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잔치의 맛
천국 잔치의 맛
눅14:15-24
어느 날 새로 개관하는 일류 호텔에서 제게 초청장이 왔습니다. 초청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이번에 저희 호텔을 개관하면서 귀하를 초청하오니 부디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그 호텔에 전혀 아는 사람도 없는데 그런 초청장이 왔습니다. ‘이 사람들이 사람은 볼 줄 아는구만’ 어깨에 힘을 주고 호텔 개관 세레머니에 참석했습니다. 내노라 하는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식이 끝나고 호텔 사장이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을 우리 호텔의 평생 VIP로 모시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호텔의 객실을 언제든지 무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우나도 공짜요, 모닝커피도 무료입니다. 일요일의 스페셜 뷔페도 무료이고, 수요일의 Food 페스티벌도 공짜입니다. 언제든지 마음대로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 무료이고 공짭니다’. 야, 신난다! 그때 따르릉 -----괘종시계가 새벽 4시를 알렸습니다. 꿈이었습니다. 얼마나 아쉽고 서운했던지, 쯔쯔----.
아마 이런 일이 내게 실제로 있다면 정말 신이 날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 으리으리한 호텔을 내 집같이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니 -----정말 꿈같은 얘기 아닙니까? 돈 많은 부자나 권세 있는 세도가라면 모를까----, 나 같은 게 무슨 VIP 입니까? 그렇죠? 꿈도 꿈같아야지, 그런 꿈을 개꿈이라고 하나 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자주 이런 개꿈을 꾸게 됩니다. 롯또 현장에 몰리는 사람들, 꿈이라도 좋으니 개꿈 좀 꿔보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여러분, 여기 진짜 꿈이 있습니다. 진짜 꿈이기에 그것은 꿈이 아니고 비젼이요 소망입니다. 천국을 향한 꿈, 이건 진짜 꿈입니다.
반드시 이루어지는 꿈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천국 호텔의 VIP입니다. 천국 호텔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바 아버지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천국 주인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VIP 중에서도 최고의 VIP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 호텔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천국 호텔만 하겠습니까? 우리는 매일 천국 커피를 무료로 마실 수 있습니다. 천국 커피는 하나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영원한 생수입니다. 천국 호텔에서는 주일만 되면 스페셜 뷔폐를 차립니다. 맛을 알고 멋을 아는 우리 주님이 손수 풍성하게 차렸으니 얼마나 맛이 있고 우아하겠습니까? 수요일에는 천국 food festival입니다. 전부 공짜요 무료입니다. 야, 신난다! 그런데 그걸 싫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일 날 천국 잔치 상을 받으라는데 싫답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서운해 하시겠습니까?
II. 본문 내용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잔칫 날 종들을 초청한 사람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땐 우편제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전화가 있을 때도 아니니까 사람을 보내서 오늘 잔치가 있으니 참석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참석을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은 ‘아이고 이거 미안해서 어떻게 하나? 내가 밭을 샀는데 그 밭에 좀 나가봐야 하겠는데-----미안하다고 주인어른께 말 좀 꼭 전해 주게’ 다른 사람은 ‘난 소 다섯 상을 샀는데 오늘 일꾼들을 데리고 나가서 소들을 잘 다루는지 시험을 해 봐야 한다네. 주인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주게나’ 또 다른 사람은 ‘난 말야 얼마 전에 장가 들어서, 못 가겠네’
자, 잔치 상은 이미 차려졌는데 초청한 사람들은 오지 못한답니다. 잔치 집에 예상외로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도 음식이 부족해서 문제지만 사람이 안 오면 더 문제가 됩니다. 그 많은 음식을 처리하는 것도 문제지만 남부끄러워서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화가 난 주인이 종들을 거리로 보내 아무나 데려다가 잔치 상을 채우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누가복음 14장 본문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이 잔치의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생활 풍속을 조금 이해하게 되면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이 왜 악한 사람들인지, 그리고 주인이 화를 내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잔치를 하려면 초청할 사람에게 미리 사람을 보냅니다. 어느 날, 아무 시에 잔치를 하려고 하는데 그 날 참석할 수 있습니까? 미리 물어봅니다. 그래서 참석하겠다고 약속한 사람 수대로 음식을 장만하고, 그리고 잔치 날에 사람을 다시 보내서 오늘 잔치를 하니까 참석해 주십시요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인은 종을 두 번 보냈습니다. 훨씬 전에 먼저 보내서 어느 날, 아무 시에 잔치를 하려고 하는데 왕림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참석하겠다고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잔치 날입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그 초대된 사람들에게 종을 다시 보내서 오늘이 바로 그 때 약속한 잔치 날이오니 참석해 주십시요 했더니, 참석할 수 없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잘 읽어보면 초대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주 괘씸합니다. 이건 갑작스런 어떤 사정이 생겨서 참석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불가항력적인 일이 생겼다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몸이 갑자기 병들었다든가, 아니면 갑자기 멀리 출타를 하게 됐다면야 ------, 그런 것도 아닌데, 이유도 되지 않는 이유를 들어 고의적으로 잔치 집을 골탕 먹이고 썰렁하게 만들려는 심뽀가 엿보입니다.
첫 번째 사람의 불참 이유를 봅시다. 18절입니다. ‘밭을 샀으매 밭에 나가야 겠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건 그냥 핑계일 뿐입니다. 여러분, 밭을 사는 사람이 사기 전에 충분히 살펴봤을 게 아닙니까? 밭을 사면서 사기전에 살펴보고, 그리고 마음에 들어서 돈을 지불하는 게 상식 아닙니까? 아무리 미련해도 사고 난 다음에 밭을 돌아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두 번째 사람도 그렇습니다. 19절입니다. 소 다섯 쌍을 샀는데 시험하러 가니까 참석을 못하겠답니다. 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를 사기전에 말을 잘 듣나 밭을 잘 가나 시험해 보는 것 아닙니까? 역시 억지 핑계일 뿐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더 가관입니다. 20절입니다.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못 가겠다’는 겁니다. 하나 같이 이유가 되지 않는 핑계였습니다. 남의 잔치 집이야 썰렁해지든 말든 나하고는 상관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자기의 작은 희생도 싫다는 겁니다. 새로 산 밭은 다음에 가 봐도 되고 새로 산 소를 시험하는 것도 내일 하면 됩니다. 새로 장가를 들었지만 잠깐 잔치 집에는 다녀올 수 있습니다. 이미 약속까지 해 놨습니다. 와서 그냥 실컷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라는 데 거절했습니다. 지금처럼 축의금을 가지고 오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와서 먹으라는 데 거절했습니다. 잔치집 주인이 화가 날만도 하지 않습니까?
III. 예수님 잔치의 맛
예수님께서 천국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유를 대면서 천국 잔치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큰 호텔 개관식에서 VIP로 모신다고 하니까 입이 찢어졌던 사람들이 천국 잔치에 VIP로 모신다고 하니까 고개를 흔듭니다. 핑계를 댔습니다. 바빠서, 아는 사람 결혼식이 있어서, 친척들의 모임이 있어서, 그래서 주일 잔치에 참석할 수 없답니다. 오늘 본문에서 잔치에 참석할 수 없다고 핑계 대는 사람들이 누굽니까? 처음에는 참석하겠다고 약속한 사람들 아닙니까?
‘네---’ 했던 사람들입니다. 불신자들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잔치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에 기뻐했던 사람들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이요 구원의 소식, 복음에 아멘 아멘 했던 바로 오늘의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시큰둥해졌답니다. 왜요? 천국 잔치 맛을 몰라서 그런 것 아닙니까? 말씀의 맛을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말씀은 곧 예수님입니다. 말씀의 맛은 그 능력을 통해서 느껴집니다. 말씀의 능력은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말씀 속에 빠져봐야 말씀의 맛을 알게 됩니다. 말씀에 빠지려면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말씀을 즐거워해서 귀를 열고, 가슴을 활짝 열어놔야 합니다. 설교말씀을 한 말씀 한 말씀 마음 판에 새겨야 합니다. 귀로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래야 맛을 알고 그래야 말씀이 복이 되는 줄 믿습니다!
요 맛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맛은 먹어봐야 아는 것 아닙니까? 먹어보지도 않고서 맛이 있네 없네 할 수는 없습니다. 자꾸 먹어봐야 합니다. 여러분, 입맛이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주시는 영생의 맛은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그 맛이 나는 줄 믿습니다! 예수의 맛을 알면 예수 믿는 게 재미가 있습니다. 그렇게 재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주일이 기다려집니다. 천국 잔치가 기다려집니다. 그냥 교회 일이라면 만사 제쳐놓고 하고 싶어집니다. 헌금하는 게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일조 할 수 있고, 감사헌금 할 수 있는 게, 그냥 감사 감사할 뿐입니다. 믿음의 맛을 아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맛을 모르면 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오는 것도 힘들어지고, 일년 내내 감사 헌금 한 번도 할 수 없습니다. 감사함을 모르는 사람이 감사의 맛을 알겠습니까?
요한복음 2장에 보면 가나의 혼인 잔치 집 이야기가 나옵니다. 잔치집이 설렁해졌습니다. 잔치 맛이 없어졌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새롭게,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낙심하고 좌절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소망으로 힘을 얻게 됩니다. 근심과 한숨으로 도무지 재미가 없던 가정에 주님이 계시면 가정이 새롭게 변하고 기쁨이 넘칠 줄 믿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져서 잔치 맛이 없고 썰렁해진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분위기가 싹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만드신 포도주, 얼마나 맛이 있었겠습니까? 연회장이 그 포도주를 맛보고는 미칠 듯이 좋아했잖습니까? ‘야, 이런 맛은 처음이다!’
여러분, 예수님은 맛을 아시는 분입니다. 아니 맛을 만드시는 분입니다. 모든 맛은 주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손을 한 번 거치면 그 맛은 천하일품이 됩니다. 여러분, 보리떡을 잡숴보셨습니까? 젊은 분들은 보리떡이 뭔지도 모르겠지만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보리떡을 아십니다. 피난 다닐 때 많이 먹어봤습니다. 보리떡 맛이 있습디까? 그게 뭐가 맛이 있습니까? 그건 맛으로 먹는 게 아니고 배를 채우려고 먹는 겁니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현장에서 주님이 주신 보리 떡 맛은 참으로 꿀맛이었습니다. 아마 군중들은 생전 처음 그렇게 맛있는 걸 먹어봤을 겁니다.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 그때 그 보리떡 맛을 본 군중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서 주님을 졸졸 따라 다닌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 분이 잔치를 베풉니다. 주일 예배는 예수님이 베푸시는 천국잔치입니다. 멋과 맛이 넘치는 예수님이 천국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아무나 와서 맘껏 먹고 즐기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떡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떡을 받는 자는 다시는 배고프지 않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잔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입니다. 하나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줄 믿습니다!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을 보십시요. 그 여인은 세상이 살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어서 살아 있을 뿐이지 도무지 살 재미가 없었습니다. 사람들도 만나기가 싫었습니다. 여러분, 사람 기피증에 걸리면 정말 살맛이 없는 겁니다. 우울증이 걸린 사람의 첫 번째 증세는 사람을 싫어하는 겁니다. 우물에 물을 길러 갈 때에도 우물가에서 사람들을 마나는 게 싫어서 사람들이 밖에 나오지 않는 그 시간에 살짝 나와서 물을 길어가는 그런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변했습니까? 완전히 변했습니다. 예수 맛을 보고나니까 그 기가 막힌 예수의 맛을 혼자만 누릴 수 없어서 동네사람들을 불렀습니다. 사람들이 싫어서 몰래 피해 다니던 사람이 이제는 동네방네를 시끄럽게 했습니다. 고래고래 소리치며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동네 사람 여러분, 여기 좀 나와 보세요. 여기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여기 메시야가 있습니다!’
IV. 맺는 말
다윗은 참으로 천국 잔치의 맛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었으니 화려한 세상 잔치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오직 천국 잔치만을 못 잊어 했습니다. 다윗은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다윗은 오직 주님을 바라보는 것만이 즐거움이요 기쁨이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맛이 기쁨이요 즐거움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예수님의 품에 안기면 그 맛이 오죽 하겠습니까? 주님 품 안에는 오직 희락입니다. 최고의 기쁨입니다.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고도 신이 났는데, 지금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왜 천국 잔치를 베푼지 아십니까? 여러분들이 신나라고 주일 찬지를 베푸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세상 삶에 지쳐서 어깨가 축 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떡을 먹고 영원한 생수를 마시라고 천국 잔치를 베푸셨습니다. 내가 도와 줄테니 힘을 내라고 이 잔치를 베푸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힘을 내세요. 여러분 속에 주님이 계십니다. 성령이 계십니다. 신이 날 수밖에 없잖습니까? 여러분 속에 참 신이 계시는데 어찌 신이 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신나는 이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다 털어내라고 주일을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할켜지고 깨지고 짓밟히고 억눌림 당한 여러분들을 위로하시려고 오늘 천국 잔치를 베푸셨습니다. 이 시간 기뻐서 손뼉치고 좋아서 어깨춤을 추는 동안 여러분들의 근심이 없어지고,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아픈 데가 고쳐질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