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와 순종

포기와 순종/눅5:1-11

포기와 순종
눅5:1-11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포기를 전제로 한다는 말을 이해하십니까?
삼불 스님 예화

왜 삼불 스님이 불교를 포기하였습니까?
예수교보다 불교가 못하다는 것을 체험하였기에 포기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유대교의 골수분자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율법에 흠이 없이 자랐고 순수혈통인 베나민 지파입니다.
그는 최고학부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하는 최고의 엘리트입니다. 그는 당시에 이단이라고 여기는 예수교 신자를 죽이는 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왜 그가 유대교를 버리고 예수교를 택하여 신실한 사도가 되었습니까?
왜 그가 유대교를 버렸습니까?
가치면 에 있어서 유대교가 예수교보다 훨씬 못하다는 사실을 깨 닫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유대교도 믿고 예수교도 믿었습니까?
아닙니다. 삼불 스님이 절에서 스님노릇도 하고 예수님도 믿었습니까?
아닙니다. 불교를 포기하고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다른 사상 습관 경험 행동을 포기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번 미국 무역빌딩 테러사건 이후에 중동지역에서 엄청나게 선교사님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박해가 심해 모두 숨고 있습니다. 중동국가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모슬렘을 포기하고 믿는 것입니다. 모슬렘을 믿고 그리고 예수님을 동시에 믿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포기가 전제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언제든지 변질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언제 포기가 됩니까?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 때 포기가 됩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동료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려 저녁내 고생을 하였으나 아침이 되도록 허탕을 쳤습니다. 고기한마리 잡지를 못했습니다. 찹찹한 마음으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배위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을 강론하시더니 그물을 씻고있는 베드로 더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자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은 말입니다.
1.경험에 맞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낮에 고기를 잡아본 역사가 없습니다.
2.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고기는 밤에 잡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밤에 고기 잡으려 나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기는 밤에 활동하고 낮에는 돌 속에 숨어있다든지 쉬고 그리고 깊은데 가 아닌 낮은 데로 나온 것입니다.
저가 바다 가에서 목회할 때 보니 집사님들이 저녁 석양에 그물을 싣고 바다로 나가 저녁내 고기를 잡고 아침 동틀 때 돌아옵니다. 저가 새벽예배 마치고 쉬고 있으면 전도사님! 고기가저 왔습니다. 나가보면 별별 고기가 다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기를 밤에 잡는 것을 압니다.

3.그물을 씻고 있는데 다시 고기 잡으려 나가자는 것은 상식이 아닙니다. 그물을 씻는 어부나 그물을 깁고 있는 어부에게는 실례가 되는 일입니다. 성도는 실례가 되는 일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은 인해야 합니다.
4.베드로가 고기를 못 잡아 기분이 되게 상해있습니다.
그런데 고기 잡으러 나가자는 말은 불 난데 부채질하는 격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성질이 나서 있는데 화를 돋구는 일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여라 가지 이유에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예수님은 베드로 더러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자고 했습니다.
그럴 때 베드로가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질이 급한 사람이나 못된 사람은 \\\"당신 정신 없어 있어 .지금 불 난데 부채질하고 있는 거야 ,그렇지 않아도 고기한마리 잡지 못하여 기분이 나쁜데 뭐 하는 짓이야\\\"라고 삿대질을 하며 달려들었을 것입니다.
조금 점잕한 사람은 아마 이랬을 것입니다.
\\\"손님! 낮에는 고기를 잡지 않습니다.
혹은 선생님 호의는 감사하나 사양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다 씻어 가는데 다시 그 물을 챙겨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자는 말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고기 잡는 그물이 얼마나 크고 긴줄 아십니까?

그런데 본문을 무어라고 말합니까?
(눅5:5)\\\"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依支)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 리이다 하고\\\"
이 말은 베드로가 자신의 경험 상식 이치 힘든 것 모두 다포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자신의 경험이나, 어부로서 상식, 자신의 그물을 다시 배에 실어나가는 번거로움과 수고를 다 포기하고 순종한 것입니다.
진정한 순종은 포기를 전재로 하고 이루어진 것입니다.
대부분 불순종하는 사람은 이유가 참 많습니다. 바쁘다. 능력이 부족하다. 환경이 허락지 않는다. 주머니 사정이 않된다.등등

하나님께서 사울 에게 아말렉을 모두 죽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 청년 노년 할 것 없이 모두 죽이라. 심지어 짐승까지 모두 죽여라고 했습니다.사울은 그런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승리할 때 아말렉 아각왕은 죽이지 않았고 형제라고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소 양 염소 좋은 것은 남겨두고 못된 것만 죽여 착복하였습니다.
사무엘이 내귀에 들리는 양과 소에 소리는 무엇이냐? 고 물었습니다. 그때 사울은 말하기를 좋은 양이나 소를 보니 하나님께 제사할 마음이 생겨 남겨두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그를 향하여 유명한 말을 했지요

(삼상15:22-23)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 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왜 사울이 순종하지 못했습니까?
말씀보다 하나님보다 더 재물을 좋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을 보십시오. 사무엘 앞에 끌려온 아말렉 아각을 자신이 집적 칼로 죽였습니다. 아각이 사무엘 앞에 나와 사망의 그늘이 나에게서 벗어 낫다고 좋아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인정이 많고 좋은 사람이니 이제 완전히 풀려 낫다고 생각하였으나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아각을 죽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순종은 포기가 선행되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고기를 잡는데 있어 포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더 큰 포기가 본문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다같이 본문을 읽어봅시다.
(눅5:10-11)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 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 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내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이 말씀을 마태복음에서는
(마4:18-20)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 시니\\\"
(20)저희가 그물을 곧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본문은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즉 그물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다고 했습니다.
\\\"저희가\\\"라는 말을 보아 동업자인 야고보 요한 도 같이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마태복음에서는 야고보와 요한 이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4:22)

성도여러분!
직업을 갑자기 바꾼다는 것 쉬운 일입니까?
왜 서울역에 그렇게 노숙자들이 많습니까?
직장을 잃어버리고 다른 직업을 찾지 못해서 있는 것도 있지만 그 충격이 커서 노숙하는 자도 있고요 사업에 실패해서 다른 사업을 하지 못해서 방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직업을 바꾼다는 것도 힘들지만 직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직업을 버렸습니다.
바다에서 몇 십 년 동안 종사했던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까?
고기 잡는 것보다 그물 깊는것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바다 가에 나온 즉시 그 많은 고기도 버리고 주님을 좇은것입니다.얼마나 충격적인 말입니까?

사람은 누구나 참되게 깨 닫으면 가치없는것이나 가치 없는 일을 버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중적 생활을 합니다.
세상재미도 보고 예수님도 믿고 그러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포기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결과를 가 저옵니까?
1.어떤 상황에 닥칠 때 옛습관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완전히 포기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2.어떤 상황이 닥칠 때 타협하여 혼합주의로 돌아갑니다.
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두루뭉실 사신 줄 아십니까? 왜 적당히 믿고 사신 줄 아십니까?
포기를 못해서입니다.
저는 얼룩말을 제일 싫어합니다.
얼룩말은 힌바탕에 검정 줄입니까?
검정바탕에 흰줄입니까?
여러분!
박쥐 좋아하십니까?
박쥐는 혐오감을 줍니다. 새도 아니고 쥐도 아니고 그래서 음침한 동굴 속에서 살고 밤에만 나와 활동을 합니다. 새들에게 따돌림 받고 기어다니는 쥐에게도 따돌림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가치 없는 것 포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저는 우리나라 속담에 \\\"누이 좋고 매부 좋다.\\\" 이런 말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애매 모오 한 \\\"글쎄요\\\"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피차 서로 좋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좋게 쓰일 때는 믿는 사람끼리 피차 좋다는 괜찮은 말이지만 안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 사이에는 서로가 좋은 수만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위배될 때에는 서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상황적인 말입니다. 상황에 맞추어 가는 말이니 안 믿는 사람이 우리에게 사용할 때 우리에게는 욕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포기를 전제로 합니다.
다른 것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합니까?
포기하지 안고 예수님을 믿으면 제대로 예수님을 믿지도 못하고 항상 신앙이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위험합니다.
제가 목회 하던 곳에 아무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가정은 시제 답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 시제답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받아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저가 설교 시간에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 라고 하면 항상 언짢아했습니다. 한번은 저가 불러 그 시제답 짓지말라고 했습니다.
그 성도가 목사님!
우리가정은 무엇을 먹고살아요 할 때 참으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그래도 버려라 하나님이 책임저주시고 먹여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 집사님은 오랜 고민 끝에 그 시제 답을 내놓고 말았습니다.
그 집사님이 그 뒤로 양심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신앙생활을 잘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잘먹고 삽니다.
그리고 저가 떠나온 뒤 그 집사님은 권사님이 되어 교회를 열심히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수서에 목회 하는 목사님의 아들이 올해 대학교에 들어가 MT를 갔습니다.
선배들이 술잔을 권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안 먹는다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선배들이 \\\"이 자식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술을 더 잘먹어 .먹어임마 \\\" 그랬어도 안 먹었습니다. 만약 술먹으라고 권해서 내가 먹으면 우리어머니가 좇아와서 선배들 박살을 낼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우리 어머니는 90Kg이상 나가 배치기 한번하면 형들은 큰일날것이라고 했더니 그러면 너는 사이다 먹어라 하더랍니다. 그 뒤로부터 지금까지 그 친구는 술에 대하여 자유함을 누렸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우리교회 초창기 개척때 성도도 없고 해서 저가 다른 교인을 일주일에 한 달에 한번 가서 예배를 드려주었습니다. 그 성도는 담배 때문에 성도들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고 항상 외곽에서 빙빙 돌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신앙이 자라지 못한 것입니다.
제가 끊으라고 권면했더니 잘안된다고 하더라구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것은 버리는 것부터 시작이 됩니다.
목사님 안 버려지는데 어떠합니까?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노력을 해야하지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지요. 주님을 의뢰해야지요. 내힘으로 안되면 주님의 힘으로 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