형용사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아가쏘스”(άγαθόϛ)와 “카로스”(καλόϛ)입니다. “아가쏘스”는 본질적으로, 내재적으로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는 달리 “카로스”는 눈으로 보기에 아름답고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마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여기에 “좋은 나무”가 나오고, 또한 “아름다운 열매”가 나옵니다. “좋은 나무”에 쓰인 단어는 “아가쏘스”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열매”에 쓰인 단어는 “카로스”입니다. 본질적으로 좋은 나무는 보기에도 아름답고 좋은 열매를 맺기 마련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장로가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할 때, 사용된 단어는 “카로스”입니다. 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장로는 자기 집을 잘 다스려서, 남이 보기에도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장로는 가정 생활에서도 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행10:22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장선 장로도 또한 장로의 뒤를 따르는 모든 양 무리도 자기 집을 잘 다스리기 바랍니다. 그리해서 고넬료의 가정처럼, 우리 모두의 가정도 보기에 아름답고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기 바랍니다.   


(3) 다스림의 강조점(The Emphasis of His Rule)


살전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이와 같이 장로의 직무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장로에게 교회를 다스리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장로는 자기의 집도 다스려야 하고, 하나님의 교회도 다스려야 합니다.

다스림의 의미와 의의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는 다스림의 강조점에 대해서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다스림의 강조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높은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그들을 주장하는 자세에 있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에서 “다스리다”라는 말의 강조점은 그와 같은 점에 있지 않습니다. 이는 “다스리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이스테미”(προΐστημι)를 분석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헬라어 “프로이스테미”는 “프로”(앞, before)와 “히스테미”(서다, stand)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본래 의도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앞에 서다, 선두가 되다, 인도자가 되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다스리다”라는 단어의 강조점은 앞장서서 뒤따르는 자들에게 본을 보이는데 있습니다.


롬12: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왜 다스리는 자가 부지런해야 합니까? 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스리는 자는 팔짱을 낀 채 말로서만 지시하려고 들어서는 안 됩니다. 솔선해야 합니다. 다스리는 자가 부지런함의 본을 보여야, 다스림을 받는 자도 부지런할 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벧전5: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벧전5: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벧전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이와 같이 장로는 주장하는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장로는 양 무리의 본이 되도록 낮은 자리에서 섬겨야 합니다. 장로가 겸손으로 허리를 동일 때, 그 뒤를 따르는 모든 양 무리도 자연히 장로를 본받아 겸손으로 허리를 동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장선 장로도 뒤따르는 양 무리도 모두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섬깁시다. 그리해서 우리 모두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시며 목자장이신 예수님에게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장로는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해야 합니다.


딤전3:4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장로는 그의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해야 합니다. 장로뿐만 아니라 부모는 누구든지 자기의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해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두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복종을 가르쳐야 할 책임(The Responsibility to Teach Submission)

사람은 누구나 죄악 중에서 출생합니다. 그러기에 어린아이의 마음에도 거역하는 심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는 그 자녀들에게 복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잠언이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3: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잠3:2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잠3:3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3: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이와는 달리 우리가 자녀들에게 복종을 가르치지 않으면 어떠한 결과가 초래됩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부모인 우리가 당해야 할 고통도 큽니다. 특별히 잠언에는 이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잠15:5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잠17:25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잠19:13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재앙이요....

잠19:26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 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

잠28:24 부모의 물건을 도적질하고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케 하는 자의 동류니라


이와 같이 부모가 자녀들에게 복종을 가르치지 않으면, 이는 자녀들을 미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결과 자녀들은 부모에게 근심과 고통과 재앙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부모에게 부끄러움을 끼칠 것입니다. 그들은 부모의 재산도 도적질하듯이 빼앗아갈 것입니다.


잠13:24 초달(楚撻)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초달”은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초달을 통해서라도 그들에게 복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이 바르게 자라서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복종을 가르쳐야 함을 명심합시다. 


(2) 가르침의 자세(The Attitude of Teaching)

장로는 그의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복종이 외적 행위(action)를 강조한다면, 단정함은 내적 마음가짐(attitude)을 강조합니다. 장로는 그 자녀들에게 복종을 가르치되, 모든 단정함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단정함은 올바름을 의미합니다. 바를 단(端), 바를 정(正)입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올바르며,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올발라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를 경건이라고 하며, 사람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를 단정함이라고 합니다. 


엡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엡6: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여기에서 자녀가 부모에게 보여주어야 할 단정함, 곧 내적 마음가짐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자녀는 외적으로는 그 부모에게 순종, 곧 복종해야 합니다. 아울러 자녀는 내적으로는 그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그러면 부모가 자녀에게 보여주어야 할 단정함은 무엇입니까? 여기에 그 직접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부모가 단정함을 잃어버릴 경우에 나타날 부정적 결과에 대해서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단정함을 잃어버리면, 부모는 그 자녀를 노엽게 만듭니다.

예컨대 부모가 그 자녀를 귀찮게 여기거나, 의심만 하거나, 계속 나무라기만 하거나, 편애하거나, 지나친 것을 기대하거나, 무조건적인 폭력을 가하거나,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거나, 본이 되는 삶을 살지 못하면 자녀들은 노여움을 느낄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에게 있어야 할 단정함을 우리가 살펴보려면, 이들과 반대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될 것입니다. 자녀를 귀히 여기며, 믿어주며, 칭찬해주며, 편애하지 말며, 격려해주며, 사랑으로 보살피며, 부부간에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며, 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는 자녀들에게 복종을 가르치되, 이 모든 단정함으로 그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가 이 모든 단정함으로 자녀들에게 복종을 가르칠 때, 자연히 자녀들도 모든 단정함으로 그 부모를 복종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는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합시다. 아울러 자녀는 모든 단정함으로 부모에게 복종합시다. 그리함으로서 우리 모두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며, 사랑과 화평과 기쁨과 행복이 충만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장로는 먼저 자신의 가정 생활에 충실해야 합니다.


딤전3: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이 부분은 새로운 내용을 기술하기보다는 앞 절의 말씀을 보충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부분을 하나의 삽입구로 간주하고, 이 부분을 괄호 속에 넣어서 기록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 부분의 말씀을 두 항목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다스림의 이유(The Reason of His Rule)

오늘 본문 5절은 하나의 질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질문이 유도하는 논지는 자명합니다.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장로가 먼저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딤전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이와 같이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우리 각자의 가정이 작은 집이라면, 하나님의 교회는 큰 집입니다. 교회에는 여러 가정이 모여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집을 다스릴 줄 알아야 큰 집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예수님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눅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이와 같이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할 때, 우리는 더 큰 일도 충성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먼저 우리의 집을 잘 다스릴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교회도 돌아볼 자격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장선 장로도 또한 뒤를 따르는 모든 양 무리도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기에 앞서서, 먼저 자신의 가정 생활에 충실하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다른 교인들의 존경을 받으러들기 앞서서, 먼저 자신의 가족들로부터 신뢰와 인정을 받기 바랍니다.


(2) 다스림의 의의(The Significance of His Rule)

다스림의 강조점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다스림의 강조점은 군림하거나 주장하거나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장서서 인도하며,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스림이 구체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딤전3: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여기에 “다스리다”는 단어와 “돌아보다”라는 단어가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자기 집을 다스리는 것은 곧 자기 집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다스림”이 의도하는 바는 한 마디로 “돌아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집을 돌아보아야 하며, 또한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아야 합니까? 예수님은 하나의 비유를 통해서, “돌아봄”의 의미를 상세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눅10:30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눅10: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눅10: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눅10: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1) 불쌍히 여겨

눅10:34 2) 가까이 가서 3)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4) 싸매고 5)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는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돌보아 주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오늘 본문에 사용된 “돌아보다”라는 단어와 동일합니다.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서 “돌아봄”의 구체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를 만난 사람을 어떻게 돌보아 주었습니까? 불쌍히 여겼습니다.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제공했습니다. 상처를 싸매 주었습니다. 안전한 곳으로 인도했습니다. 바로 이 모든 것들이 “돌아봄”에 포함되는 요소들입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의 집을 다스릴 때에, 바로 이와 같은 돌봄이 있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장로가 교회를 다스릴 때에도, 바로 이와 같은 돌봄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다스림”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바입니다.


딤전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여기에 “누구든지”라고 말씀했습니다. 앞장선 장로뿐만 아니라 그를 뒤따르는 모든 양 무리에게도 똑같이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자신의 가족을 돌아보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믿음 생활을 바르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보다 더 못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각자의 가정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가정 생활에 충실합시다. 우리 모두 부모를 공경하며, 부모에게 순종합시다. 자녀를 사랑으로 돌아봅시다. 형제 사이의 우애를 돈독히 합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배필을 뜨겁게 사랑합시다.

그리함으로서 우리 모두의 가정이 늘 화목하며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 모두의 가정이 경건함으로 뭇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본이 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며,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누리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