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을 살리는 전도
이방인을 살리는 전도와 설교
창31:15
전도에 열정이 있는 목사님들이 불신자들의 삶의 현장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평신도들과 동행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서 전도를 할 때 목사님보다 평신도들이 불신자들을 더 많이 영접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평신도들은 자신이 목사보다 더 영권이 있으며 목사는 신자를 대상으로 설교는 잘 하지만 현장에 약하다는 오해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도 한다’는 말과 ‘설교 한다’는 말이 같은 단어를 쓰는 같은 의미라는 사실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전도, 설교’를 나타내는 단어로 κηύσσω(케뤼쏘)라는 동사가 존재한다. κηύσσω(케뤼쏘)의 원래 의미는 ‘공중 앞에서 무엇을 선포하다, 외치다(계5:2), 공공연히 말하다, 공공연히 전파하다(막1:45, 5:20; 눅8:39)’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교하였기 때문에 ‘전파하다, 전도하다(막1:7, 16:15; 마4:23; 갈5:11), 반포하다(롬2:21), 이르다(막9:35), 말하다(행10:47), 외치다(계5:2)’ 등의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κηύσσω(케뤼쏘)에서 파생(派生)된 단어가 바로 ‘전도, 설교, 선포’라는 뜻으로 쓰인 κηρυγμα(케뤼그마)이다.
결국 목사님들이 강단을 통해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와 평신도들이 현장에서 하는 ‘전도’가 같은 의미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만 목사님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현장을 가는 것은 현장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실제로 현장에 있는 불신자들을 가리켜 성경은 ‘이방인’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히브리어에서 이방인을 말할 때 יוֹגּ(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יוֹגּ(꼬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사용하는 단어이기에(사1:4, 9:2, 26:2, 49:7; 창35:11, 12:2…) 완전하게 불신자를 가리키는 이방인의 뜻은 י(노크리)이다.
י(노크리)는 ‘낯선, 생소한’이라는 형용사로 원래 사용되었으나, 많은 경우 명사적 용법으로 사용되어 ‘외인(창31:15), 이방(출18:3; 잠2:16; 렘2:21), 객(신14:21, 29:22), 이방인(신15:3; 왕상8:41; 대하6:32), 나그네(삼하15:19), 외국인(욥1:11), 이방 여인(롯2:10; 잠23:27)’ 등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이방인을 나타내는 י(노크리)는 ‘운명, 죽음, 재앙, 불운(욥6:2, 31:3)’의 뜻을 지닌 ר(네케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이기에 ‘이방인’과 ‘운명, 재앙, 죽음, 불운’은 동일 선상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지 않은 자는 이방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고 운명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에 재앙과 죽음과 불운은 어떤 의미에서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방인인 불신자들은 운명에 빠져 있기에 우상숭배를 하고 점을 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이 우상숭배와 점술에 빠지는 행위 자체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불신자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불신자들의 점치는 행위나 풍수사상, 무속 신앙 등은 사람들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자포자기나 허무주의에 빠지게 할 요소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 매스컴과 각종 간행물에는「오늘의 운세」라는 내용물과 무속인들의 점술 선전문구가 그들의 사진과 함께 아무런 저항과 제재 없이 버젓하게 실리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변하여 무속과 귀신문화와 종교가 판을 친다 해도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피조물인 인간은 반드시 창조주를 기억하고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고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그분을 영접하는 길임을 말하고 있다.(요1:12, 14:6)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복음을 현장에 전하여 불신자들이 우상과 그 배경에서 역사하는 마귀의 권세에서 벗어나 유일한 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전도이다. 그런데 평신도는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기 전에 강단의 메시지에서 은혜를 받는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의 기도와 예배를 통해 목사의 설교는 더욱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되며 강단의 메시지가 성령 충만할 때 성도는 현장에서 힘 있게 전도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도’와 ‘설교’는 같은 의미이고 이방인을 살리기 위해 목사는 ‘설교’를 성도는 ‘전도’를 하는 일이 같은 의미이므로 목사와 성도는 더욱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며 함께 복음 전하는 평생 동역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서말심 목사⋅총신 언어학 교수. 광주 서부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