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제도를 순복하라

모든 제도에 순복하라/벧전2:13~17

모든 제도에 순복하라/벧전2:13~17



\'알빈 토플러\'라는 학자는 이 시대를 가리켜서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시대를 가리켜서 \'불순종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참 그렇습니다. 종말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자기의 주장이 강해집니다. 자신의 목소리는 한층 높아지고, 타인의 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가정에서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또 국민들은 정부의 시책을 뚜렷한 이유도없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요즘 우리사회에 가장 큰 병폐는 \'집단이기주의\'입니다. 남이야 어찌되었던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서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무서운 생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 하나, 순종하려는 자세보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오직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어지기만 바라는 그런 시대를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 베드로 사도가 하시는 말씀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는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 사도는 불순종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먼저 순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종하되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에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는 가정에 세워진 제도입니다.

즉 남편과 아내의 관계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며, 또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만약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어떤 조사기관에서 결혼을 앞둔 미혼남녀들을 대상으로 \"장래 자신이 결혼할 상대는 어떤 사람이면 좋겠느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친구같이 지낼 수 있는 아내, 혹은 친구같이 지낼 수 있는 남편\'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렇게 대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결혼생활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해야 된다는 것은 과거에 우리조상들이 생각해왔던 \'남존여비\'사상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동등한 인격체로 창조하셨습니다. 남편이나 아내는 하나님앞에서 모두가 똑같이 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해야할 이유는 가정의 질서를 위해서 입니다.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서는 직진하는 차가 우선으로 지나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직진 차라도 넓은 도로의 차가 좁은도로의 차보다 우선 지나가도록 도로교통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만약 이런 법규가 없다면 교차로에 진입한 차들은 서로 먼저 가려다가 사고를 내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해야할 이유도 이와같습니다. 서로 내가 머리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마치 교차로에 진입한 차가 서로 먼저 가려다가 사고를 만나는 것처럼 그 가정도 사고를 만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의 안전을 위해서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하도록 제도를 세우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서는 이런 질서가 잘 지켜지고 계시는지요?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자리에서 아내된 분들이 남편에게 순복하는 자세로 한가지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혹 남편에게 존대말을 쓰지 않는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부터 여러분의 남편들에게 존대말을 쓰시기 바랍니다. 남편은 친구가 아니라 내가 순복해야될 대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입니다.

두번째는 교회에 세우신 제도입니다.

\'교회\'란 말의 원래 뜻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시고 자신의 기쁘신 뜻 가운데서 우리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구분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뜻 깊은 날을 맞이했습니다. 우리교회가 첫예배를 드린지 꼭 두 해가 되는 날입니다. 지난 2년동안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많은 성장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공부를 통해서 여러모로 하나님 말씀의 깊은 진리의 세계를 볼 수 있었고, 양적으로도 등록교인이 100명이 넘었습니다. 물론 걔 중에는 이사를 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이 자리가 거의 차도록 지난 2년동안에 하나님께서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시는 모습도 참 다양합니다. 어떤 분은 몸이 몹시 불편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사업에 실패를 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난 후에 하나님께 나아오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어릴 때 부터 믿는 부모 밑에서 별 거부감없이 하나님께 나아온 분들도 있습니다.

아뭏튼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부르시던 우리들 각자 각자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정말 귀중한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 똑같이 귀중한 존재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은 목사로 세우고 또 어떤 사람은 장로나 집사로 세우시는 것일까요? 모두가 교회의 질서를 위해서 입니다.

사실 세상적으로 보면 제가 여러분에게 내세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삶의 연륜으로 보나, 인생의 경륜으로 보나, 어느 것 하나 여러분 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세워진 제도에 순복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질서\' 때문입니다.

이 질서를 무시했다가 큰 봉변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많이 있습니다. 모세가 흑인 여인을 아내로 취한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었던 그의 누이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사무엘을 대신해서 제사를 지냈던 사울은 하나님께 책망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제도에 대해 우리들은 순복해야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며칠전에 있었던 일이 문뜩 생각이 났습니다. 김복동 집사님께서 지난주에 고향을 다녀오셨습니다. 그런데 떠나실 때 저에게 전화를 하셔서 지금 떠난다고 하시면서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돌아오시자마자 저에게 전화하셔서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전화를 받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아버님 같으신 분이 제가 걱정할까봐 일일히 전화를 하시는 것을 보고 제가 얼마나 감사하고,또 기뻤는지 모릅니다.

사실 교인 한 분이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많이 됩니다. 무엇 때문에 결석하신 것일까? 염려가 됩니다. 또 열심을 내던 분이 갑자기 눈에 잘 띄지 않아도 염려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권위에 순복한다는 것은 무조건 목회자를 떠 받들어라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의 권위에 순복한다는 것은 아주 작은 것에서 부터 목회자의 염려를 덜어 주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나라에 세운 제도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13-14절 읽을 것)
방금 읽은 본문의 \'왕\' 과 \'방백\'은 \'다스리는 권세\'를 말합니다. 롬 13장 1절에도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고 했습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난 후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 있다면 자기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남이야 어찌되었던 나 만 만족할 수 있다면 그만이라는 생각들이 팽배해졌습니다.

실예로 서울시에서 인근하고 있는 두 학교 중에 한 학교에서 학생들의 숫자가 적어 한 학교로 통합하고 다른 학교는 장애인학교로 변경을 하려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주민들이 알게 되자 대대적으로 반대시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땅값이 떨어진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 주민들의 주장은 자기 동네있는 학교를 인수해서 장애인학교를 세울 돈이면 조금 떨어진 곳에 더 좋은 시설의 학교를 세울 수 있을텐데 왜 하필이면 그 학교를 장애인 학교로 세워서 땅값도 떨어지고,낙후된 시설에 학생들을 수용하느냐는 것입니다. 아뭏튼 이들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 서울시에서도 처음 계획을 세웠던 것을 강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는 또 있습니다. 한약사와 약사들의 분규로 인해 한의대생 수천명이 집단유급을 당했습니다. 누구의 주장이 옳든 옳지 않든간에 정부에서 중재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중재안과는 상관이 없이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유급도 불사하겠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여기에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아예 학생들이 집단유급되면 자기들은 집단 사표를 쓰겠다고 나섰습니다.

여러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우리사회는 자기 목소리만 있을 뿐 다른 사람의 말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순종이라는 말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나라가 어떤 일을 하든지 무조건 순복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어떤 사회지도자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직접적인 불순종이 될 때에는 더 높은 권위이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 베드로는 그 당시 권세를 가진자들이 \'전도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 말을 들었습니까?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 권세자들 앞에서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을 택하였습니다.그래서 그는 결국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는 것에는 순복하였습니다.

다니엘서 3장에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메삭,아벳느고에게 느부갓네살왕이 금신상앞에서 절을 하도록 강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불순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상앞에 절하라는 명령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풀부불 속에 들어가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순순히 그 풀부불에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정부가 잘못을 했을 때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예언자적인 발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제도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베드로도 그리고 다니엘의 세친구도 하나님께 순복하기 위해 권세자들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신들에게 주어진 그 어떤 대가도 감수했습니다. 왜 이렇게 했습니까? 여기 15절에 그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15절 읽을 것-

그들이 잘못된 것을 요구할 때, 하나님께 순복하기 위해 그들의 요구를 따를 수는 없다할찌라도 그것으로 인해 받는 그 어떤 고통도 감수할 때 오히려 그것이 선행이 되어서 그들의 어리석은 말을 막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제도에 순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정에 세운 제도이든지, 교회에 세운 제도이든지, 나라에 세운 제도이든지 간에 순복해야합니다. 그렇다면 왜 순복해야 합니까? 13절에 이것이 \'주를 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예수를 믿고난 후, 주를 위해서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은 줄 압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를 위하는 삶을 살고자 할 때 그것을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인 아내가 가정에서 남편에게 순복하기만 한다면 그것이 곧 \'주님을 위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교회에 세워진 제도에 순복하기만 한다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목회자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하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나라에 세워진 권세에 순복하는 것도 역시 \'주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순복할 때 어떤 자세로 순복해야합니까? 억지로 하는 것은 순복이 아닙니다. 어떤 힘에 눌려서 하는 것도 순복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순복입니까? 1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6절 읽을 것- \'하나님의 종\'과 같이 순복해야 합니다.

이때 당시에 \'종\'은 부끄러운 신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종\'이라고 했을 때에는 그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종\'은 주인에게 전적으로 예속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예속된 것만큼 주인은 그 종에 대한 삶을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주관하시고 책임지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에 왜 그렇게 불안해 하고, 초조해하고, 근심과 염려가 있고, 조급해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중에 하나는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내 인생을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책임져 주기를 바라며 다른 사람에게 내 인생을 맡길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사는데 늘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은 천지를 창조하시고,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전적으로 책임져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내 인생을 전적으로 맡기는 자세로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에 순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진지하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에 세우신 제도에 순복하고 계십니까? 순복하되 주를 위하여 하나님의 종과 같이 순복하십니까? 교회에서도 여러분의 순복이 있습니까? 그것이 주를 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이 나라에 대해서도 순복하는 자세가 있습니까?

순복의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은 이렇습니다. -17절 읽을 것-

뭇사람을 공경하는 자세로,형제를 사랑하는 자세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세로 순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뜻 깊은 온유한교회 창립 2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2돌을 맞이한 것도 뜻 깊은 일이지만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우리 인생이 뜻 깊은 인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가정에 세우신 제도에, 그리고 교회에 세우신 제도에 그리고 나아가서는 나라에 세우신 제도에 순복하는 자세가 있을 때 더욱 뜻 깊어지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도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에 순복하는 자세로써 여러분의 인생이 더욱 뜻 깊은 인생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