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왕권을 이어 받는 지혜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이어받는 지혜/왕상1:1-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이어받는 지혜
왕상1:1-





들어가는 말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공연을 출중히 잘 수행하고 무대에서 내려 옵니다.
그리고 그 무대에 솔로몬을 올리십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그 아름다운 공연을 앞두고 오늘 본문에서는 아도니아와 솔로몬 사이에 왕직 계승을 위한 숨돌리기 힘든 급박한 상황이 전개됩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결국 왕좌에 오름으로 제1장의 막은 내립니다.

어떻게 왕좌가 솔로몬에게 주어졌을까요?
왜 아도니아는 여러가지 좋은 조건을 구비하고도 왕권을 얻는데 실패했을까요?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씀을 듣는데 이 왕 같은 제사장직분을 성공적으로 이어받는 지혜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다윗 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습니다. 이제 떨어질 날을 기다리며 매달려 있는 마지막 사과와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그 마지막 노년에 까지 그의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 2절을 함께 읽으시면 하나님의 그를 향한 사랑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 신복이 왕께 고하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저로 왕을 모셔 봉양하고 왕의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게 하리이다 하고”

수넴 여자 아비삭은 다윗의 마지막 생애에 곁에 있으면서 그를 돕는 자요 위로자입니다. 우리와는 상관 없는 특별한 하나님의 배려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성도들에게는 이보다 더 놀라운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우선 주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보혜사(파라클에이토스)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우리를 돕는자이십니다. 돕도록 우리 곁에 부름을 받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심판대에 나갈 때에도 동행하실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보혜사 성령은 우리의 위로자이십니다.



2. 아도니아는 스스로 왕권을 구했습니다.


1] 아도니아는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도니아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였습니다.(왕상1:6)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왕상1:6)

2] 그러나아버지 다윗 왕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왕의 임종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를 눈치 챈 아도니아는 압살롬의 뒤를 이은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불의한 야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야욕을 채울 음모를 꾸미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권을 얻기 위해서 다윗왕에게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다윗 왕과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왕을 철저히 소외시켰습니다. 다윗왕은 그에게 있어 극복의 대상이지 필요한 분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연약하니까, 더 이상 힘이 없으니까 그의 왕권을 얻는 데 필요 충분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3] 아도니아는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했습니다.

왕의 선택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아는 스스로 왕권을 찾습니다.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 배 오십인을 예비하니”

아도니아의 왕권에 대한 욕심이 죄를 낳고, 아도니야를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복있는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으면,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삶이 바로 인간 행복의 시작입니다.



4] 하나님께서는 그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아도니아는 스스로 높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낮추셨습니다.

내가 왕이되리라 결심하였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 배 오십인을 예비하였습니다.

아도니아는 형 압살롬이 죽었으니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기로 생각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13,17,30)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저희가 도우나(왕상1:7)

모든 계획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3.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렸습니다.


1]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렸습니다. 왕위찬탈의 음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며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2]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13,17,30)

기다림은 믿음이 있는 자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5일장에 다녀오는 신랑을 기다리는 아낙네의 마음처럼 기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 시간 반을 기다리다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골목길로 들어갔더니 버스가 오는 것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듯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끝까지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3]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기다림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하신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셨습니다.

“내가 이전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네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날 그대로 행하리라”(30)

기다리던 솔로몬 위에 기름은 부어졌고, 그를 위해 양각 나팔은 울렸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인생이란 하나님 앞에 펼쳐진 무대와 같아서 그 무대는 일정 기간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주어지지만 자신이 맡은 공연이 마쳐지면 내려와야만 하는 연극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좀 짧게, 어떤 사람은 좀 길게 무대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좀 중요한 듯한 주역을 맡고 어떤 사람은 덜 중요해 보이는 조연이나 아역을 맡지만 그 어느 것도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무대에 오르는 배우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대에 올리는 연출가와 같으십니다.
어떤 배역을 맡겨야 할지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언제 무대에 올라야 하는 지를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그 대표적인 신앙인입니다. 천하에 자랑스러운 믿음의 용장도 그 갑옷을 벗어야 하는 날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도 왕좌에서 내려와야 하는 날이 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뿐만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까지 헤쳐온 하나님의 양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상 앞에 앉아야만 하는 날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