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의 유일한목적
성경 ; 잠4:1-9, 딤후1:3-14, 요15:9-17
제목 ; 내 인생의 유일한 목적
여러분은 혹시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지요? 아니면‘이처럼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죽
으면, 도대체 무슨 결과가 있는 것일까?’하고 의문을 가져본
적은 없는지요? 어찌 왜 없겠습니까? 어쩌면 하루에도 수없이
이런 의문과 회의를 가져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리고 왜 사는지? 그 사는 이유와 목적이 분
명하지 않을 경우, 죽는 날까지 아리송하고 헷갈리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마라톤 선수가 골인 지점도 모
르고 무조건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뭘 사야 할지, 그 목록도 정하지 않고 무조건 장바구
니를 들고서 시장에는 가는 것이나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인생을 산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복잡하고
힘든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는 목적과 이유가 분명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별스럽지 않은 일에도 쉽게
좌절하거나 절망하기가 쉽습니다. 사는 목적이 분명해야, 여
러 가지 장애물도 간단히 뛰어넘을 수가 있는 것이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21일, 영화배우 최민수 씨가 73세 노인을 폭행한 다
음, 그 노인을 자신의 차량에 매달고 질주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뉴스 보도를 통해서 알고 있
을 줄 압니다만, 사건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21일 오후 1시쯤,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동산주차장 측이
견인 문제로 도로를 봉쇄하는 바람에, 차가 정체되고 있었습
니다. 이때 마침, 그 길을 가고 있던 최민수 씨가 욕설을 퍼
부으며 거세게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지
켜보고 있던 그 할아버지가 “젊은 친구가 왜 그렇게 욕을 하
느냐?”고 하면서 한 말씀 하신 것입니다.
이에, 화가 난 최민수 씨가 그 할아버지를 밀쳐서 넘어뜨렸
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크게 분노하셔서 최민수
씨의 차를 가로막은 다음, 사과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최민수 씨가 이를 무시한 채 떠나려고 하자, 할아버지는 최민
수 씨 차의 앞부분 본네트에 올라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최
민수 씨는 차를 갓길로 주차하기 위하여 부득이 50m쯤 진행
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할아버지를 매단 채 질주한 것으로
보도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건이 점점 복잡하게 진행이 되자, 최민수 씨는
긴급기자회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최민수
씨는 모든 국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한다고 하면서 이렇
게 말했습니다. “내가 저지른 일을 나 역시 용서할 수가 없
다. 나를 용서하지 말아 달라. 나는 죽을 때까지라도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사건의 진실은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세히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최민수 씨는 자기 행동을 무척 후회하
고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과격한 행동을 함으로써, 그의 일생에 있어서 치명적인 과오
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연예활동을 중단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입니다. 인터넷에서는 그를 개만도 못한 사람이
라고 비난하는 글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최민수 씨처럼, 그렇
게 후회해본 적은 없는지요? 그리고 엉뚱한 오해와 억울한 누
명을 뒤집어쓰고서 심히 괴로워한 적은 없는지요? 조금만 참
으면 되는 것을, 그만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분노함으로써,
크게 일을 그르치거나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는지요?
저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지난 세월, 저는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많은 잘못을 범하고 실수를 했습니다. 그래서 후회도
많이 하고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아마 어쩌면 앞으로도 계
속, 그런 실수와 잘못을 범하게 될지 모릅니다. 물론, 제 마음
은 실수 없이 바르게 잘 살고 싶습니다. 후회할 일은 아예 하
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하지만, 저
는 자꾸만 제가 원하지 않는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분명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행하
게 되는 일도 있고, 때로는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내 행동
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
다. 최민수 씨가 말했듯이, 내가 저지른 실수이지만 나 스스
로가 용서할 수 없는, 그래서‘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만 하
나?’하고, 나 자신을 원망한 적도 한두 번 아닙니다.
어떻습니까? 성도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서 점수를 매긴다면, 그 점수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낙제 점
수는 면할 수 있겠는지요? 스스로 생각해봐도 영 아니다 싶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을 내 맘대로 포기하거나 어찌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의 말
씀인 잠언서 4장의 기자는 그 아들에게 ‘착하게 사는 길을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세상의 이치를 깨
닫고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인생의 목적과 사는 방
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삶
의 지혜’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잠언서 9장 10절 말
씀에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첫걸음이요, 거룩하
신 분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라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이 일러주는 지혜대로 살기만 하면, 그 지
혜는 우리를 애지중지하게 될 것이고, 끝내는 우리를 영화롭
게 하리라고, 잠언서 기자는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
니까, 자기 스스로 그 자신의 삶을 인정할 수가 있고, 다른
사람들한테서도 존중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바람직한 인생,
곧 다시 말해서 크게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어쨌든 성경말씀을 바로 알고 지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성경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삶의
지혜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만이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실 수가 있
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떠나 살 경우에는, 우리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죽도록 애를 쓰게 된다 하더라
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내 삶의 유일한 목적이다(딤후1:3,현대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 이것이 인생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
면, 실수나 실패가 적은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
할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 캠브리지대학교의 C. S. 루이스 교수가 말하기를 ‘하
늘을 바라보고 살아라. 그러면, 땅을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땅을 바라보고 살아라. 그러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
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인생의 목적이 인간
자신에게 있으면,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된
다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그 목적이 하늘나라에 있으면,
하늘나라와 그 축복만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 있
는 것들을 덤으로 얻게 된다고 하는 뜻입니다.
아주 쉽게 말하면, 우리가 욕심으로 무슨 일을 하고자 할
경우, 실질적으로 얻게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거니와, 오히
려 죄만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항
상, 인간의 욕심에 따라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뜻과 그
교훈에 따라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부모를 섬기면, 우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게 되고, 우리 자신도 복을 누리게 됩니다. 신명
기 5장 16절에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이것은 너희 하나
님이 명하신 것이다. 그래야 너희는 너희 주 하나님이 너희에
게 준 땅에서 오래 살면서 복을 누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거나, 아니면 재
산상속을 바라고서 부모를 잘 섬기는 척 하게 될 경우에는 어
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위선(僞
善)이라고 하는 아주 큰 죄를 짓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형제
들과 더불어 갈등과 다툼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1.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을 삶의 최고 목적으로 삼
아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서 30년이 넘도록 침팬지 사회를 연
구한 세계적인 동물학자 ‘구달’박사의 말에 의하면, 침팬지
사회는 20∼30마리로 구성된 모계사회라고 합니다. 우두머리
는 항상 수컷인데, 모든 암컷의 희망은 그 우두머리 수컷의
새끼를 낳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30년을 관찰한 결과, 침팬지 집단에서 계속 우두머
리를 배출하는 모계가 있었습니다. 그 집안에서는 언제나 늙
은 침팬지의 헌신적인 희생과 엄격한 교육이 있었습니다. 그
런 전통이 자손 대대로 이어져온 것입니다.
그 반면, 30년 동안, 한 번도 우두머리를 배출하지 못한 모
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모계는 교육과 질서가 아
주 엉망이었습니다. 요컨대, ‘심은 대로 거둔다.’는 법칙이
침팬지 세계에서도 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
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서 많은 씨를 뿌린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
다. 그런고로, 우리는 열심히 씨를 뿌리고 부지런히 가꾸어야
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
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뜻에 따라 씨를 뿌리는 것이 ‘성공
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많은 시련과 고통도 겪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대
로 살고자 할 때에는 세상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기 때문
입니다. 말하자면, 믿음의 길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
여러 분야에서 아주 많이 다르기 때문에, 믿음의 방식대로 하
려고 할 경우, 어쩔 수 없이 저들과 갈등을 겪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그런 갈등과 아픔을 잘 극복해
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지 않으려고 적당히 타협
하면서 살 경우, 절대로 생명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런고
로, 진정 믿음의 길을 가고자 원한다면, 우리를 구원하신 주
님을 위해서 고난 받을 각오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삶의 지혜를 깨닫게 되면, 세상 방식대로 사는
것보다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훨씬 더 쉽고 재미가 있습니
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
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
고 내 짐은 가볍다(마11:28)”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어저께, 집사람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서울의 장 집사 내외
가 왔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딸 하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딸이 아주 독특했던 가 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다솜학교’라고 하는 여름 캠프에 그 딸을 보낸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룹별로 모임을 갖는 시간에, 지도교
사가 그 아이에게 질문했습니다. “아무개야, 네 꿈은 뭐니?”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딱 잘라서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지도교사는 그 아이에게 “그렇다면, 너
의 장래 소망은 뭔데?”하고 물었습니다. 이때, 이 아이는
“놀고먹는 거예요!”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부모들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 아이가 원하는 대로, 그
리고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내버려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그는 춤에 빠지기 시작했습니
다. 어느 댄스그룹을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그 춤을 배우고 익
혔습니다. 어떤 때에는 밤이 늦도록 춤추는 연습을 했습니다.
하지만, 춤은 그의 적성에 잘 맞지 않습니다. 아무리 연습
을 해도 다른 아이를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결
과는, 그 아이의 자존심에 절대로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
다. 그래서 춤추는 시간을 더 늘렸지만, 그래도 따라갈 수 없
게 되자, 어느 날 그 아이는 부모 앞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
다. “엄마 아빠, 그래도 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은 공부인
것 같아요! 이제부터는 공부만 열심히 할래요!”
그 후, 그 아이는 열심히 공부에만 매진하더니, 외국어고등
학교에 진학했고, 지금은 연세대학교에 입학해서 다니고 있다
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장 집사의 딸은 일찌감치 공부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쉽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에, 다른 엉뚱한
길로 가지 않고 정상적인 길을 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의 진리를 바로 깨달을 수만
있다면, 세상방식대로 사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쉽고 재미가 있
습니다. 그냥 쉬운 정도가 아닌, 삶의 진정한 가치와 보람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제대로 깨달은 사
람들은 그 어떤 시험과 환난에도 결코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믿음의 길을 굳건히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믿음과
영생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죽음의 세력과 싸워
서 이기셨다(딤후1:10)’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모든
모욕과 핍박과 조롱, 그리고 십자가라고 하는 극형까지도 끝
까지 잘 감내하심으로써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런
고로, 오늘 우리도 진리를 깨닫기 전에 겪어야 하는 시험과
환난의 과정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2.그렇게 되면, 우리는 진리 안에서 참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며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게 될 것입니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쓴 단편소설 중에 ‘93’
이라고 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바다를 항해하고 있던 배가 폭풍을 만나자, 선창에서는 무
엇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배의 선창에는 대포
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큰 풍파에 시달리는 바람
에, 대포를 묶었던 쇠사슬이 끊어지고 만 것입니다.
몇 명의 선원들이 선창에 내려가서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대포를 묶어두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오히려 그 대포를 피하
기 위해서 이리저리 몰려다녀야만 했습니다. 잘못하면, 그 대
포에 짓눌려 죽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선원들은 새
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를 진정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외부에서 불어오는 태풍이 아니라, 바로 배 안에
서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대포’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이 배를 인간에다가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적은 밖에서 오는 풍파가
아니고, 사슬이 끊겨 배 안에서 굴러다니는 대포라는 것입니
다. 곧, 그것은 미움과 원한과 분노라고 하는 대포가 우리 자
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무서운 대포는 결국 우리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 내 말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것은 마
치,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며, 그분의 사랑 안에 사는 것
과 같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와 같은 기쁨이 너희
에게도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 너희가 내 말을 지
켜 행하면, 너희 기쁨의 잔이 넘치게 될 것이다(요15:10-11)”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
가 너희를 택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러므로, 너희는 세
상에 나가서 항상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음으로써, 내 이름
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내 욕심과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을 믿는 척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인생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는, 내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노력
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있어서 언제나 나
를 괴롭히던 모든 원수들을 다 물리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거룩한 일을
맡기시려고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고 사십
시오. 그리고 세상의 썩어질 것들 때문에, 우리의 거룩한 사
명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 모두,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을 인생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
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