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합니다

순종합시다
삼상15:17-23,요5:2-9





미국의 카네기 공과 대학에서 인생살이에 실패한 사람들 직장생활에 가정생활에 그리고 사회생활에 실패한 사람들 1만명에 대해 표본 조사해서 철저히 연구해 보았습니다.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연구하기 전에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는 지식이 없어서 기술이 부족해서 혹은 무능해서 신패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혀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전문적 기술과 지식이 결여되어서 실패한 사람은 15%뿐이었습니다. 85%는 인간관계에서 실패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연구한 사람들도 이런 통계를 얻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식이 부족해서 기술이 부족해서 또는 능력이 부족해서 실패한 것으로 알았는데 사실은 85%가 인간관계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인관관계가 무슨 관계인가 하고 추적해서 심층 연구해 본 결과 실패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정적 의식, 부정적인 생활 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지식이 있어도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대체로 잘 순종합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순종을 거부합니다.


오늘 읽은 구약의 말씀 삼상 15장에 기록된 사울 왕은 유달리 키가 큰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에 잘 순종했습니다. 사울은 어렸을 때에 아버지가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라고 했을 때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귀를 찾기 위해 사흘동안 헤매고 다녔습니다. 사울은 스스로 작게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왕이 된다는 말을 듣자 숨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작게 여길 때에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읽은 말씀에 보면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아말렉과 싸웠습니다. 이기고 나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너는 남의 것을 취하라 마음대로 죽여라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악한 아말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사울 왕이 심판을 집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울 왕의 감정이 개입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사울 왕에게 진멸하라고 했느냐 하면 너도 우상을 섬기면 이와 같이 되느니라 너도 악을 행하면 이렇게 진멸 당하게 된다는 교훈이 있습니다. 사울왕이 잘나고 능력이 있어서 진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진멸하라고 하면 진멸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개입시키면 아니 됩니다. 사울 왕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말씀을 외적으로 형식적으로 순종한 것 같으나 내면적으로는 자기 명예를 높혔고 욕심을 채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순종하지 아니 했습니다. 이것이 사울 왕의 실수입니다.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왜 순종치 아니했느냐고 했을 때 순종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다 진멸했으면 왜 소와 양의 소리가 들리느냐고 따지니까 사울 왕이 대답하기를 좋은 소가 있고 좋은 양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백성들이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일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를 통해서 참으로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순종없는 제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제사는 예배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수 많은 종교 의식도 소용이 없습니다.
수많은 봉사도 소용이 없습니다. 희생도 소용이 없습니다. 부모에게도 그와 같습니다. 불효하다가 세상 떠난 다음에 아무리 성대하게 제사를 모셔도 소용없습니다. 살아 계실 때 한번이라도 더 순종하는 것이 돌아가신 다음에 성대하게 제사 지내는 것보다 낫습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예배만 드리는 것은 쓸데 없는 일입니다.
사 1:13-14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헛된 제물을 갖어오지 말라 그것이 나에게 무거운 짐이라\"고 했습니다. 헛된 제물은 하나님께 무거운 짐이 됩니다.
순종 없는 제사나 희생이나 헌신이나 봉사는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욕입니다.
미가 6:7절에 보면 내 맏아들을 드릴까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소와 양과 값진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다가 이런 제물보다 더 귀한 제물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우리 가정에서 가장 귀한 것은 맏아들이라고 생각해서 맏아들을 드릴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맏아들을 드릴 찌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오직 순종입니다. 제물이나 제사가 아닙니다. 순종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샤마입니다. 듣는다는 뜻입니다. 듣는다는 말과 순종이란 말은 같은 말입니다. 부모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부모에게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결국은 잘 들어야 합니다.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열고 들어야 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지키고저 하는 마음으로 준행하고저 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기를 악한 사람은 두려워 순종하고 선한 사람은 사랑으로 순종한다고 했습니다. 악한 사람은 매를 맞고 순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선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합니다.


성자 프랜시스가 수도원에서 농사 일을 하고 있는데 두 사람의 젊은이가 수도사가 되겠다고 왔습니다.
그때 프랜시스는 아주 엄격한 심사를 거쳐 수도생을 받아 드렸습니다.
수도원 농장에 배추 모종을 심고 있었습니다. 성프랜시스는 젊은이들에게 배추 모종을 주면서 이 배추를 거꾸로 심으라고 했습니다. 뿌리를 하늘로 하고 그 잎을 땅에 심으라고 하고 프랜시스는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이는 조금 심다가 말고 배추 뿌리를 하늘로 향하게 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불평하고 뿌리를 땅에 심었습니다. 그러나 한 젊은이는 프랜시스가 말한대로 거꾸로 계속 심었습니다. 프랜시스는 석양에 나와서 보고 거꾸로 심은 사람은 수도생이 되게 하고 옳게 심은 사람은 집으로 가도록 했습니다. 왜 입니까 일이 합리적이냐 불합리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결과가 어찌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순종이 중요합니다. 프랜시스는 두 젊은이의 순종을 시험했습니다.


순종은 훈련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작은 일에 충성했기 때문에 큰 일을 맡긴다고 했습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순종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 자꾸 자꾸 순종하다 보면 큰 일에도 순종하게 됩니다.
작은 일에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 일을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순종체질이 되어야 합니다. 토레이 박사가 말하기를 권능은 하나님께 속했는데 우리가 그 권능을 받은데는 오직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절대 순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순종합시다.
순종의 아름다움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불행합니다. 순종할 때 내 마음이 평안해 집니다. 거역하고 불순종하면 마음속에 어두움이 깔리고 불안해지고 괴로워집니다.
순종하므로 평화를 얻습니다. 행복을 얻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순종하므로 자유를 얻습니다. 순종하면 양심이 자유롭습니다. 마음이 편합니다. 현대인이 불행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순종하면 내가 없어지고 죽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나 일단 거절하고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하면 자기에게 불리한 것으로 알고 아니요 해야만 사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생동안 어디서나 언제나 아니요 아니요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라고 하면 거기는 가면서도 속으로는 아니요 합니다. 하라고 하면 하기는 하면서도 마지못해서 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 분명합니다.
가정에서는 어렸을때부터 언제나 부모에게 순종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순종하고 직장에서는 윗사람에게 순종하고 교회에서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순종을 굴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체질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신학자 본훼퍼가 말하기를 믿는 사람들만이 순종하고 순종하는 사람만이 믿게 된다고 했습니다. 순종하면서 믿음을 배워 나가고 믿음이 성장하고 믿음이 성숙해 집니다.
시인 괴테는 내 영혼은 언제나 순종함에 따라 점점 더 훌륭한 자유를 맛보았다고 했습니다.
순종함으로 무한한 영적 자유를 경험했다는 고백입니다. 순종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실천이요 믿음의 증거입니다. 순종은 겸손입니다. 나자신의 부족함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순종을 통해서 더 겸손해 집니다.


요 2:1-11절까지에 보면 예수님이 행하신 첫 번 이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했습니다. 하인들이 아구까지 물을 채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는 떠서 잔치맡은 사람에게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하인들이 갖다 주었습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마자 즉시 순종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 졌는데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했을 때 왜 물을 채우라고 합니까 하고 항의할 수도 있는데 말 없이 순종 했습니다. 더구나 항아리에 물을 떠서 잔치 맡은 사람에게 갖다 주라고 할 때 참으로 순종하기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인들이 순종하여 물을 떠서 가지고 가는 순간에 물이 변하여 좋은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순종할 때 이적이 나타납니다. 순종의 대가는 기쁨과 평안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에 실제적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순종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장군의 딸이 밖에 나갔다가 낯선 사람으로부터 인형처럼 예쁜 상자를 하나 받아 가지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딸이 그 상자르 자랑하자 아버지가 묻기를
\" 그것 누가 주더냐 \"
\" 모르는 사람이 주었어요 \"
\"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더냐 \"
\" 키가 큰 사람이었어요 \"
아버지가 생각하다가
\" 아빠가 너를 사랑하는 줄 알지? \" 하고 물었습니다. \" 알아요 \"
\" 그러면 그 상자를 지금 즉시 내다 버려라 \"
\" 안됩니다. 이 귀한 것을 왜 내다버리라고 하십니까? \"
\"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알면 즉시 내다 버려라 \"
딸은 엉엉 울면서 밖에 나가 내다 버리고 돌아섰습니다. 그 순간 그 물건이 꽝 하고 터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장군을 죽이려고 시한 폭탄을 들여보냈던 것입니다.
아무리 아까운 것이라도 버리라고 하면 버려야 합니다.
순종해야 삽니다.

오늘 읽은 신약의 말씀 요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못가에 가셨을 때 38년된 환자를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환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낫고저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다음에 \"일어나 너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이 환자가 순종하여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걸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환자에게 일어나라고 했을 때 만일 그 환자가 \"예수님 제가 38년 동안이나 누워 있었는데 저에게 일어나라고 합니까 저는 못 일어납니다.\" 하고 계속 누워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환자는 고침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병이 나아서 일어난 것이 아니고 일어나라는 말씀에 순종했더니 그 순간에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순종함으로 38년된 병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순종은 즉시 해야 합니다 즉시 순종하지 아니하고 뒤로 미루면 순종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가 즉시하지 아니하고 뒤에 하겠다고 생각했다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했을 때 배와 그물을 버리고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백세에 낳은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할 때 즉시 순종했습니다 행 8장에 보면 빌립집사가 사마리아에 가서 열심히 전도하고 있을 때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일어나 가사로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그 때 즉시 순종하여 갔습니다. 그리하여 애디오피아 내시에게 전도했습니다.


다음에 자기생각과 달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열왕기 하 5장에 보면 나아만 장군이 한센씨병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소녀가 이스라엘에 가면 나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말해서 왕의 친서를 가지고 은 10달란트와 금 6,000개와 의복 10벌을 가지고 이스라엘 왕에게 갔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에게 가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요단강에 들어가 몸을 7번 씻으면 깨끗해진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아만이 화가나서 그냥 자기나라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종들이 나아만 앞에 나아와 말하기를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더 큰 일을 행하라 하였을찌라도 행해야 할터인데 물에 들어가 씻으라고 하는데 왜 안하시겠다고 하십니까 지금 즉시 강물에 들어가 몸을 씻으세요. \" 그래서 나아만이 선지자의 말대로 순종했더니 몸이 어린 아이 살 같이 깨끗해 졌습니다.
나아만은 생각하기를 선지자가 친히 나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상처에 손을 얹고 병을 고쳐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물에 들어가 씻으라고 했을 때 자기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러나 종들의 말을 듣고 순종했더니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되었습니다. 나아만이 자기생각과 다르다고 순종하지 아니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자기 생각만 고집하지 말고 순종합시다.
다음에 불가능하다고 생각될지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능합니다. 따라서 순종하면 됩니다. 사 55: 8-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로버트 슐러 목사가 말하기를 훌륭한 기독교인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도 믿음으로 해 보겠습니다하고 응답하는 사림이라고 했습니다.


눅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그 일은 시간적으로나 경험으로 볼 때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더니 참으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다음에 늦게라도 깨달았으면 순종해야 합니다.
마 21:28- 이하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큰 아들에게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더니 아들이 아버지에게 가겠다고 대답해 놓고 안 갔습니다. 순종하지 아니 했습니다.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더니 싫습니다.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일했습니다. 늦게라도 깨닫고 순종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더러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의 판단이 그릇 되었고 혹은 편견 때문에 순종하지 아니했을지라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라도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면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신 28:2-6 에 보면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도시에서도 복을 받고 농촌에서도 복을 받고 자녀가 복을 받고 토지가 복을 받고 짐승들이 복을 받고 식생활이 해결되는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어느 학자가 책에 쓰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10%만 순종하는 사람은 10%의 행복을 누릴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은 100%의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100% 순종하여 100%의 행복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