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는 빈 항아리가 되어야 합니다 요2:1-11
청년 시절의 \'죤즈\'는 거칠고 세상을 비관하는 술주정꾼이였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챤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신앙을 권면하였으나 오히려 그는 예수를 믿는 아버지를 멸시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온 \'죤즈\'는 뜻밖에도 아버지의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주님! 사랑하는 아들 \'죤즈\' 당신을 믿고 그의 삶을 당신께 온전히 맡겨 새롭게 변화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그에게 들려오는 아버지의 음성이 숨이 넘어가는 그 순간에서조차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아버지의 기도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아버지의 기도는 결국 \'죤즈\'의 완악한 마음에 예수님을 믿고 그분께 자신을 맡겨보리란 결심을 불러 일으키게 했습니다. 이와 같은 그의 결심은 그를 복음 전도자로 만들었고 미국 전역을 두루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게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연희장의 하인들이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무조건 순종함으로써 물이 맛좋은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빈 항아리가 되어야 하며 순종하는 신실한 성도가 될 때에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놀라운 기적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거기에 놓여 있는 항아리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항아리는 무슨 항아리였는가? 7절에 보면\"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 전까지는 그 항아리가 비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릇의 가치는 재료. 형태. 누가 만들었는냐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릇 안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냐도 매우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조 백자에다가 개밥을 담아 놓았다면 그것은 개밥 그릇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릇에 물을 담아 놓으면 물그릇이 되고, 꿀을 담으면 꿀단지가 되고 간장을 담아 놓으면 간장 단지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4:7)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말하는 질긋릇은 우리 자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질그릇은 잘 깨어질 수밖에 없고, 가치없는 그릇에 불과하지만 질그릇에 보배를 담았으니 그 그릇은 보배로운 질그릇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보배\'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질그릇과 같은 여러분과 제안에 보배되신 에수 그리스도를 모셨을 때에 우리는 귀한 사람으로 바꾸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가나라고 하는 동네에 혼인잔치가 있어서 청함을 받았는데 그의 어머니와 제자들도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잔치가 어느 정도 무르익어 가는데 그만 포도주가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손님을 대접할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낭패였습니다.
이때 육신의 어머니였던 마리아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말합니다.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4절에\'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언뜻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육신의 어머니 보고\'여자여\'라고 했으니 영적인 의미를 모를 때는 불효자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그것은 예수님은 구세주라는 사실과, 육신의 어머니였던 마리아도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는 피조물이요, 죄인이기 때문에\"여자여\" 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께서는 밖에 있는두세 통드는 결례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득히 채우라고 하시고는 잠시 후에 그것을 떠다가 연희장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연희장이 물로 된 포도주를 마셔 보고는 지금까지 이런 맛있는 포도두를 먹어 보지 못했노라고 애기할 정도로 맛이 아주 훌륭했던 것입니다.
잔치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 그 집으로 하여금 기쁨과 아름다움과 모든 손님들을 넉넉하게 대접해 줄 수 있는 이런 기적을 바로 주님께서 행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이 잔치집 마당에 놓여 있던 돌항아리 여섯 개에 대해서 한번 깊이 있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항아리가 곧 여러분과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1. 비어있는 항아리 여섯 개가 잔치집에 있었다는 사실입 니다.
그 돌 항아리가 두세 통드는 항아리라고 했으니 한 통에 보통 두말(40리더)이 들어 간다면 두말들이의 커다란 항아리가 잔치집 대문 앞에 여섯 개나 놓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례를 따라 준비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례란 청결케하는 예법인데 유대 나라는 항상 여름날 이어서 덥고 건조한 지방이기 때문에 밖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에는 반드시 발을 씻어야 하고,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맨발에다가 샌달을 신고 다니기 때문에 방안에 들어갈 때는 지저분한 발을 닦아야 합니다,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도 손으로 식사하기 때문에 대문 곁에 있는 결례 통에서 손을 씻고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집 문 앞에는 결례에 사용하는 통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소개된 잔치집에는 많은 손님을 맞이하려고 큰 물통을 여섯 개나 준비한 것입니다.
문제는 물도 담그지 않은 빈항이라가, 그것도 커다란 것이 여섯 개나 대문 앞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물이 많이 담긴 항아리라면 주인과 손님에게 유익을 주지만, 빈 항아리는 무익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거치장스러운 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잔치집에 등장한 이 여섯 개의 빈 항이라가 오늘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속이 텅빈 항아리는 실속없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겉모양은 아름답게 화장하고, 모양을 내고, 멋지게 잘 입었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멋있게 아무리 아름답게 잘 생겼고 그럴듯하게 보인다할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고, 그 사람의 신앙의 속을 들어가 보고, 그 사람의 인격의 깊이를 들여다 보았을 때. 믿음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권세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고, 희망도, 내일도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는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은 빈 항아리의 모습 그대로 그냥 앉아 있는 모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여러분의 빈 항아리가 가득히 채워져있습니까?
한 번쯤 자신의 모습을 진실된 마음으로 보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속이 텅빈 항아리는 거치장스럽기만 합니다
아무 곳에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은 한쪽에 가만히 있는 것이 이히려 낫습니다. 잔치가 끝나고 사람들이 몰려 나갈 때 양 옆에 항아리가 여섯 개나 놓여 있었다면 나가는 사람들에게 거치장스럽기만 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한쪽에 있는 것이 낫습니다.
예수님은 가롯 유다에게\"이런 사람른 차라리 나지 아니했으면 좋을뻔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고 도리어 기쁨을 빼앗아갑니다.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못질만 합니다. 어디에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환영은 받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그는 거치장스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문제만 일으키는 거치장스러운 사람은 아닙니까? 여러분이 모이는 모임이나 단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거치장스러운 사람입니까? 교호에서는 어떻습니까?
아니면 그 어떤 문제든지 덮어가고 남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하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까?
(3) 속이 텅빈 항아리는 괜히 소리만 요란합니다. 우리 속담에 빈수례가 요란하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고린도 교회를 자꾸 어지럽히고 시끄럽게 하는 무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19-20)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내에서도 말만 앞세우고 행함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속이 텅비어 날마다 내 마음대로 교회가 되지 아니한다고 불평불만을 털어 놓는 사람은 아닙니까?
2. 빈 항아리에는 물이 가득채워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그 빈 항아리에 물을가득히 채우되 아구까지 채우도록 해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하인들은 열심히 물을 길어다가 채웠습니다.
당시 우물은 집에서부터 멀리 있었으며, 잔치하는 집이니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열심히 물을 갖다 부었습니다.
손님이 오시기 전이라면 손님들이 손을 닦을 수 있도록 결례통에 물을 채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은 잔치도 다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누구하나 파장이 다 되었는데 무슨 물이 필요해서 물을 채우라고 하느냐며 불평불만을 할만도 한데 한 사람도 불평 없이 순종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였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장 안에서나 어디서든지 말을 많이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5:5하)하고 그물을 내렸을 때 엄청난 축복을 축복을 받은 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은 순종함으로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하고 겸손한 마음이 되어\"주님 그 능력과 그 축복을 내게 주옵소서\"하고 믿음의 무릎을 꿇고 제단 뿔을 부여 잡고 기도하는 그 장소에 임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로 가득 채워진 그 항아리는 이제 소리만 요란하게 나는 빈 항이리가 아니며 거추장스런 빈 항리가 아니였습니다.
(1) 물로 가득채워진 항아리는 이제는 쓸데없는 것으로 차 있었습니다.
결례의 물은 손님이 방에 들어올 때 씻는 물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참 잔치가 무르익어갈 때이고, 와야할 손님은 다 왔기 때문에 그 물은 필요치 않았습니다.
항아리같은 인생, 채워지긴 채워졌는데 무엇으로 채워졌느냐가 문제입니다. 욕심으로 채워졌습니까? 불만으로 채워졌습니까? 욕망으로 채워졌습니까?
거짓과 위선으로 채워졌습니까? 사치로 온통 채워졌습니까? 남을 헐뜯는 것으로 채워졌습니까? 아니면 사랑으로 가득채워졌습니까?
믿음으로 채워졌습니까? 불신으로 채워졌습니까? 순종으로 채워졌습니까? 불순종으로 채워졌습니까? 남을 칭찬해 줄줄 아는 것으로 채워졌습니까? 여러분의 항아리를 이시간 한 번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바라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욕심, 욕망. 거짓.위선, 사치, 허영, 불만. 불평으로 채워진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가득 채워지고, 성령과 사랑으로 충만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맹물 같은 인생이 되지 않도록 항상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자신을 주님께 드려 기도할 줄 알고 봉사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물로 가득찬 항아리는 나타낼 것이 없는 사람을 말 합니다.
항아리에 물이 가득차 있으나 물은 냄새가 없습니다. 물은 맛도 없습니다. 물은 색깔도 없습니다. 물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성경 찬송 들고 예배당에 왔다 갔다 하지만 예수님의 향기가 나지 않는 신자를 맹물 같은 성도라고 부릅니다.
마지못해 교회는 다니지만 은혜가 뭔지, 성령이 뭔지, 은사가 무엇인지. 기쁨이 어떻것인지. 구원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축복이 뭔지를 모르고 그냥 예수만 믿는 사람입니다.
감사하라고 하지만 감사가 무엇인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참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세상 것에만 눈이 훤하게 열려서 그것만 바라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 예수 안에 있는 축복, 예수 안에 있는 그 크신 사랑, 예수 안에 있는 소망, 예수 안에 있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맹물같은 신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가족들이나 친척들에게 소망을 주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도 오히려 거치는 돌이 되어 남을 다치게 합니다.
3. 물 항아리가 포도주 항아리로 변했습니다 (1) 항아리의 물이 색깔도 좋고, 맛도 좋은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잔치집에 쓸모없이 물로 가득차 있던 그 항이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인들이 떠다가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었더니 맛 좋은 포도주 항아리로 바뀌어 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져서 예수님께서 물통에다가 물을 가득 채우라 하시고 나서 주문도 외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도하신 것도 아니고, 물을 떠다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는 것이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물이 포도주로 변한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인격, 자기 경험. 자기 지식을 하나님의 능력보다 하나님의 축복보다, 앞세우기 때문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의 하인들은 예수님이 물을 떠오라고 말씀하실 때 바쁘고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역사는 믿고 행할 때 이루지 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물을 떠다 연회장에게 주어라\' 내 지식과 상식에는 맞지 않지만, 내 경험에는 맞지 않지만, 내 생각에는 맞지 않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그 말씀에 순종하여 항아리에서 물을 떠다가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연회장이 물을 한모금 마시는 순간 눈이 커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잔치를 하더라도 처음에는 좋은 포도주를 내고, 술이 취하고 나면 좋지 않은 술을 내는데 너희 집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두었느냐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맹물 같은 신자. 맹물 같은 인생이 변화되면 얼굴 모습이바뀌어 집니다. 마음의 자세도, 생각도 바꾸어지는 역사가 나타나는 줄로 확신합니다.
슬픔과 고통 속애 살던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변화받아 그 얼굴에는 웃음이 넘치고, 그 입술에는 찬양이 넘치고, 그 마음 속에는 감사가 넘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믿는다고 하면서도 맛이 없고 재미도 없는 맹물같은 성도가 되지 말고 은혜받고 축복받아 변화되어 포도주와같이 맛을 내는 심령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2) 물 항아리가 포도주 항아리로 변하되니 모두가 기뻐 하며 즐거웠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져서 근심하고 있던 신랑과 주인, 하인들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니 신랑이 기뻐했고. 손님들도 기뻐했고, 주인과 하인들도 기뻐하였습니다.
나 한사람이 은혜받지 못하면 가정에 기쁨이 사라지고 분위기가 다 망가집니다. 나 한 사람이 변화받지 못하면 내 가정에 축복이 떠나갑니다.
그러나 나 한사람이 은혜받고 축복 받으면 제일 먼저 내가 기쁘고, 내 남편이 기쁘하고 , 내 아내가 기뻐하고, 내 자녀들이 기뻐하고, 교회가 기뻐하고, 목사님이 기뻐하고 하나님이께서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목회자의 참 보람과 기쁨이 무엇인가 아십니까? 여러분들이 말씀 안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하나님 앞에 칭찬듣고 축복받고 인정받는 성도가 되는 것이 목사의 소망입니다.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질그릇들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무엇이 담겨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빈 그릇에 물을 담는 것은 사람의 수고가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 열심히 일하면 지식도 채우고, 돈도 채우고, 명예도 채울 수가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다 채워졌다고 할지라도 인생은 늘 부족합니다.
다 부질없는 맹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되겠습니까?
먼제 나 자신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주님의 능력만이 가능했듯이 여러분과 제 심령이 변화되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역사할 때만 가능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살았던 여러분의 모든 삶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빈 항이리는 아닙니까? 자신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빈 항이라나, 쓸데없는 물로 가득찬 항아리가 되지 말고 그 물이 포도주로 변화는 관심있고, 기쁨이 충만하고, 은혜와 축복이 넘치며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놀라운 역사의 항아리로 변화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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