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난미 나라의 합당한 일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일꾼/눅9:51-62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일꾼
눅9:51-62





인생에서 가치있게 남는 것은 관계(關係/Relationship)뿐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는 연습도 필요하지만 늘 최후를 준비하는 마음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기에 적수공권(赤手空拳)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셨기에 그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t성경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부름받은 일꾼으로서의 본분은 무엇인지, 어떤 일꾼의 모습으로 서야 할지를 점검해 봅시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51절).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 예루살렘 길을 올라가기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꾼의 자세입니다. 좋고 가치 있는 일은 우연히 되지 않고 굳은 결심이 필요합니다. 우연히 봉사하면 우연히 무너지고 열매가 없습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도 굳은 결심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축복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실 굳은 결심을 했지만 종종 오해를 받았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 가려면 사마리아를 지나야 했고 거기서 하루정도를 유숙해야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먼저 제자들을 파송했는데 그들은 그만 사마리아인에게 배척받아 되돌아왔습니다(51-52절). 몇 명의 주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셨지만 그런 복된 마음이 무시되었습니다. 우리가 일꾼으로서 일할 때 안타까운 것은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도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꾼이 오해로 인해 받는 일이 너무 싫어 맡은 일을 팽개쳐 버린다면 좋은 결과는 결코 생기지 않습니다.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답게 성격이 급한 야고보와 요한은 동료들이 사마리아에서 배척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님께 즉각 요청합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54절).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교회 내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에, 성격도, 안목도, 전체를 보는 시각도 다릅니다. 다르기에 오히려 교회의 성도는 함께 더불어서 살아가야 됩니다. 서로 격려해 주고, 한 사람도 낙심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예루살렘으로 향한 길에서 제자들을 어떤 일꾼으로 훈련시키길 원하셨는지 본문에 나타난 세 사람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주님은 값을 치르면서 주님을 따르는 일꾼을 원하십니다(57-58절).

“길가실 때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57절).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겠다고 담대하게 나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후 교회생활이나 봉사생활에 있어서 호언장담(豪言壯談)할 때가 있습니다. 큰 소리친다고, 호언장담한다고 일들이 다 이루어 지는게 아닙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58절). 예수님은 주님 자신을 따르는 의미를 먼저 점검해 보길 원하셨습니다. 충동적으로, 감정적으로 일을 감당하는 것은 결코 유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한때 우리가 감정적으로 고양되어 있다고 해서,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는보장은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의미를 사려깊게 헤아리면서 초지일관(初志一貫)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한국교회는 주님 앞에서 면류관은 쓰려고 앞을 다투지만 막상 가시밭길은 걷지 않으려고 합니다. 값을 치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제자로서의 값을 치르지 않는 교회는 변질되고 허약한 교회가 됩니다. 부름받은 성도는 복음의 영광과 하나님의 자녀됨의 의미를 삶을 통하여 확증해야 됩니다. 영광에는 관심이 있지만 섬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면, 주님 앞에 올바로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교우여러분! 여러분은 면류관에 관심이 있는것처럼 십자가를 지는 일에도 관심이 있습니까?

둘째, 주님은 주님의 일에 우선순위를 두는 일꾼이 되길 원하십니다(59-60절).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59절). 이 사람은 가족을 핑계삼아 자신을 향한 주님의 부르심을 유보하고 의무 이행을 지체하는 사람입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확정하지 못하고, 여전히 쫓겨 다니는 인생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유익을 취하는 일에는 빨랐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 데는 느렸습니다. 그 중에서 가시밭의 백합화처럼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주님의 일에 발 빠르고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이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를 빌립보 교회에 추천하여 파송하였던 것입니다(빌립보서 2:21-23).

오늘날도 자신에 유익되는 일에는 발빠르게 움직이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느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지 않으면, 우리 인생의 무대가 사라지기까지 마지막 주님 앞에 설 때까지도 시원하게 헌신 한번 못해볼 수가 있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사무엘상 2:30).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대한 분명한 우선순위를 확정하고 살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주님의 일에 삶의 최우선 순위를 두는 사람을 통해 여전히 주님의 뜻을 펼쳐나가십니다.

셋째, 주님은 주님께 초지일관하고 집중하며 따르는 일꾼이 되길 원하십니다(61절).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더라”(61-62절). 여기 “합당하다”는 말은 “적합하다”, “질서가 세워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준비되고 쓰임 받는 사람은 손에 쟁기를 잡고 앞을 향해서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열심 있는 것 같다가도 나중에 변질되는 사람이 아닌 초지일관하고 집중(concentration)하는 사람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찌어다.”(에베소서 6:24). 변함없이 주님께 집중해서 삶의 우선순위로 모시는 주의 일꾼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복음6:4,6,18). 우리가 기도하고 구제하고 금식할 때 드러나게 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늘 아버지께서 갚아 주시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신뢰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세워 준 자리에서 묵묵히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스스로를 세우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①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사용하심에 감격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 직분을 받을 때 두근거렸던 마음이 지금도 뜨겁게 살아 있다면, 그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존경 받고 쓰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감격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계속 사용하십니다. 부르심의 영광을 진정 아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 우리 주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감격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주님의 부르심과 직분 주심을 평생의 감격으로 가슴에 안고 살았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맞기심이니”(디모데전서1:12)

새로남 믿음의 가족 여러분!

감사하는 마음은 부르심에 대한 최선의 응답입니다. 여러분의 감사지수는 얼마입니까?



② 우리는 하늘나라의 상급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본질적인 복, 영원한 복은 현존하는 지상세계가 아닌 천상에서 받고 누리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은 빨리 투자해서 빨리 이익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 일꾼된 우리의 평가는 하늘나라에서 받습니다. 주를 위해 목숨 바친 순교자들은 이 땅에서는 아무런 영광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썩지 않을 영원한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우리 안목을 높여 정말 소중한 것은 지상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계산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여유를 가질 수 있고 기쁘게 주 앞에 헌신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배되었으므로 나뿐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디모데후서 4장 7~8절)

사랑하는 새로남 믿음의 가족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주님을 따르는 의미를 사려 깊게 헤아리면서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주님의 일에 발빠른 사람, 주님의 일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이 다 됩시다.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초지일관하고 주님의 부르심에 집중(concentration)하여 묵묵히 주의 일을 감당하는 주의 일꾼이 됩시다.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뜨거운 감격을 가지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을 소망합시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바탕으로 기쁘게 봉사하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일꾼으로 스스로를 굳게 세웁시다. 우리 모두 품격 있는 성도되어 품격 있는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를 세워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