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전도 하라
부모를 전도하라
신5:16
지난 5월 8일이 어버이 날이었지만, 한국 교회는 오늘을 어버이 주일로 지키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오늘은 어버이에 대한 효를 다시 한번 반성하며, 신앙안에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주일입니다.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동물은 어미가 새끼 때만 사랑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호랑이도 자기 새끼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조금 크면 물어 버립니다. 새끼도 자기 필요할 때에는 어미를 따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크면 떠나 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동물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부모에게는 언제나 자식이 어린아이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육십이 넘은 아들을 출근시키면서도 ’길 조심해라’ ’사람 조심해라’ 하십니다. 결국 인간의 인간됨이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부모를 공경하고, 또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깊게 사랑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해에 ’孝 사진 콘테스트’ 수상작이란 것이 발표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중 대상은 할머니와 며느리와 손녀가 함께 김장을 하다가 베추속을 떼어서 양념을 얹어 손녀가 할머니 입에다 넣어 드리는 사진이었고, 최우수상은 아들이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업고 관광지를 다니는 모습의 사진이었습니다.
할머니, 며느리, 손녀 3대가 함께 얼굴을 맞대고 김장을 하면서, 노란 배추 속을 떼어 양념을 얹어서 할머니 잡수라고 손녀가 ’아’하면 입을 넓게 벌리고 배추 속을 받아먹는 할머니의 모습과,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며느리가 기뻐서 흐뭇한 웃음을 짖는 사진인데 이 시간 그러한 모습을 한번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겨울도 지나고 날씨가 따뜻해졌는데, 혼자서만 봄구경하는 것이 죄스러워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님을 등에라도 업고 나와 바람을 쏘여 드리는 아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그래서 외국인들이 한국 관광을 왔다가 가장 인상 깊이 보고 부러워했던 것은 바로 한국의 이 대가족 제도였다고 합니다. 손자 손녀들과 한 울타리 안에서 노년기를 행복하게 보내는 한국의 노인들이 그들은 그렇게 보기 좋았고, 식당에서 자식들이 백발의 노부모님을 모시고 식사하며 봉양하는 광경을 그들은 천국을 연상하고 돌아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양로원이나 공원의 벤치에서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서구의 노인들은 참으로 외롭기 한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아름다운 한국의 대가족 제도도 이제는 거의 다 붕괴되어 버리고, 우리 나라도 서구의 어느 나라와 다를 바 없는 핵가족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기 저기서 마구 가정이 붕괴되어 가는 소리가 들려 오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자녀들이 많아도 외로워서 자살하는 노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 자식들이 여섯이나 되는데 서로 모시지 않으려고 해서 66세된 노인이 몸에다가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 자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팔순 노모를 대소변 못가리고 부양하기 곤란하다고 흥신소에다 120만원을 주고 갖다 버리게 해서 숨지게 한 일도 있었는가 하면,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노인이 두분이나 자살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는 불효하는 정도를 떠나서 부모를 버리고 구타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패륜한 자식들이 늘어나는 이 시대입니다.
이같은 패역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그리스인들의 윤리적 표준은 십계명입니다. 그 중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져야 할 계명 중에 제일 첫 번째로 오는 것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살인, 간음, 도적질하지 말라는 계명들보다 더 중요한 계명이 효도란 말입니다. 이제 성경 말씀이 주시는 효도에 대한 교훈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세익스피어는 말하기를 ’부모의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대리자와 같은 부모에게 순종해야만 합니다. 부모는 오랜 세월을 살면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모의 말을 순종하면 그 부모의 경험적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따라서 부모나 선생의 말을 순종하는 자는 쉽게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순종할 때 주님을 본을 받아야 합니다. 눅 2:51에 보면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시며 잘 받들어 섬겼다고 했습니다. 비록 부모가 우리만 못하고 부족한 것이 많다고 할지라도, 순종하고 받들어 섬길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그에게 넘칠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는 부모에게 순종하되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를 순종하는 문제에 있어서 성경에 위배되는 것은 순종할 수 없음으로 ’주안에서’ 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2.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부모님께 좋은 옷을 해 드리고, 드시고 싶은 음식을 잘 해 드리는 것, 이런 것만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때에 부모님들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자녀들이 잘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할만큼 자랑스럽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축복의 인생을 살아갈 때인 것입니다. 이런 자식들을 바라보시는 부모님은 그 마음에 즐거움과 기쁨을 가지고 살게 될 것입니다.
3.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공경한다는 말은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1)가치를 인정한다. 2)존경한다. 3)섬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공경이란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공경은 상대방을 높이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노인은 공경과 존경의 대상이지, 노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효도가 아닙니다. ’또한 이것이 옳으니라’는 말씀은 효는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즉 효는 선행도, 공로도 아닌 ’마땅한 일’인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효도하는 것은 생색을 낼 일도, 자랑을 할 일도 아닌 지극히 당연한 일이요, 마땅한 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채권자가 술주정뱅이나 난봉군이라고 해서 여러분이 빚을 갚아야 할 의무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이 아니듯이, 부모의 연약한 혹은 부모의 무지함 때문에 부모에게 해야 하는 자식의 의무가 조금이라도 경감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만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공경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에 대한 사랑과 공경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연습이요 훈련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故 박윤선 박사님은 ’군인이 목총을 가지고 훈련을 하는 것은, 실전에 가서 진짜 총을 들고 전쟁에 나가기 위한 것 같이, 부모 공경은 하나님을 진실하게 공경하는 훈련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부모님의 거짓 없고 희생적인 사랑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참 사랑을 깨닫고, 그리고 부모 공경이라는 훈련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잘 공경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반드시 기억할 것은 효도는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때가 늦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말하기를 천국에는 ’할렐루야! 아멘’ 소리로 가득한데, 지옥에는 ’걸걸’하는 소리가 가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옥에서는 내가 부모님께 좀 더 잘 해 드릴 걸, 내가 그 때 예수를 믿을 걸, 하면서 아무리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듯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우리가 아무리 후회를 하면서 효도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시신 앞에서 많이 울고 통곡하는 자는, 불효하는 정도에 따라서 소리가 크고 그리고 슬피 운다고 합니다. 또한 불효자일수록 제사상을 잘 차리려고 한답니다. 이것은 마치 비만 오려고 하면 소리높혀 울어대는 청개구리의 울음소리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즉 부모님께서는 이 땅을 떠나실 때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섬길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통곡하고 슬퍼하며 제사 드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실 때 정성껏 모시고 잘해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 시인은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버이께서 살아 계실 때 지극한 효도를 다하여 훗날 가슴을 치며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너무도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자식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곧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약속입니다. 자녀들이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할 때 많은 범죄와 위험을 모면할 것이며,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단축시키는 것들을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잘 공경하는 자녀들의 생활을 풍성케 하십니다. 불순종과 불효는 분명히 큰 죄가 되는고로 우리에게 많은 축복을 빼앗아 가지만, 그러나 부모님께 대한 지극한 공경은 언제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훌륭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고, 그리고 그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한 자녀들이 축복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그 대표적인 사람이 이율곡 선생의 어머니 신사임당입니다. 효성이 있는 사람은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십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워싱턴도 그리고 링컨도 어머니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도, 마틴 루터, 리빙스턴, 위대한 설교가 무디, 베에토벤 등....가히 역사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역사만이 아니라 성경의 역사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한 모세는 그의 어머니의 경건한 신앙으로 되었고, 야곱은 리브가의 간절한 교육으로 되었으며, 사무엘도 그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와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고, 디모데도 자기 어머니 유니게의 신실한 믿음으로 인하여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성경에는 부모를 업신여기다가 축복을 빼앗기거나 저주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노아의 아들이며 가나안의 아비인 ’함’입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그만 술이 취하여 벌거벗고 있는 것을 본 함이 아버지의 과실을 덮어버리지 않고 두 형제에게 퍼트려 욕되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함은 그 아들 가나안과 함께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를 잘 공경한 룻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잘 공경함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조상이 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심든지 심은대로 거둡니다. 내가 부모님께 효도를 심으면 자식에게 효도를 거두게 되고, 불효를 심으면 불효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사 49:15에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낳으시고, 기르시고, 돌보아 주시는 부모님의 사랑은 가이없는 무한한 사랑이며, 목숨 있는 동안에는 한시인들 멈출 줄 모르는 끝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어버이의 사랑은 조건도 없는 사랑이며, 노력과 희생을 아끼지 아니하는 사랑이며, 자녀들이 잘 되기만을 바라시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우리에게 있어 좋은 천사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에게 최고의 점수를 주는 것은 부모입니다. 언제나 부모님은 나의 편이시며, 다른 사람에게 비록 인기가 없더라도 부모님은 절대적인 우리의 펜이십니다. 우리의 작은 성공을 크게 자랑하시며, 우리의 허물을 감싸주시느라고 애를 쓰십니다. 이런 부모님이 계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축복인 것입니다. 어버이의 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천부적 사랑이어서, 모든 사람이 변하고 온 세상이 변할지라도, 변할 줄 모르는 불변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토록 고귀한 사랑으로 돌보시며, 감싸주시는 부모님에게 자녀들은 마땅히 효도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신자는 부모님께 효도하되 예수님을 본받아서 효도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신자에게 영원한 모범이 되시는 생애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모든 면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본받아서 행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효도하시는 일에서도 온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렸을 때에도 육신의 부모를 순종하여 받드셨고,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에는, 어머니 마리아를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는 일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 모두가 예수님의 효도 생활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효도 생활을 본받아서 부모님께 효도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또한 신자는 부모님께 효도하되, 부모님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신자의 관심은 금생에만 있지 않고 영원한 내생에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내생을 믿습니다. 신자는 영생을 얻고 불신자는 영벌에 이르게 됨을 믿습니다. 이것은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영원한 운명을 좌우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힘써야 합니다. 부모님이 구원받기를 원하며 기도하고, 믿음의 본을 보여 드리고, 종종 강권하기도 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불신앙 중에 있어서 영원히 멸망에 이르게 될 부모님이 계시면, 견딜 수 없는 심정을 가지고 전도하여서,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으시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금생에서도, 또 영원한 내생에서도 복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만약에 이 일을 힘쓰지 아니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남을 것입니다.
아무리 살아 생전에 섬기기를 잘한다 한들, 인생 나그네길에서 모두 백년 미만에 끝나는 것이니 허무한 존재일 뿐입니다. 만일 우리의 부모님이 그토록 허무한 인생으로 끝나 버리고 구원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그러므로 부모님을 생전에 예수 믿게 한 자녀는, 사실 최상 최고의 효도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극한 정성을 다하고 노년에 편히 모신다 한들, 부모님의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경홀히 여기는 효도는, 참된 효도가 아닌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서 진수성찬으로 대접하고, 값진 옷으로 입혀 드리고, 열락으로 즐겁게 해 드렸다 해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여 영원한 멸망을 받은 부모가 되었다면, 이 어찌 효도이며 하나님이 명하시는 효도이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우리의 효도를 주안에서 새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시는 부모님이 계십니까? 부모님의 영혼이 귀중하기에 눈물 뿌려 기도하고, 전도하여 참 효도를 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그 고마우신 부모님의 영혼이 멸망하게 된다면 이게 될 말입니까?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라면, 불신 부모님을 생각할 때 눈물 없이는 이 날을 지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앙으로 통일된 가정처럼 아름다운 가정은 없습니다. 유대 민족이 2000여년 동안 그토록 무서운 시련을 당하면서도 망하지 않았던 까닭은 그들이 비록 나라가 없었고 영토가 없었어도 신앙으로 하나 된 가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 민족이그 무서운 환난과 핍박과 고통속에서도 끝까지 절망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의 가슴속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저들에게 고난과 박해를 극복할 수 있게 하였습니까? 바로 신앙과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과 사랑, 사랑과 신앙은 바로 가장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는 비결인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참된 신앙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공경하기는커녕, 부모를 홀대하고, 무시하며, 심지어는 부모를 폭행하고 살해까지도 주저치 않은 이 패역하고 배은망덕한 시대에, 우리 송정 중앙 교회 성도들은 위로 하나님 잘 섬기고, 아래로 부모님 잘 공경하며, 믿지 않은 부모님은 반드시 주님께 인도하여서 최상의 효도를 해 드리는, 지극한 효자 효녀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다 받아 누리며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