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칠언

[주님의시선] 일일예화말씀묵상 2010년 3월 29일 (월) - 고귀한 희생의 대가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고귀한 희생의 대가
 
스코틀랜드 북부에 깊은 계곡을 가로질러 놓은 철로가 있었는데 철로 아래 계곡으로는 급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심한 폭풍으로 계곡의 강물이 무섭게 흘렀습니다. 다음날 아침 양치는 소년이 이곳에 나왔다가 심한 급류 때문에 철교의 중앙 교각이 물에 완전히 휩쓸려 간 것을 발견했습니다.

목동은 곧 승객을 실은 기차가 이곳을 통과하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기차가 달려오는것을 보고, 옷을 벗어서 철로 가운데 선 채 미친듯이 흔들었습니다. 기관사가 소년을 발견하고 속히 철도에서 나가라고 기적을 울렸지만 소년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옷을 흔들었습니다.

기관사는 소년이 물러가지 않을 것을 짐작하고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승객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기차에서 나왔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죽음에 가까이 와 있었는가를 보고 하얗게 질리고 말았습니다.

모두들 “구사일생이었어!”라고 한마디씩 했습니다. 그때 기관사가 소리쳤습니다.

“여기에 와서 우리의 생명을 구해 준 이를 보시오.” 기차앞에서 사람들은 갈기갈기 찢긴 소년을 보았습니다.

기관사는 때맞게 브레이크를 밟지 못했고 그 순간 소년은 기차에 치고 만 것입니다.

“소년이 모두를 위해 죽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지옥과 하나님의

진노 사이에 내던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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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23:34)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남긴 마지막 일곱 마디의 말씀들을 가리켜서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이라고 합니다. 주님이 마지막 남기신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관심과 삶을 생각해 보고 또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을 조명해 봅시다.
  가상칠언 가운데 첫 번째 말씀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용서의 기도를 십자가상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용서의 삶이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인간이 쉽게 비인간화되어가는 시대 속에서 내 잘못과 상관없이 이웃들에게 오해당하고 거절당하고 비판받고 고발당하는 억울함이 있을 때 어떻게 용서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1. 상대방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고통의 절정 그리고 억울함의 절정의 순간, 지금 예수님은 누구를 부르고 계십니까? “아버지여!” 왜 아버지를 부르고 계십니까? 기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생애 전체는 아버지 하나님과의 기도의 교제 안에 있던 삶이었습니다. 이 기도의 삶이 그분에게 용서의 삶을 살게 했던 것입니다.
  십자가상에 매달려 있었을 때 예수님 앞에는 많은 사람들의 영상이 지나갔을 것입니다.
  자기를 팔았더 가룟 유다의 영상이 지나갔을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자기의 사랑하는 제자이면서도 자기를 부인하고 저주했던 제자 베드로의 영상이 지나갔을 것입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자신을 십자가에 내주는 마지막 판결을 했던 빌라도의 얼굴도 지나갔을 것입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예수님을 향해서 “저를 못박으소서.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라고 절규하던 군중들의 모습도 지나갔을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 기도 때문에 주님은 용서하실 수 있었습니다. 용서하며 살아가는 삶을 원하십니까? 먼저 기도하는 삶을 사십시오.
 

2. 인간의 무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골고다의 언덕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로마 병정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가를 몰랐을 것입니다. 또 그들은 못박는 그분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거룩한 구세주인가를 몰랐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알았더라면 저들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2:8)고 말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알지 못하여 그리하였도다”(행3:17)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인간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지금 그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분의 사랑을 몰랐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주님은 그들의 무지를 이해하셨습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무지를 주님은 이해하셨습니다.
  이해는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는 중요한 기초가 될 수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삶 속에 큰 피해를 입혔을 때, 또 내 가슴에 상처를 입혔을 때 이렇게 흥분합니다.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러나 주님 같으면 어떻게 대답하실까요? “그럴 수도 있지. 죄인이기 때문이지.” 죄인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무지를 이해하셨습니다. 그러했기에 그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용서의 기도를 드리신 이 사건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 말씀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수백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놀라운 예언이 있었습니다(사53:12). 이것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십자가에서 용서의 사명을 실천하고 계신 것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뜻이었고 하나님의 명령이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말을 한 번만 하신 것처럼 되어 있지만 원문에 보면 이것이 계속적으로 몇 번 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진행형입니다. 왼손에 못이 박힐 때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오른손에 못이 박힐 때 또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발목에 못이 박히는 바로 그 순간 또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주님은 우리에게도 용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3:13),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마18:21-22)고 하셨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한평생 불행할 수 밖에 없기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