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늘의 기쁨 으로 행복 합니다

우리는 하늘의 기쁨으로 행복하다 /행2:14, 22-32, 벧전1:3-9, 요20:19-31
2009-09-09 10:41:35 read : 16

일부 미군헌병들이 기지촌 주변의 업소들로부터 금품을 뜯거나 성상납을
받아온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방송에
출연한 기지촌 주변의 업소 관계자들, 그리고 미군과 한국경찰
들의 증언을 통해서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돈 한 푼 안 내고서 술을 마시거나 새로 온 외국인
여성과의 잠자리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만일 업소 측이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면, 그들은 미군들의 유흥업소 출입을 금지시키
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군헌병들이 그런 횡포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그
들에게 ‘미군 출입금지 업소’를 결정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흥업소 측의 입장에서는, 미군들의 출입이 금지
될 경우, 그들의 영업에 치명적인 손해를 끼칠 수밖에 없기 때
문에, 미군헌병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일부 미군헌병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올바
르게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특권을 부당한 이득을
취하거나 쾌락을 추구하는데 그릇되게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
렇게 함으로써, 가뜩이나 활개치고 있는 반미세력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부
활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거듭나는 특권을 주셨다(1:3)’
고 했습니다. ‘현대어성경’에서 ‘거듭나는 특권’이라고 번역한
것은 참으로 기막힌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듭남’은 예
수를 믿는 자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듭남’은 우리 기독교인들의 특권입니다. 예수
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새롭게 다시 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다(요3:3)”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천국
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도 예수 믿는 사람만의 특권이고, 천국
에 들어가기 위한 거듭남의 과정도 우리 믿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귀중한 특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거듭남의 특권을
말하면서 우리는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으며 시들지 않는
것으로써 하늘에 간직되어 있는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고 했습니다. 물론, 이 축복도 부활한 예수님을 통하여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도무지 그 값을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선물인 ‘영생의 축복’입니다.

이 세상에 ‘영생의 축복’보다 더 귀한 것이 또 어디 있겠습
니까? 죽음이라는 세력은 사람이 수고한 모든 것들을 다 헛되
게 함으로써 우리 인류에게 허무와 좌절과 절망을 가져다주었
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이기심
으로써 우리 인간에게 새로운 소망과 기쁨을 갖게 해주셨습니
다. 베드로의 표현대로 말한다면, 예수를 믿는 우리는 ‘살아있
는 산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부활을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영생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잠시
여러 가지 시련과 고통을 당함으로써 근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
나, 그 앞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벧전1:6)’고 했습
니다. 우리가 겪게 되는 모든 시련은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강
하고 순수한지 알아보려는 시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시련과 연단을 통하여 강한 믿음을 갖게 되
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많은 칭찬과 영광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천국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안전하게 지켜주신다’고 하셨으니, 예수
를 믿는 자의 축복과 특권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입니까?

심리학자들이 쥐를 가지고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독 안에다
가 쥐를 집어넣고서 빛을 완전히 차단했을 때에, 쥐는 3분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빛을 계속 비춰주었더니, 쥐는 36시간
이나 살아있었다고 합니다. 캄캄한 독안에서 3분 만에 죽고 만
쥐는, 체력이 쇠하여져서 죽은 것이 아니라 절망해서 죽었다고
하는 것이, 과학자들의 결론이었습니다.

나치수용소에서 처참한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빅터 프
랭클’이라는 심리학자가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나치수용소에서 말할 수 없는 잔인한 고문과 그 무
서운 형벌, 그리고 비인간적인 학대 속에서 나를 살아남게 만
든 것은 바로 삶의 의미와 희망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을 때에, 우리는 오늘을
열심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미래가 불확실하거
나 별다른 희망이 없을 경우에는 오늘 해야 할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법입니다. 더군다나, 현실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는데
다가 미래까지 불투명할 경우에는, 현실적인 그 어려움이나 고
난을 잘 이겨낼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암에 걸린 사람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어떤 사람들은 대단한 의지와 믿음을 가지고 암을 극복하는 경
우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실제
로 살 수 있는 시간보다 훨씬 더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더 살아야 할 이유
나 소망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후에도, 그
의 제자들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무서워서 문을 걸어 꼭꼭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갑자기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인사하셨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다들 잘 있었는가?”하는 인사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제
자들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처럼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서 무서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절망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살 소망과 기력조차 다 잃어버린 채,
그들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 여러 차례 하셨
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더라면, 그들이 그렇게까지 무서워하
지는 않았으리라 여겨집니다. 주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
나셨으리라는 것을, 그들은 조금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습니
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이 그들 앞에 나타나시기 전까지 참으
로 무서워하면서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주
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도 죽은 다음에 다시 부활하게 되
리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베드로가 군중
들에게 설교할 때에 다윗의 말을 인용한 말씀이 있습니다. 다
윗은 말하기를 ‘주께서 내게 생명의 길을 알려주셨으니, 나는
당신을 모시고 언제나 기쁨에 넘쳐서 살리라(28)’고 했습니다.

과연, 오늘 우리도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고 우리 자신의 사
후 부활을 믿고 있는 까닭에 언제나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
을 살고 있는지요? 아니면,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아직도 마음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근 채 두려움과 염려 걱정 속
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부활하신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
원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입으로만
고백하고 있을 뿐이지, 실제 생활에서는 부활의 주님을 믿는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요?

1.부활의 예수를 확실히 믿고 영생의 선물을 받아야 합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서 아주 유명한 화가가 한 분 있었습니다.
그는 암스테르담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었는데, 원래 좋은 그림
을 많이 그렸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
지 그 성향을 파악하고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는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주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 화가 부부는
넓은 정원이 있는 좋은 저택에서 아주 화려하게 살았습니다.
그야말로 남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부인이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순식간
에 그의 행복이 깨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 화가는 붓을 내던지고 실의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는 절망
하고 고민하면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
느 날 그는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를 영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열심히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는 다시 붓을 잡았습니다. 그때, 그가 그린 그림이 바로
‘엠마오로 가는 길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입니
다. 그 그림을 보면, 그림 속에서 대화하는 제자들의 모습이나,
나무의 모습들에서 부활의 약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화가는 바로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렘브란트’입니다.
렘브란트는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말하기를 “나는 위대한 생명
의 비밀을 깨닫고 이 그림을 그렸다.”고 고백했습니다. 즉, 그가
행복했을 때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먼
저 보내는 아픔을 겪으면서 인생의 좌절과 절망을 느끼게 되었
고, 그 길목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
서 그 유명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 중에서도 각기 나름대로 인생의 쓴 맛을 경험하고
난 후에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혹시 부모나 형제
들의 영향을 입어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할지라도, 본격적인
신앙생활은 대개 고난의 쓴 잔을 한 두 번쯤 마셔본 후에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마음에서 부활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못
하고 있는 분들이 없지 않아 있을 줄 압니다. 죄송스런 말씀이
지만, 그런 사람은 고난의 쓴 잔을 더 마셔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물론, 지혜로운 사람은 고
난을 더 많이 당하기 전에 미리 주님께 바짝 매달려서 기도합
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왜 나 같은 죄인을 부르셔서 주님의 제
자로 삼으셨을까?’에 대한 해답을 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이
라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사람은, 억지로 마지못해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거듭나는 특권
을 누릴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기쁨도 만끽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마처럼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다가 부끄러
움을 당하지 마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확실히 믿고 의지함으로
써 행복한 크리스천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오늘 우리는 죽음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을 가야 합니다.

부활을 믿고 사는 사람은 생명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지 못할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죽음의 길을 가야 합
니다. 누구나 다 반드시 죽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원래 첫째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
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둘째 아담인 예수로 말미
암아 새롭게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사망을 불러들인 첫
째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부활과 생명의 주(主)가 되시는 예수
로 말미암아 새롭게 거듭 태어났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지금 생명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물론, 우
리도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죽음의 강을 건너가게 되겠지만, 그
러나 우리는 그 죽음의 강 위에 놓여 있는 십자가의 다리를 통
과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다리를 통과하려면 미움과 원망, 시기와 질
투심이 들어있는 보따리를 벗어던져야 합니다. 세상욕심과 명
예욕이 들어있는 보따리도 내려놔야 합니다. 오직 우리는 우리
의 십자가만을 메고 가야 그 다리를 건너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활하신 주께서 제자들에게 처음 하신 말씀이
“성령을 받으라.”는 것이었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너희
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만
일 그 죄를 용서해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
셨습니다. 요컨대, 부활신앙은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시기와 질투, 미워하고 다투며 사는 사람
은 죽음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사
는 사람은 생명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오지에 들어가 전도하던 젊은 선교사 부부가 있었
습니다. 그들은 별다른 선교 성과가 없자 몹시 실망하고 본국
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가 고열에 시달리는 한 아기를 데리
고 왔습니다. 그들은 이틀 동안 약을 쓰고 주사를 놓는 등 최
선을 다했지만, 안타깝게 그 아기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선
교사 부부는 죽은 아이의 장례를 위하여 3일 동안이나 그 집에
가서 정성껏 위로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이 되었을 때, 평소에 대여섯 명밖에 나
오지 않던 교회에 50명이나 몰려와 예배를 드리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를 찾게 된 이유를 알아본즉,
죽은 아이의 부모가 그들이 그동안 겪은 생생한 체험을 마을
사람들에게 간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부모는 선교사 부부
와 함께 사흘을 지내면서 아이를 잃어버린 슬픔을 이길 수가
있었고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육신의 죽음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일 뿐이며, 영원한 하늘나
라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된 그들은, 고생스러운 생활과 자식의
죽음을 맞이하고서도 희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성령께서 친히
증거해주시는 부활신앙이 있는 사람은, 죽음을 인생의 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날마다 죽고 날마다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미움과 시기, 질투와 원망,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한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고, 우리는 예수님과 함
께 새롭게 거듭나는 부활을 날마다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죽음의 세력과 싸워서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
서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하늘의 기쁨으로 늘 행복하게 살아
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