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신앙 막15:42-46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리마대란 지역 이름으로서 사무엘 시대에 나오는 예루살렘 북서쪽 20마일 되는 \"라마다임소빔\"입니다. 그는 평범한 유대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존경받는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율법에 철저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부자였으며(마 27:57),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눅 24:50). 그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안할 때 찬성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며(눅 23:51), 예수님을 은밀히 따르던 제자였습니다(요 19:38).
당시 산헤드린은 이스라엘에 70인으로 구성된 국회의원으로서 활동하던 명예와 지위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오늘 이 시대 살아가고 있는 크리스찬에게 귀한 은혜를 주는 인물입니다. 성경에 많은 신앙의 인물 중에 모델이 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모든 인물은 시대에 따라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속에 사용하시는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시대에 맞는 신앙의 사람이 길러지기를 원합니다.
1. 요셉의 신앙은 공개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요 19:38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던 사람\"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있었지만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드러나게 예수님을 믿거나 예수님을 따르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 눈치 채이지 않게 마음속으로만 믿었던 것입니다.
아마 지금도 북한이나 중국 땅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숨어서 믿던 신앙이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이제 드러난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예수님이 아리마대 요셉이 파 놓은 무덤에 들어간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사53:9절에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라고 한 것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부자의 무덤에 들어가게 되실 것을 이미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을 보자 제자들처럼 낙심하고 도망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이곳은 마음으로 믿었던 신앙이 바깥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도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온전케 되었도다 하고 하였습니다.(약 2:22)
진정한 믿음은 지정의가 조화된 전인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행동으로 나타난 믿음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2. 용기있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을 보자 제자들처럼 낙심하고 도망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막15:43절에 보면,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당돌하게\" (Boldly)시체를 요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습니다. 빌라도가 어떻게 반응할지, 그리고 산헤드린의 미움과 징계를 무릅쓰고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가서 예수님 편에 서게 되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서 유명인이었던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했던 것은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의 미움과 특히 산헤드린 공회의 거센 핍박과 징계를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시신을 싸기 위해서 세마포를 샀으며 자기를 위하여 예비한 무덤마저 예수님께 기꺼이 드렸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의 시신을 만짐으로 부정했기 때문에 1주일 동안 유대인의 큰 명절인 유월절에도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유월절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며 비난거리가 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수모와 불이익, 그리고 생명의 위협까지도 감수하면서 예수님의 시신을 돌본 요셉의 행동은 3년 동안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진정한 용기를 가지고 예수님을 좇았던 요셉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때로는 우리의 지위와 권세, 명예와 재물에 희생과 위협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예수님을 위해서 그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모든 성도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용기인 것입니다.
3.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눅23:51이나 마15:43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막 15:43절 맨 마지막 에 보시면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었다가 아닙니다. 소위 현재 진행형으로 씌여 있다는 것은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린다 말입니다.
예수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상황이 끝났다고 그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아직도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예수가 왔을 때 그리고 그가 메시야임을 확신했을 때 바로 그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예수님을 통해서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의 시작을 어떤 메시지의 선포로 시작하셨습니까?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고 하셨으며 (막 1:15) 마지막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행 1:3) 세레요한도 바을도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였습니다. (행 28:31)
하나님의 나라는 신구약 성경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1) 장소적인 의미로서 완성적이고 미래적이며 장차 우리가 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그곳은 가라지가 없습니다. 알곡만 존재합니다. 천상의 교회입니다. 승리적 교회입니다. 고통도 눈물도 슬픔도 없는 영원한 세 에루살렘입니다.
2) 주님이 현재 다스리시는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와 나라가 온전히 주님의 통치를 받으면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님의 지배하심, 설령의 충만함은 곧 나의 심령에 천국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내면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마 12:28) 그래서 우리는 진정으로 주인되신 예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Kingship, Lordship) 참된 신자는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나라를 구하는 삶은 우리에게 우선 순위입니다. 그나라를 구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을 주십니다. 요셉은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장례 나 잘 치러 드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사건을 주목하면서 더욱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되심을, 구세주 되심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 분은 기어이 그가 예언하신 그대로 다시 살아 날 것이다. 마태복음의 기사에 보면 그냥 무덤이 아니라 새 무덤을 준비합니다. 정결 한 세마포를 준비하고 그리고 새 무덤, 아무도 쓰이지 않은 새로운 무덤을 준비합니다. 주님은 여기에서 계시다가, 안식하시다가 일어나실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가운데 완성하시고 야 말 것이다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 그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서 그는 기쁘게 자기의 무덤을 내어 놓았습니다.
자기 재산을 내어놓은 것이지요.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을 내어 놓습니다. 그는 이제 지상의 부요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저 영원 한 명예, 하늘의 부요를 찾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땅의 명예, 땅의 이름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명예. 사람들은 나를 몰라주어도 좋다.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하고 나는 지금까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나를 알아주신다면,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가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는 일에 도움이 될 수가 있다면 기꺼이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주 앞에 내어 놓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빛깔을 달리합니다. 그의 삶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붙잡히기 시작합니다. 쓰임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의 인생은 역동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삶은 찬란한 빛깔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움을 받고 성령충만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진짜 인생을 살아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의 시선은 더 이상 순간적인 이 땅 에 있는 것, 지나가 버릴 명예, 지나 가 버릴 이름, 지나가 버릴 부요에 그의 관심이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의 선택, 그의 결단은 영 원을 향한 선택이었고 영원을 향한 결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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