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추 감사절을 어떻게 지킬까? 신16:9-12 여러분 한 주간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평안하게 살았지요? 저도 물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을 다른 주간보다 더 많이 의식하면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증거인줄 믿습니다. 신명기는 모세 오경의 왕관 보석과도 같습니다. 신명기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제시하신 말씀입니다. 그 중에서도 16장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절기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십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절기들을 지키는 것 또한 당연한 일입니다. 다음 주일은 우리 교회가 맥추감사절로 지키게 됩니다. 우리가 이 절기를 지킬 때에 왜 지켜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 지키는 자는 어떤 축복이 있는가? 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왜 지켜야 하는가? 절기를 지키는 근본 정신은 감사에 있습니다. 무엇에 대한 감사인가? 유월절은 이미 구원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맥추감사절은 첫 열매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완전한 결실을 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미국 남부 도시의 큰 정신병원의 구급차 운전기사로 일해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여전한일과로 정신병환자를 병원에 내려놓고 차를 돌리려고 하는데 병원의 위층 창문을 통하여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 좀 보시오!\" 운전기사는 병실 위를 바라보며 \"나를 부르는 겁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병실의 창문에다 상체를 내놓은 어느 사람이 대답하기를, \"그렇소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한 가지 물어 보아도 되겠소?\" 했습니다. 운전 기사가 \"무슨 질문인데요?\"라고 하자, \"당신은 건강한 정신을 가졌다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해본 일이 있소?\"라는 것입니다. 그 운전 기사는 나중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15년 동안 이 병원에서 일하며 매일 정신병 환자를 운반하면서도 나의 건강한 정신에 대하여 한 번도 감사해 본 일이 없었음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어떤 분이 태어난 아기의 손가락을 하나씩 세면서 열 손가락을 다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감사를 하지 않는 인생은, 마치 돼지가 도토리 나무 밑에서 떨어진 열매를 주워 먹으면서도 그 도토리가 어디서 온 것인지 위를 한 번도 바라보지 않는 것과 같은 인생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의 뚜렷한 특징입니다. 1-1.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맥추 감사절을 지키며 첫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는데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이 출애굽을 하여 가나안에 정착하고, 농사를 지어 첫 열매를 거둬들이기까지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열매 맺는 계절을 주셔서 선한 일을 하시고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셨다\" 고 증거 하였습니다. 우리는 금년에도 이러한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금년 봄은 90년만에 맞는 가뭄으로 얼마나 마음까지 타들어 갔습니까? 이제 장마의 비가 내려서 홍수가 나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시절을 좇아 비를 내려 주시고 열매 맺는 계절을 주시니 결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농작물을 보고, 감나무의 열매를 보면서 참으로 신기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비가 자주 내리니까 모든 작물들이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 화단에 심겨진 감나무도 그 열매가 자라는 것이 보일 것 같이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제 아내에게 했더니 저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깨닫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비를 내려 주실 때, 작물에 필요한 영양분도 함께 내려주시는가 보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러므로 결국 우리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함을 깨닫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할렐루야! 여러분! 여러분이 직장 생활을 안전히 할 수 있고,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주시고 일한 대로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인줄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건강의 복을 받았습니다. 지혜의 복을 받았습니다.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오늘까지 일할 수 있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미가서 6:14~1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속이 항상 비어 있을 것이며 너희가 아무리 많은 물건을 갖다 쌓아 놓아도 그것이 보존되지 못하고 전쟁으로 다 없어질 것이다. 너희가 씨를 뿌려도 추수하지 못하고 기름을 짜도 그 기름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며 포도주를 만들어도 그것을 마시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먹고 마시고 배부르고 심고 거둘 수 있으며 직장을 출근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주신 것을 감사하여야 합니다. 저는 요즘 노사가 서로 타협을 하지 못하고, 노동자들이 과격한 파업을 강행하는 것을 볼 때, \"참 배부르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노사가 서로 양보하면서 열심히 일을 해야할 때에 파업을 하므로 얼마나 생산 차질을 빚으며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는가? 걱정이 앞섭니다. 일자리가 없어서 일하지 못하고 하루 세끼 밥도 먹지 못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데 서로 \'네 것이 더 많고 내 것은 적다\'며 밥그릇 싸움을 하는가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자리 주심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일자리 주신 것을 감사하십시오. 건강 주심을 감사하십시오. 먹고 배부르게 하신 것을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일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시고 소득이 있게 하신 것을 감사하십시오.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1-2. 하나님이 보호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맥추절을 지키면서 감사할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방의 세계를 정복하고 그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변 나라들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여 감히 대항할 수 없도록 하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을 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사기 6장에 보면 미디안의 습격을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디안 사람들이 너무 잔인했기 때문에 산속 동굴과 안전 지대로 피신해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씨를 심어 놓으면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그 땅에 진을 치고 모든 농작물을 해치며 양과 소와 나귀를 모조리 약탈해 갔습니다. 그들은 심으나 거둘 것이 없고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농사를 열심히 한다할지라도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합니다. 논밭의 농사를 하든지 과수원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병해충을 막아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적당한 비와 햇빛을 주셔야 합니다. 태풍도 막아주셔야 합니다. 가뭄도 해갈해 주셔야 합니다. 홍수도 막아 주셔야 합니다. 질병도 막아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직장 생활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지켜 주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지난 5일 오전에는 동국제강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 8명이 헬기 추락 사고로 죽었습니다. 참으로 아까운 인재들이 참변을 당했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였을지라도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부도가 나면 월급 한푼 받지 못하고 퇴직해야 하지 않습니까?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을 때 자료를 입력했던 컴퓨터가 망가지면서 외상으로 물건을 주었던 자료가 없어져 200억원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감사는 성숙한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신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2.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 2-1.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합니다. \"칠 주를 계수 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 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하였습니다. \"하나님 여호와 앞\"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 하나님이 이곳에 임재하셔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지켜보시는 중에 절기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또한 하나님이 절기를 지키는 중에 드리는 제사를 받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2-2. 헌금은 얼마나 하여야 할까? 여러분은 하나님께 감사절을 지킬 때 얼마나 드릴까? 생각을 하고 드리지요? 그런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작년에는 얼마 드렸으니 금년에는 얼마 드려야 하겠다 하고 습관적으로 드리지 않습니까? 아니면 아무게 집사는 얼마나 드리는가? 나도 그만큼은 드려야 되지 않을까? 하면서 드리지는 않습니까? 실제로 시내의 어느 교회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분들이 헌금을 드리고 예배가 끝나서 헌금 집계가 나오면 그 중에서 제일 많이 한분의 헌금에다가 1,2만원 더해서 자기가 제일 많이 헌금했다고 자랑하며 생색을 내는 분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절기를 지킬 때에 얼마나 하나님께 드리면 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정도에 따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누구나 일률적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액수를 가지고 많이 했다 적게 했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감사절에 어느 정도의 헌금을 하는 것이 적정 헌금일까? 그것은 힘껏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두 렙돈 즉 오늘날 라면 한 개 값 정도의 헌금을 한 여인을 보시고 그 당시에 부자들이 풍족한 중에서 많이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인정하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기의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4장에 보면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 값은 300데나리온이나 되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인데 오늘날 말하면 하루 품삯을 49만원씩만 계산한다고 하여도 1200여 만원이 되는 것으로 약 10개월의 품삯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을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리라\" 하셨습니다. 2-3. 자원하는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헌금의 원리는 자원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본문 10절 끝에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모세가 성막을 지을 때에 백성이 자원하여 예물을 드려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습니다. 신약에서의 가르침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하셨습니다. 3. 감사하며 드리는 자에게는 어떤 축복이 따르는가? 저는 한 예화를 들려 드림으로 말씀을 마무리하렵니다. 군산 비행장 옆 옥봉에 가면 비행장 쓰레기를 줍는 거지들이 사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한 가난한 과부는 땅굴 속에 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십일조를 바치며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며 기쁨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은 돈을 제단에 바쳤습니다. 그 돈은 거지 집에서 쓰레기를 주어 조그마한 집을 마련하기 위한 돈이었습니다. 내 집을 짓기 전에 하나님의 집을 먼저 지어야 한다 생각하고 옥봉 교회에 바쳤습니다. 목사님은 그 정성에 눈물을 흘리고 축복하였습니다. 그 날 밤 비행장 군목이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의 광채가 비치는 산골 마을에 예수님이 걸어가시더니 어느 기름 종이가 덮인 움막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참 신기하고 생생한 꿈이었습니다. 다음 날 군목은 통역관의 인도로 꿈에 보았던 그 집을 찾아내었습니다. 눈물겨운 가난한 거지 집에서 흘러나오는 감사의 기도와 찬송 소리를 들었습니다. 군목은 감격 속에서 그 가난한 과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 군목은 예수님이 찾아간 가난한 과부 집에 들어가 기도해 드렸고 꿈에 본 내용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 후 군목은 그 과부를 식당에 취직시켰고 아들은 비행장 경비로 채용했습니다. 군목이 본국에 돌아가 그 설교를 했더니 큰 농장을 경영하는 교인이 아들이 없었는데 그 모자를 데려다가 함께 살게 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군산에 고아들에게 장학금을 보내면서 사랑의 손길을 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궁금해서 군산 옥봉교회에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현재 그 교회는 최두은 목사님이 시무하고 있는데 그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