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 비유 - 하나님의 나라 (1) 눅17:20-21 몇 주 동안 마13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천국 비유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하여 알기 쉽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고전13장은 사랑장, 출20장은 십계명장, 고전15장은 부활장, 히11장은 믿음장으로 불리우는데, 마13장은 천국 비유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천국, 하늘나라는 무엇입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아이들에게 하늘나라를 말하면 하늘을 쳐다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 하늘나라는 하늘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소련이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였습니다. 우주선은 하늘로 날아가 우주를 여행한 뒤에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습니다. 우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주 비행사는 우주에서 본 것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천국을 믿고 있지만, 천국은 없습니다. 제가 저 높은 하늘을 여행하였지만 그곳에 하늘나라는 없었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하늘나라, 천국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에 있는 나라입니까? 하늘에 있다면 어느 하늘에 있습니까? 오늘 봉독한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고 있고, 마태복음에서는 천국, 하늘나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와 하늘나라는 같은 나라입니까? 아니면 다른 나라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매우 귀히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시면서 “내 이름을 망령되이 여기지 말라. 함부로 부르지 말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성경은 인쇄소에서 찍어 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서기관들이 성경을 직접 양가죽에다 기록하였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양가죽보다 값이 훨씬 저렴한 파피루스라는 종이에다 기록하였습니다. 서기관들이 원본 성경을 놓고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다가 ‘여호와’ ‘하나님’이란 단어가 나오면 하던 필사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나가 목욕을 한 다음에 다시 와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적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쓸 수 없어서 목욕재개하고 썼던 것입니다. 제사장이 안식일이나 절기 때에 성경을 낭독하는데, 낭독할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 엘로힘’ 이란 단어가 나오면 ‘여호와, 엘로힘’ 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그렇게 읽지 않고, “주님, 아도나이” 하고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는 우리글과 다릅니다. 우리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쓰지만, 히브리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씁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는 자음만 있지 모음이 없습니다. 월산교회를 히브리어로 쓰면 모음이 없이 ㅇ ㄹ ㅅ ㄴ ㄱ ㅎ 라고 썼습니다. 후에 히브리 학자들이 읽기 쉽도록 모음을 붙였습니다. 원래 있던 글자의 위와 아래에 점을 찍어서 모음이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면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다.” -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알려 주었습니다. 오래도록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기록된 말씀을 “주여” 하고 읽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히브리어 학자들이 연구를 하는 가운데 “여호와”로 읽는 것보다 “야훼”로 읽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요사이 나온 신학 책에는 “야훼 하나님”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에도 “야훼 하나님”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훼 하나님’이라고 말하자 “이단 아니야?” 하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오래 동안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담을 수 없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불러야 하는지, 야훼 하나님으로 불러야 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에 다른 단어를 찾았습니다. 그 단어가 하늘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하늘나라로 부른 것입니다. 4복음서는 특징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하여 기록되었고, 마가복음은 로마인들을 위하여 기록되었고, 누가복음은 이방인들을 위하여 기록되었고, 요한복음은 헬라인들을 위하여 기록되었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하신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을 위하여 기록된 마태복음을 보면 구약성경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구약에 약속하신 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바로 그 메시야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방인을 위하여 기록된 누가복음에는 구약 성경을 많이 인용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예수님께서 이방인 수로보게 여인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본 사람이 유대인이 아닌 멸시 당하는 사마리아 사람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하여 기록된 말씀이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꺼려하기에 주로 하나님의 나라를 천국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신에 이방인을 위한 본문의 누가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 하늘나라는 하늘에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소련의 우주 비행사처럼 저 높은 하늘에서 아무리 하늘나라를 찾아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천국,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의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천국에 대하여 잘 못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천국,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는 나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선지자의 약속을 통하여 오래 동안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렸습니다. 메시야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선지자에게, 제사장에게, 왕에게 기름을 부어 임직하였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다는 선지자를 기다리는 것이고, 제사장을 기다리는 것이고, 왕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신18:18에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라.” -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선지자 메시야, 제사장 메시야는 기다리지 않고 왕이신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이여!” 하고 찬양하였습니다. 다윗왕의 뒤를 이어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린 것입니다. 요1:49에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르실 때에 나다나엘이 대답한 고백입니다. 나다나엘 뿐 아니라 제자들 모두 예수님이 왕으로 오신 메시야로 믿고 따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때가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간다.” 말씀하실 때에 제자들 모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다윗과 솔로몬처럼 찬란한 유대 왕국을 건설할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있는 로마의 총독부로 가셔서 로마 총독부를 점령하고, 세계 최강이라는 로마의 군대를 능력으로 모두 다 쓸어버리시고 유대 왕국을 세우셔서 왕의 자리에 앉으셔서 사랑과 정의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모든 제자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예수님이 왕의 자리에 앉으실 때에 우리 가운데 누가 좌의정이 되고 영의정이 될 것인가? 권력의 최측근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가운데 누가 크냐 하는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40여일 이 세상에 계시다가 구름을 타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실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행1:6)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다윗과 솔로몬 때와 같은 찬란한 유대 왕국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3년 동안 저희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는데, 예수님께서 훌쩍 떠나버리시면 저희들은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이 땅에 세워지는 세상의 왕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세워지는 세상의 왕국이 아닙니다. “지금이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세울 때가 아닙니까?” 묻는 제자들에게 “(행 1:7-8)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시고 구름을 타시고 승천하셨습니다.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이곳에 있다 저곳에 있다고 못한다. 이 땅에 세워지는 나라, 저 땅에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다.”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세워지는 지상 왕국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시145:13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너희 마음에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다스리실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진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12:28에서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사단이 주인입니다. 사단이 다스립니다. 사단이 인도합니다. 사단의 인도함을 따라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합니다. 하나님을 거약합니다. 죄의 열매를 맺으며 삽니다. 더럽고 추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을 다스리십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의 다스리심 가운데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으며 삽니다. 사탄의 인도 아래, 죄 아래 사는 사람은 사탄의 종입니다. 죄의 종입니다. 죄의 자녀입니다. 멸망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서 사단이 물러가고, 귀신이 쫓겨나게 되면,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께서 나의 삶에 주인이 되시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씨 뿌리는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뿌려진 씨앗이 싹이 나서 자라게 됩니다. 뿌려진 땅을 차지합니다. 그곳에서 크게 세력을 넓히며 자랍니다. 그곳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천국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말씀이 자라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딱딱한 길가 마음에는 말씀이 자라지 못하도록 새들이 와서 씨앗을 먹어버립니다. 결단코 하나님의 말씀이 씨앗이 자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저질 수 없습니다. 돌밭 마음에도 말씀이 자라는 것 같지만 곧 시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라지 못합니다. 가시밭 마음에도 말씀이 많이 자라 줄기도 튼튼하고 잎도 무성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유혹과 핍박의 가시에 더 이상 자라지 못합니다. 열매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내 안에 천국이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하여야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지겠습니까? 어떻게 하여야 천국이 내 안에 세워지겠습니까? 첫째, 영접하여야 합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명의 주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습니다.” 고백할 때에 예수님께서 내 마음 속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격적이신 분이십니다. 도둑처럼 담을 넘어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강도처럼 문을 부수고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문을 두드리신 뒤에 우리가 문을 열어 주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계3:20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을 배경하여 그려진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의 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십시오. 문손잡이가 없습니다. 문손잡이가 있어야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릴 뿐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문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는 결단코 내 마음으로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밖이 더우면 땀을 흘리시며, 밖이 추우면 떨면서 서서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믿음으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여 모신 사람들입니다. 잘 하셨습니다. 혹시라도 아직도 예수님을 밖에서 서성거리게 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까? 속히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모시어 들이기를 바랍니다. (찬송)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가시관을 쓰셨네 모시어 들이세 우리 죄를 속하려 십자가를 지셨네, 받은 고난 크셔라 모시어 들이세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에 모셨으면, 예수님이 나의 마음이 주인이 되시도록 내가 앉아 있는 자리를 내어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마음에 주인이 되셔서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도록 하여야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를 당한 뒤에 총리였던 최규하 씨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년이 못 되어 전두환 씨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 후 월간 잡지에 “최규하 대통령의 빼앗긴 295일” 제목의 글이 실렸습니다. 최규하 씨가 대통령이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의 통수권자로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말만 대통령이고, 요사이 말로 무늬만 대통령이었습니다. 청와대에 앉아 있었을 뿐이지, 실권은 전두환 씨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청와대를 전두환 씨에게 양보하고 물러났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여! 나의 주인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종입니다.” 고백하고 예수님을 나의 마음에 주인으로 모셨습니다. 그런데 말만 주인인 경우가 있습니다. 입으로 만 주여, 주여 부르는 것입니다. 주인이라고 하면서 순종하지도 않고, 주인이라고 하면서 복종하지도 않습니다. 주인이라고 하면서 주인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천국이 이루어지 않는 것입니다. 롬14:17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면 의롭게 됩니다. 강과 같은 평화가 찾아옵니다. 샘처럼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그런데 의롭지도 않고,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하며 사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마음에 모시기는 하였지만, 안방마님처럼 내 마음 한 구속에 모셔만 놓았지,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고,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역사하시도록 나의 삶을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 선지자를 찾아왔습니다. 이웃의 모든 나라에는 왕이 있습니다. 왕이 다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왕을 세워주십시오. 왕이 우리를 다스린다면 지금보다 강한 나라, 평안한 나라, 부요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께 왕을 세워 달라는 이야기를 아뢰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삼상 8:7) 그들이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하나님이 왕이셨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셨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는데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붙잡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떼를 쓰는 이스라엘에게 왕을 세워주셨습니다. 그래서 더 평안하였습니까? 더 안정되었습니까? 더 강건해졌습니까? 아닙니다. 왕은 백성들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백성의 것을 빼앗았습니다.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앞장서서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왕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솔로몬 임금이 우상 숭배하는 일에 앞장섬으로 나라가 둘로 갈라져 북 이스라엘 나라, 남 유대 나라가 되었습니다. 왕이 앞장서서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 나라에 멸망을 당하고 남쪽 유대 나라는 바벨론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야 하나님의 능력과 예수님의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나라는 마음 혼인잔치에 가셨습니다. 혼인잔치에 꼭 있어야 하는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께 어떻게 해 보기를 부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종을 불러 명령하셨습니다. “돌 항아리 여섯이 있는데 물을 가져다 부어라.” 물을 가져다 붓자 다시 명령하셨습니다. “동 항아리에 있는 물을 잔치 상에 가져다주어라.” 종들은 물을 떠나 잔치 상에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맛본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왜 이제야 내어 왔느냐? 다른 잔치에 가면 먼저 좋은 것을 내고 후에 나쁜 것을 내는데, 이 집은 좋은 것을 나중에 내어 왔다.”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최고의 양질의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이 기적은 순종하는 종들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에 따지지 않고, 이유를 달지 않고 돌 항아리에 가져다 부었습니다. 돌 항아리의 물을 잔치 상에 가져다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고, 종들이 주인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고전4:20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입니다. 온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약한 것을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미련한 자를 지혜롭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왕이 되시면,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이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권능이 나타납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는 - 천국은 밀가루 반죽 속에 들어간 누룩이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밀가루 속에 누룩이 들어가면 반드시, 분명히 크게 부풀어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변화가 나타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누룩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한 것은 나쁜 누룩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능력이 없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내가 왕이고, 내 생각이 왕이고, 내 재물이 왕이고, 내 권세가 왕이기 때문입니다. 왕이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셨는데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 말씀하셔도 따라가지 않고 나를 믿어라 말씀하시는데 믿지 않고 네 몫의 십자가를 지라 말씀하시는데도 내 몫의 십자가를 지지 않고 겸손하라 말씀하시는데 겸손하지 않고 충성하라 말씀하시는데 충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교우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 하늘나라,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왕으로 통치하실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주인으로 다스리실 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삶의 왕이 되셔서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 삶 속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삶의 주인이 되셔서 예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삶 속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