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와 결단 막1:12-20
페르시아의 어떤 청년이 사막 길을 힘들게 지나갑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있는 힘을 다해 사막을 건너고 있는데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2km만 더 가면 오아시스가 있다. 그리고 그 연못가에는 조그마한 조약돌들이 있다. 그것을 주머니에 넣어라\" 이 말을 듣고서 청년은 용기를 내서 2km 나갔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오아시스가 있었습니다. 물을 실컷 마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난 것 같이 조그마한 조약돌이 있어서 몇 개를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피곤해서 그 자리에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날 일찍 잠에서 깨어난 청년은 매끈한 조약돌이 황금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청년에게는 두 가지의 기분이 교차되었습니다. 하나는 조약돌이 황금이 되었다는 것은 너무 기쁩니다. 그러나 주머니가 12개나 있는데 겨우 몇 개를 넣었으니 슬프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이와 같습니다. 때로는 기쁨도 있고 때로는 슬픔도 있습니다.
아마 이 이야기는 이 땅의 이야기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주님을 섬기다가는 구원받은 것은 기쁜 일인데 천국에 올라가 봐야 개털 모자나 쓰고 있는 것으로 슬픔 아닌 슬픔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행적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늘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듣고 결단하지 않으면 \'도로묵\'이 되는 법입니다.
우리 나라의 어떤 은행 총재가 미국에 출장 갈 일이 있어서 일을 보고 여가 시간에 골프를 치러 필드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그곳에서 세계적인 골프 선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같이 어울러서 골프를 쳤습니다. 이 총재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녁을 자기가 사겠다고 초대를 했습니다. 골프 선수가 허락을 해서 이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 은행 총재는 그 골프 선수에게 자기의 골프 치는 것을 보았으니 약점을 이야기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골프 선수가 한 마디로 \"head up하지 마세요\"하는 것입니다. 굉장한 조언을 들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국내에서 코치들을 통해서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코치들마다 하는 소리가 \"머리를 들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못 고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지 못해서 삶이 변화되지 않았다면 목사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듣고도 고치지 못하고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적을 자신들이 책임입니다. \"head up\"하지 마세요.
순간의 결정이 영원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사는냐?\"가 그 사람의 영원과 미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생은 순간순간 결정을 하는 과정입니다. 어떤 결정은 탁월하지만 때로는 후회가 막심한 선택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순간순간 결단을 하셔야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시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고 또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는 모습과 예수님의 초청을 받고 자기들의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주님을 따르는 결단의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서 바른 시각을 갖기를 바랍니다. 바른 시각이란 모든 사물과 사건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바른 시각을 갖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는 예수님의 시험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가 복음은 마태나 누가복음에 비해 짧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태나 누가는 예수님께서 어떤 시험을 받으셨으며 또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광야, 들짐승, 천사라는 상징적인 단어들로 예수님의 시험 사건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곳은 광야입니다.
아더 핑크 박사는 광야에서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되며 또 하나님이 누구 신지 알게되며 그의 위대한 능력을 체험하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궐에서 자랄 때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광야로 도망을 나온 뒤로는 자신이 별 볼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는 할 일이 없습니다. 광야의 삶은 기다리고 배우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배우는 장소가 광야인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을까요?
광야라는 말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단어는 어근이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가 어렵습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주님과 긴밀하게 사귀는 장소로 택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40일을 금식하신 것입니다. 40일간의 숫자는 이스라엘이 벌받는 기간, 금식하는 시간, 회개의 기간, 하나님과 긴밀하게 사귀는 기간 등을 상징합니다.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데 실패했습니다. 이에 비해 종말에 하나님이 백성들을 모을 예수님은 40일간의 광야의 시험에서 승리했음을 보여줍니다.
또 들짐승과 같이 있음이 나타납니다. 사람이 들짐승과 같이 있는 곳은 에덴 동산을 생각나게 합니다. 들짐승의 벗됨에서 벗어나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한 아담은 불순종함으로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아담의 실패를 뛰어넘어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의 평화와 구원시대를 예고한 것입니다. 또 마가는 천사들이 예수님을 수종들더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식탁에서 천사들이 수종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사탄의 시험을 이기시고 낙원의 상태와 회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의 회복과 창조질서의 회복 사람과 사람 사이의 피조물들 사이에 평화가 있음을 해줍니다. 실은 마귀의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 권능과 능력을 나타냈다고 해도 그것을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돌로도 능히 떡을 만들어 먹을 수 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혹이고 속임수였습니다.
만약 그렇게 예수님께서 하셨다면 십자가는 필요 없고 쉽게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권한과 능력을 자신을 사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시험 사건을 마가복음의 앞부분에서 말함으로 이미 사탄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은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다\" 잘라 말씀합니다. 맞습니다. 우리 주님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배고픔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를 아십니다. 주님은 채찍에 맞아 보셨습니다. 아파 보셨습니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의 아픔을 아시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시는 분입니다. 이분이 우리가 믿는 주님입니다.
우리 인생에 시험이 없는 분은 한 분도 없습니다. 마태는 4장 11절에서 마귀는 떠났다고 기록하고 눅4장 13절은 마귀가 얼마 동안 떠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마귀는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갈수록 태산이란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고고 마운틴이라고 합니다. (joke) 남편의 문제를 겨우 해결하고 나니까 이번에는 자식이 속을 썩입니다. 자식 문제를 해결하니까 직장에 문제가 터집니다. 직장 문제를 해결하니까 건강에 문제가 생깁니다. 건강문제를 겨우 해결하고 나니까 교회를 짓는다고 목사는 방방 뜹니다. 교회 다 짓고 나면 인생의 문제가 다 끝납니까?
각오하십시오.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는 동안 시험을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자들의 시험은 고귀한 것입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율례를 배웠나이다\"라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시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고귀한 교훈들을 줍니다. 값진 진주를 만들어 갑니다. 인생을 성숙시켜 가는 것입니다. 시험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주님도 시험을 받으셨지만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주님의 기대에 어긋나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가정에 아이를 늦게 갖게 되었습니다. 부모님 보시기에 너무나 똘똘하고 잘 생겼습니다. 그런데 3살인데 말을 너무나 잘 합니다. 부모님은 분명히 신동을 낳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흥분해서 아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이야! 너는 커서 무엇이 될래?\" 그랬더니 이 어린아이가 \"대통령이요\" 부모님은 \"그럼 너는 크게 될 아이야\"라고 생각하면서 또 묻습니다. \"네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는 무엇을 시켜줄꺼니?\" 이 말을 들은 아이가 한 참을 생각하더니 하는 말 \"짜장면 곱빼기\"
두 번째 주님의 선포의 내용입니다. 15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때는 로마가 많은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 나라는 이 땅의 나라입니다. 가이사의 나라입니다. 왕건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선포한 것은 이런 세상 나라와는 구별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나라는 세상 나라가 아닌 가이사의 나라가 아닌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는 것입니다.
14절에서 세례 요한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대신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등장을 말하고 그 분이 선포한 나라는 새로운 것입니다. 이런 기대를 때가 찼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로마의 나라도 있었습니다. 로마의 복음도 있었습니다. 시저는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속국에 전령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로부터 가져오는 소식을 복음이라 했습니다. 이 소식은 처음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흥분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새로운 소식이 없었습니다. 이 소식은 좋은 말로 포장되었지만 사람들을 실망시켰습니다. 세금을 더 내야한다든지 부역을 더 많이 해야한다든지 전쟁에 더 참여해야 한다는 소식은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이런 소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신 것입니다. 실은 하나님의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The Time has come\" 때가 찼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나게 하신 것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때가 차야 일하시는 분입니다. 구약 시대가 그렇게도 죄로 말미암아 신음과 고통 가운데 있었다 해도 때가 차서 메시아가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뱀을 저주하실 때 너와 여자의 후손이 원수가 될 것이며 너는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고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를 짓밟아버릴 것을 말씀하신 후 얼마나 많은 사탄의 방해가 있었습니까? 때로는 세상이 너무나 어두워서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은 착각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먹구름이 몰려와 모든 세상을 덮어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의 때가 차서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은 다윗 왕과 같은 경제적인 풍요와 정치적인 안정과 군사적인 우위를 가진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로마를 물리치고 독립을 꿈꾸며 다른 나라의 속국이 아닌 지배하면서 살고 싶은 욕망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실현시키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저번 주에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린 소리와 같이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이 땅에 종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함으로 그 사람의 권세를 나타내는데 비해 오히려 다른 사람을 섬기는데 그 힘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작은 자로 살라고 말씀하시지만 사람들은 큰 자로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생각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지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온전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는 이루어졌는데 혼란합니다.
아직도 내 심령 속에서 구테타가 하루에도 몇 수십 번씩 일어납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어도 기쁨이 없어요. 능력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다 알아야 지식인이 아니며 다 가져야 부자가 아닙니다. 믿음의 맛을 잃어버렸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다면 미련한 자입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머리도 미련하며 공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법 켰다고 허구한날 술만 마시고 들어옵니다. 하루는 안되겠다 싶어서 아버지가 작정을 하고 몽둥이로 때립니다. 그러면 아들은 금방 안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머리가 나빠서 그 다음날도 이런 모습으로 들어옵니다. 이렇게 하기를 한 달 동안 실강이를 벌었습니다. 한 달 동안 그렇게 해도 안돼서 하루는 아버지가 술에 만취되어서 들어오는 아들을 붙잡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러면 안 된다고 호소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녀석 울기는...\"
누구의 이야기입니까? 성정동 김씨 아들이야기 입니까? 바로 내 이야기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의 명령을 듣지 않아도 처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에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다고 고백하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확장되어 가고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결단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는 사건입니다. 15절에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말합니다. 회개하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와서 울면서 잘못한 것을 호소하면 회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회개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못된 행실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옛 습관을 버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버리고 주님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결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마다 늦는 사람도 결단해야 합니다. 기도한다고 약속하고도 하지 않는 사람도 회개해야 합니다. 그 시간에 설악산 단풍 구경 가지고 하면 다 나오잖아요. 우리 교회 첫 해에 전 가족 수련회 때 보니까 임자도를 저녁 12시에 떠나도 가겠다던 분들은 다 나오데요.
오늘 제자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는지 아니면 전에 한번쯤 성경공부를 주님과 같이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따르라고 하니까 금방 따라갑니다. 우리 인생에 못된 버릇은 과외하지 않아도 금방 합니다. 아이들에게 싸움 가르친 부모 있습니까? 그런데 주먹으로 다른 아이 코를 때려서 코피를 냅니다. 아이에게 욕을 가르친 분 있습니다. 과외 한 적 있습니까? 이런 경우는 이렇게 욕을 해야한다. 저럴 때 이렇게 욕을 해야 효과적이야!
형제끼리 음식을 가지고 싸우라고 가르치지 않아도 싸웁니다. 그러나 좋은 버릇은 평생 가르쳐도 되지 않아요. 앞에서 골프 이야기를 했습니다. 좋은 코치가 \"머리를 들지 마세요\"해도 맨 날 머리 들고칩니다. 평생 연습해도 잘 안 배워집니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결단하면 안 되는 것이 됩니다. 저는 주일날은 어느 누가 결혼해도 결혼식장에 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작정했습니다. 그러니 갈등이 없어요. 주일에 오늘은 예배를 드려야 하나 드리지 말아야 하나 고민하지 않습니다. 왜요? 그렇게 결단해서 그래요.
\"나를 따라오너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우물쭈물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내가 고기를 잡지 않으면 우리 가족은 누가 먹여 살리지? 내가 배를 가장 잘 조종하는 일등 항해사인데 만약 저 예수님을 따라가면 누가 나를 대신해서 이 갈릴리에서 조종을 하지?. 고기를 잡아서 말리는데는 내가 선수인데 만약 내가 저 예수님을 따라가면 누가 이 고기를 잘 말려서 팔지? 이런 생각이 그들을 사로잡으면 절대로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아니 나는 평생 고기를 잡는 어부인데, 사람을 낚는 어부를 만들어 주신다니? 이런 기대되는 일이 또 어디 있는가?\" 흥분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따라갑니다. 휘 바람을 불면서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물, 정든 갈릴리 바다, 사랑하는 부모님, 가족들, 베드로는 아내도 있었는데 모든 것을 뒤로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배와 그물은 삶의 터전입니다. 갈릴리 해양 주식회사입니다. 모두 사장이고 상무입니다. 견습생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다가 주님을 따른 사람은 없습니다. 날품팔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들의 생업이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결단한 것입니다. 이런 삶을 주님이 기뻐합니다. 왜 그들을 부르셨을까요? 축복하시기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의 장래를 보신 것입니다. 앞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들로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킬 하나님의 보배들로 기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땅의 사역을 모두 마치시고 승천하시면서 이들을 향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이스라엘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라고 말하셨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충성된 일꾼들이 되겠습니까? 이 시대가 귀머거리들로 가득 찬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이익과 관계되면 귀가 너무나 잘 들리고, 자신에게 조금만 손해가 돌아와도 여지없어 귀를 닫아 버리는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의 동역자입니까? 자신의 일만 돌보는 사람은 절대로 아닙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날마다 우리들의 삶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돌리고 또 돌리려고 결단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
결어) 현대인들은 맛을 잃어버렸습니다. 정신적, 윤리적, 도덕적으로 양심이 마비되어 가도 있습니다. 양심과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평안이 없습니다. 눈이 비틀어 졌습니다. 선진국은 80%가 비정상적이랍니다. 어머니는 체팅을 해서 애인을 만나고 노인들은 손녀나 딸과 같은 청소년들과 원조교제를 합니다. 또 세상은 풍요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그러나 병들었습니다. 용기가 없습니다. 의지가 없고 담대함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습니다. 나의 힘은 외부적인 것에서 오지 않습니다. 내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착각하십니까?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힘이 없습니다. 나의 힘은 하나님에서 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힘이 내 안에 있을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날마다 주님이 내 안에서 나를 주장하시고 통치하시도록 나를 맡기십시오. 갈릴리의 어부들을 부르셔서 역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의 사람들로 변화시키셨듯이 여러분을 통해 이런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가실 줄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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