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추감사주일 신16:9-12 칠 주를 계수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오늘이 맥추감사주일입니다. 글자 그대로 하면 보리 수확을 감사하는 주일이라는 뜻이니까 도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생소한 절기입니다. 산업 사회가 발달한 요즘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 줄어들어서 추수감사절만 해도 예전에 비하면 상당히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맥추감사절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아닌게아니라 맥추감사절은 다른 절기에 비해서 조금 박대를 받는 느낌이 있습니다. 부활절이나 성탄절은 물론이고 추수감사절보다도 덜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상당히 많은 절기가 나옵니다. 가장 기본적인 절기인 안식일부터 시작해서 월삭, 유월절, 무교절, 맥추절, 나팔절, 부림절, 수전절, 수장절, 속죄일 등이 나오는데, 모든 절기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관계 있습니다. 이중에서도 특히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을 가리켜서 이스라엘의 3대 절기라고 합니다. 다른 절기는 각자 자기 처소에서 지켜도 무방하지만 3대 절기만큼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모여서 지켜야 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유월절의 \'유월\'은 넘어갔다는 뜻이니까 유월절은 넘어간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출애굽 직전에 하나님께서 죽음의 천사를 보내어 애굽의 모든 장자를 멸하실 때,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집은 죽음의 천사가 유월(passover)했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받은 구원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에 이어서 칠 일 동안을 무교절로 지키는데 무교절에는 무교병(누룩 없는 떡)을 먹습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흔히 죄를 상징하기 때문에 무교병을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면 앞으로는 죄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상징화하는 것입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날짜가 연이어 있기도 하고 또 절기를 지키면서 먹는 음식도 같기 때문에 구별하여 말할 때도 있지만 같은 절기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맥추절은 다른 말로 칠칠절, 오순절, 초실절이라고도 합니다. 칠 주를 일곱 번 계수한다고 하여 칠칠절, 칠 주를 일곱 번 계수한 다음 날부터 절기를 지킨다고 해서 오순절(五旬節 - 旬은 열흘을 얘기합니다)이라고도 하고,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가장 먼저 수확하는 것이 보리이기 때문에 맥추절, 첫 수확을 드린다는 뜻으로 초실절이라고도 합니다. 칠칠절, 오순절, 맥추절, 초실절 등 이름은 다양합니다만 전부 같은 날입니다. 그리고 수장절은 지금의 추수감사절입니다. 한 해의 모든 수확물을 창고에 모아들인 다음에 - 말 그대로 수장(收藏)한 다음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때는 모든 백성들이 초막을 짓고 생활하는 것으로 광야 생활을 기념했기 때문에 초막절 또는 장막절이라고도 합니다. 수장절, 초막절, 장막절이 전부 같은 말입니다. 유월절과 맥추절, 수장절이 모두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절기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실제 삶의 모습 속에서 형상화하여 지키는 것입니다. 남의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흔히 \'집 없는 설움\'이라는 말을 합니다. 요즘은 다세대 주택이니 연립 주택이니 해서 세를 살아도 독립된 공간에서 살기 때문에 주인집 눈치를 볼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남의 집살이를 하는 것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안채에는 주인이 살고 사랑채를 세를 얻어서 씁니다. 화장실이 집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당 구석에 있습니다. 그러면 마당과 화장실, 출입문을 주인집과 같이 써야 합니다. 화장실 청소는 도맡아서 해야 하고 애가 울어도 주인집 눈치를 보아야 합니다. 어쩌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출입문 여닫는 소리가 크게 날까봐 조심해야 합니다. 혹시 주인집과 세 들어 사는 집에 비슷한 또래의 애가 있으면 세 들어 사는 집의 애는 기를 펴지 못합니다. 심지어 어린애가 있는 집은 시끄럽다고 하여, 세를 얻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가리켜서 집 없는 설움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자기 집이 생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거기서는 뭘 해도 자유입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로 지내다가 홍해를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은 집 없는 설움을 받으며 살다가 자기 집을 마련한 정도가 아닙니다. 애굽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자유가 생긴 것도 물론 신나는 일입니다만 성경은 가나안을 가리켜서 \'자유가 있는 땅\'이라고 하지 않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합니다. 심고 가꾼 만큼 풍성한 수확이 약속된 땅입니다. 애굽의 노예로 있을 적에는 아무리 많이 심고 거두어도 전부 애굽 사람들 몫이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했다고 해서 노력한 만큼 거둘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애굽 사람들 좋은 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서 무엇을 심고 거두든지 그것이 자기들에게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구원을 기념하는 절기를 농사짓는 것에 맞추어 얘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봐야 아무런 낙이 없는 곳에 살다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에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는 진리입니다. 그 옛날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진리였는데 지금은 진리가 아니고, 3,500년 전에는 진리였는데 지금은 진리가 아니라면 곤란합니다. 그러면 맥추절도 그렇습니다. 맥추절이라는 얘기는 보리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라는 뜻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보리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절기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신 이유는 후대에 보리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간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때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가서 농사를 지은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것으로 생활했으면 절기를 그렇게 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그랬으면 맥추절이나 초실절, 수장절 대신 해삼, 미역, 전복을 많이 따는 절기, 꽁치가 많이 잡히는 절기, 명태로 한 몫 보는 절기, 오징어가 대목인 절기 등으로 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꾸만 추수감사절이나 맥추감사절의 의미를 잊어버리는 것은 거기에 담겨 있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수확한 농작물에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관심이 있으신 분입니다. 맥추절을 가리켜서 초실절이라고도 한다고 했습니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라는 뜻인데,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가장 먼저 수확하는 것이 보리이기 때문에 맥추절이나 초실절이나 같은 뜻으로 쓰인다고 했습니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있어야 합니까? 뭔가 수확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뭔가 수확한 것이 있어야 그 중에 첫 번째 것을 드릴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또 뭔가 수확한 것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저절로 수확할 수는 없습니다. 수확을 하기 위해서는 심고 가꾸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유월절이 있어야 합니다. 애굽에서 나오지 않으면 제 아무리 심고 가꿔서 거두어도 그것은 첫 열매로서의 의미가 없습니다. 심고 가꿔서 거두기 이전에 심고 가꿔서 거둬봐야 자기 것이 될 수 없는 곳에서 나오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맥추절 앞에는 유월절이 있어야 합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나온 것을 기념하는 절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사건입니다. 실제로 교회에서도 \'구원 확신\'이나 \'구원 얻은 감격\'을 상당히 자주 얘기합니다. 하지만 홍해를 건넌 사건이 아무리 크고 중요해도 홍해를 건넜다는 그 자체만으로는 유월절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유월절을 지키려면 무교병이 있어야 하는데, 무교병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농사를 지어서 얻은 곡식이 있어야 그것으로 무교병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언제 지켰습니까? 애굽에서 나오기 전날 유월절을 제정했는데 광야 40년 동안 꼭 한 번 지켰고, 가나안에 들어간 다음에야 비로소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광야에서 지킨 한 번은 이스라엘이 십계명 돌판을 받을 적에 시내산 기슭에서 11개월 동안 머물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지킨 것입니다. 유월절은 아무나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손에 곡식이 있어야 유월절을 지킬 수 있습니다. 맥추절도 그렇습니다. 홍해를 건넌 것만으로 저절로 맥추절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 교회만 그런지 다른 나라 교회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나라 교회는 \'예수 믿고 구원 얻는 것\'을 상당히 강조합니다. 물론 당연히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 믿고 구원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원 얻은 다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을 얻기는 얻었는데 구원 얻은 사람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없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로 말씀드리면 홍해를 건너서 가나안에 갔는데, 가나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나안은 물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교회에는 평강이 있다 그러더라\" \"교회에는 안식이 있다 그러더라\"라고 알고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실제로 교회에 평강이 있고, 안식이 있습니까? 교회 밖에서는 그렇게 말하는데 교회 안에 들어와 보면 평강이나 안식 대신 훨씬 더 골치 아프고 복잡한 일만 있지 않습니까? 평강이나 안식은 교회라는 건물 안에 들어와 있으면 저절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자기가 누리는 것입니다. 아무나 와서 선착순으로 집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곡식을 수확하는 것은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뭔가 심고 가꾼 것이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맥추절을 지키려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에 들어온 다음에 자기가 직접 씨를 뿌리고 가꾼 것이 있어야 합니다. 홍해를 건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유월절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유월절을 지켰다고 해서 저절로 맥추절로 연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은 우리가 바로 그렇습니다. 홍해를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와 있으면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기가 심고 가꾸어야 맥추절을 지킬 수 있는 것처럼 구원 얻은 백성답게 살아야 하는 우리 책임이 하나님의 은혜로 면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가 이른 새벽에 밭에 나가 날이 저물 때까지 농사를 짓는 것처럼 우리 신앙을 돌봐야 합니다. 비가 안 오면 비가 안 온다고 걱정하고, 비가 많이 오면 비가 많이 온다고 걱정하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분다고 걱정하고, 비료값이 오르면 비료값이 오른다고 걱정하는 것처럼 늘 자기 신앙 때문에 노심초사해야 합니다. 홍해를 건넌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서 열심히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상한 오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에는 모두 공감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에게는 신자답게 살지 못했다는 자책이 있게 마련입니다. 혹시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면 그것이 오히려 불신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늘 면목이 없고 송구스러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하나님 앞에 송구스러워 하고 자기의 어떤 모습 때문에 면목없어 하는지, 그 내용이 조금 이상합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갖고 있는 자책은 시간 내서 성경 읽지 못했고 시간 내서 기도하지 못했다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중에서 적어도 한 시간 정도는 구별해서 종교적인 티를 내야 하는데 그것을 못했다는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 읽으면 저절로 신자다운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린 다음에 열심히 기도하면 자기가 직접 더위와 싸우면서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는 노력을 안 해도 저절로 풍성하게 수확되리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은 격입니다. 씨를 뿌렸으면 잘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를 할 게 아니라 잡초를 뽑고 비료를 줘야 합니다. 잡초를 뽑고 비료를 줘야 하는 자기 수고가 기도로 대신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좋은 신앙은 기도를 하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연습해서 몸에 익혀야 합니다. 이 부분을 제발 오해하지 마십시오. 물론 기도하고 성경 읽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최소한의 기도도 하지 않고, 최소한의 성경도 읽지 않기 때문에 기도와 성경 읽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기도했느냐, 얼마나 성경 읽었느냐를 보시지 않고 얼마나 하나님의 사람다우냐를 보십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식사하기 전에 기도를 합니다. 그때의 기도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밥 먹기 전에 기도하면 그 밥을 먹고 하는 모든 일은 저절로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이 되는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밥 먹기 전에 기도하고, 그 밥 먹고 얻은 힘으로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이 책임이 아니라 신자답게 사는 것이 책임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4:22-24) 성경은 우리에게 새사람을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새사람을 입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고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5-29) 이것이 새사람을 입는 방법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새사람을 입으라\'고 하면 새사람을 입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야 하는 줄 압니다. 하지만 새사람을 입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 중에 종교적인 형태를 취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다 이 세상을 실제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답게 사는 모습은 열심히 기도하면 저절로 공중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실제로 그렇게 살아서 몸에 익혀야 합니다. 신앙 생활과 종교 행위는 엄연히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종교적인 형태를 갖춘 행위를 하는 것도 역시 신앙 생활의 한 단면일 수는 있지만 그것 자체가 책임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과 중에서 어느 한 부분을 종교적인 형태로 채워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모습, 하나님과 연결된 모습이 있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첫 번째 것을 드리는 것이 맥추절입니다. 이 맥추절은 애굽에서는 지킬 수 없는 절기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애굽에 없는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전부 가나안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마땅히 가나안의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홍해를 건널 때 얼마나 감격했는지, 그때 어느 만큼 목청껏 찬양했는지 하는 것은 이제 무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고 있는 첫 번째 모습이 과연 어떤 것입니까? 그것을 드려야 합니다. 자기가 심고 거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고백으로 자기가 거둔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혹시 자기의 삶 속에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것이 섞여 있다면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맥추절을 지키기에는 부적합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항상 우리를 속입니다. 성실하게 살아도 보상이 없을 수 있고, 능력이 있어도 능력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죽도록 일해서 벽돌을 구워놓으면 애굽 군인들이 홀랑 다 빼앗아가버렸던 것처럼 세상에서는 지금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에서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자기가 심고 가꾼 만큼 자기가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제 그 첫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보내면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다음에 과연 무엇을 심고 가꾸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것이 열매로 맺혔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각자의 신앙을 확인하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특별히 오늘 저희에게 맥추감사주일을 허락하셨사옵나이다. 아버지께옵서 친히 저희를 사랑하셔서 저희를 천국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 세상을 살아가되, 천국 백성으로 살게 하신 줄 밝히 알고 있사옵나이다. 바라옵기는 아버지께서 친히 저희에게 베푸신 뜻, 저희들을 통하여 온전히 다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이 세상에 속하여 허탄한 것으로 저희의 자랑과 힘을 삼던 어리석은 모습에서 이제 그만 돌이킬 수 있는 지혜와 결단력을 주옵소서. 아버지께서 친히 저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셨사오매 지금 저희가 서있는 곳이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줄 알아서 저희들이 살아가는 모든 날마다 심고 가꾸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게 하옵소서. 혹시 저희 중에 아무것도 심거나 가꾼 것 없이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미련한 모습이 있지 않게 하옵시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아버지의 은혜를 날마다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천국 백성이 된 지금에도 이 세상에 속한 것으로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에서 이제 그만 일어날 수 있게 하옵시며 이 세상에 없는 것이 오직 우리에게만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 인하여 정녕 그 첫 열매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은총 더하여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