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원리

천국의 원리/막4:30-32

천국의 원리
막4:30-32





앤드류 매튜스라는 작가는 \"인생은 패턴이 결정한다\"하였습니다. 즉 그의 생활 습관, 생활의 원리가 그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어떤 원리, 어떤 습관에 따라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나눈 말씀도 바로 이런 삶의 원리였습니다. 지난 주의 말씀은 씨뿌리는 비유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마음은 항상 부정적이고, 굳게 생각하고, 변덕스럽게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항상 배우고,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살았습니다. 거기에서 열매를 맺는 삶, 맺지 못하는 삶으로 갈라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어떤 사람이 아주 작은 겨자씨를 심었습니다. 그 작은 것이 자라서 나물보다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가지가 펼쳐지게 되고 가지가 큰 나무가 되었을 때 여러 가지 새들이 와서 깃들이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이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기대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바로 이런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겨자씨로부터 출발을 시켜 위대한 삶으로 만들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작은 것에서 출발하는 천국

오늘 말씀에 \"천국은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하였습니다. 천국이 아주 작게 시작합니다. 풍성한 것은 작은 것에서 출발합니다. 위대한 삶은 처음부터 영웅적으로 시작을 하지 않습니다. 작은 것으로부터 출발을 합니다. 예수님 보십시오. 예수님은 언제나 지극히 작은 곳에 계셨습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가 아니라 아무도 없는 외로운 곳에 계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생각이요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도 보며는 학벌도 지위도 없는 어부들이었고 숫자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 전부를 이들에게 쏟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천명 만명이 모이는 민중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고관들과 같이 있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창녀와 같이 계셨고 죄인들, 세리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초대 교회도 처음에 얼마나 미미하였습니까? 백이십명으로 시작된 초대교인들은 핍박 속에서 이리 저리 도망다녔고 감옥에 갇혔고 사자에게 먹혔습니다. 그러나 모진 학대와 고난을 받으면서 초대교는 잡초처럼 자랐습니다. 삼천명이 모였습니다. 남자만 오천명이 되었습니다. 허다란 무리의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방법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살펴봅시다.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시작했는지 모릅니다. 타의에 의해서 교회에 나옵니다. 나왔지만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기만 하지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나의 처음 신앙은 아주 작습니다. 겨자씨만큼 작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밭에 떨어진 신앙의 씨앗은 자라기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이 옥토의 마음만 있다면 그 씨앗은 자라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랐듯이 우리가 신령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따르면 따를수록 이제는 우리가 말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여 갑니다. 그럴 때 모든 신앙 선배들의 영웅적인 삶들이 우리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까지 우리가 자랍니다.

그런데 이 성장은 막연하게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원리가 있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성숙하게 되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 원리가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 풍성한 천국을 이루는 원리, 삶의 습관들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1. 신앙의 열매는 영성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생활을 출발하였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이제부터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려서 그분의 양분을 받아 먹고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구원을 얻은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그의 영혼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영성이요 신앙의 첫 출발입니다.

신앙은 예수님께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영의 양식과 삶의 길이 예수님께 있음을 알고 그 예수님께 뿌리는 내리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철학, 신념, 도덕, 윤리, 부, 권력, 자기 확신, 자기 암시 등으로 삶의 양식을 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 이런 것들이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각에서 보면 이런 것들은 무성한 풀과 같습니다. 영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영원한 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영원한 시각을 가지고 모든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보다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안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의 열매를 영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에게 뿌리는 내리는 일에 온 힘을 다하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로새서2:6-7)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까? 그러면 무어보다도 예수님께 뿌리를 깊이 내리십시오. 인생은 뿌리가 깊을 때 안정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뿌리가 깊을 때 견고하게 삽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에게로 나아가십시오.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배우십시오. 예수님을 어떻게 사귈 것인가를 배우십시오. 교회는 일을 먼저 배우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뿌리 내림을 먼저 배우는 곳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신앙생활의 첫 단추입니다. 신앙의 첫 열매는 영성인 것입니다.

2. 영성의 열매는 인격입니다.

예수님께 뿌리를 깊게 내릴수록 그의 삶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예수님의 기초 위에 집을 짓기 때문에 자연히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갑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면 예수님 처럼 온유하게 살 것입니다. 이런 분은 마음이 넓습니다. 남을 이해할 줄 알고, 용납하고 사랑할 줄 압니다. 이들은 바다와 같습니다. 바다를 보십시오. 바다는 모든 강들보다 가장 낮은데 있습니다. 바다는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다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변화를 시킵니다. 바다에는 여러 종류의 고기가 다 있습니다. 모든 것을 품는 것이 바다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은 자신을 절제할 줄압니다. 자기하고 싶은 대로 말하거나 자기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화를 내지도 않고, 함부로 말을 하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상대방을 배려합니다. 자기하고 싶은데로야 장사할 때 터무니 없이 많은 이익을 내고 싶지만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당하게 장사도 합니다. 거짓을 모릅니다. 좀더 즐기며 살고 싶지만 그러나 더 의롭고 가치있는 일을 위해서 자신을 절제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빈다. 노자는 말했습니다. \"남을 이기는 자는 힘이 있다. 그러나 자기를 이기는 자는 강하다\"했습니다. 예수님은 닮은 자들은 자신을 잘 다스릴 줄 압니다.

또한 예수님을 닮은 자들은 자족을 할줄 압니다. 원죄에 빠진 인간들은 항상 자족할 줄모릅니다. 불만이 그 안에 가득합니다. 탐하고 삽니다. 소유의 욕망으로 가득찹니다. 에덴동산에 사는 아담과 하와가 무엇을 탐냈습니까?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탐냈습니다. 하나님의 것까지 탐내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유고와 나토가 서로 전쟁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닮아가면 자족할 줄압니다. 자신의 삶의 잔이 항상 넘침을 압니다. 왭니까? 천하보다 크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엔 하이머는 말했습니다. \"미련한 자는 먼곳에서 행복을 찾고 현명한 자는 자기 발 밑에서 행복을 찾는다. 예수님을 닮은 자들은 가까이 계시는,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에게서 행복을 찾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 말씀과 기도로 뿌리는 내리는 자들은 점점 예수님의 인격을 닮게 됩니다. 그에게서는 이 땅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인격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인격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은 이웃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갑니까? 사랑의 모습입니다. 헨리 나우엔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이웃을 적개심에서 환대로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닮은 자들도, 그들이 만나는 사람, 만나는 일들을 모두 사랑으로 다가섭니다. 오늘날 가장 큰 병은 전쟁이나, 육체의 병이 아닙니다. 전쟁은 휴전하면 되는 것이고, 육체의 병은 약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 고독, 무기력, 미워함등은 그 무엇으로 고칠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으로만 고칩니다. 이 세상에는 빵 한 조각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사랑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은 더 많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에 사랑으로 가득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면 우리 안에 사랑이 넘치게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사랑을 나누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실천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은 사람도 아니요,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사랑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죽어가는 사람의 손을 잡아 준다든지, 한 잔의 물을 준다든지, 빵을 나누어 준다든지, 어려운 자들을 돕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만족하게 될 것이고, 누군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게 되고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얻게 됩니다. 사랑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게됩니다. 비록 유창한 설교를 하지 않더라도 사랑만 하게되면 그들은 하나님을 경험하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예수님을 그 안에서 보게 됩니다.

4. 사랑의 열매는 사역입니다.

사랑이 그에게서 넘치면 그는 반드시 이웃을 향하게 되어있습니다. 사랑은 이웃을 향하여 사역을 하도록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사역은 사역 자체로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교사를 합니까? 가르치기 위해서 교사를 한다면 교사의 의미가 없습니다. 성가대를 합니까? 노래를 부리기 위해서 성가대를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아예 노래방에가서 목이 터져라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더 재미있을지 모릅니다. 열린 예배를 합니까? 열린 예배에서 배역을 맡는 것으로만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 어떤 봉사이든 봉사란 어떤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봉사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유익도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지고 이웃에게로 나가십시오.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사역들을 이루십시오. 사랑하는 마음으로 중보기도의 사역에 나가십시오.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도대의 사역을 하십시오. 어린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교사를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성가대에서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결식자들을 돌보는 것이고, 어려운 자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복지관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복지 헌금을 하는 것이고, 러시아 사람들의 영혼들이 불쌍하기 때문에 선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사랑을 키워야 합니다. 사랑을 연습하여야합니다. 사랑을 훈련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죽기 까지 사랑해야 하고,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주고 또 주어야 합니다. 저는 때로 가만히 눈을 감고 우리의 사랑을 주어야 할 곳을 생각해 보곤합니다. 그럴때마다 우리들이 사랑을 주며 사역을 해야 할 부분들이 너무나 많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 사랑의 사역을 해야 할 부분들을 생각해보면 이제 우리의 출발은 겨자씨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으로 굳게 기도합니다. \"실천하는 사랑으로 이 모든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나가게 하옵소서\" 사랑의 열매는 사역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주어 사랑하며 사역하는 것입니다.

5. 사역의 열매는 풍성한 삶입니다.

사랑의 사역은 언제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겨자씨가 옥토에 떨어져 잘 자랐습니다. 그랬더니 가지가 나고 많은 새들이 와서 깃들이는 것처럼 사랑의 사역은 언제나 주님의 것으로 풍성하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으로 다가서며 사역을 할 때 거기에 언제나 하나님의 풍성한 임재가 있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고 말씀하셨습니다.

풍성한 것이 무엇입니까? 편안한 것입니까? 물질이 많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풍성하다는 것은 물질이 많다, 내가 편안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늘의 생명으로 가득찬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른 삶이요, 의미있는 삶이요, 행복한 삶이요, 능력있는 삶이요, 영원한 삶입니다.

예수님 보십시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인간적으로 매우 불편한 삶을 사셨습니다. 하늘나라를 떠나실 때 편안한 삶을 포기하셨습니다. 마굿간에서 태어나시고, 애굽으로 피신을 가셨다가, 나사렛 동네에서 성장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좇겠다고 말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잠시도 쉴 시간이 없을 만큼 곤궁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기쁨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사람들을 구원하는 기쁨, 사람들을 치유하는 기쁨, 사람들을 사랑하는 기쁨, 사람들을 키우는 기쁨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이것이 풍성한 삶입니다.

여러분! 불편하다고 하는 것이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 궁핍한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불편하느냐 고통을 당하느냐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풍성한 삶을 사느냐에 있습니다. 하늘의 양식으로 풍성하고, 하늘의 일로 풍성하고, 하늘의 사랑으로 풍성한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이요, 보람이요, 하늘의 능력이요,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영원한 삶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때로 고통의 터널도 통과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들이 풍성한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의 보금자리를 떠나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부름을 받았을 때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꿈을 주었을 때 그에게는 애굽의 종살이, 감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아 왕으로 부름을 받았을 때 다윗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편안한 왕궁이 아니라 사울의 끝없는 추격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그들에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배와 부친을 모두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은 다 불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불행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바울의 말을 보십시오. \"만일 너희 믿음과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 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립보서2:17,18).

풍성한 삶은 사명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보다 가치있고 보람있는 목적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에게 뿌리를 깊게 박기 위해서 애를 쓰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하는 삶입니다. 남을 섬기기 위해서 애를 쓰는 삶입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그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붓습니다. 이런 자들이 풍성한 삶을 살고, 이런 자들을 통해서 능력과 기적이 이 땅에서 일어나고, 이런 자들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자들을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젊은 청교도 목사 가운데 쟌이라는 이름을 가진 목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1637년에 미국 신대륙에 꿈을 안고 찾아왔습니다.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펼치면서 살아보자, 소위 어매리칸 드림을 안고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불과 일년이 지나지 못한 1638년에 폐결핵 진단을 받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폐결핵은 아주 심각한 병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제 죽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임종 직전에 자기의 재산을 헤아려 보니까 별로 없고 이 사람이 책을 좋아했는데 책이 300권있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기도하다가 자기 도시에 새롭게 시작한 대학, 니유 타운 칼리지라는 대학이 있었는데 그 대학에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책 300권을 기증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면서 기증서에다가 한 장의 편지를 첨부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유언서라고도 할 수있고 혹은 신앙고백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답니다. \"나는 이 땅에 꿈을 안고 찾아왔습니다. 나는 좀더 신학을 공부하고 싶었고 법률도 공부하고 싶었고 과학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훌륭한 신학자, 훌륭한 법률가, 훌륭한 과학자가 나의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나를 부르신 것 같습니다. 나는 이 땅에서 다하지 못한 꿈 이것은 이 땅에서 나의 후학도들에게서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내가 이 학교에 제공하는 이 책을 통해서 나는 훌륭한 신학자, 훌륭한 법학자, 훌륭한 과학자들이 이 대학에서 길러져 이 땅을 풍성하게 하고 인류에 기여하게 하는 인류의 거인들이 나타날 것을 기대합니다.

이 감동적인 책 헌정서를 받아본 이 학교의 이사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 젊은 목사 쟌을 기념 하기 위하여 그에 성을 따서 학교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합니다. 이 삶의 훌 네임, 전체 이름이 무어냐 하면 쟌 하바드였습니다. 그래서 이 학교는 뉴 타운 대학에서 하바드 대학으로 변경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꿈은 이 대학을 통해서 이 땅에서 풍성하게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이에 꿈은 바로, 이 젊은이의 기도 속에서 위대한 미국, 위대한 하바드의 꿈이 자라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무엇을 위해서 사나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요? 겨자씨의 삶을 원하십니다. 비록 작은 시작이지만 큰 나무가 되는 천국의 삶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삶을 사십시오. 여러분들의 신앙이 비록 미약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안에 겨자씨의 풍성함을 품으십시오. 위대한 여러분의 삶, 영웅적인 여러분의 자녀, 풍성한 이 교회의 모습을 이루어나가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말씀과 기도로 예수님께 깊게 뿌리를 내리십시오. 신앙의 열매는 영성입니다. 예수님께 뿌리를 내림으로 예수님을 닮아가십시오. 그리고 이웃에게는 언제나 사랑으로 다가가십시오. 사랑하기 때문에 봉사를 하십시오. 그래서 거기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십시오. 그 길이 때로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러나 보다 가치 있고, 목적이 있고, 삶을 추구하므로 예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겨자씨의 축복을 이루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