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천국에 가나? 눅16:19-25
인간은 누구나 다 잘 살아야 합니다. 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못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누구나 다 같이 잘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고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시고 천국을 약속하신 이유도 한가지입니다. 누구나 다 잘 살게 하기 위해 쓰임 받는 그릇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길은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모두 다 같이 잘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죽는 길입니다. 서로 협력하고 사랑하면 다 같이 살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싸우면 다 망하고 맙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 12:25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했고, 갈 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 조그만 연못에 고기 두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둘은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조그마한 일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결국 약한 고기는 강한 고기에게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죽은 고기가 물위에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되니 물이 썩어갔고 결국에는 살아 있는 고기마저 죽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름답고 행복했던 그 연못에는 두 마리의 죽은 고기가 떠오르고, 그 연못에서는 썩는 냄새만 풍기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은 ‘다 같이 살아가는 웅덩이’를 만들 수도 있고, 다른 하나는 ‘너도 죽고 나도 죽는 웅덩이’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기독교는 모두가 함께 살자는 종교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세 단계를 거치면서 성숙한 인간이 된다고 합니다. 첫째는 받는 단계, 두 번째는 나누는 단계, 세 번째는 주는 단계입니다. 받는 단계는 부모나 남의 도움을 사는 생활을 얘기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자립하여 살며 자기 것을 만들어 가는 단계를 말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주는 단계로 이때 비로소 사람은 성숙해 지고 사랑이 뭔지를 알게 되어 이런 사람들 때문에 모두가 사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주는 사람이 많을 때 성숙한 세상이 되고, 살 맛 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부자 되고, 권력자 되고, 소위 성공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성공하라는 말이 없습니다. 성숙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주고 구원받게 하고, 사랑을 주어서 기쁘게 살게 하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구원을 받은 성도로서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성령충만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서로 나누고 도우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실 때에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복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삶을 사는 것이고 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리라는 것입니다. 동양적인 사고에서의 복은 ‘소유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많이 소유한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재산이 많은 것, 자녀가 많은 것, 나이가 많은 것, 직책이 많은 것, 등.....
그러나 기독교는 ‘주라는 것’입니다. 물질을 주고, 건강을 주고, 시간을 주며, 생명을 주라는 것이다(요15:13).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행20:35).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생의 목표는 베푸는 것입니다. 반대로 어리석고 타락한 교인은 주는 삶을 살지도 않고, 가진 것을 아까워하고, 주는 것은 손해라 생각하며, 왜 사는지 방향도 없이 살아갑니다.
누가복음 제15장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이 비유의 초점은 작은아들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아버지의 곁을 떠나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결국은 아버지 곁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사랑으로 맞이했다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탕자의 비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작은 아들보다 큰 아들에게 초점을 두고 계십니다. 큰 아들은 작은 아들이 돌아오자 불평합니다. 또 큰 아들은 아버지가 그렇게 기다리고 죽었다고 생각한 아들이 돌아와 그를 끔찍이 생각하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아우를 미워했습니다. 주는 것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큰 아들에게 \"이 집의 모든 것이 네 것이니 너 다가져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받을 줄만 알고 줄줄 모르던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날 결혼하여 살면서 이혼을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마 여러분 중에도 어떤 문제로 한 번쯤 이혼을 생각해본 분이 있을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부모를 모시는데 부인과 어머니가 티격태격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서있는 아들이 곤란하여 부인도 싫고 어머니도 싫어서 이혼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남편에게 몇 가지를 물었습니다. \"당신은 아내를 사랑합니까?\" 남편과 아내는 본래 남남이었습니다. 남남이 살아야 할 이유는 단 한 가지, 사랑입니다. 남편의 사랑이 없다면 살아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사랑이 있다면 자식도 귀하고 시부모도 귀해지는 것입니다. \"당신은 얼마나 아내의 울타리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아내에게 대하여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대해서는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셨듯이 목숨 바쳐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아내가 남의 집에 들어와 정착 할 때까지는 적어도 남편이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남의 집에 들어와 사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느 법칙을 따르고 있습니까? 시부모에게 무조건 공경하라는 것은 공자의 \"여필종부\" 법칙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법칙은 “서로 사랑하고, 종노릇 하라”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서투른 며느리를 위해 종노릇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런 가정이 행복하고, 이런 가정이 사랑하는 가정입니다. 유교는 힘없는 사람이 힘 있는 사람을 섬기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반대로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했으면 아내의 부모에게도 효도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성령께서 뭐라고 하시는가를 잘 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전13:2)고 했습니다.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전13:3)고 했습니다. “울리는 꽹과리 소리 나는 구리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내가 사랑하지 않고 주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는 순간 [줄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가운데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거룩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되었다는 말로 다르게 삶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습관을 따르지 않고 뭔가 다르게 사는 것이 거룩한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구별된 것이 첫째이고, 두 번째는 공의로운 것입니다. 정의가 아니라 공의입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줄 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긍휼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한 사람도 구원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나 같은 사람도 예수를 믿고 이 같은 자리에 앉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긍휼하심이 없었으면 우리는 언제 죽어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 긍휼이 내 속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고,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의 형상,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받기만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주는 종교입니다. 줌으로써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는 종교입니다.
오늘 성경은 돈, 경제의 법칙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돈과 우리의 관계는 어떠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본문 앞 절 13절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는데 한 분은 하나님이고 다른 한편은 돈과 재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 하나님의 위치까지 도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의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 돈을 우상화 하고 섬김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돈이 있는지, 없는 지에만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은 돈일뿐입니다. 돈으로 지식과 인격을 얻을 수 없습니다. 돈을 축복이라고 생각하거나, 돈이 있다고 신앙까지 좋은 줄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돈이 많이 있다고 하나님이 복을 많이 주신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축복은 누가 받는지 끝까지 가 봐야합니다. 돈으로 모든 것이 다 되고 복을 받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 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서울대학에 입학했다고 무척 좋아했습니다. 미안하지만 그 아들도 떠날 때가 있습니다. 언제나 아버지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생명보험을 수백 개 들어놓았다고 해도 그것이 행복을 주지는 않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부자가 죽었습니다. 돈이 있다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지옥에 갔습니다. 부자도 지옥에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돈이라는 것을 잘 부리면 그 돈이 좋은 종이요 충성된 종이 되어 나를 섬깁니다. 그러나 내가 그를 섬기기 시작하면 그 날로부터 돈은 폭군이 되어 나를 처절하게 만듭니다. 돈 독에 오르면 눈이 흐려져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현대인의 맹점은 인간은 없고 돈만 있는 것입니다. 돈과 함께 망한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좌우간 사람보다 돈을 높이면 그것은 망할 징조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의 삶을 보십시오. 돈이 있습니다. 그 돈으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바클레이는 이것을 가리켜 대 제사장의 의복과 같다고 했습니다. 대 제사장은 제사장 중 우두머리입니다. 이 분은 속죄소까지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큰 사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의복을 제복으로 입는 것입니다. 종으로서 입는 예복입니다.
출29장에 보면 아론이 죽은 후 대제사장의 자리를 아들이 이어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아론의 아들은 아론이 입었던 성의를 입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옷은 물질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 물질적인 의미라면 더 비싼 옷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아버지의 옷을 입고, 대 제사장이 옷을 입고 일주일 동안 기도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제사장의 사명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론이 한때는 금송아지를 섬김으로 범죄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난 후에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을 섬겼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대 제사장의 사명입니다.
부자는 이런 제사장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무늬만 대 제사장일 뿐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 같지만 그의 삶 속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14절에는 돈을 좋아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연락을 즐기는 것입니다. 값비싼 요리로 흥청거리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자신을 위해서였습니다. 대 제사장은 백성을 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인데 부자는 대 제사장이 옷을 입고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먹고 즐기는 일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나사로가 부스러기를 먹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나사로가 음식을 손으로 먹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부자들은 손을 사용하기 위해 두꺼운 빵으로 손을 닦고 그 빵은 버렸습니다. 거지는 그것을 주워 먹는 것입니다.
부자의 잘못은 재물이 많고 풍요로운 삶을 산 것에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다만 이 부자는 자신의 풍요로운 삶에 집착하여 하나님이나 이웃 그리고 영원한 미래의 소망까지 생각지 않고 오직 자기의 이기적인 삶을 위해서 살았다는데 있습니다. 반면에 거지는 천국에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위로와 평안을 누립니다. 부자와는 달리 거지의 이름은 성경에 소개됩니다. 그의 이름은 \'나사로\'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도우신다. 하나님과 함께 하신다, 하나님과 관계된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사로가 거지이기 때문에 천국에 갔다는 말이 아닙니다. 누가 천국에 갔습니까? 나사로가 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한 자가 천국에 간 것입니다. 이 나사로는 병으로 인해 고통이 있고 괴로움이 많았지만 그런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감사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육신의 질병, 삶의 가난과 빈곤, 사회의 냉대, 스스로 가질 수 있는 열등의식, 누구하나 알아주지도 않고 도와주지도 않지만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잃지 않고 원망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그것만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12장에서 자신의 몸의 가시 때문에 기도를 많이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병을 고쳐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내가 주님을 모른다 하고 떠날까 해서 주님은 내게 고난을 주셨던 것이다. 고난도 내게 유익이다. 나는 약함을 자랑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이런 사람이 나사로이고, 이런 사람이 천국 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구걸하러 오시는 분이 꽤 있습니다. 그 중엔 머리도 얌전하고 복장도 괜찮은데, 정말 이해되지 않습니다만 구걸을 하러 옵니다. 어떤 사람은 사무실 문을 조용히 두드리고 인사를 하고 얼마라도 주면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서 90˚각도로 인사를 하고 가십니다. 그런데 마침 사무실에 돈이 한 푼 없는데 찾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저씨 죄송해요. 오늘은 없으니 다음에 오시겠어요?\" 하면, \"그래요? 그러지요. 안녕히 계셔요\"하고 인사를 하고 갔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분은 오히려 인상을 쓰고 화를 내면서 인사도 없이 문을 닫고 가기도 합니다.
가난하다고 무시하는 것 아닙니다. 가난해도 부자처럼 살 수 있습니다. 가난해도 존경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면서도 손가락질 받으며 사는 사람, 거지처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처럼 일하시기 바랍니다. 도우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남이 하는 일을 방해하지 말고, 남의 하는 일이 보기 싫어도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면 참아야 합니다.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일을 그치고, 어떻게 하면 도와줄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좋은 일군입니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은 돈 없는 사람, 병든 사람, 부모 없는 고아 등 많은 사람들을 얘기했습니다. 그랬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 아니라고 말하면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보람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자의 죄는 미래에 대한 준비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부자가 무슨 잘못이 있는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자가 나사로에게 자기 대문 앞에서 나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 조각을 못 먹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지나는 길에서도 나사로를 발로 차지도 않았고 고의적으로 몹쓸 짓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문제는 자기는 사치 가운데서 뒹굴고 있었으면서도 나사로의 고통과 굶주림에 관심도 없었고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데 그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번 것으로 내가 쓰는데 어떠냐고 한다면 안 됩니다. 인간은 세상 재물의 청직이일 뿐이지 소유주가 아닙니다. 영원히 소유할 수 없습니다. 현세에서의 부는 영원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여부에 따라 인간의 내세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보고 계시고 복을 주십니다. 나누어주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이 땅을 떠나기 전에 땅에서도 열매를 맺을 뿐 아니라 하늘에서도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 많은 것을 거둘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14:28-29 \"매 삼년 끝에 그의 소산을 십분의 일을 내어 제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이나 네 성 중에 우거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이렇게 살면 우리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인간 이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없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성에서 일어나는 경제적인 문제를 그 성안에 사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스스로 해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배고픈 사람들은 먹여서 배부르게 하고, 너희 성안에 배곯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게 하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십시오. 걱정하는 제자들은 아무 일도 하지 못했습니다. 한 제자가 어린 소년이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가지고 와서 \"이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러나 이 보리떡이 오천 명을 먹인 것이 아닙니까? 주님의 능력이 먹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은 보리떡 다섯 개지만 주님은 우리의 적은 것 가지고 전체를 살리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 주십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행복한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첫째로, 할 일이 있는 사람, 두 번째로 사랑할 사람이 있는 사람, 세 번째로 무언가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앞을 내다보고 일을 합니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해서 앞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미래가 있기에 오늘 우리가 주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지가 천국간 것입니까? 아닙니다. 부자가 지옥간 것입니까? 아닙니다. 나사로가 천국에 갔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그래서 나누는 삶을 사는 여러분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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