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이 있는가?

천국이 있는가?/눅16:19-31

천국이 있는가?
눅16:19-31





광수 생각에 이런 만화가 있습니다.
어느날 뽀리가 어떤 아가씨에 대해 깊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거지복장을 한 고약한 냄새가 나는 할머니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요술할멈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정말요? 그럼 내 사랑이 이루어지게 해 주시겠어요?
요술할멈은 소원? 들어주지. 그 대신 나와 뽀뽀를 해야만 소원이 이루어지는데 하고 입술을 삐쭉 내밀었습니다.
뽀리는 더럽고 냄새가 나지만 사랑을 위해서 할머니와 뽀뽀를 했습니다.
뽀뽀가 끝나자 할머니가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자네 올해 몇살인가?
뽀리는 속으로 나이는 뭐하러 묻나? 하고 생각하면서 27살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말합니다.
그럼, 그 나이쯤 되면 요술할멈따위는 안믿을 때 아닌가 ?
뽀리가 할머니에게 속은 것입니다.
그리고 광수는 이렇게 주를 달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믿지 않는 것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더욱 더 믿지 못할 일들만 많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에는 불신감만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을 수 있고 또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진리 가운데 천국와 지옥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천국이 있는가?
한마디로 천국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주님이 말씀하신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비유에서도 주님은 천국과 지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으면 있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은어떤 곳입니까?
천국은 이 세상의 고통이 모두 사라진 낙원입니다.
그러나 지옥은 유황불이 타오르는 불못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갑니까?
믿는 사람이 들어갑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두 사람의 예를 들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부자요 하나는 거지입니다.
거지는 하나님을 믿어 천국에 갔지만 부자는 믿지 않아서 지옥불속에 들어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과 지옥의 존재에 대하여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에 눈에는 세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육체의 눈입니다.
이것은 눈으로 보이는 것만 볼 수 있는 눈입니다.
또 하나는 영적인 눈이 있습니다.
이것은 육체적인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적인 세계도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영의 세계는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고 사진으로 찍을 수도 없는 세계이지만 영적은 눈을 뜬 사람은 그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믿음의 눈입니다.
이것은 아직 영적은 눈을 뜨지 못해서 그 세계를 보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위해서는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하나님의 나라도 영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는 것은 아직 영적은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나라가 없어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은 어디에 있는지 우리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실재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2.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오늘 비유속에 나오는 부자가 지옥에 가게 된 이유는 자기가 죽어서 가야하는 이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눈이 육신의 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 있는 것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어서 들어간 곳은 불행하게도 지옥불속이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곳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고 자기자신이 그러한 곳에 올 것이라는 것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지금 지옥불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가 만일 이러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는 벌써 회개하고 그 곳에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눈이 어두워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그의 눈을 가리워 보지 못하게 했습니까?
재물입니다.
재물은 그의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재물만 바라보고 세상의 부귀와 영화만을 꿈꾸다가 지옥백성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달랐습니다.
그는 비록 거지였지만 내세를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는 희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소망중에 살다가 그 소망대로 천국에 간 것입니다.
누가 더 부요한 사람입니까?
부자는 겉으로는 부자였지만 속은 텅 비어있는 껍데기와 같았습니다.
그는 잠시 누릴 영화만을 바라보다가 영원한 세계를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육신적으로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천국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내세를 준비하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는 육신적인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영적인 부자였습니다.
영원한 것은 영적인 부요함입니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부자가 더 행복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거지 나사로가 더 부자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하나님이 마련하신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믿고 천국에 가는 신자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탁상어록 중에 고학생과 자선의 손길 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고학생이 길에서 행인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체격이 건장한 한 남자가 큼직한 물건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고학생은 남자가 자신을 쫓아내기 위해 몽둥이를 들고 나온 줄 알고 겁에 질렸습니다.
남자가 다가가자 학생은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도망을 쳤습니다.
남자는 자신이 가지고 온 물건을 흔들면서 학생에게 소리쳤습니다.
멈춰라. 이것은 너를 위해 마련한 빵이란다.
그러나 학생은 더 멀리 도망을 쳤습니다.
그 남자는 이 불쌍한 학생을 위해 커다란 빵을 들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학생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오히려 학생은 남자의 그 인자한 얼굴과 그손에 들려있는 빵을 보지 못한 채 계속 도망만 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시려고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귀한 선물이 바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자꾸만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의 소견과 이해가 부족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그 사랑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아무나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모두 믿음으로 순종해서 주님이 주시는 천국의 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3. 부자의 고민
지옥불속에 들어간 부자는 그제야 자기 인생이 얼마나 불행한가를 깨닫고 집에 있는 형제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자기 형제들의 집에 보내어 이 소식을 전하고 형제들이 내가 온 이 고통스렁런 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세상에는 나사로가 가지 않아도 이미 하나님이 보내신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으면 될것이라는 말했습니다.
부자가 형제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하지 아브라함은 만일 너의 형제들이 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아니한다면 죽은 자가 살아나서 가서 말한다고 하더라도 듣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천국가는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 하나님의 이미 종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종들의 말을 들으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직접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주의 종들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구약에서는 보세와 선지자를 보내셨고 신약에서는 주님이 직접 오셔서 말씀하셨고 주님이 가신 후에는 사도와 주의 종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이 전하는 말씀을 듣는 것은 곧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성도는 항상 주의 종이 전하는 말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받아들이는 믿음의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도 바로 지킬 수 있고 일도 바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940년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순교한 주기철 목사님은 오산학교 출신이었습니다.
당시 주목사님을 가르친 스승은 민족운동가인 조만식 장로님이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후에 목사님이 되어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주일에 주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하고 있는데 자기를 가르친 스승인 조만식 장로님이 예배시간에 늦게 교회에 도착한 것입니다.
주 목사님은 예배를 인도하다 말고 예배당에 들어오시는 장로님을 보고 장로님, 오늘은 서서 예배를 드리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스승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어린 종이, 그것도 자기의 제자가 여러사람 앞에서 그러한 말을 했다는 것이 괘씸한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만식 장로님은 어린 목사님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해서 예배시간 내내 서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끝나갈 무렵 목사님이 조만식 장로님에게 기도를 하라고 했을 때 장로님은 앞에 나와서 자신이 예배시간에 늦게 도착하여 예배를 방해하고 주의 종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회개기도까지 하고 들어갔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그 날 참석했던 많은 성도들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역시 그 스승에 그 제자야
비록 주의 종이 어릴지라도 그 입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겸손히 순종했던 이러한 조만식 장로님의 모습이 바로 신앙인의 참다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와같이 주의 종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주의깊에 듣고 그 말씀을 주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이 천국의 길을 알게 되고 그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형제들을 위하여 고민하는 부자에게 주의 종들에게 들을 것이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순종해서 복받는 신자 되시기 바랍니다.

4. 믿음은 사랑이다 19-21
오늘 이 비유속에 나오는 사람은 유대인입니다.
또 이 비유를 듣고 있는 사람들도 유대인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자는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며 따라서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왜 지옥에 가 있습니까?
그 이유에 대해서 오늘 본문말씀 19-21절에서 설명해 줍니다.
그의 집 앞에는 한 거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거지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룰 불리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병까지 들었는데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아먹고 있었습니다.
거지 나사로의 이러한 모습에 대하여 20절에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이 부자는 자기 집 대문앞에 병이 들어서 죽어가고 있는 거지를 버려진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는 집안에 앉아서 먹을 것 있다고 사람들 끌어모아 잔치를 벌이고 호화로이 먹고 즐기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거지를 보면서 자기가 부자라는 사실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조금만 자비를 베풀어 주었어도 그 거지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내 집 대문앞에 거지가 죽어가고 있는데에도 그를 모른채 버려두고 내 재물은내 것이라고 즐기며 살아가는 이 부자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그것을 과연 믿음있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만일 하나님이라면 이러한 사람을 믿는 사람이라고 하나님의 나라에 받아줄 수 있습니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사람에 대한 비유를 생각해 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폭행을 당해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도 못본체 하고 지나가고 레위인도 지나갔습니다.
오히려 전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이방사람인 사마리아 사람이 와서 그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 강도만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유대인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자기가 개처럼 취급하고 멸시했던 이방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자기 동족은 자기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그냥 지나가고 자기가 그렇게도 멸시하던 원수처럼 여겼던 사마리아 사람이 와서 자기를 살려 주었습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주님은 물으셨습니다.
누가 이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
사람들은 말합니다.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주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나도 너희같은 놈들은 싫다는 뜻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에게 와서 실망하고 돌아섭니까?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373장입니다.
세상모두 사랑없어 냉냉함을 아느냐 곳곳마다 사랑없어 탄식소리 뿐일세 악을 선케 만들고 모든 소망 채우는 사랑얻기 위하여 저들 오래 참았네 사랑없는 까닭에 사랑없는 까닭에 사랑위에 저희들 오래참고 있었네
하나님앞에 나와서는 내가 교인이라고 자처하면서 돌아가서는 차라리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보다도 더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를 주님이 사랑하는 천국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사랑이 없는데 형식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속이 텅비어 있는데 껍데기만 가지고 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주님은 입만 열면 법, 법 하는 유대인들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을 몰라도 최소한의 인간의 도리라도 지키며 살아가는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법을 따지지만 주님은 법을 따지지 않습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주님은 네가 법을 말하기 전에 너의 마음속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고 가르쳐준 그 사랑이 있느냐 하는 것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너 내가 가르쳐 준 사랑가지고 살아가고 있느냐? 는 말씀입니다.
그 사랑 잃어버렸다면 우리는 가장 귀한 것은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가지고 구원받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사랑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네 제자가 되리라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거꾸로 하면 내가 너에게 가르쳐준 그 사랑이 너에게 없다면 너는 내 제자가 아니라 는 말씀입니다.
가룟유다는 3년이나 주님을 따라다녔으면서도 지옥백성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길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같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다면 그 믿음은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내 집 앞에 있는 불쌍한 거지를 보고서도 부스러기 하나 던져줄줄 모르는 이 부자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지옥백성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빛도 소금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네덜란드에 한 초라한 예배당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신자들은 교회건축을 하기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 허름한 복장을 한 노신사가 예배당에 들어섰습니다.
그는 강대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때 안내위원이 급히 노신사에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앞자리는 장로님들이 앉을 곳입니다. 뒤로 물러나시지요
노신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뒷자리로 옮겨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노신사는 정복을 한 장정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돌아갔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호위병에게 물었습니다.
저 노신사가 도대체 누구입니까?
호위병이 정중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분은 스웨덴의 아스카왕이십니다. 임금께서는 오늘 이 교회에 건축헌금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찾아 오셨습니다. 무슨 말씀이 없으셨습니까?
그때서야 목사님과 성도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시골교회는 교회건축을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주님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여러분을 오찾아가지 않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여러분이 다 주님을 영접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나사로와 같은 모습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어떠한 마음으로 사는지를 보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이 지극히 작은 소자중에 한 사람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자집 대문앞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는 그 거지 나사로가 부자에게 있어서는 자기가 돌보아야할 소자였던 것입니다.
그 소자를 업신여기는 것은 곧 주님을 영접하지 아니하는 것이며 주님을 문전박대하는 자가 천국의 문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겸손히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함으로 믿음 생활 바로하고 그래서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신자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믿음은 사랑이라 하셨사오니 저희들이 사랑하는 자 되게 하소서.
부모와 자녀가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게 하시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고 나를 미워하는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이 없어 버림받지 말게 하시고 사랑함으로 칭찬받게 하소서.
이번 설 명절에도 온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게 하시고 주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소서.
저희들에게 사랑의 은사를 주옵소서.
그리하여 믿음이 사랑으로 온전하여 지게 하시고 우리 교회가 사랑이 충만하게 하시고 성도 상호간에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소서.
어렵고 곤란한 사람들이 와서 사랑받고 돌아가는 교회되게 하시고 그리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되게 하소서.
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사랑이 없어서 인도하지 못하고 사랑이 없어서 버림받지 아니하도록 저희들에게 힘주시고 은혜주시옵소서.
믿사오며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