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헌신
아름다운 헌신
대상11:15-19
꽤 덥습니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찾아온 불볕 더위는 정말 폭염입니다. 낮에도 덥고, 밤에도 덥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어저께와 그저께는 너무 더워서 정신이 몽롱할 지경이었습니다
. 선풍기를 틀어놓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몸에 땀이 차 올라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요 며칠 선풍기를 끼고 살고 있고, 선풍기 쟁탈전이 벌어질 지경입니다.
에어컨이 있는 가정은 조금 낫겠습니다만,
지난달부터 전기요금 누진제가 더 크게 적용되면서 전기요금이 엄청 많이 올려 나온답니다. 단단히 마음먹지 않고는 에어콘을 틀어 놓고 있기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이나 바닷가를 찾아가 더위를 식히는 것이 최고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은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시원한 냉수 한 그릇이 더위를 가시게 하는 데는 최고일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뒷산 자락에 있던 샘물은 정말 생수였습니다. 요즘 생수라고 해서 돈을 주고 사먹는 샘물이 있지요. 그나마 믿고 마실 수 있는 신선한 물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어렸을 때, 그 샘에서 먹던 물보다는 훨씬 못한 것 같습니다. 물이 달다는 것을 저는 그 때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덥고 땀이 많이 흐를 때는 수분을 충분히 보충해 주어야 하는데, 하루에 한 열 컵 정도의 물은 마셔야 한다고 합니다. 한 두 시간에 한잔 정도씩 냉수를 마시면 그것도 여름을 이기는 좋은 방법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때도 이렇게 폭염으로 심신이 나른해지는 때였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베들레헴을 중심으로 해서 서로 대치하면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고향이 베들레헴이었는데, 지금 그 고향은 적진의 손으로 넘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향을 생각하던 다윗은 문득 고향집 근처에 있던 샘물이 생각났습니다. 어렸을 때, 양을 치고 돌아오거나 밭에서 일을 하고 돌아올 때, 시원하게 한 바가지씩 퍼마셨던 그 우물물이 생각났습니다. 찌는 듯한 더위에 계속되는 전쟁으로 심신은 피곤에 지쳐 있는데, 갑자기 고향의 우물물을 생각하니 먹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푸념 식으로 한마디했습니다. \"누가 베들레헴 서문 곁 우물물을 나로 마시게 할꼬?\" 꼭 길어오라는 것도 아니고 못 먹으면 죽겠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 우물물이 갑자기 많이 그리워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다윗의 이 말을 들은 충성스러운 용사 셋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입에서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블레셋 적진을 향해 말을 타고 달려들어갔습니다. 너무 갑작스런 상황이라 다윗이 말릴 틈도 없었고, 이스라엘 장수들도 말릴 틈이 없었습니다. 쏜살같이 적진을 향해 달려들어가는 그들을 블레셋 군대도 너무 갑작스런 상황이라 적적히 대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면서 길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세 용사는 서로를 도우면서 포위해 오는 적진을 뚫고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긷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적진을 뚫고 다윗이 있는 산성으로 말을 몰고 달려 들어왔습니다. 병사들은 박수를 치면서 저들의 용기를 칭찬했습니다.
다윗도 그들이 길어온 그 물을 받아드는 순간, 정말 뜨거운 감동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충성스럽고 얼마나 대견스럽고 얼마나 자랑스럽고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여러분 앞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요즘은 너무 더우니까 손 하나 까딱하는 것도 귀찮게 느껴집니다. 요즘 같은 때는 주부들의 수고가 더욱 크다고 생각합니다. 더운데 더운 밥 해내랴, 빨래하랴, 청소하랴, 아이들 방학이라 그것 뒤치다꺼리하랴 몸이 서넛이라도 모자랄 정도로 피곤하고 바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 이번 전교인 수양회에 오세요. 네 끼 내지는 다섯 끼를 잘 해결해 드립니다. 이번에는 남자 분들이 많이 도와주기로 작정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위에서 해방 받고 싶으시면 어떻게 우겨서라도 이번 수양회에 꼭 참석하시기를 바랍니다. 너무 덮다보니까 아이들에게 물 한 컵 가져오라고 하여도 그것이 고분고분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저 적진을 뚫고서 세 용사가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물을 떠 왔을 때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정작 그 물을 받아들자 차마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 물은 어떤 물입니까?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적진을 향해 내 달았던 병사들의 피가 섞인 물이지 않습니까? 다윗은 그 물을 하나님 제단에 쏟아 부으면서 회개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이 얼마나 아름다운 스토리입니까? 저는 여기서 아름다운 헌신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는 세 용사에게서 헌신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세 용사의 헌신은 어떤 헌신이었습니까?
첫째, 세 용사의 헌신은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헌신이었습니다.
세 용사가 적진을 뚫고 길어온 물은 다윗의 목을 시원케 하기 이전에 다윗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된 헌신은 이와 같이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것입니다. 잠언 25장 13절 말씀을 보면,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헌신은 어떤 헌신입니까? 내가 정말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서 나타나는 헌신입니다. 세 용사의 헌신은 물을 떠 왔느냐, 못 떠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이 정말 중요했다면 다윗은 그 물을 마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읽은 것만으로도 다윗은 그들의 헌신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 앞에서의 우리의 헌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얼마나 주님 앞에 내 것을 희생시켰고, 또 얼마나 눈에 띄는 결과를 나타내었는가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의 헌신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 희생했을 때 그것은 그 어떤 헌신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헌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세 용사의 헌신은 생명을 돌아보지 않는 헌신이었습니다.
<헌신>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몸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세 용사는 다윗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기들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적진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은 이미 자기의 생명을 버린다는 각오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기를 희생시키지 않는 헌신은 헌신이 아닙니다. 말로는 충성을 맹세하지만 실제로 목숨을 던져야 때 빠져 버린다면 그것은 절대로 헌신이 아닙니다.
엊그제 장로님이 대전 국립묘지에 다녀오셨습니다. 조집사님 형부 되시는 분의 하관식 때문에 다녀오신 것이었는데, 돌아가신 고인은 이전에 6.25때 공을 세우신 분인데, 돌아가시니까 국립묘지에 안장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다녀오신 소감을 말씀하시는데 정말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은 영광스러운 것이 된다고 하십니다. 그 모든 의전이 얼마나 절도 있고 규모가 있고 정성을 다했는지 나라를 위한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그런 의식이었다고 합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진 것이 헌신입니다.
우리 주님을 위한 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목숨까지 바쳐 드릴 수 있으면 그것은 아주 귀한 헌신이 되는 것입니다. 순교의 자리에서 목숨을 요구하시면 내 목숨을 기꺼이 내여 드리는 것 그것이 헌신입니다. 첫 번째 순교자 스데반 집사는 주를 위해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의 자리가 마련되자 결코 뒤로 물러가지 않고 기꺼이 그 순교의 잔을 받아 마셨습니다. 그것이 헌신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우리를 다 그렇게 순교자로 부르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면 생을 주님께 바쳐 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헌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으로 하는 헌신도 생명을 돌보지 않는 헌신이고, 죽기까지 하는 헌신도 생명을 돌아보지 않는 헌신입니다. 다윗의 세 용사는 목숨을 던지려고 했지만 죽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서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주를 향한 이런 헌신이 참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우리는 다윗에게서도 하나님을 향한 참된 헌신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의 헌신은 어떤 헌신이었습니까?
다윗의 헌신은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께 자기의 가장 귀한 것을 쏟아 붓는 헌신입니다.
다윗은 세 용사가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길어온 베들레헴 성문 곁의 우물물을 받았을 때, 그것을 자기가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전부 다 쏟아 부었습니다. 다윗은 세 용사의 헌신을 통해 참된 헌신이 무엇인지를 금방 배웠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가장 귀한 이 피 섞인 생수를 하나님께 쏟아 부은 것입니다.
그리고 생수만 쏟아 부은 것이 아니고, 자기의 생을 하나님을 위해 쏟아 부었고, 자신의 전 재산을 하나님을 위해 쏟아 부었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크고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다면 성전건축이었습니다. 다윗은 금은보화가 생기면 다 모아서 장차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준비하였습니다. 다윗의 유언이 무엇입니까? 아들 솔로몬에게 자기가 그간 모은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 봉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헌신은 자기의 귀한 것을 쏟아 붓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귀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깨뜨려 쏟아 부으면서 헌신했습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논밭을 팔아 하나님 앞에 쏟아 부으면서 헌신했습니다.
야곱은 자기의 전 재산인 기름 한 병을 쏟아 부으면서 헌신했습니다.
인도의 한 선교사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갠지스 강을 신성시합니다. 그래서 그 물을 성수로 퍼마시기도 하고 그 물에 목욕을 하면서 회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헌신이 지나친 사람들은 거기에 자기의 자녀를 수장시키기도 합니다. 선교사님은 이런 일들을 막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강둑에 한 여인이 두 아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직감적으로 아이를 수장시키려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를 만류하기 위해 선교사님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허사였습니다. 한참 후 그 여인이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물론 한 아들만 데리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둘 중에 건강한 아이를 물에 빠뜨리고 약하고 병든 아이를 데려 오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님은 기왕에 죽일 것이면 약하고 병든 아이를 죽이고 건강한 아이들 데리고 올 것이지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럴 때, 그 여인은 대답했습니다. 당신들은 당신의 신에게 병들고 약한 것을 드리느냐고. 선교사님은 뒤통수를 맞은 듯 했습니다. 그리고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헌신은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쏟아 부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그것을 쏟아 부을 때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헌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귀한 것을 쏟아 부어드림으로 하나님께 아름다운 헌신을 드리는 귀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