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성경 ; 행2:37-41, 벧전1:17-23, 눅24:13-35
     제목 ;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그림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있은 후에, 주님
의 제자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약 10㎞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합
니다. 이들은 엠마오로 가면서 예수님의 죽음에 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도 그
들과 함께 가고 있었으나,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
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가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두 분이 길을 가면서 무
슨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하십니까?”그러자, 그들은 아주
침통한 얼굴을 하고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
서 글로바가 예수께 말하기를 “보아하니, 당신도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 최근에 있었던 일을 혼자서만
모른단 말입니까?”하고 책망하듯이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은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시는 것입니까?”하고
재차 물으셨습니다. 이에,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사
렛 출신 예수님에 관한 일이지요. 그분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
에서 아주 놀라운 일들을 많이 베푸신 예언자였다오. 그리고
행동이나 말씀에 있어서 권능이 있는 선생으로서 사람들로부
터 많은 존경을 받고 있었지요. 그런데, 유대인 지도자들이
그분을 붙잡아 로마 정부에 넘기는 바람에, 예수님은 억울하
게도 사형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다오.”
    여기까지 말한 그들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계속 말했습
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나라를 구원해주시리라 믿고, 그
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습니다. 하건만,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니, 우리의 실망과 좌절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답니
다. 그런데, 참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신지
오늘이 사흘째인데, 글쎄 그분이 다시 살아났다는군요.”
    그들의 말을 다 듣고 난 후,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했습니
다. “당신들은 참 어리석군요. 예언자들이 말한 그대로 이루
어진 일인데, 왜 그렇게 못 믿는 거요? 예수 그리스도가 반드
시 이런 고난을 겪고 난 후에야 자기 영광에 들어가게 된다
고, 오래 전에 이미 예언자들이 분명히 말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말씀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모세와, 그리고 모
든 예언자들로부터 시작해서 당신 자신에 관해서 성경에 기록
된 사실들을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제자들은 예수님께 엠마오에서 하룻밤 묵어가시라고 하면
서 정식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시게 되었습니
다. 예수님은 빵을 가지시고 감사기도를 올린 후에 그들에게
빵을 나누어주셨습니다. 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 지금
까지 자기들과 말씀을 나누신 분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예수님은 그
들 앞에서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걸어가면서 자기들에게 말씀
하시고 성경을 설명해주실 때, 자기들의 마음이 얼마나 뜨거
워졌던가를 서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시간을 지
체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열한 제자
와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부활하신 예수
님을 만나 뵈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털어놨습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죽음의 세력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사
실은, 우리 모든 인류에게 새롭게 살아갈 소망을 갖게 해주었
습니다. 우리 인간이 한 번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나고
만다면, 우리가 무슨 소망을 가지고 인생을 살 수 있겠습니
까? 만일 아무런 소망과 목표도 없이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런 사람은 금방 우울증에 걸려서 죽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벨릭스 총독 앞에 서게 되었을 때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나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의로운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 다 부활하게 되리
라는 것입니다(행24:15)”라고. 그렇습니다. 부활에 대한 소망
이 있어야, 오늘 열심히 살아갈 이유와 목적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죽음으로 모든 인생이 다 끝나
게 된다면, 그냥저냥 마음 내키는 대로 편히 살다가 죽는 것
이 가장 현명한 일이 될 것입니다.
    성(聖)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인간의 영혼이나 육체는 결
코 완전히 전멸되지 않는다. 악한 자는 다시 일어나 처벌을
받을 것이며, 선한 자는 부활하여 영생을 누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고, 그 뒤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영생과 부활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믿든지 간에, 그것은 각 사람의
자유라 할 수 있습니다만, 그 결과는 엄청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활을 믿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는, 그 삶의 자세와 태도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내일 죽으리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사
람이 오늘 어떻게 열심히 살 수 있겠습니까? 확신하건대, 그
런 사람은 그 두려움과 염려 때문에, 오늘 해야 할 일을 제대
로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루와 한 달, 그리고
일 년과 수십 년이라는 세월이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저에
게 있어서 지나간 50여년은 짧은 한순간에 불과했습니다. 이
런 느낌은 아마 저만이 갖는 느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우리 인생을 열심히 살기 위해서는 영원
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오죽
하면, 덴마크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가 말하기를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겠습니까? 가령, 아주 행복하게
살던 사람이 갑자기 내일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복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두 가지 경우 중의 하나
일 것입니다. 하나는 정신이상자일 때에 그럴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그처럼 죽음을 태연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과 영생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뇌졸중으로 숨진 재미교포 ‘조나단 심’이라
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그가 죽기 5년 전에, 그의 아들딸
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비디오로 찍어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게 되자, 그 비디오 유언이 공개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디오가 미국 언론에 보도가 되는 바람에 미국 사람들에
게 큰 감동을 주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디오에서 그는 두 자녀에게 말했습니다. ‘삶은 예측할
수 없단다. 어떤 일이든 생길 수 있지. 그래서 너희들에게 하
고 싶은 말을 이처럼 비디오로 찍어두게 되었단다. 너희는 열
심히 공부해서 추종자가 아닌 지도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통 꿈꾸는 것 이상의 꿈을 가지고 살기를
바란다. 그러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거야! 너희는 우리에
게 아주 소중한 선물이야. 정말로 너희를 사랑한다. 안녕!’
    그렇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
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결
코 영원히 죽지 않고 다시 살아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굳건히 갖고 아름답게 살아야 합
니다. 우리 모두, 이 땅에 사는 동안, 부활의 소망을 갖고, 주
님의 말씀에 따라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이미 오
래 전부터 부활의 진리를 듣고 배워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동안에 예수님이 다시 부
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
은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인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답답한 나머지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그렇게 못 믿는 거요? 예수 그리스도가 반드시 이런 고난
을 겪고 난 후에야 자기 영광에 들어가게 된다고, 오래 전에
이미 예언자들이 분명히 말했지 않습니까?”하고 질책하신 다
음, 다시금 부활의 진리를 그들에게 가르쳐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그때까지 머리로는 부활의 진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나, 마음으로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
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도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
로지 현실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장차 곧 겪게 될 인생의
마지막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
다. 그저 오늘 현실에만 급급한 나머지, 영생과 부활보다는,
현실적인 축복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이때쯤이면 부활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설교를 듣게
되어도, 그냥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처럼, 부활과 영생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살게 될 경우,
머지않아 땅을 치면서 후회하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남의
일로만 여겨지던 그 죽음이 드디어, 바로 자기 자신에게 닥쳤
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 참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크
게 후회하게 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
활과 영생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영원
한 미래와 소망이 없는 사람처럼 살 것이 아니라, 내일 곧 죽
게 되리라도 아무 여한이 없도록,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장에서 부활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1.지난 과거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
수를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가 승천하신 후에, 베드로가 이스라엘 백
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그때, 그 베드로
의 설교가 사람들의 마음을 아주 강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래
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
고 물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 베드로는 다시 그들에게 “너희는 먼저 그 모
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죄를 용서받게 되거
니와,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이 약속
의 말씀을 믿고 새롭게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무려 3천명이나
되었다고, 사도행전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묶여 있으면, 주께서 주시는 새로운 은혜를 받아들
일 수 없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주께서 부활하셨다
는 소식을 듣고서도 고향으로 내려갔던 것은, 과거로부터 해
방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주님을 열심히
따라다녔던 것도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만족을 얻기 위한 것이
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에게는 주께서 주시는 말씀
에 따라 새롭게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부활의 소망을 갖고 주님 안에서 바르게살기
위해서는, 베드로가 설교한 것처럼, 과거의 죄를 모두 솔직하
게 털어놓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럴 경우, 성령을 선물로 받
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죽음의 길
이 아닌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파괴가 아니라 건설, 후
퇴가 아닌 전진과 성숙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부활을 믿게 된다면, 좌절과
절망에서 벗어나 꿈과 희망을 갖고서 인생을 새롭게 살 수 있
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불평하고 원망하는 죽
음의 길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조용히 그리고 아무
말씀도 없이 묵묵히 자기 십자가를 지셨던 것처럼, 부활의 소
망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
어진 사명과 책임을 조용히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2.오늘 우리도 부활의 소망과 영광을 바라보면서, 모든 사
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
을 믿고 의지하라’고 말하면서 ‘예수를 믿음으로써 이기심
과 증오에서 벗어나 정결하게 되었으니, 이제 모든 사람을 진
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벧전1:22)’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을 때에는, 이 세상의 삶
이 전부인 줄로 알고,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어떻게 해서든지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럴 경우,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미워하
고 시기합니다. 유대인 지도자들도 결국은 주님을 시기한 나
머지 예수님을 붙잡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이 있을 경우, 자연스럽게 죽은 다음의
심판을 믿게 됩니다. 그때에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고 아름답게 살고자 애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양을 보시
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그러
므로 부활과 영생을 믿는 사람들은, 형식적으로 이웃을 사랑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뜨겁게 이웃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새로운 인생인 것
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그럴 듯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장차 하나님 앞
에서 섰을 때에 우리가 받게 될 심판을 생각하고, 오늘 이 세
상에서 하나님 말씀 안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많은 필리핀 병사들이 일본의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들은 형편없는 식사와 더러운 환
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해야만 했습니다. 더군다나, 전염
병까지 번지는 바람에, 그 포로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날마
다 죽어나갔습니다. 그야말로, 그들은 참으로 비참하고 절망
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심한 상처를 입은 비둘기 한 마리가 포로수용소
철조망으로 날아들었습니다. 증오와 미움이 가득해서 하루하
루 고통스럽게 보내던 포로들은 비둘기를 정성껏 보살피기 시
작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비둘기는 점점 좋아지더니, 드디
어 깨끗이 나아서 스스로 날아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연민과 사랑이 비둘기를 살려낸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부터, 포로들 사이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포로들
의 사망률이 60%나 줄어들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신체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고, 사랑 때문에 인생이 달라지고, 사랑 때문에 생명이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미움과 원망과 불평은 죽음의 길로 통하게 되
는 것이고, 이해와 사랑과 연민의 삶은 생명과 부활을 가져오
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 욕심과 이기심이라고 하는
죽음의 동굴에서 완전히 벗어나,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이해
하는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자꾸
묻기만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역자들이 전해주는 하나님
의 말씀을 귀담아 잘 듣고 그대로 순종함으로써, 오늘 다시
새롭게 부활의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
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