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경의 순종

소경의 순종/요9:1-12

소경의 순종
요9:1-12





우리는 성경을 대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만남으로 그들의 삶속에 づ립?놀라운 변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절망에 빠졌던 사람들이 희망을 갖게 되는, 죄인이 의로워지는, 소경이 눈을 뜨는,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실패가 성공으로 변하는 사건들을 너무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어느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아무리 불행해도 이 사람만큼 불행할 수 없고, 아무리 자기를 쓸모없다고 생각해도 이 사람만큼 쓸모없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소경으로 태어났습니다. 40년동안을 길가에 앉아 구걸하는 거지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이 있다면 누군가가 던져주고 가는 동전 한닢, 그 선행에만 관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철학자 니체는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지 살아갈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살 이유가 있으면 무슨 수로든지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는 고통이라는 현실이 있을 뿐입니다. 배고픔과 추위, 그리고 순간순간 당하는 멸시가 전부입니다. 더욱 기가막히는 것은 이 사람에게는 하루 하루의 삶의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보람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철저하게 불행하고 철저하게 무가치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이 사람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를 동정의 대상으로가 아니라 논쟁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 사람이 안그래도 괴로워 죽겠는데 남들이 내 불행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논쟁이나 벌이고 있으니 얼마나 참을 수 없는 모욕입니까? 그런데도 이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한마디 대꾸조차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사람은 억울한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왔기 떄문입니다. 칭찬을 하든 흉을 보든 상관이 없습니다. 이 사람의 관심은 자신의 손위에 떨어지는 적선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비참한 사람입니다.

이 불행한 사람앞을 예수님과 제자들이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이 때 마땅히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의 눈이 떠질 수 있습니까? 이렇게 좋은 말 한마디없이 엉뚱한 시비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주님은 이 소경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이 병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병이라고 말씀하시고 그 땅에 침을 뱉어 풁을 이겨서 눈에 발라 주셨습니다. 그리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라고 하시자 그 사람이 그 말씀대로 따랐습니다.

그 소경이 그때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고 이 말씀이 우리의 심령을 씻는 말씀이 되고, 여러분의 질병을 낫게 하고, 근심과 괴로움을 다 씻어주어 영적으로 치료함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로 주님은 이 사람을 실로암 못으로 보내셨습니다.

실로암이란 말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이 사람을 안수하여 고친 것이 아닙니다. 소경을 실로암으로 보내셨습니다. 거기 가서 씻으라는 것입니다. 네 발로 가라는 것입니다. 네 힘으로, 네 믿음으로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네 건강을 위해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누구에게든지 자신의 삶의 문제가 해결받을 수 있도록 길을 찾아 주십니다. 인도해 주십니다. 자는 자 깨워서, 병든 자는 고쳐서 주님을 위해 일하게 만드십니다. 죄의 종이 된 자는 자유케 하여 의를 행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쳐 주시고, 새롭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할 수 있게 하시고, 감당케 하십니다. 주님안에서 안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다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밤새토록 고기를 잡지 못하던 베드로에게 오셔서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고 순종했습니다. 사실 어부들은 한번 그물을 거두고 나면 끝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용기를 가지고 주님이 지시하시는 깊은 곳으로 나아갔을 때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언제나 순종하는 곳에 있습니다. 그곳에 언제나 주님은 보화를 감추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요 2장에 보면 가나안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그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하인들이 오자 주님은 여섯개의 돌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채우라고 하셨습니다. 하인들이 말씀대로 순종하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주님게서는 그냥 기적을 행하지 않습니다. 움직이게 하십니다. 일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일한 댓가를 받게 하십니다. 믿음으로 움직이고 행해야 합니다. 언제든지 주님을 향하여 기적이 나타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물을 가득 채운 후에 주님께서 나누어 주라고 하셨을 때 그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기적을 행하십니다. 안되는 곳에서 되게 하면 기적이 아닙니까? 사고날 곳에서 무사하게 되면 기적이 아닙니까? 죽을 곳에서 살게 되면 기적이 아닙니까? 우리를 가난한 자아게 축복을 주셔서 성공하게 하시면 그보다 더 확실한 기적이 어디 있습니까? 싸움하던 가정이 화평이 일어나면 그것도 기적입니다. 여러분,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40, 50세가 되도록 사고가 없는 것도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고가 있으며 아슬아슬한 순간이 많습니까?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돕기 원하시고, 복주시기 원하시고, 지켜주시기 원하시고, 은혜 베푸시기 원하시고, 평강주시기를 원하시면서 \"가라\"라고 실로암 못으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실로암은 내려가는 곳입니다.

실로암은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는 옥외 저수지로써 그 물이 이스라엘 성안으로 보내졌다는 이유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었습니다. 이 연못은 바위로 된 언덕을 잘라서 33개의 계단을 만들고 그 계단을 내려가야 물을 길을 수 있게 된 연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눈을 뜬 사람도 33개의 계단을 내려가서 물을 떠온다는 것이 힘든 일인데, 하물며 소경이 가파른 33개의 계단을 밟고 내려가서 두 눈을 씻는다는 일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소경에게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낮은 곳에서 받을 수 있고, 눈을 씻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에서 눈을 뜰 수 있습니까? 높은 곳을 다니면 신령한 눈을 뜰 수 없습니다. 높은 곳에서는 신령한 은혜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내가 아직까지 눈을 뜨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고, 바로서지 못하고,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습니까? 세상에 나실 때도 마굿간에서 나셨습니다. 그곳은 가장 낮은 곳입니다. 궁궐도 아니고, 집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친구는 누구입니까? 창녀와 세리와 죄인입니다.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가장 낮고 천한 목수였습니다. 재산은 얼마나 있었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죽으셨습니까? 가장 낮은 살인강도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얼마든지 높은 권세를 누릴 수 있었지만 낮은 곳을 찾아 다니셨습니다.

여러분, 낮은 곳에 은혜가 있습니다. 낮은 곳에 위로가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감사할 것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낮은 곳으로 가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올라가려고만 하기 때문에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고침을 받지 못합니다. 더 잘 살려고만 하기 때문에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더 잘살고, 더 건강하고, 돈 많이 벌고, 더 많이 배우기 원하는 마음이 은혜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낮은 곳으로 내려 가시기 바랍니다. 내가 마실 샘은, 내가 씻을 샘은 실로암에 가야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낮은 곳으로 가셨습니다. 모세는 광야로 가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가장 낮은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세워서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습니다. 요셉이나 다니엘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낮은 곳에 가서 눈물의 빵을 먹어 보아야 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사람이 되고 신앙인이 됩니다. 은혜를 받을 수 있고, 인생을 배우게 됩니다. 성도는 실로암에 가 보아야 합니다. 은혜 받는 곳도 가장 낮은 곳입니다. 회개도 가장 낮아질 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참 회개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나는 힘도 없고 연약합니다. 나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내려갈 때 천국은 열리는 것입니다.

셋째로 실로암은 씻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실로암까지 옵니다. 그러나 씻지를 않습니다. 주님은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까지 나오기는 나오지만 주님 피를 가까이 하지 않고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씻지를 않습니다. 장님으로 내려왔다가 그대로 장님으로 올라가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려 갈 때는 장님일지라도 올라갈 때는 눈을 뜨고 가야 합니다. 교회는 실로암못입니다. 올 때는 더러움으로 왔다가 갈 때는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해져서 돌아가는 곳입니다. 울면서 왔다가 기쁨으로 돌아가는 곳입니다. 영적소경으로 왔다가 신령한 눈을 뜨고 돌아가는 곳입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찾아 왔다가 희망을 가지고 돌아가는 곳입니다. 불행한 사람이 왔다가 행복을 가지고 돌아가는 곳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세상의 억울하고 어렵고 불쌍한 사람, 버림받고 나약하고 소망없는 사람, 세상에서 실패하고 좌절하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와서 씻음받는 실로암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실로암에 가야만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눈을 뜰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앞에 나아와서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받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야 예수님이 보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분들은 주의 보혈로 더 씻어야 합니다. 내안과 밖을 씻어야 합니다. 죄로 물든 내 생활을 씻어야 합니다. 내 허물, 내 잘못을 씻어야 합니다.

소경은 실로암 못가에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모든 것을 주의 은혜로운 보혈로 씻어야 세상이 바로 보입니다. 남편도, 아내도, 주의 종도, 교회도, 주님의 나라도 보이는 것입니다. 주의 보혈로 씻음받는 자에게 천국의 기쁨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소경도 실로암 못으로 내려갈 때는 세상의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내려갔지만 올라 올때는 세상의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나왔습니다. 오늘도 예배드리고 이 전을 나가는 여러 성도님들에게 실로암을 다녀간 소경에게 주셨던 것과 동일한 은혜가 주어지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