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은 어린이 의 헌신

한 작은 아이의 헌신
왕하5:1-7





덴마크라는 나라는 육지보다는 바다가 훨씬 높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는 바닷가로 쭉 가면서 뚝을 막아서 바닷물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고서 사람들이 농사도 짓고 꽃도 재배하고 그렇게 생활을 한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 있어서 뚝은 곧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아주 중요한 시설물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한 소년이 그 바다로 난 뚝 길을 따라서 심부름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밤길을 가는 그 소년에게 어디선가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막아놓은 뚝 한쪽에서 아주 작은 구멍이 나서 바닷물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두운 밤이라 그냥 지나 칠 수도 있었지만 그 소년은 그곳을 지나치지 않고서 이것을 어떻게 막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막을 만한 적당한 것이 눈에 뜨이지 않자 그 소년은 자신의 손가락으로 그 구멍을 막았습니다. 다행히 물은 새지는 않았으나 소년은 이제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를 지나니까? 손가락으로 막았던 그 구멍이 조금씩 조금씩 커지더니만 이제는 주먹으로 막을 만큼 구멍이 커져 버렸습니다. 소년은 급기야는 자신의 주먹으로 그 구멍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구멍이 더 커지더니만 이제는 팔뚝 전체를 집어넣어서 막아야 했습니다. 당황한 그 소년이 마을 사람들에게 뚝이 터진다고 소리를 쳤고 도와 달라고 소리를 쳤지만 깊은 밤이라 아무도 그 어린 소년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그 뚝은 어느새 소년 자신의 몸을 던져서 막아야 하는 큰 구멍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북극의 밤은 몹시도 추워서 소년은 밤새 자신의 몸을 통하여 바닷물이 넘쳐 오지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에 그만 그 자리에서 얼어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른 아침 마을에서 어른들이 밤사이에 실종이 된 그 소년을 찾았을 때 그는 이미 뚝에 몸이 끼여서 죽고 난 뒤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소년의 주검을 본 마을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린 소년이 마을 사람 전체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몸으로 무너지려는 뚝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소년 한 사람으로 희생으로 마을 전체는 살아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귀한 희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희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그 소년은 어두운 밤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아니 그 광경을 전혀 못 본 척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년은 그냥 지나가지를 않았습니다. 자신의 몸을 바쳐서 무너지려는 뚝을 막았고 그로 인해 마을 사람 전체를 살렸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작은아이의 희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아이라 생각하십니까? 공연한 짓을 했구나 생각이 되십니까? 오늘 날 자신만을 알고 자신의 것만을 챙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는 참으로 귀한 모습이 아닐 까? 생각해 봅니다. 마을을 살리기 위한 이 어린아이의 섬김이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성경에도 이런 작은 어린아이들의 섬김이 기록되어져 있는 곳이 여러 곳이 있습니다. 한 작은 어린아이들의 섬김과 희생으로 많은 어른들이 살았고 또 그 어려움 속에서 건짐을 받았던 기록이 성경에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아람이라는 나라에 나아만이라는 군대장관이 있었습니다. 이 아람이라는 나라는 나중에 \"수리아\"라고도 불렸던 나라입니다. 셈족의 후예로서 원래는 유목민이었으나 후에 다메섹에 정착을 하여 크게 성장한 나라였습니다.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상황에 따라서 적대관계 혹은 우호관계를 맺은 그런 나라였고 특별히 상업에 뛰어난 기술이 있어서 이들의 언어가 세계적인 언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신약시대에는 그들의 아람어가 팔레스틴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을 우리는 기록을 통해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람나라의 군사들을 지휘하는 총 지휘권을 가진 나아만이라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문둥병자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용사이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신체적인 아픔과 어려움이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신체적인 아픔이 나아만에게는 큰 고통이요 괴로움이었습니다. 그는 한 나라의 군대장관이기 때문에 그는 얼마든지 좋은 약과 좋은 의사를 동원하여 자신의 병을 고쳐 보려고 많은 수고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전혀 그 병이 낫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아만의 집에는 이스라엘과 전쟁 때 사로잡아 온 여자 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나아만의 집에 있는 그 여자아이가 누구인지, 어디에 살았는지,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누구인지는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을 살펴보면 이 여자아이의 행한 그 일은 매우 귀중한 일임을 우리는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아이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이 아람나라에도 전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어린아이가 낯 설은 땅에 포로로 잡혀 와서 살아가는데 얼마나 무서웠고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린아이는 열심히 일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주인과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함을 받았고 신뢰를 받았음을 추측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늘 그의 주인인 나아만과 그의 부인이 이 문둥병 때문에 마음에 큰 고민과 아픔이 있는 것을 그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 수가 있었던 여종인지라 어느 날 고민을 하는 나아만의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저가 그 병을 고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아만의 아내는 그 어린아이의 말에 아마도 귀가 번쩍 뜨였을 것입니다. 그는 즉시 나아만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며 나아만도 아내로부터 전해들은 이 사실을 즉시 왕에게 보고를 하였던 것입니다.

자! 여러분! 이 상황을 한번 정리를 해 보면 이렇습니다. 아람나라의 군대장관인 나아만은 문둥병 환자입니다. 그가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사용을 하였겠지만 그 병은 낫지를 않았습니다. 이래저래 고민을 하고 있던 나아만의 아내에게 전쟁 때 포로로 잡혀 온 여자아이가 그 주인에게 사마리아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에게 보이면 그 병을 고칠 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나아만은 즉시 이 사실을 그대로 왕에게 보고를 하고 이스라엘로 떠나가는데 그가 이스라엘 왕 앞으로 한 통의 편지를 가지고 가는데 그 편지는 이 나아만의 병을 고쳐주라는 아람 왕의 편지였습니다. 물론 이 병은 아람 임금의 편지 한 통으로 고쳐질 수 있는 종류의 병이 아닙니다. 왕의 막강한 권세로도 고칠 수가 있는 병이 아니었습니다. 왕의 가진 좋다는 의사들로도 물론 이 병은 절대로 고칠 수가 없는 그런 불치의 병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아이의 말이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는 고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어린 여자아이가 어떻게 해서 선지자는 이 병을 고칠 수가 있다고 믿었으며 또 그의 주인 내외인 나아만의 부부가 이 철없는 아이의 말을 들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아이의 신분은 포로로 잡혀온 종입니다. 남의 집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는 그런 하찮은 종의 신분의 아이입니다. 감히 그가 주인의 병에 대하여 이렇게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못됩니다. 감히 어디라고 그가 주인의 병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그런데 나아만의 아내는 이 어린아이가 한 그 말을 듣고서 즉시 남편에게 알렸습니다. 또 그 이야기를 들을 그 남편은 지체하지 않고서 이 사실을 왕에게 알렸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런 일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 질 수가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성도 여러분! 그 어린아이가 알면 무엇을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리고 그 아이가 안다고 해도 여러분들은 과연 그 어린아이의 말을 얼마나 신뢰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또 그 아이가 이스라엘 땅에 있는 선지자의 사역을 알고 있다면 과연 어느 정도 그가 깊이 알고 있었겠습니까? 그 사실에 대하여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담대하게 그 선지자 앞에 가면 고칠 수가 있을텐데.. 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나아만도 그의 아내도 이 어린아이의 말을 듣고서 신뢰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신뢰 정도가 아니라 \"이미 병을 고쳤다\" 라고 생각 할 만큼 그들의 태도가 신속하고 밝아졌습니다. 그 아이의 말만 듣고서 말입니다. 그리고는 즉시 이스라엘로 떠나게 되는 것을 봅니다.

아니 어떻게 해서 한나라의 군대장관이요 아람나라의 존귀한 사람인 그가 이 어린아이의 말을 듣고서 그렇게 쉽게 이스라엘로 갈 수가 있었을 까요? 그것은 아마도 그 어린아이의 평상시의 모습이 그들로 하여금 신뢰감이 가도록 행동을 하였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믿고 신뢰할 만큼의 그 아이의 행동이나 말이 신중했고 진실하였음을 우리는 추측할 수가 있습니다. 한 어린아이의 작은 충고가 나아만을 살렸습니다. 한 작은아이의 섬김이 나아만을 병을 낫게 하였습니다. 그의 가정에 기쁨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헌신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꼭 크게 무엇인가? 업적을 이루어 놓아야만 그것이 헌신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남들이 기억할 만한 크고 귀한 일을 하여야만 헌신입니까? 성경에 나타난 헌신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헌신은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헌신은 남들이 보기에는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주 소중한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헌신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함을 알아야 합니다. 아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함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나아만은 새로운 사람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수심이 가득했고 고통이 극심했던 나아만의 가정이 기쁨의 가정으로 바뀌어 살아갑니다. 왜요!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바로 한 작은 어린아이의 섬김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작은 한 아이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한 작은아이의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한 마디의 충고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한마디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성경에 나타난 주님의 많은 사역들 가운데서 특별히 병자들을 고치시는 장면을 보면 그 많은 병자들을 고치실 때 주님은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봅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예! 주님. 내가 낫기를 원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또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가 정녕 보기를 원하느냐? 예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주님의 고침의 사역 가운데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말의 힘을 실감하게 됩니다.

나아만 그는 어린 소녀의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기뻤으면 그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감격스러웠으면 엘리사에게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달라고 하였겠습니까? 그가 그 흙으로 하나님께만 번제를 드리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더 감사한 것은 그 나아만이 아람의 왕이 립몬의 사당에 들어가서 제사를 지낼 때 나아만의 손을 의지하여 들어가서 제사를 드리는데 그때 하나님은 그것이 나의 본심이 아니니 노하시지 마옵소서 라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 가있습니다.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한번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히게 되면, 한번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게 되면 그 사람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작은 헌신, 작은 섬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 한 마디의 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복음은 사람을 변화 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살려냅니다. 행2장에 보시면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제자들이 모두 성령에 충만한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한 베드로의 설교를 듣게 됩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심령을 쪼개고 골수를 쪼개고 관절을 쪼갰습니다. 사람들이 변화가 됩니다. 마음이 바뀝니다. 그들이 베드로에게 하는 말이 \"형제여! 우리가 어찌할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보니 우리가 죄인이군요, 우리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군요. 우리가 어찌해야 합니까? 그때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라고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서 사람들에게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까? 성령 충만한 베드로의 말 한마디가 저들의 마음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고 한 사람의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아니 오늘을 살아가시면서 무슨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생명을 얻게 하는 귀한 말씀을 하시길 바랍니다. 사람을 살리는 귀한 말을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아름다운 말을 하시길 바랍니다.

나아만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의 집에 노예로 잡혀 온 있는 한 어린 소녀의 충고로 그가 이스라엘로 가서 엘리사를 만났는데 그 엘리사가 밖을 내다보지도 않고 요단강에 가서 몸을 7번 씻으라고 하니 그가 대단히 노하였던 것입니다. 아니 그래도 자기가 나와서 상처에 손을 얻고 안수 기도를 하던지 특별한 약을 발라 주던지 뭐 그렇게 해야 치료가 되는 줄 알았는데 전혀 엉뚱하게 요단강에 가서 7번 씻으라고 하니 그가 분노하여 그 자리를 떠나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종들이 나아와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더 큰일을 하라고 했어도 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물며 씻어 깨끗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그들이 간청을 합니다. 참 좋은 종들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주인을 향하여 이렇게 충성스러울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겠습니까? 정말 귀한 종들의 모습입니다.

나아만 그는 정말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정말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의 주위에 이렇듯 아름다운 종들이 있다는 말입니까? 여러분! 이런 것이 헌신이지 않습니까? 그 종들이 주인에게 이렇게 간청을 하면서 그 주인이 요단강에 들어가도록 간청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작은 여자아이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무엇 때문에 그 주인이 이스라엘 땅에 있는 선지자에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였을까요? 돈을 벌기 위해서 입니까? 명예를 구하기 위해서 입니까? 종에서 놓여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입니까? 자신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입니다. 그 사람이 낫던 아니 낫던 그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섬기는 그들의 삶이 바로 헌신이요 희생이요 섬김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헌신은 어떻습니까? 이웃을 향한 우리의 섬김은 어떤 모습입니까? 온전한 헌신에는 대가가 없습니다. 온전한 섬김에는 나의 유익을 위한 어떤 요구사항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월 헌신의 달 마지막 주일 지냅니다. 또 우리는 사순절 두 번째 주간을 지냅니다. 사순절은 주님께서 이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전도여행 입니다. 주님을 묵상하고 그리워해야 하는 그런 계절이 이 사순절의 계절입니다. 보다 깊은 영적인 의미에서 헌신을 생각해야 할 시기가 바로 이 때입니다.

여러분! 고향도 나타나지 않고, 부모의 이름도 나타나지 않고, 더욱이 본인의 이름도 나타나지 않는 한 무명의 작은 어린아이처럼 우리도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그런 온전한 섬김과 희생을 할 수가 있을까요? 어쩌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일지도 모르는 그런 일에 대하여 섬김과 헌신을 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내가 가진 것 모두다 주께 드리오니 주 받으옵소서 라고 고백하는 여러분의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께서 홀로 영광을 받으시길 소원하며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