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씬 더 자기를 낮추어 죄인처럼 죽으셨다


                 종려(고난)주일
     성경 ; 사50:4-9, 빌2:5-11, 마27:11-54
     제목 ; 훨씬 더 자기를 낮추어 죄인처럼 죽으셨다
     
   
    얼마 전, 인터넷 신문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
사에 관한 재미있는 기사가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김 여사가 평소에 받아보던 잡지를 청와대에서 받아보려고,
김 여사가 직접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서 주소 정정을 부탁하
게 된 것입니다. 김 여사가 “새 주소로 잡지를 보내주셨으면
하는데요.”하고 말한 다음, 주소를 밝혔습니다. “서울시 세
종로 1번지 청와대…”
    그러자, 출판사에서는 “주소가 청와대라고요? 그럼, 비서
실에서 전화를 하신 거군요.”하고 말했습니다. 이에, 김 여사
는 “그게 아니라… 제 남편이 이번에 대통령이 된 이명박인
데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의 부인이 직접 전화를 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지 통상적으로 비서나 수행원
을 통해서 일을 처리하게끔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
윤옥 여사가 아직은 청와대 생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
런 실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실수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
다. 사적(私的)인 일로 전화를 거는 정도는, 비록 대통령 부인
일지라도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기 때문입니다. 그
처럼 사소한 일까지도 꼭 비서실을 통해서 연락을 해야만 하
는지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최대 과제는 말할 것도 없이 ‘사랑의 실천’
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우리가 자기 스스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겸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을 스스로 낮추고 또 낮추
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죽는
그날까지 사랑과 봉사의 생활을 부지런히 해야 하는데, 그에
앞서서 먼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태도가 겸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직
접 보여주신 삶의 태도가 바로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
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
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었고, 그와
동시에 겸손히 순종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예수를 온전히 닮아가기 위해서
는, 주님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옛 아담이 죄에 빠져서 멸망하게 된 것은,
그의 지나친 욕심과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반면에, 예수께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신 것은, 그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또 낮
추어서 겸손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예수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권리를
요구하거나 거기에 집착하지 않았다(빌2:6)’고 하면서 ‘오히
려 예수님은 그 큰 능력과 영광을 버리고 종의 형상을 취하여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님은 본래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분이시지만, 그 모든
것을 버리시고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것은 ‘섬기는 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유월절 전날, 예수님
이 육신적으로 마지막 밤을 지내시게 되는 그날 저녁, 예수님
은 그의 제자들에게 ‘섬기는 자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식사를 하시기 전에 먼저,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다음,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
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허리에 둘렀던 수건으로 제자
들의 발을 정성스럽게 닦아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은 인간의 자리에서 다시 한 단계 아래인 종의 자리로
내려가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일은 종이나 노예가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자리에 그냥 머무르시지 않고, 그보다
한 단계 더 자신을 낮추시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죄인의
자리’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예수님은 훨씬 더
자기를 낮추어 죄인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밝혔습니
다. 그러므로 주님은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자리에 도달할
때까지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셨던 것은, 이미
말씀드렸듯이, 옛 아담의 실패를 거듭하지 않기 위한 것이었
습니다. 옛 아담은 교만한 마음을 갖게 되는 바람에, 하나님
을 의심하면서 불만을 품었습니다. 결국 사탄의 유혹에 넘어
가게 되었고, 그 결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살던 그 에덴동산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하고는 결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다 완벽
하게 갖추어져 있는 아름다운 동산이었습니다. 특히 땀 흘리
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이 언제나 편히 먹고 살 수가 있었으
니, 얼마나 좋은 세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담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잊어버리고 말았
습니다. 자신이 지켜야 할 자리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자리
를 넘보는 바람에, 그만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도록 땀을 흘리는 수고와 함께 아이를 낳는 산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밖에도 모든 것들이, 그들이 죄를 짓기
이전과 비교해볼 때, 너무나 비참하고 참담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인류의 조상인 그 아담이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잠언서 기자는 말하기를 ‘교만
은 파멸의 앞잡이이고, 거만한 마음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평소에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자
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임을
받게 된다(마23:12)”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라야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
한 사람이다(마18: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실천하셨습니다.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
이 주님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선지자와 랍비(선
생님)로 대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은, 자신의 모든 지위를 권리를 다 버리고,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죄인들을 가까이 하면서 그들과 자주 어울리셨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이스라엘 나라에서 지위와 신분이 높은 사
람들은, 예수님이 천하고 형편없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신다고
해서, 주님을 비난하거나 흉을 봤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은, 그들의 그런 조롱과 비난에 개의치 않으시고, 언제나 변
함없이 그들을 가까이하면서 어울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까? 예
수님처럼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와 반대되는 생
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예수
님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써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중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처럼 낮아져서 겸손하게 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존중을 받으며 대접만을 받으려고 한다거나, 높은 지
위에 오르고자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이것은 아주 옳지
못한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
터 인정을 받거나 사랑을 받으려면, 우리가 먼저 스스로 낮아
져서 겸손한 자세로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쉽지 않
다고 해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겸손을 잃어버
리면 금방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되거니와, 결과적으로는 인
생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1.우리는 주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겸손한 자세를 본받아
야 합니다.
  
  ‘로렌즈’라고 하는 수도사가 싸움과 다툼이 제일 많기로
소문난 수도원에 원장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수도원장으로 임명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
다. 그가 잠시 서 있는 것을 본 젊은 수도사들이 그가 누구인
지도 모르고 그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어서 식당에 가셔서
접시를 닦으시지요.”그 수도원에 처음 온 사람은 접시 닦는
일을 하는 것이 전통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수도원장은 아무런 불평이나 군소리도
없이 “네! 그러겠습니다.”하고 대답하고서는 곧장 식당으로
가서 묵묵히 접시를 닦았습니다. 그는 한 달, 두 달, 계속해서
접시를 닦았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접시를 제대로 닦지 못한
다고, 사람들은 그에게 구박도 하고 핀잔도 주었습니다.
    석 달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여러 수도원을 관리하는 감독
이 순시 차 그 수도원에 왔습니다. 젊은 수도사들은 그 앞에
서 쩔쩔맸습니다. 그런데, 원장의 모습이 안 보이자, “원장님
은 어디 가셨는가?”하고 감독이 물었습니다. 이에 수도사들
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감독은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내가 로렌즈 수도사를 3개월 전에 임명했는데!”
    감독의 말을 들은 젊은 수도사들이 무척 당황하게 되었습
니다. 그들은 그제서야 수도원장으로 부임한 로렌즈가 누군지
를 눈치 챌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식당으로 달려가서
늙은 수도원장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때부터, 그 수도원은 싸움과 다툼이 없는 모범적인 수도
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로렌즈 수도원장으로부터 겸손
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서로 자기가 더 잘 났
다고 하면서 자주 다투고 싸웠는데, 3개월 동안 묵묵히 접시
를 닦은 그 수도원장으로부터 겸손을 배운 뒤에는, 각자 조용
히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자기 스스로 부족한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다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어느 단체나 모임이든지, 대개 스
스로 자기가 잘났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다툼과
싸움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예수님은 당신이 머지않
아 유대인 지도자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되리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장차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 대해서, 서로 다투느라 정신이 없었습
니다. 이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스스로 자
기를 낮추어서 남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
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임을 받게 되리라(마23:11-12)”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겸손하게 되는 일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나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자기에게 조금이라
도 흠집이 가는 말을 했을 때, 그 반응이 어떻습니까? 사람마
다 다르지만, 대부분 아주 기분 나쁘게 생각하거나, 때로는
싸울 듯이 대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지렁이
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속담이 생겼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겸손하게 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서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쨌든, 겸손하게 되어야 하나님
께로부터 복을 받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
데, 겸손하게 되려면, 그냥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겸
손을 배워서 그렇게 살려고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오랜 세월을 두고 겸손하게 되기를 힘쓰는 사람
은 성공의 길을 가게 되고, 원래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성품 그대로 사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요
컨대, 옛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성품을 그대로 지니고 사는
사람은 멸망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고, 진실하게 예수를 믿음
으로써 거듭난 사람은 축복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
어서 승리하신 주님을 닮아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메시야가 오셔서 당하실 고난에 대
해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에게 깨닫는 마음을 주셨으므로, 나는 거역
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았으며,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
을 맡기고, 내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내 뺨을 맡기며, 그들이
내게 침을 뱉고 모욕할 때에도 내가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예수께서 이 모든 고통과 수모를 끝까지 감내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셔서 도와주실 것이
다.’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를 통하여 주님은 이렇
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변호하시는 분이 가까이 계시는
데, 누가 감히 나와 다툴 수 있겠는가?’
  
    예수님 당시,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만 죽이면 모든 것이
다 자기들 뜻대로 되리라 믿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존재와 그 섭리를 믿지 않았던 것입
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행위를 지켜보고 계
신다는 것을,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
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다는 돈을 더 믿거나 세상 권세를 의지한 나머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마치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리려고 하는 것처럼,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입니다. 시커먼
구름이 태양을 가려서 잠시 어둡게 되어도, 그 구름 너머에는
태양이 여전히 빛나고 있듯이,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인
간 세상의 모든 일을 섭리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
다. 참으로 억울하게도 주님께서 사형장으로 끌려가실 때에,
사람들은 주님께 욕을 퍼부으면서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대제
사장과 율법학자들도 예수님을 조롱하며 비웃었습니다. 그리
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얼마든지 그 죽음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
는 권세와 능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 겸손의
道(도)를 가르치시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
원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겸손히 순
종하심으로써 희생제물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인류 최초로 부활의 영광을 누리시게 되
었습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신 주님을, 하
나님께서 높은 자리로 끌어올리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
하기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빌2:9)’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뒤를 제대로 따르기를 원한다면, 예수
님만큼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 고난과 수모를 달게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편이
되셔서 우리를 적극 도와주실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은 잠시
뿐이고, 우리가 누릴 영광은 영원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하
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또한 그렇게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은, 그 길이 결
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 심판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
리고 우리가 죽은 다음에는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된
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는 세상 사
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갈 것이 아니라, 어떤 어려움이 있더
라도 우리가 믿는바 그 믿음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쪼록,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 더욱
열심히 겸손하게 되기를 힘씀으로써, 우리 예수를 닮아 가시
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