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장 강해

에베소서

강해 설교 과제

박사원 노원두

 

그리스도인의 자리

 에베소서 2:1-10                                              

 

 

에베소서는 불과 여섯장 밖에는 안되는 짧은 서신이지만, <사도바울 서신들의 왕관>이라고 할 정도로(Armitage Robinson) 복음의 핵심을 간결하게 잘 요약하고 있다.

 

에베소서가 보내어질 당시 에베소는 상업적 번영과 함께 도덕적 타락과 사회적 무질서가 팽배했다. 바울은 그러한 지역에 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를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에베소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질서는 불일치의 세상에 하나된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며, 소외된 세상에서 화해를 이루는 것이고, 그리고 전쟁 대신에 평화를 건설하는 질서인 것이다. 이것이 에베소서의 전체적인 주제이다.

 

1. 배경

에베소는 당시 소아시아의 수도로 그리스도교 역사상 3대 중요도시(예루살렘,안디옥, 에베소)의 하나이다.

여기에는 유명한(또는 디아나) 신전이 있었다.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을 할 때에 에베소 교회를 설립하였다.처음 바울의 설교를 듣고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자기 집에 가지고 있던 많은 마술에 관한 서적을 불살라 버렸다.

에베소에는 다른 서신들과 달리 개인에 대한 문안이나 언급이 조금도 없고 어떤 특정 지방으로 보내는 기분도 없다.(KCM참조)

 

마틴 로이드 존스는 다음과 같이 에베소서를 본다,

에베소서 1장의 논증에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주장하고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주제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

통일되게 하려하심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세우신 계획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 일을 어떻게 활동하셔서 이루어 가시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진술들을 해 나간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 자신에게 달린 일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임을 입증해 나간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얻었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리와 후사와 놀라운 기업을 받게 된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계속하여 마틴 로이드 존스는,

“. . . we can say of the first three chapters that the Apostle is reminding these Ephesians . . . who they are, what they are, and how they have become what they are. That is his theme. All the major doctrines of the Christian faith are to be found in these first three chapters . . .

(처음 3장에 주요 바울이 말하는 요지가 잘 나타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누구이며,무엇을 해야 하며,어떻게 그것을 이루어 가야 하는 지를 말해주고 있다)

 

But the Apostle desires the Ephesians to understand above all else the privileges that belong to such a life . . . if we but realized the exalted character of what he calls our ‘high calling’, the whole situation would be transformed. He writes three chapters to bring them face to face with this teaching“

(그러나 바울사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높으신 부르심이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삶의 영적 신분을 완전하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라고 에베소강해의 권위자 마틴로이드 목사는 말하고 있다)

 

(참고)(Lloyd-Jones, D. M. (1976). The Christian Warfare: An Exposition of Ephesians 6:10-13 (10). Edinburgh; Carlisle, PA: Banner of Truth Trust)

 

본문을 보면  

1.에베소서 2장의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적인 위치이다.

2장의 주제는 5,6절에 집약되어 나타난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즉,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난 사람은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림을 받았으며, 예수와 함께 하나님 우편에 앉게 된 것이다.

하나님 우편에 앉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한다는 말이다.

언제 어디나 성도가 있는 자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본문은 크게 두 개의 요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의 모습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인간의 모습은 어떤가?

 

1)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른 구원받기전의 모습이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

 

본문에서 \'세상풍조를 쫓는다\'는 말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에 반하는 이데올로기나 풍조를 따른다는 말이다. 이 말은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의 하나님이심,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부인하고, 예수님 없이 살수 있으며,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온갖 종류의 사조들이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고 자기욕심과 물질적 가치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세상풍속을 좇는다\'는 말은 우리 인생의 전반적인 가치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세상\'은 예수님 없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앞서는 모든 것, 하나님보다 가치있게 여기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공중의 권세잡은 자\'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모습은 생명이 없는 주검일 뿐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시작은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선언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알리고 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은혜와 자비(4-7)가 우리의 위치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살리는 영이기 때문이다.죽음의 자리에 희망은 없다. 기쁨도 삶의 의미도 없다. 죽은 자는 오직 죽음의 영,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종이 될 뿐이다.

 

2) 본질상 진노의 자녀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

 

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며 반역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 앞에서 심판과 멸망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의 자리는 하나님 곁이 아니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있다. 이런 사람들이 마지막에 설 자리는 영원한 형벌인 것이다.

 

3)허물과 죄로 이미 죽어 있다.

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는 바로 그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본문은 선언한다.

 

그런데 본문은 <허물과 죄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라고 하지 않고,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알기 전의 우리의 모습은 이미 죽어 있는 상태다. 즉 그리스도의 자리에 함께 있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과 괴리(乖離)된 채 영적인 죽음에 놓여 있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감각하고 양심의 호소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기 때문에 비록 육체는 살아있으나, 영혼은 죽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허물과 죄로 이미 죽은 사람이 자기가 죽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영적인 세계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며, 세상을 본다. 그러므로 자신이 죽어 있는 줄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눈이 밝아지고 귀가 열려 하나님의 세계를 보고 나의 상태를 진단하고 그것을 살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이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지만 우리 속에는 여전히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유전된 부패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은혜와 호의와 자비가 더욱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 없는 삶은 언제나 물질과 죄의 달콤한 유혹 앞에서 쉽게 동요되고 넘어질 수 밖에 없다.

 

인간의 한계는 인간의 어떠한 노력과 공로로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우리에게 구원의 빛이 비취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아무리 뒤집어보고 털어보아도 구원 얻을 만한 선함이 없는 우리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조차 버릴 수 없어 구원의 길을 주신 것이다. 우리를 대속 하시려 십자가에 달리신 사랑의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결코 선을 행할 수 없는\'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이다.

 

이 믿음은 단순한 영적 변화나 종교적 생활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믿음은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기독교 신앙은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새로운 삶이라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내 의지, 내 경험, 내 유익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본문 3절까지만 보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심판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3절과 4절 사이에 생략되어 있는 한 단어, \'그러나\'라는 단어를 통하여 믿는 자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마틴로이드 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록 우리가 허물과 죄로 인해서 죽었고, 죄로 인해서 오염되었으며, 서로를 미워하고, 실제로 죄를 지으며 허물과 죄 가운데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그래서 절대적으로 무력하며 무능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거스려 범죄한 바로 그 하나님께서 우리가 손상시켜 드린 바로 그 하나님이 그의 사랑하는 독생자의 인격 안에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다. 우리의 어떠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길을 제공하셨다. 그것이 “그처럼 놀랍고 신비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그 일을 하신 것이다. 우리야 하나님과의 화해하는 길을 틀 수 없는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살리신 것이다“

 

 

프린스턴 신학교의 교장이었던 존 멕케이(John Mackay)는 에베소서를 보고 난 후에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는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모든것이 새로웠다.---나는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체험들 그리고 타인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갖게 되었다.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의 중심이 되셨다.---나는 소생하였던 것이다.나는 정말 살아 있는 존재가 된것이다.]

존 멕케이는 1948년1월 세계 교회 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결성을 위한 에딘버러 대학교에서의 강의에서 에베소서를 본문으로 잡았는데, 교회 협의회의 주제는 \"하나님의 질서와 인간의 무질서\"이었고 이 강좌의 주제는 \"하나님의 질서(God\'s Order)\"라고 정하였다.

 

에베소서는 이 무질서의 세상에 하나님의 질서를 선포하고 있다. 에베소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질서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회복이며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인 것이다.

 

이것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영적이고 현실적인 자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