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
천국과 지옥
삼상15:1-11.막9:43-38
I. 시작하는 말
어느 분이 호주를 여행하다가 한 목장을 방문했답니다. 그 넓은 목장 안을 구경하다가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됐습니다. 한 목동이 양 떼에 둘려 싸여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목동 옆의 건초더미에는 다리가 부러진 양 한 마리가 누워 있습니다. 그 양이 참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목동에게 어쩌다 양의 다리가 부러졌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목동이 하는 말인 즉 ‘내가 부러뜨렸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아니 일부러 부러뜨렸단 말입니까?’ ‘네, 맞습니다. 일부러 부러뜨렸습니다.’ ‘왜죠?’ ‘네, 이 놈이 내 양 떼들 가운데 가장 속을 썩이는 놈입니다
. 참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내가 인도해도 따라오지도 않고, 저만 그러는 게 아니라 다른 양들까지도 목동인 내 말을 듣지 않게 합니다. 자칫하면 이 양은 사나운 짐승의 바이 되고 맙니다. 다른 대책이 없었습니다. 저는 오래 동안 양을 쳤기 때문에 이런 놈들을 다루는 법을 압니다. 그래서 다리를 부러뜨렸습니다. 다리를 부러뜨리고 다음 날 먹이를 주려고 갔더니 이 놈이 화가 잔득 나서 날 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2-3일 동안 혼자 누워 있게 내버려 뒀다가 오늘 찾아왔습니다. 보세요, 아주 순해졌잖습니까? 이젠 잘 따라 다닐 겁니다.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손이나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손이나 발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네 눈이 너로 죄를 짓게 하거든 뽑아내라고 하셨습니다.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지옥은 끔찍한 곳입니다. 아주 무서운 곳입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는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소망은 천국입니다. 우리의 꿈은 천국에서 주님과 영원히 사는 겁니다. 지금 천성을 향해 달려갑니다. 내 손이나 발이 나로 범죄케 하면 단회 그 손과 발을 찍어내고서라도 천국에 가기를 원합니다.
II. 천국과 지옥
오늘은 천국과 지옥 얘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천국과 지옥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여러분, 우리 기독교는 천국과 지옥의 실존을 믿는 종교입니다. 천국의 존재를 믿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누가 가봤냐? 그럽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누가 증명했느냐? 증명되지 못했으니까 믿을 수 없다? 제가 늘 강조하는 말씀입니다만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겁니다. 천국이 있느냐 지옥이 있느냐? 이건 유치한 질문입니다. 성경이 분명히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증명은 무슨 증명입니까? 이 성경이 증명인 줄 믿습니다. 성경이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말씀하시니까 우리는 반드시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믿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 얘기가 나옵니다. 부자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다음에야 생전에 믿지 못한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애걸했습니다. 나사로를 다시 이 세상에 보내서 자기 형제들에게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알려줘서 형제들이 지옥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여러분, 천국은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아멘 하는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줄 믿습니다!
사실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가장 좋고 아름다운 것을 볼 때에는 자기들도 모르게 ‘야, 천국 같다!’며 감탄합니다. 그리고 끔찍한 상황에서는 ‘지옥 같다’며 찡그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본능이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위급할 때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하지 않습니까? 본능적으로 외칩니다. 본능이 하나님이 계심을 증명하는 겁니다.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하나님으로 충만한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희락입니다. 샬롬입니다. 하나님이 충만하신 곳은 바로 사랑과 희락과 평화가 가득한 곳 아닙니까? 천국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천국의 상태를 우리에게 보여 줬습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어린아이가 독사의 구멍에 손을 넣고 장난 하리라’. 여러분, 거기에는 미움이 없습니다. 슬픔이 없습니다. 다툼이 없습니다. 천국은 오직 사랑과 희락과 화평뿐 인 줄 믿습니다!
그럼 지옥은 어떨까요? 그리스 신화에 ‘탄타로스’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르기아의 왕이었던 탄타로스가 지옥에 끌려갔습니다. 지옥도 에덴동산처럼 맑은 물이 흐르고 먹음직스러운 열매들이 있습니다. ‘야 지옥이 이런 곳이라면 무슨 걱정이 있느냐’며 좋아했습니다. 갑자기 목이 말랐습니다. 흐르는 맑은 물을 마시려고 허리를 굽혔더니 금새 땅 밑으로 스며들고 말았습니다. 허리를 펴면 물이 흐르고 허리를 굽히면 물이 사라집니다. 배가 고파서 과실을 따먹으려고 손을 뻗으면 나무 가지가 바람에 날려서 높이 올라가고 맙니다. 결국 탄타로스는 물과 과실을 눈앞에 보면서도 영영히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우리 성경은 지옥을 유황불이 활활 타오르는 불 못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뜨거워서 견딜 수 없습니다. 영원히 뜨거운 고통을 겪습니다.
자, 여러분 천국입니까? 지옥입니까? 천국이 있는 것을 믿는 우리에게서 우리 인생의 최고 가치가 뭡니까? 제일 소중한 것이 뭡니까? 천국 아닙니까? 요즘 우리 대학가에서 나도는 은어 가운
데 천국과 지옥의 전화번호 은어가 있습니다. 천국 전화번호 알려드릴까요? 66국에 3927번입니다. 지옥은 11국에 1111번이고요. 천국이 왜 66국으로 시작되느냐 하면 성경이 66국으로 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3927은 뭡니까? 구약 39권 신약 27권입니다. 결국 천국은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 연결됩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으로 천국 간다는 말 아닙니까? 지옥이 왜 온통 11입니까? 국번도 11, 전화번호도 1111-----, 1은 일등, 첫 째, 최고라는 뜻입니다. 언제나 자기가 최곱니다. 자기중심, 자기 교만에 빠진 자들이 가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래도 지옥 전화번호가 외우기 쉽잖습니까? 그래서 지옥을 예약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지옥 가기는 참 쉽습니다. 안 믿으면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저절로 지옥으로 갑니다. 여러분들은 다 예수님을 잘 믿는 분들입니다. 천국이 이미 여러분들에게 예약돼 있는 줄 믿습니다!
이왕 천국 전화 번호 얘기가 나왔으니까 하나님의 핫트 라인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급할 때 이 핫트 라인 수화기를 드시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집니다. 하나님의 핫트라인은 두 대입니다. 오른쪽에 한 대 왼쪽에 또 한 대, 오른쪽 핫트라인 번화는 24국에 4110번입니다. 급할 때 하나님께 SOS를 치세요.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한번 돌려 볼까요? 24국에 4110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아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아멘이죠? 왼쪽 핫트라인은 24국에 4302번입니다.
돌려보겠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넌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이래서 예수 믿는 맛이 나는 거 아닙니까? 이래서 믿음에서 신바람이 일어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덮어버리니까 신바람이 나는 겁니다. 하나님께 핫트라인으로 SOS를 쳤더니 하나님의 음성이 나를 덮습니다.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내가 반드시 너를 지켜주리라!
III. 올바른 가치관
신앙이 뭐냐? 믿는 것이 신앙인데 무엇을 믿느냐? 최고를 믿는 것입니다. 최고는 가장 소중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대상,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최고라고 믿는 것보다 더 최고, 더 소중한 것이 있다면 우리 믿음이 잘못 된 겁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최고입니다. 천국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천국으로 가는 길인 예수님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가장 소종하고 가장 귀중한 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없애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가복음 9장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라는 겁니다. 여러분, 멀쩡한 몸으로 지옥에 가는 것보다야 까짓 것 다리병신, 팔 병신, 눈 병신일지라도 천국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컽이 멀쩡하면 뭘합니까? 속이 지옥에 던져질 정도로 썩고 골았는데----. 저는 여름에 참외를 무척 좋아합니다. 언제인가 집 사람하고 참외 밭에 가서 몽땅 사온 적이 있습니다. 집에 오기가 무섭게 입맛을 다지면서 깎았는데, 속이 골았습니다. 다른 것을 깎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겉은 멀쩡했는데, 밭에서 금방 딴 싱싱한 것인데 속은 썩었습니다. 몽땅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겉이 멀쩡해도 우리 속이 썩으면 하나님은 가차 없이 버립니다. 그러나 겉이 볼품이 없고, 비록 병신이라고 할지라도 속이 싱싱하면, 속이 알차면 하나님은 품에 곡 껴안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절대적인 목적은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이 곧 천국 아닙니까?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영원한 생명인 하나님 품에 안기는데 이 손이 방해가 된다면 가차 없이 잘라버려야죠? 눈이 방해가 된다면 빼버려야죠? 차라리 한 쪽 다리가 없더라도 천국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 신체 가운데서 왜 손과 발과 눈을 말씀하셨습니까? 눈과 발과 손이 가장 민감한 감각기관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직접 지령을 받는 기관입니다. 마음에 탐욕이 생기면 손으로 움켜쥡니다. 마음이 병들면 악한 자리로 달려갑니다. 요, 눈이 문제 아닙니까? 탐스럽게 보이고 먹음직스럽게 보일 때 범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결단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와가 선악과를 봤을 때 얼마나 먹음직스러웠고 탐스러웠던지, 냉큼 달려가 손을 내밀어 따먹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롯에게 네가 먼저 좋은 당을 골라가지라고 했습니다. ‘네가 우하면 나는 죄하고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참으로 기름진 땅이었습니다. 에덴동산 같았습니다. 냉큼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죄악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그 눈이 탐욕스러워져서 사탄의 데모 버전에 걸려들었습니다. 롯의 눈이 탐욕스럽지만 않았더라면 땅만 보고 달려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여러분, 절대적인 가치,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서는 단호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서는 버릴 것은 버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손과 발을 잘라낼 수도 있잖습니까? 손과 발, 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 아닙니까? 사는 게 중요합니다. 천국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영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흠과 티가 없는 분 아닙니까? 그 분 품에 안기는데 어찌 부정한 몸으로 안길 수 있습니까? 손이 더러우면 손을 잘라내야 하고 발이 더러우면 발을 잘라내야 하고 눈이 병들었으면 눈을 뽑아내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가지고서는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없습니다. 잘라내야 합니다. 죄의 근본 뿌리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줄 믿습니다!
어느 유명한 부흥사가 막내아들 운동회에 참석하게 됐답니다. 동네 유지라고 교장 선생님이 자기 옆 자리에 앉혔습니다. 마침 200미터 달리기가 시작됐습니다. 그 목사님 아들도 출발점에 섰습니다. 땅!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은 힘껏 뛰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 아들은 8명 가운데 4등으로 뛰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등수 안에 들어야 하는데----, 목사님은 체면불구하고 응원을 했습니다. ‘막내야, 좀 더, 좀 더!’ 어린 선수들이 본부석 앞을 지나갈 무렵에 자기 아들 바로 앞에서 3등으로 달리던 아이가 그만 넘어졌습니다. 이럴 때 목사님이라면 어떻게 처신해야 했겠습니까? 그 목사님은 3등으로 달리던 아이가 넘어지는 순간 그 목사님은 벌떡 일어서면서 ‘할렐루야!’ 두 팔을 높이 처 들더랍니다. 아마 그 목사님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그 두 팔을 잘라내고 그 입을 꿰매야 할 겁니다.
오늘 읽은 구약 사무엘 상 15장에서는 사울 왕이 하나님 말씀을 제쳐 놓고 자기 생각대로 했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신앙인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야 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에 감동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말렉 성을 치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다 진멸하라고 하셨을 때 ‘네---’ 해 놓고서는 제 생각대로 했습니다. 보잘 것 없는 것들, 중요하지 않은 것, 별 것 아닌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다 진멸했습니다. 그러나 살찐 양과 소는 남겼습니다. 하나님 말씀보다도 자기 생각이 더 중요했습니다. 절대적인 가치관이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절대적 가치관 즉 가장 귀중하고 소중한 것은 오직 하나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스라엘의 생명이었습니다. 생명----.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그 존재 목적을 자기 생각, 자기 뜻으로 바꿔버리고 말았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네, 네’ 순종했지만 그 속에는 오직 자기 생각뿐이었습니다. 겉은 멀쩡해 보였는데 속은 썩었습니다. 문제는 속 아닙니까? 속이 멀쩡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속을 훤히 보시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버릴 수밖에 없잖습니까?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먼저냐? 무엇이 우선이냐?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결단할 때 우리의 속이 성령 충만으로 알차게 영글 줄 믿습니다!
IV. 맺는 말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부르시고 택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러분들의 속을 보시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혹시나 겉은 멀쩡한데 속이 썩지는 않았습니까? 여러분 속이 멀쩡해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겉을 보지 않습니다. 오직 속만 보십니다. 속이 정결해야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가 무슨 능력으로 내 속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죄가 더해지는 것 같고, 더 더러워지는 것 같아서 두렵고 떨립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계시는 이 성전에 들어설 때마다 우리 속에 잇는 더러운 것들이 자꾸 자꾸 씻겨지고 있는 줄 믿습니다.
어떤 여자 집사님이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이제부터는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하지만 작심삼일입니다. 어느 새 죄 속에 다시 끌려들어가고 맙니다. 뻔히 죄인 줄 알면서도 질질 끌려가고, 어느 땐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죄 속에서 헤매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택함 받지 못했나보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사실 대로 말씀드리고 ‘저는 아무래도 구제 불능인 모양입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꾸 죄를 짓습니다’ 목사님께서 교회 창고에 가서 먼지가 뽀얗게 서려있는 낡은 소쿠리 하나를 가지고 오시더니 ‘집사님 가서 이 소쿠리를 물에 담갔다가 물을 담아가지고 오십시요’ 집사님이 시키시는 대로 순종했습니다. 물에 담갔다가 그리고 물을 담아오려고 해봤습니다. 소쿠리에 물이 담겨지겠습니까? 그냥 빈 소쿠리를 들고 목사님께 왔습니다. ‘목사님 제겐 믿음이 없는 모양입니다. 이 소쿠리에서 물이 쏙 빠지듯이 제 믿음도 그렇게 빠져나가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웃음을 띠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집사님이 이 소쿠리에 물을 담지는 못했지만 소쿠리에 묻어 있던 먼지들은 다 씩졌잖습니까? 우리 마음은 이렇게 씻겨지면서 주님 품 안으로 다가가고 있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가 없어서 천국에 가는 게 아닙니다. 죄는 있으나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 때문에 천국에 가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 죄가 덮여지고 씻겨져서 깨끗하고 의롭다고 인정되는 줄 믿습니다. 손이 범죄케 하면 찍어내겠다는 결단을 할 때 내 속에 쌓였던 죄악이 씻겨져 깨끗해지고 정결해지는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