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성경 ; 창24:34-38. 42-49. 58-67,
                            롬7:15-25, 마11:16-19. 25-30
     제목 ; 이것이 우리 인생의 현실이다
   
    꼬부라진 이 오이를 한 번 보십시오.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
떻습니까? 우선 모양새가 여러분이 보시기에 영 안 좋지 않습
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폼이 안 나는 모습이지요? 그리고
이처럼 꼬부라진 오이는 상품가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깎
아먹거나 반찬을 만들기에 전혀 합당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이런 오이는 사람들 보기에 모양새만 안 좋은 것
이 아니라, 오이농사를 지은 농부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속
상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말씀드렸듯이, 상품가
치가 없어서 경제적으로 손실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야
말로, 이런 오이는 아무 쓸모가 없어서 어디를 가든지 천덕꾸
러기 신세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반듯하게 자란 이 오이를 보십시오. 우선 보시기에
도 좋지 않습니까? 통통하고도 미끈한 것이 보암직하기도 하
고 먹음직스럽기도 하지 않습니까? 이런 오이는 어디를 가든
지 환영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쓸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깎아
먹기도 좋거니와 오이소박이를 만들기에도 알맞습니다.
    이런 오이는 상품가치가 있기 때문에, 장사꾼들이 마다하지
않고 잘 가져갑니다. 말할 것도 없이, 오이농사를 짓는 분들
은 이런 오이가 많이 나와야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이런 오이가 많이 생산되어야 농사를 짓는 보람이 있는 것입
니다. 경제적인 유익을 따지기 전에, 우선 심적으로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있어서 큰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듯하게 자란 사람은 어디를 가든
지 환영을 받습니다. 그것은 물론, 반듯하게 자란 사람이라야
쓸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듯하게 자란 사람은 누가 무엇을
시키든지 튀거나 거역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무
슨 일을 시켜도 불평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수행합니다.
    반듯하게 자란 사람은 그 속마음도 알차게 마련입니다. 그
런 사람은 아는 것이 많아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주어진 일
에만 열심을 다합니다. 빈 깡통이 요란하듯이, 별로 아는 것
도 없는 사람이 대개 아는 체를 하면서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
다. 그러나 성품도 반듯하고 심성도 올바른 사람은, 자기주장
을 내세우거나 고집을 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마음부터 먼
저 헤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닙니다. 아니, 거
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장점
이 있으면 한 가지 단점이 있도록 섭리하셨습니다. 그렇기 때
문에, 이 세상에 반듯하고 온전한 사람이란 거의 없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있을 뿐이지, 이 세상에
흠과 허물이 전혀 없는 사람은 거의 하나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 인간은 모두, 죄와 허물투성이의
죄인입니다. 훌륭한 점보다는 부족한 것이 더 많은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덧입지 않을 경우,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사도바울이 실토하기를 ‘속으로는 올바른 일을 해야지 하
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롬7:15)’고 말했습니다. 반면에,
그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고 원하지 않는 짓만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무리 애써도 폼이 안 나는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다음으로 존경하고 있는 바울선생이 그렇게
고백했을 정도이니, 우리네 보통 사람이야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자기 의(義)를 완전히 버
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잘난 체를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
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이 부족한 죄인에게 자비와 긍휼
을 베풀어주소서!’하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자신의 허물과 부족을 깨
닫지 못한 채, 그저 혼자 잘나서 뽐내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이 오이처럼, 그 마음이 심히
꼬부라지고 뒤틀려 있게 마련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사람
들은 다른 사람들이 별로 인정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자
기 스스로가 잘난 체하며 뽐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
고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장점을 좀처럼 인정하려고 하
지 않습니다. 그저 오로지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렇
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한 일에 대해서 긍정
적으로 생각하는 경우란 극히 드문 일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런 사람들은 불평과 불만이 아주 많습
니다. 남편도 그 맘에 안 들고 아내도 그 마음에 들지 않습니
다. 무엇이든지 자기가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다른 사
람이 한 일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그 얼굴이 항상 어둡고 일그러져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
인가 불만이 있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게 마련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런 사람들은 그 마음의 상태가
이 오이처럼 꼬부라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마음이 꼬부라
져 있기 때문에 세상을 꼬부라지게 보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흉을 많이 보는 사람일수록, 그 마음
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께서 이렇게 한탄하신 일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먹
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지내는 것을 보고서는, 너희가 ‘저
사람이 미쳤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내가 잔치자리
에 가서 먹고 마시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
하고 마시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들과 돌아다니
는 사람이다\'라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것이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입
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대개는 불만과 불평이 많습니다. 이 오이처럼,
그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들은, 세상을 올바르게 볼 수가 없습
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과 허물을 아는 사람은 세상을 부정적
으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
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허물과 잘못에 대해서도 아
주 너그럽습니다. 요컨대, 자신의 부족과 허물을 깊이 깨달은
사람일수록 더욱 온전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주님 다음
으로 존경하고 있는 사도바울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로마서 7장 21절에서 말하기를 ‘나는 언제나 올바른
일을 하고 싶으나,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일을 계속하고 있는
이것이 인생의 현실이다.’라고 털어놨습니다. ‘속으로는 주
님의 뜻에 따라 살고 싶어 하면서도, 내 속에 있는 다른 것이
나를 죄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23)’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현실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기독교 역사상 가장 훌륭한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사도 바울
이 그 자신을 가리켜서 ‘죄의 노예’라고 했으니, 오늘 우리
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참
모습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참으로 부끄럽고
비참한 것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 선생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아, 내가 얼마나
비참한 처지에 놓인 인간입니까? 누가 이 죽을 수밖에 없는
노예 상태에서 나를 해방시켜 줄 수가 있겠습니까?’ 진실로
옳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서 조금
이라도 깨닫는 바가 있다면, 우리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비
참한 형편에 놓여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불쌍하고 비참한 죄인이라는 것을 깊
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욱 깊이 깨닫게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토록
우리의 죄가 큰데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
원하시기 위하여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받아들이게 될 때, 우리는 더욱
온유하고 겸손하게 되고, 그래서 좀 더 너그러운 성품과 이해
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하기에
바쁘던 사람이, 이제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발견할 때마다,
자신의 허물을 생각하고 부끄러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안답어미 증후군’이라는 말을 들어보셨
습니까? 안타깝고 답답하며 어쩔 줄 모르고 미칠 것 같은 증
상이라는 뜻으로서, 그 머리글자를 따서 지은 말입니다.
    김진홍 목사님이 몇 해 전에 미국의 필라델피아에 가셔서
종교적인 집회가 아니 일반 강연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강연을 마치신 후, 어느 정신과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
는데, 그 의사분이 바로 김 목사님에게 ‘안답어미 증후군’
에 대해서 말해주더라는 것입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 분들이 4-5년 동안 죽자 살자 하고
지내다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면, 반드시 한 차례 이상 겪
게 되는 증상이 ‘안답어미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그동안은
미국 땅에서 어떻게든지 살아남기 위해서 정신없이 살았지만,
간신히 뿌리를 내릴 정도가 되면, 그때 안타깝고 답답하고 어
쩔 줄 모르고 미칠 것 같은 증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이민자들은 그 무엇보다 영어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큰 고통을 겪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
는 유색인종에 대한 백인들의 우월의식과 차별대우, 그밖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안답어미 증후군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신과 의사는 말하기를, 그 질병을 고칠 수 있
는 딱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11
장 28절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의사 자신은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안답어미 증후군’
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성경말씀대로 사는 것이라
고, 그 의사는 강조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
볍기 때문이다.’
  ‘쉬운성경’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느라고 지친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할 것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
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다. 나의
멍에는 쉽고 나의 짐은 가볍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렇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멋대로 살아보겠다고 교만을 부릴 경우, 그 교만한 마음
은 곧 무거운 죄의 짐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 자
체가 꼬부라진 마음이기 때문에 결코 폼 나는 인생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멋있게 살 수 있으리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아주 큰 착각이며 교만한 태도라는 것
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서 보호해주시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계획은 허사로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
니다. 그런고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인간은
주님의 도우심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의 영혼이 쉼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일러주시는
삶의 방법이야말로 진정 쉽고 가볍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은 하나님의 손길에서 벗어나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
리지만,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온유해야 살 수 있습
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르고 바람
직한 자세입니다. 이런 자세를 갖고 살아야,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폼
이 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1.우리는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를 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으로 오셔서 그 제자들의 발을 씻어줌으로
써 ‘겸손히 섬기는 자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더욱 낮아지셔서 죄인의 자리에까지 자신을 낮추셨으며, 결국
은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첫째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
인생이 실패로 끝났던 것을,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께
서는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우리에게 성공적인 인생의 모델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첫째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꼬부라지
고 비뚤어진 마음을 완전히 다 버린 후, 겸손하고 온유한 주
님의 모습을 닮아감으로써,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주께서는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겸손을 열심히 배워서 마음의
안식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여전히 세상 방식대로 살겠다고 했을
때에는 괴롭고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결과, 죄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게 됨으로써, 그 스스로도
그 자신을 인정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2.그런고로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멍에를 메고 그
뜻대로 살기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 곧 그 뜻대로 산다고 하는 말은, 우리
인생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가게 되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 반면에, 내 생각과 내 욕심대로 살게 될 경우, 그
것은 곧 파멸과 죽음의 함정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알고 있습니다. 어리석
은 부자가 어느 해 풍년이 들자, 그는 속으로 ‘이제는 재산
이 넉넉해졌으니, 이후로는 편히 쉬면서 인생을 즐기자!’고
말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어
리석은 자야! 오늘밤에 내가 네 영혼을 찾아가리라. 그러고 나
면, 네가 모은 재산이 다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우리는 이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담아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물질 때문에 교만하게 되거
나, 지식 때문에 교만하게 되어도 안 되고, 지위 때문에 교만
하게 되어도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물질과 지식과 지위
가 그 자신을 멸망으로 빠뜨리는 요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썩어질 것을 가지고 폼 내면서 살려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
감으로써, 부끄러움과 후회가 없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
야말로, 주님의 말씀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갈 때에 어디를 가
든지 쓸모가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가 이 죽을 수밖에 없는 노예 상태에서
나를 해방시킬 수 있을까?’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한 다음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분이 나를 해방시켜주셨습니다.’라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찬양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부끄럽지 않은 인생, 다시 말
해서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칭찬받을 만한 인
생이 되려면 세상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욕심은, 우리로 하
여금 수치와 멸망에 빠지게 하는 근본적인 요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수치스럽게 하고 파멸로 인도하는
더러운 욕심을 잘 극복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가도록 해야 합
니다. 그래야 무거운 죄 짐을 벗어버릴 수 있게 되거니와, 주
님께서 주시는 쉽고 가벼운 멍에를 메고서 참 기쁜 마음으로
    축복된 인생길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겸손히 주님의 뜻을
실천해나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래서 영원히 승리하는 인생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