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 마13:10-17
예수님께서는 본장을 통하여 7가지의 비유를 통해 하늘나라에 대한 비밀스러운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비유를 통해 가르치신 이유는 영적으로 우매한 백성들에게 하늘나라의 진리를 직접 선포할 때에 그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본장에 나타난 비유는 7가지로 구분되는데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습니다.
1. 관계 1)씨뿌리는 자 - 여러 계급이 사람들에 대한 천국의 관계 2)가라자 - 사악한 사람들에 대한 천국의 관계
2. 성장 1)겨자씨 - 살아 난다는 관념하에서의 천국의 성장 2)누룩 - 점차 퍼진다는 관념에서의 천국의 성장
3. 귀중함 1)감춰진 보화 - 감춰진 것을 발견한다는 생각하에서의 천국의 귀중함 2)좋은 진주 - 제공된 것을 놓치지 않고 손에 넣는다는 생각 하에서의 천국의 귀중함
4. 분리 1)끄는 그물 - 세상 끝날에 선인과 악인 사이의 분리 또한 13장에 나타난 7개의 비유를 아시아의 일곱교회와 연결시키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많은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아무에게나 알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의 비밀을 알려면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천국의 비밀에 대한 지식이 주어질 것입니다. 또한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있어서 배우고 순종하고자 하는 순수한 욕망을 갖고 하나님께 나오는 자들에게 천국의 진리가 계시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무감각한 사람은 보긴 보아도 듣긴 들어도 깨닫지 못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는 세상적인 것에 대한 사랑과 교만한마음으로 인하여 천국에 대한 무지와 이해의 결핍이 야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지를 극복하려면 성령을 온전히 의지해야 하며(고전2:10)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노력하여 성경을 상고해야하고(요5:39) 예수 그리스를 바라보아야(히12:2)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게 하려 함인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남은 생애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시는 삶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비밀을 안다는 것은 매우 신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비밀이란 원래 아무나 아는 것이 아니요 알만한 사람만 알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사람이 다 알아듣게 교훈한 것이 아니고 비유를 통해서 말씀 하셨는데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가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영적인 진리를 감지하는 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눈먼 소경과 귀머거리가 또한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눈먼 자와 소경된 자들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전하는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러한 결과는 죄로 말미암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라\\\" 말씀 하신 것처럼 패역한 백성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없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영적인 눈을 멀게하고 귀먹게 하는 특성이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영적으로 아주 무감각하게 만들어 영적인 불구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러한 무감각한 상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게 하는 세속적인 일에 더더욱 열심있게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영적인 불구에서 벗어 날수 있도록 힘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사 6: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제자들과 유대 지도자들과 둘러서 있는 무리간의 본질적 차이는 무엇이었는가요?
제자들은 예수를 왕으로 영접했고 그리고 바로 예수께 대한 이와같은 행위와 태도 때문에 그의 나라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알게 할수도 없었으며 그들은 받을수도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한 자들에게는 그 자신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천국의 모든 원리들과 특권들을 식별하고 소유할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충성을 지금까지 거부했고 그래서 천국을 볼수도 들어갈수도 없었습니다. 그 당시 그들의 배경을 생각해 보면 그 상황을 이렇게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던 이 무리는 그들이 태어나면서 부터 받은 종교훈련의 결과로서 하나님의 길들에 대한 예비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보지도 못하며 듣지 못한다는 책망을 받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네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이 구절에서 전체의 핵심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오늘 13장은 여러가지를 통해서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을 우리에게 허락을 하셨습니다. 영적으로 무지몽매한 자가 되어서 듣긴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긴 보아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늘 젖어있으면서 평소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교훈에 귀를 귀울임으로서 영혼의 상태가 흐려지지 않도록 힘을 기울여야 하며
오늘날 아직도 천국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중국의 노자는 인간은 들으면서 성장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듣느냐 하면, 1)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2) 자기안의 소리를, 즉 양심의 소리를 듣고, 3) 초월한 저쪽으로부터 오는 소리, 소리없는 소리를 듣는 귀가 열려져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듣기는 듣되 무슨 소리를 듣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14절 이하에 보면 구약성경 이사야서의 기록을 인용하면서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이런 이유를
15절에 보면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음의 눈과 마음의 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잘 들어야 합니다. 마음의 귀로 들어야 합니다.
노자가 강조한 것처럼 사람의 말씀도 아니요, 양심의 소리도 아니요, 소리없이 들려오는 소리, 즉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 시간에 여러분이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이 설교를 들으면서도 이것이 인간의 소리로 들려지면 안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울려오는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그것이 설교를 잘 들은 것입니다.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을 울리면서 들려야 합니다.
세상의 염려가 마음에 가득하면 말씀을 읽어도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의 걱정이 마음에 가득하면 말씀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어디엔가 빼앗겨 버린채로 이 자리에 앉아 있다면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돈 때문에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돈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없다면 그것도 마귀의 유혹입니다.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 때문에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세상의 즐거움의 줄을 끊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방하는 요소들은 다 끊어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주신 말씀 가운데 로마서 10장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고 했습니다.
둘째, 말씀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소경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육적인 소경, 문맹, 영적인 소경(영맹,靈盲)입니다.
그 중에서도 영적인 소경이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육적인 소경이나 문맹은 자신이 소경이나 문맹인 사실을 알고 있으나
영적인 소경은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모르고, 또한 자신이 눈먼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데 비극이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없는 삶은 죽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깨달음으로 새로운 삶을 열어야 합니다.
세상의 이치를 보고 사물을 보고,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는 늘 깨닫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는 가운데 그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하는 말이 \\\'왜 군중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라고 했을 때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13절에 보면 \\\"저희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깨달은 마음이란 영적인 체험은 통해 겉사람에게 영향이 가서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깨닫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로 되는 것이므로 속사람을 통하여 깨닫는 체험은 쉽게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은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여러분은 말을 읽고 설교를 들을 때, 그리고 여러분 주위에서 일어나는 카고 작은 사건들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깨달으시는 믿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지적으로 함양되고 정적인 것이 되었을 때 남은 것은 행함입니다. 우리가 깨달음의 수준도 높아졌도 중요한 것은 삶속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행함이 약합니다. 성경공부는 풍성한데 왠지 삶에 변화가 더디거나 변화가 잘 나타나지 않은 것이 우리의 고민거리입니다. 은혜는 받았다고 하는데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좋은 성도는 행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말씀을 잘 듣고 깨달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가 말씀을 듣는데 그치고 있고 들은 것도 잘 듣지 못하여 들은 말씀을 깨닫기도 전에 세상속에 살면서 삼의 문제들에 휩싸여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합니다.
깨달은 것대로 행하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열매없는 신앙생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생솔가지 불에 피우면 연기만 나고 그 연기로 인해 사람들의 눈물만 자아내듯이 열매없는 신앙은 위험이 높습니다.
예배 마지막에 축도할 때 성령의 감화 감동이란 오직 성령께서 내 속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즉, 속사람의 깨달음을 성령의 감동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성적, 육적 두뇌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과 영감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또한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음이 와야 열매를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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