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마피아

천국의 마피아
삿21:1-12





여러분, 이 노래를 기억하십니까? 그 유명한 영화 \'대부\'의 주제가이지요. 마피아라고 하는 대규모 폭력조직을 주제로 한 영화 \'The Godfather\' 말입니다.

사실 마피아의 어원은 원래 \'아름다움\'이나 \'자랑\'을 뜻하는 의 말입니다만, 범죄세계에서는 범죄조직 중에서 시칠리아적인 것을 마피아라고 말하며, 모든 범죄조직의 별명이나 대명사로 해석되기도 하는 그 배경은 대개 이렇습니다.

마피아는 원래 19세기의 을 주름잡던 산적(좋게 말하면 반정부 비밀결사)조직이었습니다. 그 조직의 일부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뉴욕이나 시카고와 같은 대도시에서 범죄조직을 만들었으며, 1920년대의 (禁酒法)으로 자금원(資金源)이 생기자 급속히 세력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1930년대에 들어서자 마피아 내부에도 질서가 생겼으며, 합의제(合議制)인 위원회가 조직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재원(財源)은 매음 도박 마약 사금융(私金融) 등이지만, 노동조합과 회사와도 손을 잡고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이익을 올리고 있으며, 최근에 와서는 \'범죄 복합기업\'이라고 불리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 아름다움의 자랑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그들의 이름과 행위가 은밀하게 미화되어 사회의 복합기업으로 불릴지라도 여러분, 마피아가 뭡니까? 깡패집단입니다. 요즘 흔한 말로 \'조직폭력배\'입니다. 똑 같이 싸우는 집단이지만 군대와 마피아는 전혀 다릅니다. 군대는 나라를 위하고 마피아는 자신들만을 위합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적국과 손을 잡을 수도 있고 제 나라를 팔아 버릴 수도 있는 것이 그들 집단입니다. 그러나 군대는 아닙니다. 그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제 목숨까지 걸고 싸우며 충성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나라의 군대라 할 수 없습니다.

여기 야곱의 막내아들이요, 요셉의 동생인 베냐민이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는 그의 눈에 맏형 르우벤과 시므온, 그리고 레위가 들어옵니다. 그들은 모두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르우벤은 낮게 한숨을 쉬고 있고, 시므온과 레위는 아까부터 뭔가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언제나 모든 생각과 행동이 형제들 중에 제일 앞서가며 판단력이 예리한 넷째 형 유다가 앉아 있습니다. 그의 얼굴이 오늘처럼 빛나 보인 적은 없었다고 베냐민은 생각하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가 아버지 야곱 앞에 다가갔을 때 바로 윗 형 요셉의 등이 보였습니다. 야곱에게서 일어나 뒷걸음질하고 있던 요셉과 잠시 시선을 교환한 베냐민은 중얼거렸습니다 \"형이 큰 축복을 받는 것은 당연해. 아버지가 형을 얼마나 아끼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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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베냐민은 아버지 야곱 앞에 무릎을 꿇고 아비를 잠시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이 요셉 못지않게 사랑하던 12 아들 중 막내둥이입니다. 야곱은 눈을 감고 있었고 장막의 어둠 속에 얼굴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베냐민이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습니다. 지난 세월들이 짧은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다가 그 생각이 막 어머니 라헬의 무덤가에 다다른 순간, 그는 머리에 와 닿는 가볍고 힘없는 아버지 야곱의 손 맛을 느끼고 \'화들짝\' 현실로 되돌아 왔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아버지 야곱의 낮고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창 49:27).\" 이 말과 동시에 베냐민은 잠시 감았던 눈을 \'확\' 떴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48장에 기록된 12 아들들을 향한 야곱의 마지막 축복에 나오는 구절을 장면화해 본 것입니다. 아시는 대로 야곱은 죽기 전에 자신의 12 아들을 축복합니다. 창세기 49장 28절은 그 축복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아비가...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즉, 베냐민은 물론 각각 모두 자신들에게 합당한 그 \"분량대로\"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분량대로...\" 이 말씀은 아주 묘한 뉘앙스를 갖는 어휘입니다. 축복이라니까 무조건 좋게 잘 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에게 합당할 만큼, 그 그릇대로 주어지는 \'축복의 정도\', 곧 \'분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원체 그릇이 없는 사람은 분량이랄 것도 없으니 그의 삶은 항상 피폐할 것이요, 그것이 그 인생에 주어진 그 분량대로의 분복, \'그의 복이 그것 밖에 없다\' 그 말입니다.

저 자신도 마찬 가지이지만 제가 목회를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주욱\' 관찰해보니 그저 그 분량대로, 그의 인격, 그의 신앙인격대로 누리는 분복을 보았습니다.

물론 특별한 하나님의 간섭으로 원인 모를 일들을 겪는 수도 있지만 대개는 그 생각하는 것이나, 그 마음 쓰는 것이나, 그 말하는 것이나, 그 행동하는 것을 보면 \'음 잘 살겠다!\' \'음, 그럴 수밖에 없지!\' 판단이 스는 것입니다. 그 \"분량대로...\"

결국 창세기에서 야곱을 통해 베냐민 지파에 주어진 이 예언 자체는 단순히 축복의 예언이라거나, 아니면 저주의 예언이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 지파가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하며, 어떻게 하나님의 언약을 유념하며, 한 작은 하나님의 나라로서, 한 작은 교회로서 살아가느냐 하는 것으로 그 성취가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예언이 축복이 되느냐 저주가 되느냐 하는 것, 그 축복의 정도, 분복은 베냐민 지파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 2 -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훌륭한 군대로서,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저 악한 세상과 그 배후인 마귀의 세력을 격파하는 하나님 나라의 충성된 맹장이 될 수도 있고, 되레 하나님의 나라를 물어뜯는 추악한 맹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구약의 역사 속에서의 베냐민은 후자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군사, 그러니까 천국의 군사로서가 아니라 천국의 마피아로서 살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구약의 성경이 바로 사사기 입니다. 그래서 잘 살펴보면 사사기는 베냐민 지파의 실패로 시작해서 베냐민 지파의 실패로 끝나는 것과 함께 유다 지파의 지속적인 약진과 리더로서의 부각이 그 주제가 됩니다.

오늘 사사기 본문의 마지막 여운도 그렇습니다. 한 마리의 이리가 있습니다. 그 의 이름은 베냐민 지파입니다. 그 이리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제 동족들을 덮칩니다. 이 사건의 전말은 사사기 19장에서부터 나타납니다. 한 레위인이 첩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남편에게서 만족을 못했는지, 아니면 뭔가 마음에 마땅치 않았는지 나가서 행음하고 그만 친정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친히 그녀의 친정으로 찾아가서 그녀를 데려오려 합니다. 그를 반가히 맞은 첩장인(성경의 표현!)은 여러 가지 핑계로 그를 수 일 간 더 머물도록 간청합니다. 수일 후 더 이상 머물기를 거절한 그는 해질 녂에 종과 첩과 함께 길을 떠납니다. 결국 해는 지고 어두워져서 유숙할 곳을 찾던 그는 종이 이방인의 집에라도 머물고자 권고했을 때, 차라리 동족들이 있는 기브아에서 유숙할 것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에게 머물 곳을 주지 않는 삭막한 중에 한 노인이 그들을 보고 동정을 베풀어 유숙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밤에 기브아에 살던 베냐민 지파 중에 어떤 불량배(비류)들이 그의 집으로 몰려와서 행패를 부리며 그 레위인에게 동성애를 행하려 합니다. 이를 만류하다 결국 첩을 그들에게 넘겨주게 되며, 그들은 그녀를 밤새도록 괴롭히고, 동틀 무렵 그녀는 기어서 남편이 유숙하는 그 집 문 앞에 당도하여 죽게 됩니다. 아침에 이를 발견한 그 레위인은 그 시체를 싣고 집으로 가 이 사실을 이스라엘 지파 모두에게 알리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모여 총회를 하고 이 문제를 수습하려고 의논합니다. 그리고 결정하여 베냐민으로 하여금 이 일을 저지른 자들을 색출해 내라고 통보합니다. 그러나 이를 거절하는 베냐민 지파는 마침내 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돌입합니다. 마침내 동족상잔의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전적인 수의 열세와 하나님의 외면 속에 있는 베냐민은 남자 600명만 겨우 남긴 채 전멸하고 맙니다. - 3 -

그야말로 물고 뜯고 난장판인 혈전... 계곡 전체가 진동하는 가운데 피의 전투가 시작된 것입니다. 결국 잔인하게 제 식구들을 물어뜯고 겁탈하던 이리가 중과부족으로 궁지에 몰리고 제 살점이 뜯겨나가는 고통을 맛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잠시 후, 갈갈이 찢겨 겨우 붙어 있는 마지막 숨을 가늘게 몰아쉬는 그 성난 이리의 초라해진 모습을 우리는 오늘 사사기 본문 속에서 드라마처럼 보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베냐민의 결말을... 하나님 나라의 군사가 되어 그분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싸워야 할 베냐민 지파가, 사사기 1장을 보면, 그 여부스라고 하는 적과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속된 말로 빌빌대더니 제 백성을 물어뜯는 데는 칼날을 세웁니다. 하나님 나라를 물어뜯는 천국의 마피아 노릇을 하고 있더란 말입니다.

이런 베냐민 지파의 참담한 실패와 정체성의 변질은 어디까지 이어집니까? 사울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유다 지파의 다윗을 물고 늘어지며 죽이려 하다가 망한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울은 그 베냐민 지파 출신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울이 하나님 나라 의 백성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그런 자가 어찌 하여 자신과 그 나라를 블레셋의 골리앗으로부터 구했던 다윗을 마치 마피아처럼 쫓아다니며 죽이려 하다가 망하고 마는 것입니까? 베냐민도 하나님 나라의 한 지파입니다. 더구나 그 나라의 최고 전사의 빛나는 자리에 오를 수 있던 아름다운 지파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전사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군사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파괴하는 천국의 마피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저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언약의 전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그 언약을 지키기 위해 죽기로 싸워야 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동족과의 싸움처럼 적들과 싸웠더라면 어쩜 이방 정복 전쟁에서 패퇴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거 보십시오. 언약의 백성, 약속의 자녀, 천국의 전사로 부름 받은 자들이 언약을 이루는 일에서는 슬금슬금 뒤를 보고, 제 동족과의 싸움에서는 이를 악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로 부름 받은 자들이 마귀와 싸우기보다 하나님 나라와 싸우는 쪽에 운명을 건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현대 교회의 문제점이요, 우리들 교회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거의 신자라는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지금 세상이 잘못 돌아가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서 마땅히 행할 바를 하므로 이 사회를, 우리 주변을 올바로 세울 수 있을까?\' 그럽니까? 아니라구요. - 4 -

거의가 같은 교인들 이야기 아니면, 어느 교회가 이러구 저러구 하는 것들입니다. 자신은 하나님과의 약속과는 상관도 없이 멋대로 살면서, 교회가 제시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끝까지 따라해 볼 생각은 안하고, 뭐가 이러니 저러니 말들만 무성합니다. 게다가 그걸 고치라고 권면하면 오히려 길길히 뛰며 시험에 든다고 난리법석입니다. 그러고서야 어떻게 그가 올바른 신자로서의 인생이 되겠습니까?

한 마디로 정체성을 잃은 신자! 언약을 저버린 언약인! 숲 속에 숨은 아담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재능과 소욕대로, 한 마디로 멋대로 살아갑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재능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재능이 하나님 나라에서 어떤 무기로 쓰이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지금 의의 병기로 쓰이느냐 불의의 병기로 쓰이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건 내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약속의 말씀을 기준으로 평가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재능을 믿고 살아서도 안되며 재능을 위해 살아서도 안됩니다. 재능이 은사가 되려면 하나님의 약속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나에게 주신 이 재능을 사용하려 하시는가, 혹은 나의 이 재능으로 하나님 나라의 어떤 약속을 이루어 갈 건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름 받은 우리들의 비전이며 천국 전사의 모습입니다.

베냐민은 야곱이 \'이리\'라고 표현할 만큼 싸움 잘하는 지파였습니다. 호전성이 그들의 특허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아름다운 꿈도, 언약을 따르는 불타는 순종도 없었기에 마침내 그들은 싸움 잘하는 그 재능으로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하나님 나라를 괴롭히는 천국의 마피아가 되고 맙니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베냐민과 함께 사사기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님 나라의 적으로 간주된 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입니다. 야베스 길르앗이란 갓 지파에게 할당된 요단 동편의 한 성읍으로서, 그 성읍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베냐민 지파가 나서서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다가 망하였다면, 길르앗 야베스는 하나님 나라가 온통 전쟁에 휩싸여 있을 때, 나 홀로 무관심하다가 하나님 나라의 대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400명의 처녀 외에 모두 개죽음을 당합니다.

여러분, 그들이 그렇게 죽음을 당한 이유를 우리는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은 오히려 \'그 나라의 적\'으로 간주된다는 두려운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교회에서 흔히 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이런 고백 - 5 -

을 합니다. \"전 그냥 교회만 다녀요.\" \"뭔지 복잡한 일은 우린 딱 질색이거든요.\" \"성경공부해라. 뭘 해보자. 전 그저 평범한 신자로 다니고 싶을 뿐입니다.\" 이 말은 분명히 주님께서 지금 벌이고 있는 전쟁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이 세상에서 \'싸움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은 단지 \'중립적\'이라든지, 아니면 \'소극적\'이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절대로 \'중립적\'이거나 \'싸우지 않겠다\'는 것은 그 나라의 백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 사사기에는 그러한 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적\'으로까지 간주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마 12:3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즈음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배째라!\' 이런 우스개 소리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수술 못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배째노꼬 우야꼬\'

\'배째라\'고 덤벼드는 것도 문제이지만 \'배 째놓고 우야꼬\'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제 묻겠습니다. 신중히, 그리고 정직하게 각 자들 스스로에게 답변해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여러분은 약속의 자녀입니까? 언약의 백성입니까? 여러분은 교회의 요구와 권고에 얼마나 순응하십니까? 교회의 모든 일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재능은 무엇을 위해서 사용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나온 비전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단지 밥벌이를 위해서입니까?

혹시 베냐민처럼 못된 일에 재능을 탕진하거나 길르앗 야베스처럼 내게 유익이 없는 일에는 몸을 사리는, 신자라는 겉만 번지르르한 천국의 마피아는 아닙니까?

여러분은 진정 그리스도인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에 동참하십니까? 그 나라의 싸움을 피하진 않습니까? \'교회가 왜 툭하면 싸움이라는 말을 해\' 그러십니까? 그래서 싸움이라는 단어조차 듣기 싫을 만큼 당신은 온유하고 겸손합니까? 그러면 이 말씀을 유념하십시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딤후 2:3, 엡 6:12).\" 어떻습니까? 아직도 조용하게 평범하게 예수를 믿고 싶습니까? 그래서 이른 바 유별난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왕왕대며 기도할 때, 전도할 때, 봉사할 때 여러분은 조용히 명상에 잠긴 삶을 실천하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본문 8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언약의 전사, 천국의 군사로서의 자각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