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의 내적 모습 계22:1-5 지난 시간에는 온갖 보석들로 장식된 천국의 외적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천국의 내적 모습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22장)은 전체 요한 계시록의 결론 부분입니다. (22장)는 앞부분인 오늘 본문에서 (21장)에서 이어지는 천국의 모습이 보이며, 이어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경종으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22장)은 계시록의 결론일 뿐 아니라 성경 전체의 결론이며, 하나님의 예언과 계시의 마감이기도 합니다. 비교적 짧은 구절이지만 천국이 어떤 곳인지, 그 속성을 잘 알 수 있는 기록이 오늘 말씀입니다.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물이 흐르며, 생명나무 실과가 풍성히 열매 맺는 곳입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의 얼굴을 친히 뵐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빛이 되시기에 다시는 빛이 필요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생명수 강이 흐릅니다 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의 계시에서 생명수의 강을 보았습니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라고 합니다. 강물이 흐르는데 수정같이 맑았습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강물이며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강입니다. 이 강 이름을 생명수의 강이라고 부르는 것은 새 예루살렘에 속한 모든 것들이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물을 마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이미 생명을 얻은 자들이 거기 있습니다. 이 물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수의 개념하고는 다릅니다. 이 생명수의 물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고 했습니다. 생명수 강의 물 근원을 밝혀 주신 말씀이다. 이 강은 새 예루살렘 길 가운데로 흐르는데 강물의 근원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난다고 한 것은 천국에 있는 모든 존재의 발생 근원이 하나님과 어린양이심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이 표현은 구약의 여러 곳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먼저, (창2:8-16)로 비손, 기혼, 힛데겔, 유부라데 강이 에덴에 흘렀다고 전해 줍니다. (슥14:8)에도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고 했습니다. 또, (욜3:18)도,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런 선지식을 바탕으로 요한은 생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수의 강은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요7:38-39]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새 예루살렘은 성령의 지배 하에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근원입니다.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각가지 실과를 맺는 생명나무가 강 좌우에 있습니다. 12가지 실과를 맺는데 달마다 실과를 맺는다고 합니다. 일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 실과나무하고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생명나무의 실과는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실과의 실체로 그 맛, 향기, 모양, 아름다움에 있어서 전혀 다른 것입니다. 달마다 맺힌다는 것은 따 먹어도 곧 다시 맺혀지는 신비한 형상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역시 이미 구약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인류 최초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에덴에는 이미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을 다시 천국에 허락하신 것입니다. (겔47:12)에도 예언되어 있습니다. “강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어지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이는 생명을 공급하는 나무입니다. 생명수가 흐르는 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부활한 몸은 신령한 영원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먹지 않고도 결코 배고픔이 없고 아무리 먹어도 배부름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날에 이곳에서 달마다 맺히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먹으며 이 세상에서 먹고 싶었던 실과를 생각하면서 감사의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2절)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했습니다. 생명나무에는 물론 잎사귀도 있을 것이다. 주님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생명나무의 잎사귀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만국을 소성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만국이란 그곳에 거주 하는 모든 백성들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천국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에 의해 창조되었고, 영원하고 신비한 존재로 살아감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과 어린양과 백성이 함께합니다 (3절) “다시 저주가 없으며 다시 밤이 없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주가 없는 것은 그곳에는 영원히 죄가 존재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원래 저주는 하나님께 범죄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입니다. 죄가 없으며 밤도 없습니다. 밤은 죄의 온상입니다. 그 밤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주관해 온 영적 밤도 영원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인생들이 맞은 밤은 피곤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엔 영원한 안식이 있기에 피곤함이나 육체를 쉬게 할 밤이 필요 없습니다. 등불과 햇빛도 쓸데없습니다. 낮의 햇빛이나 밤의 등불이 필요치 않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히 그 도성을 비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빛으로 임재하십니다. 다른 빛은 필요가 없습니다. 촛불이 비취다가 전등이 나오면 촛불은 필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빛은 그 어떤 빛도 무용지물로 만듭니다. 가장 큰 빛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완전히 자유인이 되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통치자가 됩니다. 완전복종에서 진정한 권위와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주님께서 왕이실 뿐 아니라 성도도 왕입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을 것이라”(3)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는 한곳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 우편이 어느 자리이며 그 자리에 앉으신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지금은 모르지만 그 때 가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그 보좌의 자리에 함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가슴 벅찬 일입니다. (4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친히 얼굴을 보며 섬길 수 있는 특권이 천국의 백성들에게 주어집니다. 이런 백성이 되지 않으시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소수의 사람들에게 통치를 당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모두가 다스리는 자입니다. 그것도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을 가까이서 대면하며 다스립니다. 왕 노릇할 존재란 언제나 극히 적은 소수입니다. 분명 믿음을 갖고 끝까지 승리한 이들일 것입니다. 이 세상의 통치는 아무리 잘난 사람도 그 기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의 삶이 그렇듯이 통치 또한 끝이 없습니다.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아무도 천국에 들어가 보고 온 사람은 없습니다. 때로 간증을 듣는데 그것은 천국의 꿈을 꾸었거나 환상을 보았거나 잠시 죽은 것 같은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보여 주신 것이지 천국에 갔다 온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에 내려 왔던 사람들은 엘리야와 모세 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변화산에 나타나 영광의 모습으로 예수님과 대화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도 요한만 천사가 전해준 천국을 우리에게 계시해 줍니다. 우리는 이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슴에 안고 끈질기게 천국을 사모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소망한 자만이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