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의

이스라엘이 순종해야 할 기타 율례들/출22:16-31

이스라엘이 순종해야 할 기타 율례들
출22:16-31





오늘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여호와의 자비를 나타낼 것과 가나안의 모든 산물로 여호와께 헌신하라는 율례입니다. 먼저 18절로 20절의 내용은 오직 여호와께만 충성하라는 율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고, 하나님을 섬김에서 이탈하게 하는 어떤 악행도 그들 가운데서 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1절로 27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보이신 자비하심을 따라 여호와의 자비를 나타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8절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들을 욕하지 말라는 계명이며 끝으로 29절로 31절까지는 가나안의 모든 산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에 대한 헌신의 율례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관련하여 세 가지 계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무당을 살려 두지 말지니라\"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자는 멸할지니라\" 이 세 가지는 각각 다른 계명이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를 대항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당은 대표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훼방하는 자라고 할 수 있겠고, 짐승과 행음하는 자도 하나님의 통치질서를 무너뜨리는 악한 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신에 희생을 드리는 것은 곧 하나님의 통치를 직접적으로 거절한 것과 같아서 심히 악한 죄가 되는 것입니다.

\'무당\'은 \'악한 영에 사로잡혀 주술을 통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때로 사람의 미래를 점치기도 하고 사람보기에 놀랍고 기이한 일들을 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본 사람들은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그 기이한 현상을 인해 쉽게 미혹되어 그것들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곧 그 가운데 모든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자기 미래와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불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과 불안을 통해 악한 영은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결과적으로 무당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나님을 의지함에서 떠나 이 세상의 미혹의 영에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백성들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 어둠의 지배를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살려두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자를 죽여 그들 가운데서 제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나라를 보존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하나님만의 다스림이 드러나야 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계명은 신약백성들에게도 유효한 것인가? 그래서 옛날 중세교회처럼 그런 자를 참형하거나 화형시켜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지요? 이제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그 나라를 보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입니까? 왜냐하면 이제 주님께서 모든 미혹자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분으로 하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미혹자가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나라로 그 나라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친히 그 영을 부으셔서 모든 미혹자를 분별하고 이기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이런 방식으로 미혹자를 제거하거나 그 나라를 보존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거룩한 떡으로부터 이런 저런 누룩을 제해야 합니다. 무당 정도가 아니라 온갖 미혹하는 거짓 가르침들을 분별하고 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진리의 힘 곧 참된 교훈을 증거하고 그 열매를 가지고 확증함을 통해서이지, 결코 인간적인 힘의 원리로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 캠퍼스 내에서 발생한 이런 저런 이단들에 대한 대항은 생각해 볼 점이 많은 것입니다. 물론 그 위협의 정도가 심각하고 크다는 점은 알 수 있으나 그럼에도 우리는 주님의 나라의 승리를 믿어야 하며 진리의 힘으로 그들을 방어해 낼 수 있도록 그 힘을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교훈과 그 열매를 증거함으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신약의 교회가 이런 저런 미혹자들을 제하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여하튼 여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어떤 무당도 살려두지 말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이어 19절에서는 짐승과 행음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위 수간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무너진 세계의 극한 타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계 가운데 사람들의 방임된 타락이 어디까지 달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당시 가나안을 비롯하여 이방 세계에 이러한 죄들이 어느 정도 성행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성에 대한 도착적인 탐닉은 여자와 남자를 넘어서 짐승에게까지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수간에 대해 경계하시고 그런 자를 죽여 이스라엘 가운데 제거함으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서의 거룩함을 유지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옛백성들은 자신들의 행위들 속에서 이런 저런 죄를 제거함을 통해 자신들의 거룩함을 지켜갔습니다. 곧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령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거룩함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백성들은 단지 \"짐승과 교접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므로 거룩함을 이루는 것이 아님은 자명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런 추악한 죄를 범해서는 안되겠지만, 그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는 우리 안에 적극적인 거룩함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에 대한 바른 이해와 더불어 그것을 선히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을 따라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사용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적절한 절제와 다스림 가운데 우리의 몸까지라도 하나님을 봉사함에 드려지도록 믿음을 발휘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요즘 같이 성적으로 자유로워지고 그에 따라 타락으로 치닫는 세태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서의 거룩함을 지켜가야 하겠습니다.

20절에서는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자를 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충성할 것을 명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 안에서 그들을 자신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소유된 백성인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것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부르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여서 그 나라에 합당치 않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강력히 드러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의 책임적 언약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 그들을 애굽의 종 된 삶에서 구원하셨습니다. 큰 기사와 표적을 통해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하늘의 만나로 먹이시고 이제까지 인도해 오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신만이 경배 받으실 하나님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고 하나님께만 충성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내가 다른 신에게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않겠다\"고 그의 시편에서 노래하였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주가 되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를 자신의 것, 자신의 소유된 백성 삼으시기 위해 생명의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큰 기사와 표적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심판하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의 손에서 구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므로 우리의 주가 되게 하셨고 우리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겨야 하고 그에게만 충성해야 합니다. 다른 어떤 것에도 우리 자신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또 다시 죄를 섬기고 우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린다면 결국 우리는 영원한 사망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또 다시 우리가 옛 왕에게로 돌아선다면 다시는 그 죄를 사함 받을 수 없는 영원한 저주 가운데 처하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오직 주님께만 속한 주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주님께만 충성하고 그만을 섬기는 것은 마땅하다 하겠습니다.

이제 21절로 27절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 중에 계신 자비의 하나님을 나타내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특별히 두 부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하나는 이스라엘의 의지할 것이 없는 연약한 자들 즉 이방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와 관련해서 자비를 베풀 것을 말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가난한 형제와 관련해서 자비를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밝혀주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스라엘도 한 때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형편을 외면하지 말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 도와주지는 못할지라도 압제하거나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여호와의 날개 아래서 쉼을 얻기 위해 찾아 온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의 그늘에서 안식을 얻고자 찾아 온 이들에 대해서는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방 나그네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부나 고아 또한 해롭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의 허약한 사회적 위치를 악용해서 재산을 탈취한다든지 악행을 행한다든지 압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보호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힘으로 자기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연약한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자들을 학대하는 자는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23-24\"------------\"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약한 자들에 대해 자기 손으로 직접 간섭하여 일하지 않으신다고 하는 점입니다. 곧 직접적인 방식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직접 주실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편을 택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이 짧아서도 아니요, 능력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통해 일하기를 원하시고 백성들이 서로 돌아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형제를 통해 나타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제 신약의 교회는 교회의 연약한 자들에 대해 적극적인 섬김을 나타내야 합니다. 단지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들을 압제하고 학대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방관함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을 보살피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생각할 때, 교회가 적극적으로 그 짐을 져야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새삶교회가 지금 계획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실천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25절로 27절에서는 교회 내 가난한 형제에 대해 나타내야 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 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입니까? 왜냐하면 그 옷은 그에게 있어 밤의 추위를 막아 줄 유일한 보온책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지하철 노숙자들에게 있어 한 장의 신문지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돌려주어야 하고 악독한 채주처럼 행치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나는 자비한 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비함을 나타내 보여할 이유는 그들의 하나님이 자비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곧 그들은 자비의 하나님을 그들 중에 나타내는 백성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웃에게 자비함과 사랑을 나타내 보여야 할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중에 계신 하나님을 더 탁월하게 나타내 보여야 할 의무를 지닌 자들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처럼 온전히 행해야 할 의무를 지닌 자들인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나타내는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삶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는 백성으로 구속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거룩한 의무를 지닌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의무를 신실하고도 충성스럽게 이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28절에서는 하나님의 세우신 관원들에 대한 태도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세우신 관원들에 대한 태도는 그들을 욕하거나 저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아마도 세워진 자들의 실수 또는 불의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현명하고도 바르게 일을 처리했다면 욕하거나 저주하는 일은 당연히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워진 자들이 실수와 불의를 범한다 할지라도 그들을 욕하거나 저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소 편파적으로 일을 처결한다고 해서 그들을 욕하거나 저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단 하나님께서 그들을 폐하시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세우신 자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간에서 나타내야 할 규례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것을 이방의 권세자에게까지 확대하여 적용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이제 만왕의 왕의 자리에 오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우리 주변의 사소한 일에까지 확대 적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우신 모든 권세자에게 믿음과 양심을 인하여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29절 이하에서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소출을 하나님께 드리기에 인색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추수한 것과 짜낸 즙을 드리기에 더디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아들들과 소와 양의 첫 것을 드리기에 더디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낳은 아들이나 나귀나 이런 것들은 제 팔일이 되면 대속함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고, 소나 양이나 염소의 첫 것은 제 팔일이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헌신에서 기쁨과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쁨으로 자신의 소산과 첫 것을 드릴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 자기 헌신을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약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것 삼으셨습니다. 마치 애굽의 장자 심판에서 모든 첫 것을 자신의 소유 삼으신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 안에서 우리를 자신의 소유 삼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안에서 전체로 헌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첫 것만이 아니라 전체로 하나님께 헌신된 바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더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드림이 인색함으로나 억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런 자를 기뻐하시고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가 부요한 자로서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해 스스로 가난해 지셨으니 우리 또한 주님을 본받아 스스로 가난해 지기를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가 여기 계명들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빛으로 우리 안에 성취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