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생기를 불어서 사람노릇하게하라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
     성경 ; 겔37:1-14, 롬8:6-11, 요11:1-44
     제목 ; 너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노릇하게 하리라
  

   
    어떤 남자가 세상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목숨을 끊으
려고 한강 다리에 올라가 강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강
물로 막 뛰어드는 그 순간, 그는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리고 그 짧은 순간, 그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이처럼 죽을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어찌 극복할 수가 없겠는가?’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목숨을 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머리가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힘썼습
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의 몸이 물속으로 빠져들자, 열심히
헤엄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그는 안간힘을 다해서
강변 쪽으로 헤엄쳐 나갔습니다. 다행히도, 그가 물속으로 뛰
어드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즉시 119로
전화하는 바람에, 구조대가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었습니다.
구조대는 죽으려고 물속에 뛰어들었던 그 남자를 안전하게 건
져낼 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 남자는 참으로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가
운영하던 사업이 부도를 맞게 되어 그만 사업을 접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사업이 안 되어 너무나 신경을 많이
쓴 나머지, 위암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재발할 경
우, 그때에는 살 가망이 전혀 없다는 의사의 강력한 경고를
받아둔 상태였습니다. 거기에다가, 설상가상으로 그의 아내는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집을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그에게 무슨 살맛이 있었겠습니까?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도무지 정을 붙이고 살만한 곳이나 사람이 없었습니
다. 모든 게 다 싫었습니다. 세상을 산다는 것이 지겨울 뿐이
었습니다. 인생살이가 쉽지 않다는 것은 일찌감치 깨닫고 있
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
고, 급기야 죽는 길을 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마음에는 본능적으로 살고자 하는 강
렬한 욕망이 숨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는 것도 힘들지
만, 죽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우리 인간의 처지라 할 수 있
습니다.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차라리 죽어야겠다고 맘
을 먹었다가도, 막상 죽으려고 하면 죽기가 영 싫습니다. 다
시 말해서, 죽을 용기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살은 보통 지독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결행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
를‘죽지 못해 산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로 사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산다는 것도 힘들지만 죽기는 더욱 싫어서, 어쩔 수 없이 살
아가고 있는 인생, 이 얼마나 가엽고 불쌍한 인생입니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살고자 하는 욕
망’만 주신 것이 아니라, 주어진 그 인생을 좀 더 가치 있고
보람 있게 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도 더불어 주셨기 때문입
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 여러 가지 모양과 방법으로 진선
미를 추구함으로써 ‘참으로 보람이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목숨을 유지하고 산다는 것만으로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 뜻을 이루어감으
로써,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적극 힘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았으나 죽은 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옛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그의 권능으로 사
로잡아 어떤 골짜기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골짜기에
는 죽은 사람들의 뼈가 가득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그 뼈들
은 아주 바짝 마른 상태로 이리저리 마구 흩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사방으로 데리고 다니시면서 그 흩
어진 뼈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물으셨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다시 살아나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겠느냐?”여기
에서‘인자’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부르는 호
칭이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호
와여, 그 일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시금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뼈들에게
내가 시키는 대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너희는 나 여호와의 말
을 들어라! 너희가 다시 살아나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겠다! 너희 뼈에서 힘줄과 살이
돋아나게 하고, 그 위에 피부를 입힌 뒤 다시 살아나도록, 너
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겠다. 그러면, 내가 주님이라는 것
을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했습니다. 그랬
더니,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동안에 어떤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뼈 저 뼈가 서로 연결되면서 들
려오는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마른 뼈들 위에 힘줄
과 살이 돋고, 그 위에 피부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
다. 하지만, 그 안에 생기는 없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다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생기야,
사방에서 와서 이 죽어있는 몸에 들어가 이들을 살게 하라.”
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더니, 그들이
살아서 일어나 굉장히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이런 광경을 보여주신 다음,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이 마른 뼈들과 같
다! 그들은 말하기를‘우리 뼈가 말랐고, 우리의 희망이 사라
졌으며, 우리는 완전히 망했다.’고 탄식한다. 그러나 너희는
나 여호와가 하는 말을 똑똑히 들어라. 내가 직접 너희 무덤
을 열고 너희를 거기서 나오게 하여 이스라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그러면,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마치 무덤처럼 여겨지는 분
들이 없지 않아 있을 줄로 압니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
은, 한 마디로 말해서 살 소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
이 아주 캄캄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돈도 없고 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도와줄 사람도 없는 그런 사람에게는, 산다는
그 자체가 고욕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활동하던 그 당시의 이스라엘백성들이 그
러했습니다. 타국 땅에 노예로 끌려가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
으니, 그들의 삶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냥 자유스럽게 살아도
참으로 힘든 인생인데, 다른 나라 사람들의 종살이를 해야 했
으니,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탄식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다. 완전히 망했다.’그들에게서
생기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죽어서 마른 뼈처럼 되어버린 존재들이었습니다. 하
루하루 사는 것이 참으로 지겹고 고통스러울 뿐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그 안에 생기가 없었기 때문
입니다. 생기(生氣)란 생명의 기운입니다.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찬 기운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생기가
성령에 의하여 생겨나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성령이 오셔서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시
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성령의 지시에 따라 살
면,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롬8:6)’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은혜를 받게 되면,
성령을 받음과 동시에 생명의 기운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설교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던지, 아니면 성경
을 읽거나 기도를 하다가 말씀의 감동과 감화를 받았다고 합
시다. 이럴 때에, 바로 우리는 살아갈 용기와 소망을 갖게 되
는 것입니다. 삶의 용기를 잃고서 절망하던 사람도 말씀의 은
혜를 받은 후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가
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그에게서 살아
있는 생기를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1.우리 모두, 하나님의 영을 듬뿍 받아들여서 인간 본래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금요일, 저는 우리 교인들과 중학교 동창들에게 공동
으로 문자메시지를 발송했습니다. 보낸 메시지 내용은 이렇습
니다. ‘산다는 게 쉽지 않죠? 봄입니다. 다시 새 힘을 얻고
열심히 살자고요! 하나님이 도와주실 겁니다.’
    그랬더니, 중학교동창 중에서 하나가 전화를 했습니다. 그
친구의 말이 ‘누가 내 사정을 알고 위로 문자를 다 보내주었
구나!’하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문자를 보냈을
까 궁금해서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름을 넣지 않고
문자를 보냈거든요. 그 친구뿐이겠습니까? 그날 문자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기 이야기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반면에, 우리 교인 중에서 한 분은 이런 답장을 보내왔
습니다. 당사자는 이처럼 제가 답장 메시지를 공개하는 것에
대해서 너그럽게 이해해주었으면 합니다. 그 답장은 이렇습니
다. ‘저는요, 사는 게 너무 즐거워요. 중간 생략. 사람을 바
라보던 시야를 주님께로 돌리니, 마음이 너무 편안해요!’
    사실은 이분이 오래전에 제게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분이 이번에 보낸 문자는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목사
님, 언제나 맛있는 말씀을 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낙심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말하기를 ‘육신을 따라 살면 죽
는다(롬8:6)’고 했던 것입니다. 어떤 번역 성경은 이 본문 말
씀을‘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아
무튼지, 세상에 속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살면, 인생을 산
다는 그 자체가 좌절과 절망,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세상 욕심을 버리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게 될 경
우, 그 즉시 소망이 보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기운을 얻게 됩
니다. 그것은, 세상 중심으로 살 때와 그 사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최종 목적지는 하늘나라입
니다. 캄캄한 이 세상이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소망은 하늘나라가 아니라, 이 세상
에 있습니다. 이 땅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그들의 인생
목적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그 육신이 원
하는 바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욕심에 따라 살
면,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타인
도 그와 동일한 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요즘 공천과정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
니다. 한 지역구에서 공천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하나인 경우
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두 사람 이상입니다. 그러니까, 공
천 받을 수 있는 숫자는 하나인데, 그 공천을 원하는 사람은
두 사람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천을 받으면 좋아하
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 반발이 얼마나 심합니까?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어디서든지 생존경쟁이
심합니다. 정직하고 바르게 경쟁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
지만, 이 세상은 편법과 부조리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는 게 힘들고 고달프게 마련입니다. 더군다나, 생존경쟁에
서 밀려날 경우, 그야말로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을 인생
의 목적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인생을
사는 목적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어야 합니다. 목숨만 붙어있
다고 해서 사람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름으로써 사
람구실을 제대로 해야만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구실을 제대로 할 때,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 때, 인간으로서 보람과 기쁨을 만끽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뭘 먹거나 즐기는 중에 누리는 기쁨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그 책임과 기능을 다함으로써 인정을
받게 될 때, 진정 아름다운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를 예로 들겠습니다. 그 선수들이 어느
때에 참행복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축구선수이기 때문에 누
리는 명성이나 인기이겠습니까? 아니면, 그가 받는 보수이겠
습니까? 국가대표 축구선수는, 다른 나라와의 경기에서 열심
히 싸워서 이겼을 때, 비로소 그들 선수들은 축구 국가대표선
수가 된 기쁨과 보람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각 사람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축구 국가대표선수만큼이나 귀한 존재들입니다. 모든 자식이
그 부모에게는 다 귀하고 소중한 자녀이듯이 말입니다. 부모
는, 그 자식이 돈을 벌어다 주거나 맛있는 것을 사드리는 것
도 좋아하시겠지만, 그보다는 그 자녀가 어디를 가든지 사람
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될 때에 그 부모님을 참
으로 기쁘시게 해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죽은 자를 일으키고 그들에
게 다시 생명을 주는 자(요11:25)”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은, 예수님이 우리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건져내어 사람답게
살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않
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요컨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곧 생명의 양식을
기쁘게 받아먹을 때, 우리는 생기를 얻게 되는 것이고, 또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7절 말씀에 ‘하
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의 말씀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으며 은혜를 받게 될 때, 우리
속에는 생기가 넘치게 되고, 그 결과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그
구실을 다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2.우리는 인간의 욕망(생각)을 잘 극복하고 성령을 따름으
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본래 인간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은 동일했습니다. 왜냐하
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에 당신의 모습에 따라 지으
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참 기쁨과 평
화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기쁘면
우리 마음도 기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기를, 육신이 원하는 바를 이
룰 때에 행복하게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맛
있는 음식을 많이 먹거나 재미있게 놀 때에 누리게 되는 기쁨
이나 즐거움 같은 것들을 행복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행복도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사는 우리들은, 육신이 원
하는 것보다는, 우리의 양심이 만족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고 승
화시킬 수 있는 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
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보내주
신 성령이십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욕망을 조장하면서 그 죄악 속으로 깊이
빠져들도록 이끄는 세력이 마귀인 것이고, 우리로 하여금 하
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입
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를 따르든지, 아니면 성령의 지시
를 따르든지, 그 선택은 우리 각 사람의 자유입니다. 물론, 그
선택의 결과는 우리 자신이 감당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자 합니다. 그가
말하기를 ‘성령을 따라 살면 생명과 평안을 누리지만, 육신
의 욕심을 따르면 죽는다(롬8:6)’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육신
의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의 뜻대로 산 사람치고 말씀을 지킨 일도 없고,
또 결코 지키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실 때, “아버지, 만일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주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
소서.”하고 세 번씩이나 간구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쓴 잔이란 십자가의 죽음을 뜻합니다. 그
러니까, 예수님도 십자가의 죽음을 두려워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그 죽음을 피하고 싶으
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육신적인 생각이
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육신적인 생각을 이기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름으로써 최후의 승리를 거두셨던 것입니다.
  
    우리 또한, 매순간 선택을 해야 합니다. 육신적인 생각이냐,
하나님의 뜻이냐? 물론, 육신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될 때, 우리는 인간답게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
나 육신적인 생각을 따를 경우, 잠시 동안, 육신적으로 편안
하게 되거나 세상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길
은 영원한 멸망과 죽음의 길인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잠시 사는 이 세상에 속아서 육신
의 생각을 따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로
마서에서 말하기를 ‘아직도 옛날 죄에 물든 자아의 지배를
받아 육신의 욕망대로 따라가는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런 말을 듣는 일이 없도록, 육신의 욕망과
싸워서 승리함으로써,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의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
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