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할 때 이적은 나타난다 요2:1-11
‘기적’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신비한 능력’이라고 하였다.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연히 해결할 때, 기적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기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이적’이라는 단어를 쓴다.
사전을 보면, ‘기적’과 ‘이적’은, 똑같은 말로 정의되어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이적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믿음의 결과로 나타남을 말한다.
로또 복권을 샀는데 당첨되었다면,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작정 기도를 하고, 병고침을 받았다면 이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는,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인간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더욱 많아짐으로, 세상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한다. ‘우연’이 아니라, 필연을 말한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이적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천지를 창조하심도 이적이고, 사람을 만드심도 이적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받음도 이적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이적을 맛보며 살았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 많은 이적을 행하셨다. 말씀으로 병자를 고쳐주심도 이적이요, 악령에게 눌려,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악령에게 놓임 받게 하시고, 희망을 갖게 하심도 이적이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나를, 지옥에서 건져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주심도 이적중의 이적이다. 성도는 이적을 체험한 사람이다. 우리는 이적을 귀하게 여기고, 이적을 믿고 살아가야 한다.
세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에, 우연히 이루어지는 기적을 믿는다. 그래서 우연이라는 헛된 꿈을 꾸며, 진정한 소망도 없이, 무력한 삶을 살아간다. 반면 성도들은 이적의 하나님을 믿기에, 믿음으로 이적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요한은 ‘이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의도적으로 ‘표적’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11). 이 표적(sign)은 헬라어로 세메이온(σημείον)이라고 하는데, ‘목적 있는 이적’을 말한다. 이렇게 이적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소개하는 데는, 숨은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은 요한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로 소개하고 있다. 이 표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가 되시니, 믿고 구원을 얻으며, 믿음으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우리가 영적으로 무지하면, 주님을 만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도, 주님을 깨닫지 못한다. 성경에는 이적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만났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원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적을 베풀어주시는 주님을 만나, 더욱 깊이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1. 이적은 문제가 있을 때, 나타난다(3). 성경에 나타난 모든 이적은, 문제가 있었기에 이적이 나타났다. 문제가 없는 곳에는, 이적은 없다. 우리는 문제를 싫지만, 예수님께서는 문제를 이적을 창조하시는 재료로 사용하셔서, 잘되게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가나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는데, 마침 포도주가 모자랐다. 물이 포도주가 된 이적은, 포도주가 모자랐기 때문에 일어났다. 배가 너무 고파 사람들이 쓰러지게 되었을 때, 오병이어의 이적이 일어났다. 사랑하는 사람이 병들었을 때, 고침받는 이적이 일어났다.
또한 눈먼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이, 눈을 뜨는 이적이 일어났다. 풍랑을 만났을 때, 풍랑이 잠잠케 되는 이적이 일어났다. 죽었기에 다시 살아나는 이적이 일어났다. 문둥병의 문제를 가졌기에, 치료되는 이적이 일어났다. 그래서 문제는 이적의 재료가 된다.
인생도 부족하기에, 축복이 될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문제와 약점 때문에, 더 된 사람이 있다. 세계적인 명지휘자, 이탈리아 출신의 토스카니니는,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심한 근시였다. 그래서 첼로 연주자였던 그는, 모든 악보를 완전히 암기한 후에, 연주에 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페라 아이다 연주회 직전에, 그가 속한 관현악단 지휘자가 갑자기 쓰러졌다.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서 ‘아이다’곡을 전부 외우고 있는 사람은, 토스카니니뿐이어서 하는 수 없이 그가 임시 지휘자로 단상에 서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세였던 그는 지휘자로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20세기 지휘자 중의 가장 훌륭한 지휘자가 되었다. 그는 근시라는 자신의 약점을, 축복의 기회로 바꾼 사람이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만 하고 있었다면, 그는 첼로 연주자로서 관현악단의 단원이 되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악보만 암기하면, 자신의 약점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음을 확신했고, 그 뜻을 이루었다. 이처럼 문제를 극복함으로, 축복 받을 수 있기에, 문제는 변장된 축복이라고 말한다.
2. 그러면 이적이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다. 문제와 위기가 복이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문제가 복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만 바랄 뿐, 방법을 모른다. 성경은 전화위복을 이루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1) 부족함을 알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부족을 모르기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부족하기에 비극이 오지 않고, 부족한데도 부족함을 모르는데 있다.
계3:17을 보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라고 하였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기 전까지는, 예수님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 해결하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주님께 무릎을 꿇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는 주님께 무릎을 꿇게 만들기에, 축복을 가져오는 통로가 된다.
자신을 똑바로 보기 위하여, 성경은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였다(계3:19).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자신의 부족함이 보인다. 학생들이 부족함을 알아야 공부한다.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기 고집만 부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책 몇 권을 읽었거나, 남들보다 봉사를 조금 하는 사람이다. 바울은 은혜를 받을수록 겸손해 졌는데, 자신은 무엇을 조금했다고, 다른 사람을 무시한다. 모든 부족함이, 축복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부족함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람들도 많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4:6)라고 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문제를 더 큰 축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실 때 사용하신 사람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기적이 일어나기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기적의 도구로 사용하셨던 사람들의 신앙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는 기적을 베푸실 때, 어떤 사람들을 사용하셨나요?
(2) 부족함이 축복이 되려면,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께 나와 간구해야 한다. 문제를 더 큰 축복의 기회로 삼기 위하여, 이적의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한다. 문제를 누구에게 가지고 가서, 문제를 내려놓고 상의하느냐가, 인생이며 신앙이다.
지금 마리아는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경험이나 상식으로, 이 문제를 다른 곳에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예수님께로 가져왔다. 포도주가 떨어짐은,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데, 그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나왔다.
예수님과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문제도, 예수님께 가지고 나와 상의해야, 지적은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는 무슨 문제만 생겼다하면, 예수님께 문제를 가지고 나와야 한다. 성경을 보면,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기적을 체험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라. 예수님께서는 내가 당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메시아이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희망의 시작이니, 이적을 기대하고 기도하라.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우리는 문제를 가지고 누구에게 나갑니까? 인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이 결정된다. 내 경험에 맡기면 경험주의가 된다. 이성에 의지만 의지하면, 이성주의가 된다.
내 신념에 맡기면, 신념주의가 되고, 어떤 종교에 맡기면, 종교주의가 된다. 나보다 더 위대한 참 하나님에게 가지고 나올 때, 신본주의 신앙이 된다.
잔칫집에서 갑자기 포도주가 떨어짐은, 분명히 절박한 상황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문제를 알고, 그 문제를 예수님께 가져갔다.
미국의 부흥사였던 무디는 “그대 자신을 믿어 보라! 그대는 실망할 때가 있다. 친구를 믿어보면, 어느 날 그들은 죽거나 헤어지게 된다. 자신의 명성을 믿으면, 언젠가 명성은 떨어지고 뒤집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현세와 내세에 후회함이 없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의 문제가 어떤 문제든, 그 문제를 가지고 절망할 필요가 없다. 문제를 가지고,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께 나오면, 더 큰 축복의 기회, 기적을 만들어 주신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나아가서, 포도주가 모자란다고 말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했다(3). 그런데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의 부탁을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하며 거절한다(4).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여자 γυνή(귀네)”라는 말은, 무시하는 말이 아니라, 황제가 왕비를 부를 때 사용한 존경의 명칭이다. 또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아직 내 때가 이르지 못했다고 하셨다(4). 예수님께서 자기의 요구를 거절한다고 느껴졌지만, 마리아는 확신을 가지고 종들에게 말했다(5). 물론 정욕을 위하여 구하면 주시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인데도, 예수님께서 거절하셨다면, 더욱 예수님께 매달려라. 더욱 기대하면서 매달려라. 마리아는 부족한 포도주 문제를, 능히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확신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포도주가 부족함을 알린 후, 하인들에게 순종을 부탁했다.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대로 행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고, 종들은 아구까지 채웠다(7).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은 덥고 건조하기에, 먼지가 많아 밖에 나갔다오면, 반드시 손을 씻고 발을 씻게 되어 있다. 이때 쓰는 물이, 결례를 따라 쓰는 물인데, 마시는 물이 아니라, 손발을 씻는 물이다. 여기에 찰랑찰랑 넘칠 정도로 채웠다.
(3) 철저히 순종하라. 마리아는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먼저 예수님께 아뢰었고, 그 다음 하인들에게 “주님께서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당부했다.
7-8을 보면, 주님께서 돌 항아리 여섯에 가득 물을 채우라. 그리고 떠다가 연회장에 갖다 주라고, 명령을 하셨다. 그 명령을 받은 하인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기란 쉽지 않았다.
① 그 말씀은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돌 항아리 물은, 식사 전후에 손 씻고, 그리고 밖에서 돌아왔을 때, 발 씻기 위해 사용할 물을 담아두는 항아리였다. 다시 말해서 포도주 용기가 아니다. 세수 대야에 고깃국을 담으라는 말과 같다.
② 비과학적이다. 포도주가 떨어졌으면, 빨리 시장에 가서 사 오던가, 옆집에서 꾸어 오라던가 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포도를 가져오라고 하심도 아니요, 물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는 말도 아니다.
지금까지 순수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례는, 요2장 사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포도주는 포도로만이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포도가 아무리 현장에 많다고 해도, 당장 되지 않는다. 포도를 깨드리고 짜서, 그 포도즙을 상당 기간동안, 발효되도록 보관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포도주를 만들겠다고, 하인들에게 명령하고 있기 때문에, 선뜻 순종하기 어렵다.
③ 믿을 수 없는 말씀이다. 하인들은 돌 항아리에서 물을 떠서, 가지고 가는 동안, 괜히 손님들에게 핀잔이나 받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나 염려도 하며, 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순종했다.
우리는 상식이나 과학을 좋아하지만, 상식적인 사고와 과학이, 꼭 옳지는 않다. 진흙탕에서 피는 연꽃의 색깔은, 진흙탕 색깔이어야 상식이다. 푸른 풀을 먹고사는, 소의 우유 색깔은 푸른 색깔이어야 상식에 맞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사실보다,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인 사실이 더 많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고, 난공불락의 든든하고 높은 여리고 성을 대포 한방 쏘지 않고 무너뜨린 일…, 인간의 상식과 과학을 초월한 사건들로 연속되고 있다.
오늘 말씀의 중요한 교훈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라’는 말씀이다. 이치에 맞든지 안 맞든지, 상식적이건 비상식적이건, 과학적이건 비과학적이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하라는 말이다. 베드로와 같이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다’하고, 믿고 순종하면 이적이 나타난다.
오늘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자. 그리하면 텅텅 빈 돌 항아리에, 새로운 가치와 축복으로 가득 차게 될 줄로 믿는다.
종들이 말씀하신 대로 온전히 순종하고, 끝까지 순종하자,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 이렇게 끝까지 순종하는 자에게는,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순종할 때는, 대충대충 순종하지 말고, 넘치게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의 말씀 앞에 순순히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까다롭게 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도 까다롭게 일을 처리해 주신다.
순종하는 사람은, 기적을 경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은 기적을 누가 창조했는지를 아는 기쁨이다(2:9).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기적을 일으키신다.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날 때 보면, 항상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있는 하인들에게, 물을 길러서 채우라고 하셨다. 하인들을 순종했다.
예수님은 그냥 앉아서 말씀만 하셨지만, 그들의 순종이 이적을 드러냈다. 어린 소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이적을 행하셨다. 헌신이 필요하다. 희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감나무 밑에 앉아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람은, 성도의 자세가 아니다.
우리의 충성이 있어야 하고, 움직임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난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어떻게 이루셨고, 예수님께서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신다. 예수님을 믿으면 축복을 받게 된다. 우리의 문제를 드리면, 그 문제가 축복이 되게 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를 통해 기적을 일으키시니, 문제를 두려워하지 말라.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와서, 주님께 맡기라. 그러면 아름답게 변화된다. 기적이 나타난다. 연회장에게 떠서 갖다 주라고 하시니, 연회장은 물로 만든 포도주를 맛보고 탄복했다.
예수님이 주신 포도주는, 정말 좋은 포도주였다(10).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다. 좋은 것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다.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성령을 말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주시고, 성령님을 주신, 좋으신 하나님을 기대하라.
하나님께 나가면, 좋은 것을 선물로 받게 된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 이적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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