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합당 한자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눅9:51-62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
눅9:51-62





오래 전 수천만 명의 생명을 빼앗아 간 흑사병의 공포가 온 지구를 뒤덮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또 다른 공포인 광 우병의 공포가 세계 수십 억의 인구로 하여금 숨을 죽이게 하고 있습니다.
광우병은 1986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알려진 병으로 15년이 지나면서 안심할만하다고 여겨진 병입니다.
그런데 지난 해 11월 22일 광우병의 청정지역이라고 여겨지던 독일에서 발병되었고 이틀 뒤인 11월 24일 유럽 최후의 천해 방목지대이며 청정지역이라고 알려진 포르투칼의 섬들인 아조레스 제도에서 발견되면서 온 세계가 벌벌 떨게 되었습니다.

이 병은 중추신경계를 마비하는 병으로 감염에서 발병까지는 장시간 소요되지만 일단 발병하면 몇 개월에서 몇 년 내 사망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러나 치료제는 아직 전무합니다. 이 병의 바이러스는 정상적인 조리법은 물론 고온살균에도 박멸이 불가능하므로 그 불안은 점점 더해갑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놀라고 두려워해야 할 일은 이런 무서운 병이 생기 게 된 원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방법보다 더 기발하고 뛰어난 방법으로 소를 빨리 키워보겠다는 인간들의 욕심 때문입 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를 초식동물로 만드셨습니다.
풀과 여물을 먹고 자라도록 만든 이 초식동물에게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동물의 내장과 뼈가 든 폐기물로 동물성 사료를 만들어 먹였습니다.
런데 소는 잘 자랐지만 이런 병이 생겨난 것입니다. 소는 아주 영민한 동물이기 때문에 쇠고기라면 국물이 섞인 물로 소죽을 끓여주어도 먹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 인데 말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은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세상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스스로 똑똑한 채 하다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더 빨리 가는 듯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듯 하기도 합니다.
그러 나 하는 듯 할 뿐 실제로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그로 인해서 여지없이 떨어질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잠깐 웃고 있을 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바로 알 때 세상을 바로 알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9장은 미련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을 바로 알게되면 신자된 사람들 그 리고 그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무엇을 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잘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병 고 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신 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그들을 파송시키셨는데 파송된 제자들이 나가서 대단한 일을 하자 헤 롯왕이 이 소식을 듣고 예수가 하는 일들은 세례요한과 같았지만 세례요한은 이미 자기가 죽였기 때문에 아주 궁금해했습 니다(1-9절).

그러던 차에 예수님께서 또 다시 아주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남자들만 계수하여 한 오천 명이 모인 들에서 오병이 어 즉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이들을 모두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남자만 오천 명이라 하므로 여자와 아 이들을 합하면 족히 만 명 또는 이만 명까지 육박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어느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 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말하며 제자들 또한 당신을 누구라고 하는가에 대해서 물으셨습니다(10-22절). 그 일이 있고 난 후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 중 세 제자만 데리고 산에 올라가셔서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고 옛날에 죽 었던 그 위대했던 사람 모세와 엘리야 두 분이 함께 나타나서 예수님과 이야기하는 아주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29-36절).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자 예수님을 맞이하는 군중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붙잡고 자기 아들이 간질병에 걸려 제자들 에게 고쳐달라고 하였지만 고치지 못하였다는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간질병 걸린 어린 아이를 고쳐주시고 난 후 제자들에게 이제 당신은 십자가를 져야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의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아예 예수님 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십자가에 대해서 말을 붙이려고 하지도 않고 누가 더 큰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였습니 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43-62절).

이런 여러 가지 말씀들과 일들이 본문의 내용인데 이 모든 일들을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세 가지를 여러분들에게 말 씀하셨습니다. 하나는 주님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다른 하나는 신자들과 교회들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님을 좇으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맨 먼저 말씀하시는 바는 하나님을, 주님을 누가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애쓰고 스스로 똑똑한 채 하고 이 세상에서 말하는 지식과 지혜가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스스로 계 시하시지 아니하시면 사람들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당신을 계시하시는 것일까요? 오 늘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는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 우리 주님께 순종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만 당신을 계시하신 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당신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주님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주님을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 주님께 순종하려고 하는 사람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변화산에서 세 제자가 주님을 따라갔을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저희가 무서워하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 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34절) 말씀하신 음성이었습니다. 여기서 들 으라는 것은 귀로 듣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도 예수에 대해서 많이 알고 많은 말을 하기도 하며 토론하여 이기기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거나 예수가 걸었던 길이나 예수가 살았던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한 가 지 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소위 스스로 똑똑하다고 하는 신자들, 겉모습만 신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많이 알기도 하고 또한 많이 알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마음 속에 감동 을 주실 때에 손과 다리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머리로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할지라도 사실 그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며 몸과 마음이 따라야만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오늘 헤롯과 베드로의 비유를 통해서 아주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헤롯은 아주 똑똑한 사람이었고 예수님에 대 해서 많은 궁금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호기심만 가졌을 뿐 예수님에 대해서 진정 배우고 따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 다.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로 호기심만으로 알려고 하는 것으로 진정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제 자들에게 무리가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물었을 때 그들의 대답은 세례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 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말 예수님을 따르고 생명까지 내어놓고 주님께서 가신 그 길 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을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대변인 격인 베드로는 하나 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즉 메시야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지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정말로 주님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 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세상에서 똑똑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특별히 성경을 공부하지 않았다고 할지 라도 정말로 주님을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알 수 있도록 되어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다음은 주님을 바로 알게된 신자들과 교회들은 무엇을 하게되며 그 사명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첫 번째 임무는 전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교회들, 교회 다니는 신자들에게서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내 교회를 부흥시키려고 하는 이 안타까운 모습은 하나님 앞에 참으로 부끄러울 뿐입니 다. 더구나 이제 교회에 나왔으니 구원받았다는 일에 안주하려는 모습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베드로가 그러하 였고 야보고와 요한이 그러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가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후 대표격인 베드로 가 주님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 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33절) 하고 고백하였습니다. 어 떻게 해야할 것인지 또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를 믿었으니 구원받을 것이므로 편안하 게 예수를 믿자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천국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 무엇보다 주님을 알게 되었으면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 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보내시며(1-2절).. 삶을 통해서, 입술을 통해서 복음을 증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리 쉽지 않고 삶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 는 것은 돈이 들고 힘도 들며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므로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렇게 신실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교회로 살아가는 교회들에게 갖가지 필요한 것들을 다 주신다는 것을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신다는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1절). 여러분, 여러분들이 신실하다 면 하나님께서 이런 능력과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 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3절). 필요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겠다는 것입 니다. 그리고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4절).. 여러분과 함께 동역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보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당하십시오. 힘을 내 십시오. 결단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홀로 고통 당하게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두 번째, 그러한 교회, 그러한 신자들이 해야할 일은 가난하고 어렵고 절박한 사람들을 돌보는 책임이라고 말씀하십니 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장정들만 계수하여 오천 명이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 이 모였습니까?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 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 있는 여기가 빈 들이니이다 이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12-13절)..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신자들이 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잘 아실 것은 이 일을 시작하기 만 하면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신 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시니 먹고 다 배불렀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과 교회는 하는 시늉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공급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또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할 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실되고 충성된 사람에게는 더 채워주신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주라 그리하 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 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여러분들이 하는 대로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한 가지 더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이 일을 할 때 일회적이 아니라 계속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여러분들이 정성껏 헌금하시는 그 헌금으로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감 동을 주셔서 별도 헌금을 하여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원하십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여러 명목으로 헌금하여 예 수를 믿든 믿지 아니하든 간에 세계 여러 곳에 있는 많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정성껏 헌금하시는 분이 많이 계십니 다.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본문에서 남자만 오천 명이니 수천 명 수만 명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열 두 바구니를 거두니라(17절).. 남은 것으로 또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모자라면 하나님께서 또 주 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누가복음 9장은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고발하시고 계십니다. 주님으로부터 이 런 약속을 받고서도 여전히 너무 부족함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신앙고백을 하였지만 여전히 미성숙한 제자들, 신자들 그리고 교회의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병을 고칠 능 력을 주셨지만 그들은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는 십자가를 질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그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 기우리라 하시되 저희가 이 말씀을 알지 못하였나니 이는 저희로 깨닫지 못하게 숨김이 되었음이라 또 저희는 이 말 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44-45절).. 말조차 꺼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려 하는 이런 상황에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큰가 다투는 모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용기도 없었습니다. 예수를 좇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 도 집이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도망가버렸습니다(59-61절). 자기가 결단하고 움직일 때 가 되면 이처럼 용기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제해야한다 사랑해야한다고 입으로는 별 소리를 다하다 막상 해야 할 때가 되면 꽁지를 내리는 부끄러운 모습을 우리 주님께서 고발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가슴이 넉넉한 것도 아닙니 다. 함께 따르지 않는다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 좇는 일을 금하였다는 요한의 말에 주님께서는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 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49-50절). 뿐만 아닙니다.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저희가 가서 예 수를 예비하려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마을에 제자들이 먼저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사마리아가 목적이 아니라 예루살 렘으로 가신다는 소리를 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제자들이 주여 우리가 불을 명 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고 말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예수께서 돌아보시고 꾸짖으 신 후 함께 다른 촌으로 갔습니다(53-56절). 이러한 모습은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제는 용기를 가지고 가슴을 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은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일이요 손해보는 일들도 참으로 많고 무시당하는 일들도 참 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 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24절).. 우리 주님은 능력의 주님, 권세의 주님이십니다. 정말 로 여러분들이 주님을 바로 알고 주님께 순종하고 충성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이 가지고 계신 권세와 능력을 주시고 여러분들은 아무리 험한 세상에서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웃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 주님께서 만드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