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잔치에 초청 받은 사람들

천국 잔치에 초청 받은 사람들
눅14:15-24





어느 한 청년이 잔치를 준비하고 청첩장을 돌렸습니다. “○월 ○일 ○시에 ○○에서 ○○와 결혼을 합니다.” 주례자도 결정되었습니다. 장소는 조용하고 조촐한 곳이었습니다.

당일에 그와 아주 절친한 사람들이 초청되어갔습니다. 학교 은사를 비롯한 선후배들이 기대를 하고 예식장소에 가니 신랑이 정중히 그들을 맞아주었습니다. 주례자도 도착했습니다.

결혼식이 시작될 즈음 사람들은 누가 신부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여인일까?’ 모두들 궁금해서 기대하고 있을 때, 잠시 후 신랑이 한 여인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큰 종이에 선녀 같은 아리따운 여인을 안고서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항상 자기가 동경하고 그리던 여인을 동양화로 그리고서는 그림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그날의 결혼은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이 났습니다.

신부 없는 결혼식, 이것이 잔치가 될 수 있습니까? 참으로 허탈하고 화가 나는 잔치였습니다. 그날로 그 청년은 <또라이>로 찍히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하객 없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한 사람이 잔치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잔치가 열리는 그 시간에 정작 초청한 사람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오늘 17절 말씀에 보니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라고 합니다. 음식뿐 아니라 손님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 모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그 잔치에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신부가 없어서 잔치가 열리지 못할 수는 있어도, 신랑이 없어서 잔치가 취소될 수는 있어도, 하객이 없어서 잔치를 열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는 그렇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주인이 화가 나서 종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거리와 골목으로 가서 가난한 사람들, 병신들,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 오라”고 합니다.

종들은 주인의 말대로 거리로 골목으로 나가서 그들을 다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도 자리가 비어있습니다.

종들이 주인에게 그래도 자리가 비었다고 하자, 주인은 다시 종들에게 명합니다.(22)

그러면 길과 산울가로 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고 합니다.(23)

이렇게 해서 잔칫집에 손님은 차고 잔치는 시작됩니다.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1.하나님의 나라는 잔칫집과 같습니다.

성경은 종종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할 때 잔치에 비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⑴마 22장에 보면 비슷한 비유가 나옵니다.
왕이 아들의 결혼을 위해 베푼 혼인잔치를 말씀하시면서 천국은 마치 이 혼인잔치와 같다고 하십니다.

⑵마 25장에서는 종말론적인 삶에 대해서 잔칫집의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을 비유로 말씀합니다.

⑶눅 15장에서 세 가지의 비유가 나옵니다.
①잃어버린 양의 비유와
②잃은 한 드라크마의 비유,
③그리고 탕자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의 끝은 잔치를 베푸는 것으로 끝납니다.

㉮하나님 나라는 잔칫집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항상 기쁨으로 연결되고 기쁨으로 마칩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①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교회는 잔칫집과 같은 곳입니다.
②그리고 주일은 잔치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③교회는 무겁고 어두운 장소가 아닙니다.
④지나치게 무겁고 경건한 장소가 아닙니다.

⑤구약시대의 성전은 대체로 거룩과 성결을 중요시했습니다.
⑥일반 백성들은 성소와 지성소 안에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⑦오직 제사장만이 들어갔을 뿐입니다. 대체로 무거운 느낍니다.

⑧그러나 신약의 교회는 예배와 가르침, 친교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⑨행2장에 나타나는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보면 날마다 모이기에 힘쓰면서 예배와 가르침이 있었으며, 집에서 떡을 떼고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날마다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⑩교회는 잔칫집과 같은 마음, 그러한 표정, 그러한 감정, 분위기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⑪예배는 밝고 환하게 드려져야 합니다. 예배를 통한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⑫찬양이나, 기도나, 말씀을 들을 때나, 항상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이기에 주님의 잔치에 초대되어온 초청 받은 자로 참여해야 합니다.

⑬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잔칫집에서 봉사하는 사람들과 같은 밝고 환한 표정과 마음으로 사역해야 합니다.
⑭그리고 우리의 삶 자체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잔칫집에 다녀온 사람과 같이, 하나님 나라에 사는 사람과 같이 항상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⑮그리스도인은 근심 걱정을 접어버린 사람으로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아! 예수 믿는 사람은 저렇게 좋은가보구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2.잔칫집에는 관계된 사람을 초청합니다.

1)그러나 불행하게도 먼저 부름 받은 사람들을 모두가 거절합니다.

⑴(눅14:18)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이 사람은 밭을 샀기 때문에 불가불 가보아야 된다고 하고서는 밭으로 갑니다.
①이것은 물질과 재산에 빠져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밭은 물질, 재산의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돈 때문에, 돈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돈을 향해 마음이 가 있습니다.

②돈과 재산이라는 것은 막강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맘몬’ ‘맘모니즘’이라고 합니다.

③성경도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마 6:24절에서 주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시면서 섬김의 대상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④돈이 사랑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⑤이처럼 재물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땅이 하늘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우리에게 영원한 것을 줍니다.
㈏돈이 정신보다 귀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영원보다 더 값진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더 값지다고 생각하십니까??

⑵(눅14:19)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두 번째는 소를 샀기에 시험하러 가야된다고 합니다.(19) 소는 ‘일’과 ‘사업’을 의미합니다. 곧 일 때문에, 사업 때문에 잔치에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⑶(눅14:20)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세 번째로 장가들었기에 갈 수 없다고 한 사람이 있습니다.(20)

①이것은 ‘성’과 ‘사랑’으로 인한 핑계입니다.
②사람이 더 중요하기에 잔치에 응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③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고 사람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의 거절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이 땅에 많이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2)첫 번째 초청에 실패한 주인은 이제 누구든지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눅 14:21)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 오라

⑴시간을 가리지 않는 초청(전도)입니다.

①사실상 이 잔칫집 주인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혼인잔치에 손님을 청하고 있습니다.
②누가복음 14장 17절에 「잔치할 시간」을 정해 놓았던 사실을 보여 줍니다.
③그리고 1차, 2차, 3차에 이르도록 잔칫집에 손님을 초청하기 위하여 종들을 보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눅 14:17, 21, 22, 23)
④마태복음 20장에 나타난 포도원 비유 속에는 이른 아침 시간, 3시(9시), 6시(12시), 9시(오후 3시), 11시(오후 5시)가 있습니다.

⑤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포도원 주인은 장터(세상)에 놀고 있는 자들을 포도원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⑥사실상 저 에덴동산 문 밖인 역사의 이른 새벽부터 예수 재림하는 역사의 저녁까지, 하나님의 정해 놓으신 시간은 큰 임금의 잔칫집에 사람을 초청하는 시간입니다.

⑦세상에서 사람들이 꾸며 가는 역사의 시간은 알고 보면 하나님의 택자 구원을 위한 복음 운동의 시간입니다. 여기에 시간의 참된 의미와 본질이 있는 것입니다.

⑵장소를 가리지 않는 초청입니다.

①먼저 제일 가까운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사실상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 청하였던 종들이 살고 있던 지역입니다(눅 14:17). 이것은 예수님의 최후 분부 중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복음 전파의 첫 지역이 예루살렘이었습니다(행 1:8).

②그 다음 지역이「시내의 거리와 골목」이었습니다(눅 14:21). 사실상 복음 전파의 두 번째 지역인 유다를 의미합니다. 여자적(如字的)으로 말하면 ‘거리’는 ‘넓은 길’, ‘골목’은 ‘좁은 길’을 뜻합니다. 이른바 시내의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행 1:8).

③세 번째 지역은「길과 산울 가」(눅 14:23)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마리아와 땅 끝, 곧‘이방의 전지역’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행 1:8).

그러므로 어디에 살고 있는 사람이든지, 그곳에도 왕의 초청장은 전달되어야 합니다.

⑶또한 사람을 가리지 않는 초청(전도)입니다.
제1차 초청의 대상자들은 이른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일컫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4장 17절에 나오는「그 청하였던 자들」입니다.
예약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선적으로 초청의 대상이 된 자들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은 다 일치하게 왕의 잔치의 초청을 거절하였습니다. 큰 잔치, 왕자(王者)를 위한 잔치를 거절함에 동맹을 하였습니다. 거절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말하여 ‘세속주의’였습니다.

그런데
3. 정작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누굽니까?

(눅 14: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 오라 하니라
(눅 14:22)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눅 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눅 14: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⑴잔치 준비가 다 끝났는데 초청장을 받은 손님이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⑵모두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①장사하느라 바빠서 못 오고,
②집에 일이 있어서 못 오고,
③누구 만날 일이 있어서 올 수가 없다는 겁니다.

①밭을 샀기 때문에 오지 못하고
②소를 사서 시험하러 가야하기 때문에 못 오고

③장가들었기 때문에 못 온다고 말합니다.
④육신이 배부른 자들입니다.

그래서 노한 왕이 종들을 시켜, 거리와 골목에 나가
㉮가난한 사람들,
㉯불구자들, ㉰맹인들, ㉱절름발이들, 다 데려 오라고 명했습니다.
㉲그들은 평소 인간 대우받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랑에 굶주려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기쁨이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의 잔치에 초대를 받으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 왔습니다.

㉵감사하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①사실 예수님 당시, 하나님의 아들인 주님의 식탁을 채운 이들은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②오히려 가난한 자, 병든 자, 세리, 죄인들이 예수님의 주위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인자 가 이 땅에 온 것은 의인을 부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기 위함이라\'...(마9:13)

①실제로 우리의 주변에도 보면, 가난한 시절, 병들어 고통 당할 때 주님을 더 잘 영접하고 신실하게 믿는 경우를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②사람이란 참 이상합니다.

㉮전에는 그렇게 겸손하고 친절하던 사람이,
㉯전에는 그렇게 인정이 많던 사람이,
㉰무엇인가 좀 있게 되면 남은 안중에도 두지 않습니다.

㉱전에는 그렇게 신실하던 믿음의 사람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하나님을 멀리하기도 합니다.
㉲건강할 때, \'부할 때, \'사업이 한창 잘될 때, 나이가 훨씬 젊었을 때,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들이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 돈,, 그 건강, 그 젊음이, 언제까지 내 것 입니까?

본문에 보십시오! 본문과 같은 마태복음을 보면 초청자가 왕입니다.
①왕이 초청하는 잔치라면 이 얼마나 굉장한 잔치입니까?
②그런데 그것을 가소롭게 여기고 무시하고 있습니다.

⑴밭을 샀기에 불가 불 나가 보야 합니다.
⑵소를 샀기에 시험하러 가야 합니다.
⑶장가를 들었으니 가지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이유들이 많습니다.

가만히 보면 다 육신의 배가 불러 남부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인은
⑴가난하고
⑵병들고
⑶힘없는 사람들을 찾아서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들은 모두 이렇게
⑴이방인이요
⑵힘없고
⑶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왕의 잔치에 참석하게 된 복된 사람들입니다.

이 기쁨의 좋은 것을 영원토록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