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말씀에 순종 할수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까?/눅5:1-11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까?
눅5:1-11





그리스도인은 신앙을 갖게 된 동기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어릴 때부터 부모의 신앙에 따라 예수를 믿게된 사람과 ②어떤 사건이나 계기를 통해 교회에 나오게 되는 경우입니다.
후자의 경우 어떤 동기로 신앙을 갖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환난과 역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 것이 신앙의 출발점이 되었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성도 여러분도 어쩌면 인생 길에서 실패나 고난을 겪으면서 신앙을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즉 죽을 병에 걸려서, 사업에 실패해서, 자녀 문제로 고민하던 중에, 직장의 문제 때문에, 그밖에 여러 가지 환난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에 나왔다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믿음 생활을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오늘의 말씀에 등장하는 베드로 역시 실패를 경험하고 난 뒤에 생명의 예수님을 만나는 일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0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02절 말씀은 어부들이 밤새도록 수고하여 고기잡이를 했지만 한 마리도 얻지 못한 체 그날의 고기잡이를 마치고 다음의 작업을 위해 그물을 씻는 장면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시몬의 배에 올라 육지에서 조금 띄게 하시고는 언덕에 모여 있는 무리들을 향해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이후 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0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령이지 않습니까? 왜냐고요? 일하는 도중에 그 일을 한 번 더하는 것은 쉽지만 다 정리한 후에 그 일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대단히 힘들고 머리 아픈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일을 막 끝내고 다음 일을 위해 집에 가서 잠이나 푹 자며 휴식을 취하려 하는데 느닷없이 낮 시간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시니 얼마나 곤란한 일입니까?

예수님으로부터 이러한 상식에 맞지도 않는 명령을 받은 시몬 베드로가 어떻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 지를 05절 말씀을 통해 보겠습니다(함께 봉독합시다).

05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러한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어떠한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1. 주님의 명하시는 일에는 나의 이성을 초월하여 순종해야 합니다.


모든 분야마다 전문가가 있는데 비전문가가 전문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명령을 한다면 결코 달갑지 않게 들릴 것이며 어쩌면 마음이 무척 상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드로는 그래도 갈릴리 바다만은 제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는 갈릴리 바다의 고기잡이 전문가인데 비해 예수님은 베드로보다 나이가 적은 갓 서른 살 정도에다 또 목수 요셉의 아들이요 자신도 목수입니다.

그런데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시몬에게 고기를 잡으려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하며 목수가 어부에게 가르치는 것은 실제 말도 안됩니다.
경험상으로도 불가능하고 이치로도 맞지 않는 일 아닙니까? 그럼에도 05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이라고 단서를 단 다음에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순종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생각은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이라는 단서를 단 것을 보아 고기를 못 잡을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개의치 않고 오직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그 말씀 그대로 순종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원문의 의미는 당신의 말에 따라 당신의 말대로 따르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따르겠다는 표현으로서 내일 아침에 던지겠다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대로 던지겠다는 것도 아닌 즉각적으로 말씀하신 그대로 가감 없이 하겠다는 겁니다.
일단은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라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잡히리라는 확신이 꼭 있어서도 아니고, 잡기 위해서도 아니고,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다소라도 있기 때문도 아닌 다만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대로 따르겠다는 것 일뿐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말씀을 따라 어부들에게는 상식 밖의 행동인 한낮에 그것도 깊은데 그물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일전의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짐작이 됩니다.
시간적으로 보면 요 02:01~11절의 사건이 제일 먼저 일어난 기적으로서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그때 그 사건의 현장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때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고할 때 예수님께서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 라고 말하자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요 02:0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이것이 마리아의 견해입니다. 이렇게 하여야만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을 마리아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하인들을 보고 말씀하시기를,

요 02:0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 즉 아구까지 채우니 0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이밖에 다른 말씀은 없었습니다. 세상에 이러한 지시를 따를 수 있습니까? 도무지 따를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일은 무슨 일이든 그대로 하라는 말 그대로 하인들이 순종을 하였기에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가지고 가는 동안에 항아리의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지만 절대 순종함으로서 이적이 나타나는 것을 본 베드로였기에 오늘의 말씀에서도 주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0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2.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나타나는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공의 위기는 자만이지만 실패의 은총은 겸손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공했을 때 자연히 우리의 초점은 자기 자신에게로 쏠리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성공을 이룬 자기 자신을 과시하려고 목에 힘을 주기 마련인데 여기에 성공의 위기가 있습니다.

성공이 우리를 자만으로 인도할 때 그 성공은 우리 인생을 파멸로 이끌어 가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반대로 비록 실패는 했지만 그 실패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리는 기회가 된다면 실패는 오히려 은총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런 경우였습니다.
여러 해 동안 익힌 어부의 감각과 상식으로 고기잡이를 하였던 것처럼 자신의 인생도 이러한 상식을 따라 살고 있었습니다. 사실 사람은 상식을 벗어난 더 이상의 삶을 살지는 못합니다.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 하여 일 처리를 하고 그 판단을 믿으며 사는 것이 전부인데 베드로는 이 상식이 맞지 않는 고기잡이 실패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는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순종하여 그물을 깊은 곳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물을 깊은 곳에 내렸을 때 전혀 예상치 않았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0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0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그물이 찢어지고 잡은 고기를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는 것은 축복이 넘친다는 장면이 아닙니까? 대단히 좋은 일이지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초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축복 즉 그물이 찢어지고 그 복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는 축복을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풍성히 받아 누리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음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합니다.

0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08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는 넘치는 축복 후에 두 가지 놀라운 진리를 깨닫습니다.


①첫째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 베드로의 상식을 깨뜨리고 기적과 같은 일을 행한 목수 그분은 베드로보다 바다를 더 잘 알고 계시는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자연의 법칙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기적을 목격한 베드로는 예수님이야말로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야이심을 알게되었다는 말입니다.
(05절.... 선생이여, 08절.... 주여)


②둘째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고기가 많이 잡힌 것과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 사이에는 무슨 연관성이 있습니까?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면 동시에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분이 우리를 속속들이 알고 계시므로 우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만과 죄 된 성품을 주님께 내어놓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게 되는 이것이 신앙 고백의 가장 놀라운 핵심이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변화 된 베드로에게 주님은 사명을 주십니다.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베드로를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놀라운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말씀에 의지하여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 그 순간부터 베드로는 주님의 은혜 아래 거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경험과 지혜가 보잘 것 없음을 느끼면서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할 때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우리의 주관과 생각대로 살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됩니다.

나아가서 버림받은 죄인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변화시키는 영혼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게 됩니다.
시몬 베드로는 이제 물고기를 잡던 어부에서 사람들의 영혼을 생명 길로 인도하는 주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때때로 수고스럽고 주위 사람들의 조롱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나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살 때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의미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 태도입니다. 말씀을 깨닫고 주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들을 때 자신만을 의지하면서 교만하게 살았던 생활을 청산하여야 합니다. 그리고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라는 고백과 함께 주님을 좇아가는 신앙의 결단을 내려야지요.
예수님께서는 이 시간 바로 여러분을 부르셔서 귀한 사명 맡겨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의 기적은 비단 고기를 잡는 외형적인 축복의 기적일 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을 바꾸는 위대한 영적 변화의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광스러운 사역을 감당하는 차원 높은 삶의 변화를 요구하는 기적이며 인생의 방향 전환을 일으킨 놀라운 기적입니다. 여러분도 이 기적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은 나의 견해를 버리는 것부터 시작이 됩니다. 목사님 안 버려지는데 어떠합니까?
예,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노력을 해야하지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지요. 주님을 의뢰해야지요.
만일 내 힘으로 안되면 성령님의 힘으로 하여야 합니다. 포기가 전제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언제든지 변질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언제 포기가 됩니까? 내가 지닌 것은 아무런 쓸모나 별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질 때입니다.
순종은 포기가 선행되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고기를 잡는데 있어 포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더 큰 포기가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 다같이 10,11절을 읽어봅시다.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내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베드로는 모든 것 즉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주님을 좇았으며 저희가 라는 말을 보아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같이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직업을 갑자기 바꾼다는 것 쉬운 일입니까? 쉽지 않지만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제 나의 모든 것 포기하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