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가상칠언 4
성경: 마 27: 45-46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27:45-46)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남긴 마지막 일곱 마디의 말씀 가운데 네 번째 말씀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입니다.
주님의 삶에서 고독의 클라이막스가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그분의 유일한 위로, 그분의 최후의 위로였던 아버지 하나님에게서조차도 버림을 받으셔야만 했습니다.
유명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침식을 잊고 묵상하며 깊은 고뇌 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으실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그를 붙들고 있었던 의문입니다. 성자(聖子) 하나님이 성부(聖父) 하나님에게 버림 받는 이 고독한 절규를 붙들고 루터는 고뇌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버림 받는 순간까지 고독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고독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가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예수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우리이 죄를 담당하셨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스펄젼은 “그것은 예수께서 죄인이 되신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문자 그대로 죄인이 되신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고후5:21)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리고 그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분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바로 그 순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얼굴을 돌리시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온 세상의 죄를지고 계셨던 그순간 절대로 거룩하신 하나님은 저 영원 전부터 단 한번도 교제가 끊기지 않았던 그 아들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셨습니다. 왜 주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계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2.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라고 했습니다. 죄는 언제나 삯을 받아냅니다. 죄는 대가를 요구합니다. 죄는 반드시 그 대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육체적 생명의 단절이라는 죽음 말고 또 하나의 죽음을 말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둘째 사망”(계21:8)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이 둘째 사망, 곧 지옥을 가리켜서 어두움의 장소라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3시간이 지난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약 3시간 동안 갑자기 온 땅에 캄캄한 어두움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진노를 견디고 있었던 바로 그 순간 온 땅에 임했던 이 캄캄한 절대의 어둠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진노였던 것입니다. 세상의 죄가 예수님에게 매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기에 그분의 진노를 쏟아붓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침묵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는 하나님, 하늘은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지옥을 견디시고 있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형벌이었습니다.
우리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 삯을 대신 지불하게 만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형벌로 말미암아 그분이 이 절규를 토하고 계십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3. 우리의 구원 때문이었습니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세 시간에 걸친 이 무서운 어둠을 견디어 내시고 최후의 핏방울을 골고다 언덕에 떨구시던 바로 그 순간 우리 죄의 삯은 지불되었습니다. 이제는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바로 이 구원의 소망 때문에 주님은 이 캄캄한 고독과 절대의 고통을 견디실 수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 심판과 인간이 받아야 할 형벌을 한 몸에 지고 그 아픔을 견디시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그 소망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절규였지만 소망이 없는 절규는 아니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 아버지를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구약시대에 보면 인간은 아무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 속죄의 제물을 드리고 그 피를 뿌리고서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보혈을 떨구시던 바로 그 순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겨졌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9-20)고 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이(요14:6) 활짝 열렸습니다.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