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의 승리

찬송의 승리/대하20:20-23

찬송의 승리
대하20:20-23





다 함께 복음성가 찬양하라 내 영혼아를 부릅시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감사하라 내 영혼아 감사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감사하라
기뻐하라 내 영혼아 기뻐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그리스도인의 생활 속에 찬송과 기도가 없다면 그것은 영적 호흡이 끊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찬송생활과 기도생활을 계속하면 신앙에 승리하며 영적인 부요를 누리게 됩니다.
본문의 내용은 유다 나라가 존망의 위기를 앞에 놓고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들이 기도와 찬송을 통하여 국난을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모압과 암몬, 에돔 세 나라의 연합군은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을 아주 내쫓아 버리고 그들이 그 곳에서 살 계획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비장한 각오로 유다를 쳐들어 왔습니다.
대하20:3에 보면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20:11-12)하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의 응답은 야하시엘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임했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본문의 전후를 살펴보면 여호사밧과 백성들은 기도와 찬송으로 침략해 온 암몬과 모압, 에돔의 연합군을 무찌르고 대승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여호사밧은 머리를 땅에 대고 백성은 몸을 굽혀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면서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면 당황해 하거나 불안에 떨지 말고 하나님께 엎드려 우리의 죄와 불신을 회개하며 구원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001. 9. 11 미국 New York의 무역센터인 쌍둥이 빌딩이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에 의해서 무너졌을 때 저는 Alaska Anchorage에 있었습니다. 세계가 깜짝 놀라는 위기를 당했을 때, 미국은 신앙으로 뭉치는 저력을 보았습니다. 교회마다 집회 열이 일어났습니다. 찬송이 힘이 있었습니다. 나약한 찬송을 부른 게 아니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곧 승리하리라\"를 일어서서 손을 높이 쳐들고 찬송하면서 맘을 모으더라구요 T.V를 통해 세계적인 대형교회들이 기도회와 찬양집회를 전 미국에 중게를 하더라구요 테러 때문에 혼돈하고 불안해하기보다는 신앙으로 뭉치더라구요
만약에 우리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치적으로 책임을 떠넘기고 경제가 흔들리고 사회질서가 무너지며 긴장과 갈등, 불안과 공포, 좌절에 사로잡힐 것이요, 교회는 백성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며 흩어지는 민심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2년전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국회 연설 때 한국인의 43%가 이민을 가고 싶다고 하며 74%가 이 나라에서 살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나라에 정신적, 도덕적 생기를 불어넣어야 할 교회까지도 제때가 얼마 남지 않은 사탄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아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힘을 잃고 있습니다. 생기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다시 힘을 얻고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성지교회가 2년 동안 감사와 사랑의 나눔을 잃었지만 어제 저녁 감사와 나눔의 성지음악회를 통해서 새 힘을 얻었습니다. 찬송이 살아 있으면 교회는 삽니다. 사탄의 공격도 승리할 줄 믿습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찬송의 승리에 대해 함께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원합니다.

1. 찬양하는 사람들이 출전하여 승리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여 합심하여 기도하는 여호사밧 임금과 유다 백성들에게 야하시엘을 통해서 응답하신 것은 대하20:l6에 내일 너희는 적군을 향해 마주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하20:17에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출정하는데 칼이나 방패나 창으로 무장하지 않았습니다. 찬양하는 사람들이 큰 소리로 찬양을 했습니다. 대하20:19에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고 했습니다.
매튜헨리는 그들의 무장을 가리켜 믿음의 갑옷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본문 20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칼이나 창이나 방패로 무장하지 말고 하나님으로 무장하라는 말씀이며 무기로 싸우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싸우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군사는 싸움에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견고한 싸움은 이깁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의 마음이 견고할 수 있습니까?
본문 20절은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전폭적으로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한 가지를 맡기면 한 가지를 맡아 주시지만 모든 것을 맡기면 모든 것을 맡아 주십니다. 전폭적으로 신뢰하면 전폭적으로 견고해집니다만, 부분적으로 신뢰하면 부분적인 견고함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를 신뢰하라는 것은 야하시엘(대상20:14-15)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를 신뢰하면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사밧과 유다 민족의 무기는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기도였습니다. 찬송이었습니다. 교회와 성도의 무기도 믿음, 기도, 찬송이라야 합니다.

2.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대하20:21에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노래하는 자를 택하였다는 말은 오늘의 찬양대원을 의미합니다. 거룩한 예복을 입었다는 것은 까운을 입었다는 말입니다. 전쟁터에 나가면서 군복을 입은 것이 아닙니다. 총칼을 든 것이 아닙니다. 까운을 입고 찬양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 하나님께서 복병을 두어 그들을 이겼고 나중에는 적군끼리 죽이고 죽는 대 살육전이 벌어졌다고 했습니다. 역대하20:22-23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거민 을 멸한 후에는 저희가 피차에 살륙하였더라\"
전쟁터에서의 유다 백성들이 큰 소리로 부른 찬양은 믿음의 찬양이었습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는 말씀을 믿고 찬양했습니다. 감사의 찬양이었습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감사하세 하며 찬양했습니다. 감사를 드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전쟁터였습니다. 그러나 감사의 찬양을 했습니다. 승리의 찬송이었습니다. 열심히 찬송할 때 적군이 패하였습니다. \"저희가 패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찬송 가운데 거하십니다. 시22:3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고 하였습니다.
메튜 헨리는 하나님은 성도들이 진심으로 찬미할 때 그들의 일을 도우신다고 했습니다. 찬송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사야 6장에 보면 거룩, 거룩, 거룩을 찬양할 때, 문지방 터가 요동하며 영광이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유다 인이 찬송을 부르면서 적진으로 내려갔을 때 그들 눈에는 이미 시체가 된 연합군의 참담한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유다 백성을 치러 온 것이 아니라 죽으러 온 것이었습니다.
세상 살다보면 유리한 조건을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둔다고 해서 먼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군사력이나 전략적인 면에서 유다 나라가 연합군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나라가 이겼습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이 그들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노력함으로 성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력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급하게 서둘러 빨리 달림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입니다.
겸손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어려워도 찬송하면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승리하게 해 주십니다. 다윗은 이 진리를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찬양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성전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4,000명을 구별하였으며(대상23:5), 대상25:7에는 \"저희와 모든 형제 곧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의 수효가 이백팔십팔 인이라\"했으니 288명의 찬양대를 세웠습니다. 대하5:12에 보면 솔로몬도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이십 인이 함께 서 있다가\" 라고 했는데 솔로몬 찬양대의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 나팔수가 120명이란 말입니다. 한 오케스트라 악단에 나팔수가 몇 명인가요? 왕상10:12과 대하9:11에 보면 솔로몬이 백단목을 수입하여 수금과 비파를 만들어 찬양하게 하였습니다.
승리하는 교회에는 찬송이 살아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찬송하는 성도가 걷는 인생길이 멀고 어두워도 하나님께서 생각지 못했던 기적과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3. 브라가 골짜기에 다시 모여 하나님을 송축하였습니다.
대하20:26을 보면 \"제4일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고 했습니다. 유다 민족이 모여 승리를 찬송했던 브라가 골짜기는 지금의 <와디베 라이쿠트>라는 골짜기입니다. 그 곳은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있습니다. 브라가의 뜻은 축복의 골짜기 혹은 찬송의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이 예배하는 이곳이 브라가 골짜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찬송의 골짜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만일 하나님께 그들이 기도하지 않고 자기들의 무기로 적군을 맞아 싸웠더라면 브라가 골짜기는 시체의 골짜기, 참패의 골짜기, 굴욕의 골짜기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 브라가 골짜기에서 개선의 찬송을 부르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싸워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건강문제, 자녀문제, 직장문제…, 미확실성에 대해 걱정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감사하며 찬송 할 때 물러갈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에 하나인 모나코라는 나라는 국립교향악단의 수는 85명이며 군인의 수는 82명이라고 합니다. 군인의 수보다 악단원이 더 많습니다. 우리 성지교회도 전사보다는 찬양하는 성도가 많기를 원합니다. 회의 시간보다는, 잡담하며 한담하는 시간보다는 찬양이 많기를 원합니다.
찬송이 많은 그리스도인은 그 마음에 평화가 넘칩니다. 그 입에서 찬송이 떠나지 않는 사람은 그 마음속에 승리감이 넘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찬송으로 승리한 싸움에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찬송은 최대의 무기라는 사실입니다. 찬송은 절망도 걱정도 불안도 격동도 울분도 마귀도 물리치는 최상의 무기인 것입니다. 찬송하는 생활을 회복하고 승리하는 삶의 주인공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