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천국에서 만나자

저 천국에서 만나자
계21:1-8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 요한이 계시 중에 바라본 천국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아닙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없고, 바다도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바다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고 했습니다(계21:11-12).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

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했습니다(본문3-4절). 바로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어」 영원히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곳입니다(계21:7).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

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길 가운데로 흐르고,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케 한다」고 했습니다(계22:1-2).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

그 곳에는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어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니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라고 했습니다(계22:3-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 천국에서 만나자!』

우리 성도들의 산 소망이요, 큰 위로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 나그네의 길을 걷는, 순례자의 마지막 정착지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기업의 터전입니다. 제자의 발을 씻기신 주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내 눈의 눈물을 씻겨 주시는 그야말로 사랑의 세계입니다.

『저 천국에서 만나자!』

우리 성도들은 저 천국을 소망하고 길가는 나그네입니다. 비록 힘들고 고달파도 내 주님 만날 부푼 마음으로 고생스러움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집을 향해 달려갑니다. 육신의 부모님을 만나는 기쁨으로 추석의 귀성길의 행렬이 길게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고향을 찾아가는 귀성객들이 교통 전쟁의 그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저 천국에서 만나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만나는 기쁨입니다. 육신의 부모를 만나는 기쁨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떠나온 내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은 본향을 찾아가는 순례자의 길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입니다. 어찌 나온바 내 고향을 찾는 기쁨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저 천국에서 만나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만나는 기쁨입니다. 지난주간에 우리는 추석 명절을 맞아 부모님을 찾고, 고향을 찾고, 친척과 친지들을 찾아 만나고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명절 때마다 치르는 교통 전쟁으로 상당한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온바 고향을 찾고, 육신의 부모와 친척과 친지를 만나는, 육신적인 기쁨을 위해서도 우리는 고난을 감수합니다. 하물며 더 나은 본향을 찾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찾는 순례자의 고난이겠습니까.... 더욱이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친히 도우십니다. 환란과 고통의 비람이 몰아칩니까? 오히려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를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 천국에서 만나자!』

우리 성도들의 산 소망이요, 큰 위로입니다. 이 세상 나그네의 길을 걷는, 순례자의 마지막 정착지입니다. 『저 천국에서 만나자!』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을 만나고, 믿음의 선진들을 만나고, 주 안에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을 만나는 그날..... 우리 성도들의 구원이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쉽게 말해서 반쪽짜리가 온쪽짜리로 영원히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영원한 천국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1.천국은 정말 있는가?



본문 1절/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사도 요한이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하여 올라가(계4:1), 그의 눈으로 보았다는 새 하늘과 새 땅, 그 천국은 정말로 있는가?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도 천국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국은 그저 소망하는 유토피아(Utopia)일 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사도 요한은 환상 중에 유토피아(Utopia)의 세계를 본 것이 아닙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계4:1).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신 것」이라고 했습니다(계22:6).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예언되어진 말씀의 성취입니다(사65:17). 지금의 하늘과 땅은 불사르기 위해 보존해 두셨다고 했습니다(벧후3:7). 주의 강림하시는 날에 하늘이 떠나가고 땅의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진다고 했습니다(벧후3:10). 그러나 성도들은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고 했습니다(벧후3: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 천국에서 만나자!』

우리 성도들에게 이런 산 소망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우리 성도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차라리 「먹고 마시고 즐기자!」하며, 세상락(世上樂)을 즐기는 사람들이 제대로 사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천국은 있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최초의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이었습니다. 바로 천국이 있다는 말씀이요, 그만큼 귀하고 값지다는 것입니다.

천국(天國)....

우리 성도들 중에는 천국(天國)을 천년왕국(千年王國)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천년왕국(千年王國)은 없다는 학자들도 있고 -무천년설(無千年設), 있기는 있는데 예수님 재림 전에 있다는 후천년설(後千年設), 예수님 재림 후에 있다는 전천년설(前千年設)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성도들이 천년 동안 왕노릇한다는 것입니다(계20:4). 이 천년왕국(千年王國) 이후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천국(天國)입니다.

천국(天國)....

성경에 나타난 표현이 조금씩 다릅니다. 마태복음에는 \"하늘 나라(天國)\"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하나님 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밖에 다른 곳에는 \"하나님의 나라\", \"아버지의 나라\", \"그리스도의 나라\", \"주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천국(天國)....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의 통치권이 미치는 곳은 다 천국(天國)입니다. 지옥도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지옥도 천국(天國)의 일부가 됩니다. 그러나, 지옥은 천국(天國)과 대조되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의 해석은 무조건 확대 해석할 수 없습니다.

천국(天國)....

좁은 의미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천국(天國)을 말합니다. 이것은 시기적으로 종말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적 의미로는 천국(天國)은 우리 성도들의 마음 속에 이미 임하여 있습니다(눅17:21). 그리고 교회가 신령한 의미에서 이 세상에 있는 천국(天國)입니다. 교회에 천국(天國)의 열쇠를 주셨고(마16:19), 그 교회를 통하여 천국(天國)을 미리 맛보고 경험하며, 확장하며, 종말론적인 천국(天國)의 성취를 기다리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저 천국에서 만나자!』

천국(天國)이 정말로 있을까 하고, 천국(天國)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 마음 속에 천국(天國)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눅17:21). 교회 생활을 통하여 천국(天國)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천국(天國)이 정말로 있을까」는 연약한 믿음의 성도들이 있다면, 교회가 천국(天國)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바로 천국(天國)을 미리 맛보고 경험할 수 있는 삶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2.우리 성도들의 산 소망입니다.



본문3절/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보라! 하고 감탄을 부르짖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장막을 치시고 사람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범죄로 잃어버렸던, 그 실낙원(失樂園)의 에덴보다도 더 친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 목적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본문7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여기의 \"이기는 자\"는 아시아 일곱 교회에 주신 말씀의 완성이라고 봅니다.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먹고(본문6절),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고(본문7절),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유업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 기업의 터를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계시록 22:4절/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거룩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참으로 놀랍고도 큰 소망이 이루어집니다. 아담 하와의 범죄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후로 죄인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그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하나님과 함께 살다니 참으로 꿈만 같은 소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 천국에서 만나자!』

우리 성도들의 산 소망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천국에서 만나는 그날, 거룩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됩니다. 날 구원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새 하늘, 새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책을 통해서, 설교를 통해서, 이야기를 통해서 들었던 그 이름.... 보고팠던 믿음의 선진들을 만나 뵙게 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꿈만 같은 산 소망입니까....



3.고난 중에 큰 위로입니다.



본문4절/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눈물은 불행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의 \"모든 눈물\"은 각각의 눈물을 말합니다. \"눈물[다크뤼(davkru)]\"도, \"모든[파스(pa\'\")]\"도.... 단수입니다. 다시 말해서 슬픔의 눈물, 고통의 눈물, 서러움의 눈물, 등등.... 온갖 모든 종류의 눈물을 각각 씻기심으로 불행 자체가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망도, 애통도, 곡하는 것도, 아픈 것도 다시 없다고 했습니다. 곧 불행 끝, 행복 시작입니다.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16:25절/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서 보는 천국에서의 위로와 지옥에서의 고민입니다. 그 고민이 바로 유황 불꽃 가운데서 당하는 고통입니다(눅16:24). 손가락 끝의 물 한 방울을 소원하나 이루어질 수 없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이 땅에서는 비록 그 부자 집의 쓰레기통을 뒤져 먹고사는 고난이었으나(눅16:25), 그 고난 중에서도 큰 위로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그 위로가 얼마나 큰 것인지 부자는 유황 불꽃 가운데서 고통당할 때에야 깨달았습니다. 다섯 동생을 위하여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하는 \"죽은 자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자신을 위해 제사지내지 말고,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도록 「예수 믿어라」고 호통을 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 천국에서 만나자!』

우리 성도들의 산 소망이요, 얼마나 큰 위로인지요. 저 하늘, 저 천국이 있기에 「현재의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장차의 영광」을 소망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입니다. 반쪽짜리가 온쪽짜리로 살아야 하는 고난을 위로의 하나님을 의지하여 감당합니다(고후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환난과 핍박과 궁핍과 곤고와 애통의 고난을 즐거움으로 감당합니다.

바로 자기 안에 임한 천국(天國)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눅17:21).

「천국이 정말로 있느냐」고 의심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자기 안에 천국(天國)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천국(天國)을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안에 임한 천국을 맛보세요. 교회를 통하여 천국(天國)을 미리 맛보고 경험하세요.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저희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도다」.... 유토피아(Utopia)의 세계가 아닙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지는 실제의 세계입니다.

『저 천국에서 만나자!』

우리 성도들의 산 소망이요, 오늘의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큰 위로의 능력입니다. 『저 천국에서 만나자!』 우리 거기에서 만나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올 것입니다. 우리 거기에서 만나 못자국 난 손 내 미시는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 뵈올 것입니다. 우리 거기에서 만나 주림도, 목마름도 없고(계7:17), 사망도, 애통도, 곡(哭)도, 아픔도 없고(본문4절), 저주도(계22:3), 밤도 없는(계22:5)....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가고(본문4절), 만물이 새롭게 된 새 세상에서 영원히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살 것입니다.

『저 천국에서 만나자!』

우리 성도들의 \"산 소망\"입니다. 다시 말해서 소망이 살아 있습니다. 그 \"살아 있는 소망\"은 스스로 그 소망을 이루어갑니다. 우리 성도들이 그 소망을 이루는 게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의 \"산 소망\" 천국(天國)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천국(天國)을 이루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천국(天國)을 이루십니다.



「천국에서 만나 보자 그날 아침 거기서, 순례자여 예비하라 늦어지지 않도록

만나 보자 만나 보자 저기 뵈는 저 천국 문에서,

만나 보자 만나 보자 그날 아침 그 문에서 만나자」



『저 천국에서 만나자!』

우리 성도들의 \"산 소망\"입니다. 그 \"산 소망\"을 더욱 가슴에 다지기 위해, 『저 천국에서 만나자!』,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인사가 되어야 합니다. 『저 천국에서 만나자!』,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산 소망\"을 인사로 다짐하고, 찬송으로 다짐하는 삶을 통하여 우리 모두 저 천국에서 만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