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서는 안될 은혜

잊어서는 안될 은혜
신26:1-11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구약시대는 맥추절을 지킬 때 1년된 숫양을 번제로 드리면서 그 해에 거둔 모든 맏물을 십일조와 함께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 절기는 농사에서 얻은 첫 수확, 맏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시작되었지만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10계명을 받고 하나님의 계약 백성이 된 것을 함께 기념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그 후 신약 시대에 와서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깊은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이 절기를 지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단순히 보리를 추수했기 때문에 감사 드리는 것이라면, 오늘날에 보리농사를 안하는 입장에서 맥추감사를 드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 11절 말씀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제위인과 너희 가운데서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찌니라” 즉 우리에게 주신 모든 복을 생각하여 우리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들을 인하여 기쁨으로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1. 왜 감사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6-7절에 감사 드려야 할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애굽에서 고통과 압제를 당할 때 그 조상들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그 모든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 민족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여 감사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36년의 일본식민통치로 형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당했고, 해방 후에는 조국분단과 6.25사변으로 절대빈곤의 고통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의 기도와 부르짖음에 응답해 주시고 경제적 부흥과 함께 이제는 세계 선진국에 따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비약적인 발전을 했습니다. 기적과 같은 변화와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두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 땅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도저히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하나님이 그 땅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이루시고 그 땅을 주셨기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오늘의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우선 이 출애굽 사건은 우리를 죄와 저주, 사망과 영원한 심판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의 모형입니다. 또한 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 광야의 여정과 같은 어려운 상황 속에 살아가고 있고, 원수들의 계속적인 공격을 받고 있지만, 날마다 하나님이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심으로서 언젠가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의 땅, 영원한 복지인 천국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천국은 우리 안에 이미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처럼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수고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천국은 우리의 행위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믿는 자에게 은혜로 천국에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미 믿는 자에게 천국을 주신 것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농사가 잘 되고, 사업이 잘 된 것으로만 감사한다면 세상 사람도 할 수 있고, 심지어 개도 먹이를 주는 주인에게 꼬리를 흔들어 고마움을 표합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중요한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와 영원한 천국을 주신 은혜에 대하여 진정 감사하는 것입니다.

2. 어떻게 감사 드려야 합니까?

본문 2절 말씀에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첫째는 소산의 맏물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왜 맏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까? 이것 역시 출애굽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러 재앙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던 바로가 마지막 지방, 즉 애굽 땅의 모든 첫 태생이 죽임을 당했을 때 항복했습니다. 사랑이건, 짐승이건 첫 태생, 심지어 바로 왕의 장자까지 다 죽임을 당했을 때 오직 이스라엘 백성의 첫 태생만 온전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구원의 표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새끼가 다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출애굽의 구원 사건을 기억하고 그 사실을 시인하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이 하나님께로 말미암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임을 매년 행동으로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처럼 맏물을 드리는 것 역시 하나님의 것을 구별해서 드리는 신앙고백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의 감사는 입술로 고백하고 시인하는 감사였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받으시는 감사의 중요한 방법도 입술의 고백이요 찬미의 제사입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입술의 고백은 수송아지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었을 때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이 한 마디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말 한마디로 천 량 빚도 갚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입술의 고백의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예화)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님이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았음. 그 이후 사모님은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음,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것은 개척교회 시절에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이 원망스럽고, 하나님도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음.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이 감리교 신학대학의 윤성범 학장님을 만났음,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목사님은 자기 아내의 형편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학장님은 제안을 한 가지 했음. “노트 한 권 사다드리시고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 보세요”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음.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사모가 한 두 줄씩이나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음,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음. 진짜 감사할 사람들이 생각났기 때문임. 가장 가까운데 사는 사람부터 찾아가 ‘그동안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찾아다니면서 감사의 인사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렇게 다니는데 위의 통증이 사라지고 다리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음.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니 의사가 깜짝 놀랐음. 암 세포가 다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물론 마땅한 일이지만 감사하는 우리의 삶은 더욱 활기차고, 다른 사람도 기쁘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중심으로 감사를 고백할 것을 원하십니다. 첫 소산을 드리는 것도 행동으로 표현한 신앙고백이고 입술로 시인하는 것도 신앙고백입니다. 마음이 없이는 입술로도, 물질로도 안됩니다.

영어로 생각하다 “thimk\"라는 말과 감사하다 ”thamk\"라는 말은 어원이 같습니다. 생각하면 감사 드리고, 가족과 이웃을 생각하면서 감사를 표현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풍성해 지겠습니까?

어거스틴은 고전13:13을 주석하면서 “감히 하나님이 나에게 믿음, 소망, 사랑에다가 한 마디만 덧붙이라고 말씀하신 다면 나는 감사를 덧붙일 것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나와 내 집에 주신 복을 인하여 감사하시되 첫 열매로 , 가장귀한 마음과 정성으로 드리며, 입술로 감사하면서, 이웃과도 나누는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