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목사님의 목회 철학

한경직목사님의 목회철학 과제

UBS박사원 노원두

 

한경직 목사님의 삶은 겸손과 검소함이다.

겸손과 주님 닮은 삶에 대한 고전은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n of Christ,1390~1440년에 씌어진 그리스도교 경건서적이 생각난다.그는 이 책은 겸손과 검소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말한다.

 

▣ 겸손한 복종에 대하여 그대 편이 누구이며 누가 반대하는지에 그리 신경 쓰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대와 행하고 있는 모든 일 가운데 그대와 함께 계시는지만을 염려하십시오.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대를 잘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악한 일도 해로움을 끼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대가 침묵하고 감내할 줄 안다면, 틀림없이 주님의 도우심을 볼 것입니다. 그분은 그대를 해방시켜 줄 때와 시간과 그 방법을 아십니다. 그러니 그분께 그대자신을 내어 맡겨야 합니다. 도움을 주고 모든 물욕에서 해방시키는 일은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_p78~79 ▣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대하여 예수님에게는 그의 천상의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나, 그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예수님에게 위로를 받고자 갈망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고난 받고자 갈망하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식탁의 동료들은 많이 보이나, 금식의 동료들은 소수만 보입니다. 사람들은 그와 함께 기뻐하기를 염원하지만, 그를 위하여 무엇인가 고난당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떡을 나누기까지는 예수님을 따르지만, 고난의 잔을 나눌 마실 정도로 따르는 사람은 적습니다. …어디서 하나님을 값없이 섬기를 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까.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영적인 사람을 찾기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즉 누가 참으로 심령이 가난하며 모든 피조물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찾겠습니다. 그의 값은 지극히 더 나갑니다 (잠 31:10). _p98~99

한경직 /한경직

호는 추양(秋陽). 1917년 진광학교를 거쳐 1917년 오산학교에서 수학했다. 오산학교에서 남강 이승훈과 고당 조만식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평생 큰 영향을 받았다. 1925년 숭실전문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하여, 1929년 프린스턴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1932년 귀국했다. 1933년 의산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45년 9월 국내 최초의 정당인 \'기독교사회민주당\'을 윤하영과 함께 조직했으나 소련군의 진주로 같은 해 10월 월남했다. 1945년 12월 월남한 신도들을 위한 베다니 전도교회(지금의 영락교회)를 설립하여 세계 최대의 장로교회로 성장시켰다. 또한 김성호·김치복·박학전·백영엽·이인식 등과 함께 그리스도교계 학교인 대광학교를 설립했다. 1949년 십자군전도대를 조직, 전국 순회전도를 벌이기도 했다. 1954년 숭실대학교 학장에 취임했고 1955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1956년 한국기독교연합회(KNCC) 회장을 역임했다. 영락보린원·영락중학교·영락상업고등학교 등 각종 사회사업기관과 교육기관을 설립했으며, 전국 200여 개소의 개척교회 설립에 관여했다. 또한 해외선교를 비롯한 각종 복음전도에 앞장서 한국 그리스도교계의 대표적 인물로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1973년부터 영락교회 원로목사로 있으면서 여러 세계전도대회에 참석하는 한편, 1982년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총재로서 초교파적인 기념사업을 지휘하기도 했다. 1996년 그의 복음주의 신앙을 계승·발전시켜 세계 복음화에 이바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추양선교재단이 설립되었으며, 1998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숭실대학교에 한경직기념관이 개관했다.

한경직은 사랑과 청빈을 몸소 실천하고 \'민족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복음주의 지도자로서는 크게 존경받았으나,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한 데 이어 5·16 군사 쿠데타 직후 정일권·김활란·최두선 등과 함께 민간사절단으로 미국에 건너가 군사정권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1980년에는 12·12 쿠데타(1979)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장군을 위해 조찬기도회를 집전하는 등의 행위로 그리스도교계 안팎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국민훈장 무궁화장(1970)과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 상(1992)을 받았다. 〈건국과 기독교〉(1956)·〈신자의 사회적 사명〉(1960)·〈민주국가의 정신적 기초〉(1968)·〈내일을 사는 인생〉(1978)·〈한경직 칼럼〉(1984)·〈산상보훈 강해〉(1986)·〈한경직 칼럼〉(1986) 등의 많은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한경직 목사님의 알려진 목회철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내게 주어진 목회를 위해 죽도록 충성할 것

둘째, 교회의 모든 영광은 주님께 돌릴 것

셋째, 역사의식을 갖고 목회에 임할 것

넷째, 나라와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의 전통을 세울 것

다섯째, 철저히 복음적일 것

여섯째, 가난하고 어려운 성도들을 우선으로 하는 목회 평등의식을 가질 것

일곱째, 신뢰감이 있는 교회의 비젼을 가질 것

여덟째, 성도들로 하여금 구원을 체험한 자들의 자유하는 행동들로 교역역사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을 실감케하는 목회를 해야 할 것.

 

1.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의 생존시 목회철학 입니다.  그는 독일에서 템플턴상을 수상할 때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유는 일제 암울한 시대에 동료 목사들은 순교를 당했는데 자기는 비겁하게 살아남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한국전쟁 후 얼마동안 영락교회는 월남한 북한동포들의 삶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2. 어떻게 하는게 철저히 복음적인가요? 신본주의, 즉 하나님 제일주의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목회를 하면 교인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좋은 교회의 조건은, 1) 말씀이 선포되고, 2) 성례식을 거행하고, 그리고 3) 권징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마다 권징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사랑하는 자식에게는 매를 대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3. 주기철 목사님이 주일예배 때 조만식 장로님이 몇분 지각하자 조장로님에게 맨뒤에 가서 서있으라고 벌을 내렸다고 합니다. 장로님은 아들뻘 되는 목사님의 명령에 순종했다고 합니다. 지금 주기철 목사님처럼 목회하는 목사가 우리 주위에 있습니까? 또 조 장로님 같은 교인친구가 있습니까? 주기철 목사님은 누구보다도 조장로님을 사랑하였습니다.

 

4. 주님이 계신 천국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비록 학습세례를 받고 목사, 전도사, 장로, 집사, 권사가 되어도 천국엔 못갑니다. 만물보다 거짓된 게 사람의 마음 이라(렘 17:9) 하였습니다.

 

아래는 미션투데이에서 발췌한 한경직 평전이다.

 

한국의 많은 목회자들이 21세기를 맞아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목회자들은 고 추양 한경직 목사의 원칙과 신학이 있는 목회를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영락교회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담당 목회자인 이승준 박사는 최근 장신대 역사와 신학연구원 기독교교리사상문화연구부 주최로 열린 발표회에서 고 한목사가 생전에 신행(信行)일치의 목회,자기에게 정직하고 철저한 목회,사람과 관계를 중시한 목회,원칙과 신학이 있는 목회활동을 펼쳤다면서 한국의 목회자들이 한목사의 목회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이박사는 요즘 소위 목회성공이나 교회성장에 관련된 각종 세미나가 선전하는 성공이나 성장을 위한 비법과 묘책,특수성만을 찾으려 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한목사의 목회는 너무도 보편적이고 평범해 일견 실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평범한 진리와 화려하지 않지만 보편적인 목회의 대원리에 충실했던 한목사의 목회야말로 한국교회에 귀감이 된다고 덧붙였다.오늘날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이 겪는 위기의 실체는 목회를 너무 기능적,기술적으로만 보며 목회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물음과 문제의식을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끝없이 하나님과 역사,성도에 문제의식을 가졌던 한목사의 철학은 곰씹어 볼 만하다는 것.이박사는 한목사의 목회 속에 상존했던 ‘역설적 긴장’(paradoxical tension)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한목사는 가장 조용하며 행동이 없는 듯하나 실은 행동하는 자였고,소신이 없는 듯하나 늘 소신을 가진 목회,색깔이 없는 듯하나 분명한 색깔이 있는 목회를 했다는 것이다.이박사는 현재 한국사회와 교회가 한목사에 대해 보편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청빈한 목자’라는 인식은 목회자 한경직과 그의 사상에 대한 이해를 제한시킬 수 있다며 한목사야말로 ‘행동하고,선포한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표가 되는 목회자’였다고 강조했다.한목사의 청빈도 결국은 그의 전 삶과 목회사역을 통해 추구해온 신행일치의 대원리가 거두어들인 많은 결실 중 하나라는 해석이다.이박사는 한목사의 목회사상은 목회자 한경직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돼야 한다면서 그는 자신에게 정직하고 철저한 목회를 펼치기에 평생을 고민했다고 말했다.이박사는 “한목사가 특히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한 목회를 전개했다”면서 그가 끊임없이 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부담을 가졌다고 언급했다.한목사는 교회를 ‘믿는 사람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모임’으로 정의하며 성도들의 공동체성을 강조해 왔다는 것이다.한목사는 또한 전도·교육·봉사에 대한 세가지 원칙을 끝까지 견지한 원칙있는 목회자였으며 그같은 원칙을 설정하기에는 뛰어난 신학적 성찰이 있었다고 이박사는 말했다.이박사는 하나님과 민족 앞에서 원칙과 기본에 가장 충실하려 했던 평범한 한 목회자의 진솔한 모습 속에서 이 시대의 가장 권위 있고 귀감이 되는 목회를 찾을 수 있었다는 아이러니속에 목회자 한경직과 그의 목회사상이 지닌 참된 가치가 있다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