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상의 칠언 (눅23:26-46)
* 사복음서 중 십자가 상에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을 복음중에 복음이요 의의 설교 이다
이 말씀은?
(1) 용서 (2) 권위 (3) 기억 (4) 순종 (5) 수난 (6)승리(7)확신
을 나타나고 있다.
* 이말씀을 하신 시간은 막15:22절에 세시(오전9시) 33절에 육시(낮12시)및구시(오후3시)로,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여러 시간을 달렸는데 처음 세말씀은 첫 세시간 동안에 나중 네 말씀은 캄캄한후 세시간 동안에 하신 것이다.
1.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주옵소서.(눅23:34)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23:34)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남긴 마지막 일곱 마디의 말씀들을 가리켜서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이라고 합니다. 주님이 마지막 남기신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관심과 삶을 생각해 보고 또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을 조명해 봅시다.
가상칠언 가운데 첫 번째 말씀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용서의 기도를 십자가상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용서의 삶이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인간이 쉽게 비인간화되어가는 시대 속에서 내 잘못과 상관없이 이웃들에게 오해당하고 거절당하고 비판받고 고발당하는 억울함이 있을 때 어떻게 용서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1. 상대방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고통의 절정 그리고 억울함의 절정의 순간, 지금 예수님은 누구를 부르고 계십니까? “아버지여!” 왜 아버지를 부르고 계십니까? 기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생애 전체는 아버지 하나님과의 기도의 교제 안에 있던 삶이었습니다. 이 기도의 삶이 그분에게 용서의 삶을 살게 했던 것입니다.
십자가상에 매달려 있었을 때 예수님 앞에는 많은 사람들의 영상이 지나갔을 것입니다.
자기를 팔았더 가룟 유다의 영상이 지나갔을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자기의 사랑하는 제자이면서도 자기를 부인하고 저주했던 제자 베드로의 영상이 지나갔을 것입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자신을 십자가에 내주는 마지막 판결을 했던 빌라도의 얼굴도 지나갔을 것입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예수님을 향해서 “저를 못박으소서.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라고 절규하던 군중들의 모습도 지나갔을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 기도 때문에 주님은 용서하실 수 있었습니다. 용서하며 살아가는 삶을 원하십니까? 먼저 기도하는 삶을 사십시오.
인본주의자들을 위한 사랑과 용서의 말씀
1) 예언 성취(사 53:12, 히 7:25)
2) 인간과 일치되신 그리스도 예수 (요 17:23)
3) 가르침에 대한 모범(마 5:44)
4) 구속적인 사랑의 승리(시 20:5, 60:4, 요 17:24)
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죄인들을 향한 구원의 말씀
성경: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43)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남긴 마지막 일곱 마디의 말씀 가운데 두 번째 말씀은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입니다. 이 구원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위해 오셨다는 구원의 삶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말씀과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상의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의 구원의성격을 투명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1. 구원의 계획성 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분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은 그분의 삶속에서 우연히 일어난 어떤 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그 계획의 성취였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두 강도 사이에 매달린 그 사건조차도 철저한 하나님의 게획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칠백 년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들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사53:1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두 강도 사이에서 죽어 갈 것을 구체적으로 예언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렇게 죽으시는 그 모습은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이 구원의 계획이 언제부터 준비되었습니까? 성경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의 제물로 십자가에 내어 주실 것을 계획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구원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히2:3)라고 했습니다.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긴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어떻게 피할 수가 있겠습니까? 계획된 구원, 그것이 인류를 위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었다면 계획 앞에 여러분은 어떻게 서겠습니까? 여기에 구원의 계획성이 있습니다.
1) 대표적인 죄인(의인이라는 죄인, 죄인이라는 죄인 어느 편의 죄인인가?)
2)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무기력, 죄에 대한 슬픔 (시 51:7~14)
3) 회개신앙의 참된 의미, 오직 믿음으로 구원 (시 34:15~20)
4) 하나님의 놀라운 영적 은총에 위임(시 37:5, 55:22, 잠 16:3, 벧전 5:7)
5) 미래에 구원받은 자가 갈 처소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 보라! 네 어머니다.(27)
성경: 요 19:26-27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남긴 마지막 일곱 마디의 말씀 가운데 세번째 말씀은 십자가 아래에서 자기를 지켜 보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향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보소서 여기 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 있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시기를 “보라 네 어머니라” 다시 말하면 “네 어머니로 섬겨다오”라는 뜻입니다.
이 부탁을 받은 요한은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27절). 그 날부터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교회 역사에 보면 요한은 평생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기 어머니처럼 신실히 공경해 섬겼습니다.
사도 요한으로 하여금 이 사랑의 실천을 하게 한 그 삶의 비밀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것이 오늘의 질문입니다.
1. 주님의 사랑을 먼저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주님의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는 자만이 사랑을 나눌 수가 있습니다. 사랑을 경험한 자만이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의 별명은 “사랑의 사도”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아름다운 표현이 계속 등장합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제자가”(요13:23),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요19:26)라고 했는데 “사랑하시는 제자”란 바로 요한입니다. 그는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3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그 품에 눕는 것을 예수께서 받아주시고 또 사랑했던 요한, 이런 사랑을 받으면서 요한의 가슴은 녹아 내려 가고 그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으로 서서히 변화되어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훗날 유명한 사랑의 편지를 씁니다. 그것이 요한일서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요일4:10), “우리가 사랑함은 그(하나님)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4:19)고 했습니다. 이 사랑을 받으며 그는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갔던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 사랑을 경험하기 바랍니다.
2. 요한도 주님을 사랑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받은 자의 의무가 있다면 사랑을 반환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에 그는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도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따랐습니까?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섰는 것을 보시고”(26절).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받고 피흘리고 계시는 주님 곁에 가까이 서 있었던 유일한 제자, 사도 요한은 주님 “곁에”있었습니다.
사도 요한 뿐만 아니라 정말 주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다 거기에 있었습니다(25절).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 살로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였습니다. “내 두 아들을 하나는 당신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라고 흥정했다가 주님 앞에 몹시 책망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의 책망을 받으면서 마침내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거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죄를 범했으나 넘치는 사랑과 용서를 받았던 막달라 마리아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참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곁에, 십자가 곁에 있었습니다
참된 사랑은 두려움을 이기게 합니다. 참된 사랑은 값을 지불하게 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어떤 대가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따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기주의자들을 위한 애정과 연민, 효도의 말씀
1) 시므온의 예언 성취(눅 2:34~35)
2) 모든 인류를 위한 효도의 모범
3) 영적인 것으로 육신적인 책임을 무시할 수 없음
4) 여자는 개인도 되지만 복음의 씨를 잉태해야 하는 존재를 의미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말씀
성경: 마 27: 45-46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27:45-46)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남긴 마지막 일곱 마디의 말씀 가운데 네 번째 말씀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입니다.
주님의 삶에서 고독의 클라이막스가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그분의 유일한 위로, 그분의 최후의 위로였던 아버지 하나님에게서조차도 버림을 받으셔야만 했습니다.
유명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침식을 잊고 묵상하며 깊은 고뇌 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으실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그를 붙들고 있었던 의문입니다. 성자(聖子) 하나님이 성부(聖父) 하나님에게 버림 받는 이 고독한 절규를 붙들고 루터는 고뇌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버림 받는 순간까지 고독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고독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가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예수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우리이 죄를 담당하셨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스펄젼은 “그것은 예수께서 죄인이 되신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문자 그대로 죄인이 되신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고후5:21)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리고 그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분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바로 그 순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얼굴을 돌리시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온 세상의 죄를지고 계셨던 그순간 절대로 거룩하신 하나님은 저 영원 전부터 단 한번도 교제가 끊기지 않았던 그 아들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셨습니다. 왜 주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계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1) 인간의 죄 값 = 하나님과의 단절(롬 6:23)
2) 우리를 대신 한 예수의 절규 (시 22:1~5)
3) 인간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엡 3:17~19)
4) 구원에 대한 기초 (엡 5:2, 롬 4:5, 히 7:27, 9:14, 10:10-14)
5) 마지막 날의 일어날 일들을 예고
5. 내가 목마르다(요19:28) 현대인들에게 향한 영생의 말씀
성경: 요 19: 28-29
“이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요19:28-29)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남긴 마지막 일곱 마디의 말씀 가운데 다섯 번째 말씀은“내가 목마르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의 절정에서 토해 내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오전 아홉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은 세 시간을 견디셨습니다. 정오에 갑자기 내리덮힌 캄캄한 어둠 속에서 계속 아파하셨습니다. 다섯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심장이 압박되기 시작하자 심하게 으깨는듯한 고통이 가슴 깊숙이 파고 들었습니다. 세포 조직의 분비액의 유출은 위기 상태에 이르고 압축된 심장은 무겁고, 그나마 남은 피를 세포 조직에 보내기 위해 애쓰고 시달림 받는 폐는 약간의 공기라도 흡입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계속합니다. 탈수가 많은 세포 조직은 다량의 자극을 뇌에 전달했습니다. 주님은 마침내 “내가 목마르다.”고 절규했습니다. 예수께서 고통 가운데 죽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참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14절에“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은 참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참 인간으로 오셨기에 생애 전체를 통하여 그분은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고통을 겪으신 것입니다. 배고프시고, 피곤해 하시고, 목말라 하시고, 병들고 아프고, 외롭고, 시험받으시고, 오해당하시고, 배신당하시고 그리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그 최악의 고통을 감내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서 이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16)고 했습니다.
죄를 빼놓고는 우리와 동일한 고통을 받으셨던 그분, 따라서 고통을 이해하시고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는 바로 그분은 이렇게 초청하십니다. “내가 그 고통을 이해한다. 고통받는 자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오라.”
예수님이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 자신이 고통의 사람이었고 슬픔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1)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증거(시 69:21, 51:7~10)
2) 고통의 심도가 강하게 나타남(시 22:12~19)
3) 예언의 성취 (시 22:12~19)
4) 인간의 고통을 아시는 주 (히 4:15~16, 벧전 5:7)
6. 다 이루었다 (요19:30) 패배자들을 향한 승리의 말씀
1) 예언 성취 =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는 완성, 성취,(요 17:4)
2) 성육신의 목적 달성(요 1:14, 빌 2:7~8, 골 1:22, 요일 4:2)
3) 죄의 종말(죄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함) 롬 8:33~39
4) 사탄의 권세에 대한 승리 (요일 5:4~5)
7.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좌절과 절망 속에 있는 자들을 향한 말씀
1) 하나님의 교제 속으로 다시 회복된 예수X (요일1:3, 고전1:9, 요17:21)
2) 그리스도의 완전한 복종(빌 2:6~11)
3) 영원한 피난처, 참된 안식(시 14:6, 46:1, 61:3, 62:7~8, 91:2, 1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